남의 집 정원 구경 - 사적인 정원 16곳에서 배우는 가드닝 노하우
박희영(양평서정이네) 지음, 박원순 감수 / 클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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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홈가드닝을 한지 몇 년이 지나고 보니, 식물을 키운다는 것은 시간을 투자하고, 마음을 쏟은 만큼 딱 그대로 돌아오는 결과인 것 같다. 내가 이만큼 하면 자연이 그만큼 하고, 거기 내가 응답하면 자연도 다시 응답하는 식으로 반복하는 것이다. 물론 잠깐 바쁘다는 핑계로 방치해도 그걸 견디고 살아남는 식물도 있겠지만, 대부분 정성을 들인 만큼 잘 자라게 마련이다. 


숲속을 걸으면 스트레스가 해소되고 면역력이 강화되고 집중력이 높아진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지만, 사실 도심에서 숲을 즐기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공원을 가자고 해도 일부러 시간을 내어 가야 하는 것이니 말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바쁜 일상 생활 속에서 자연을 즐기기 위해 거실과 창가와 사무실 선반에 식물을 두곤 한다. 




식물을 기르는 사람이 늘어나자 식물을 가꾸고 기르며 교감하는 것을 뜻하는 '반려식물'이라는 신조어가 생기기도 했고, '플랜테리어'의 유행으로 다양한 식물들을 집에서, 회사에서 볼 수 있는 요즘이다. 그 중에서도 나만의 '정원'을 꾸민다는 것은 식집사들에게는 거의 꿈같은 일이다. 정원이란 현실의 장소인 동시에 상상의 장소이기도 한 셈이다. 현실적으로 도심의 아파트에서 정원을 만들 수는 없는 일이니 말이다. 적당한 야외 공간 내지는 어느 정도 너비가 되는 마당이 있어야 정원을 만들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내가 꿈꾸던 정원들을 마음껏 구경할 수 있어 꿈의 현실 버전같은 느낌도 들었다. 


이 책은 유튜브 가드닝 크리에이터 '양평서정이네'의 첫 번째 책이다.  단일 영상 100만 뷰 이상의 시리즈 '남의집정원식물구경'을 새롭게 엮어 책으로 펼쳐 낸 것이다. 저자가 양평군 개군면의 참나무 울창한 산속에 집을 지어 이사한 후 50평이 채 안 되는 마당에 정원 가꾸기를 시작하고, 유튜브를 시작하며 이웃들의 정원을 담게 되었다. 규모가 작든 크든 정원주의 손으로 가꾼 정원들만 선정했다. 




이 책에는 다양하고 아름다운 꽃들이 가득한 힐가든, 틀밥을 만들고 온실을 직접 조립하며 가꾸고 있는 초록가든, 남편이 직접 설계한 집에서 나무 옆으로 오두막을 짓고, 장미를 가득 모은 우드베일리가든, 깊은 산속에 자리한 동화 같은 산속 정원 홀리가든, 주말이면 3대가 모여 정원을 가꾸는 헤이데이가든, 멸종위기 식물들이 사는 산처럼 드넓은 솔매음정원 등 위치도 다르고, 취향도 다른 정원들이 16곳이 담겨 있다. 


우선 사진이 정말 많이 수록되어 있는데 퀄리티가 매우 높고, 각각의 정원마다 직접 그린 평면도를 담아 전체 구조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했다. 정원별로 식물 특징과 식재 방식, 학명 또는 품종명을 깔끔하게 정리해 두어 정보적인 면에서도 굉장히 뛰어난 책이다. 박원순 국립세종수목원 전시원실 실장의 세밀한 감수도 거친 책이라 식물에 관한 정보면에서 정확성도 높였다. 식물에 관한 책을 정말 많이 찾아 읽은 편인데, 이 책은 그 중에서도 압도적으로 아름답고, 배울 것도 많아 굉장히 만족스러웠다. 




식물은 봄부터 시작해 여름, 가을, 겨울을 거치며 계절에 맞게 다른 풍경을 보여준다. 적당한 온도와 살랑이는 바람을 느낄 수 있는 봄, 쏟아지는 장마비를 식물에게 주고 싶어서 화분을 몇 번이나 옮기게 되는 여름, 바람의 온도가 바뀌는 가을과 다가올 계정을 준비하느라 성장이 더뎌지는 겨울까지... 정원이 있다면 이 모든 것을 더 잘, 더 풍성하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식물을 키우는 일이 곧 스스로를 돌보는 일이 되어 주기도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는 아파트 거주 비중이 높아서 해외에 비해 정원 문화가 상대적으로 덜 발전한 편이다. 그럼에도 이 책을 읽으며 전국 곳곳에 이렇게나 아름다운 정원들이 있다니 감탄했다. 물론 도심에서 정원을 가꾸며 살기란 쉽지 않아 대부분 도심 바깥에 위치한 곳들이긴 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서울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이렇게 멋진 정원을 가꾸며 살 수 있다니... 언젠가 이사를 하게 되면 꼭 고려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정원을 꿈꾸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여의치 않아 포기하고 집에서 소소하게 식물을 키우며 살고 있는 많은 분들에게 이 책을 추천해주고 싶다. 그야말로 아름다운 정원이라는 대리만족을 확실하게 시켜줄 테니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며 언젠가는 이런 정원을 만들어야지 생각해 본다면, 그 시간만으로도 힐링이 되는 듯한 기분이 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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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의 의뢰인 TURN 11
가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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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이제는 최정훈이 입을 다물 차례였다. 서연우의 느긋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세상에 의미 없는 일이 뭐가 있겠어요. 어떤 식으로든 결과가 돌아올 거라고 생각해요."

"너무 낙관적인 거 아냐?"

"비관적인 것보다는 낫죠."                 p.71


심부름센터를 운영 중인 최정훈은 사흘 잠복한 뒤로 카페에서 졸다가 깨어난다. 수면 상태에 빠진 태블릿 PC와 얼음이 거의 다 녹아가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이 눈에 들어왔다. 사무실에서 나오다가 급하게 의뢰인의 연락을 받고 카페에 들어와 자료를 훑어보다가 까무룩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화장실에 갔다가 의뢰인과 전화 통화를 하고 다시 자리로 가려는데, 사람들이 모여 웅성대고 있었다. 덩치 큰 남자 손님이 성을 내던 중이었는데, 갑자기 자신이 태블릿 PC 도둑으로 몰린 것이다. 재수가 없거니 했지만 설마 이렇게까지 없을 줄은 예상치 못한 최정훈은 억울함에 분통이 터지는데, 그를 도와준 건 카페 사장 서연우였다. 서연우의 기지로 위기를 모면하고, 누명도 벗게 되는데, 얼마뒤 그를 의뢰인으로 만나게 된다. 


사실 최정훈은 어릴 적 친구가 누명을 쓰고 살해 당한 사건 이후 경찰을 그만두고 나온 전직 경찰이다. 그는 진범이 따로 있다고 믿고 있었지만, 자그마치 3년이 지나도록 별다른 증거를 찾을 수는 없었다. 그런데 10여 년 전 잠깐 외출한다면서 나갔다가 실종된 부모를 찾아달라는 서연우의 의뢰를 조사하면서, 자신이 오래도록 매달려온 사건과의 연결점이 보이기 시작한다. 게다가 처음으로 3년 전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된 자신의 친구가 무죄일지도 모른다는 서연우로부터 말을 듣게 된다. 아무런 증거도 없었고, 아무도 관심 조차 없었던 사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최정훈은 갑작스럽게 카페 새벽에 들이닥친 마약 중독자 ‘오태훈’의 뒤를 밟으며 점차 그날의 진실에 가까워지기 시작한다. 과연 그는 수년 전에 죽은 친구의 결백을 밝히고, 10여 년 전 잠깐 외출한다면서 나갔다가 실종된 서연우 부모의 사건에 감취진 진실을 찾아낼 수 있을까. 




".....어쩐지. 네가 속수무책으로 덜미를 붙잡혔다 싶더라니."

이정민이 아득하게 중얼거렸다. 좀처럼 사람을 곁에 두지 않는 최정훈이 별 반항도 하지 못하고 길들여진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저 앳된 사장의 순수한 호의와 약간의 장난기에 반발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세상에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게, 호락호락한 놈이 아니라니까."  

최정훈은 약간의 죄책감을 담아 대답하며 커피를 다시 크게 들이켰다.                 p.282


지금 가장 새로운 이야기로의 가뿐한 귀환, 턴(TURN) 시리즈 열한 번째 작품이다. 커피를 아주 좋아한다는 가언 작가는 이 작품의 배경으로 카페를 자주 등장시킨다. 목차마저 아이스 아메리카노, 딸기 스무디, 바닐라라테 등으로 지었을 정도이니 말이다. 턴 시리즈에는 표지 이미지를 담은 엽서가 포함되어 있는데, 뒷면에 작가의 친필 인쇄 메시지가 있다. 커피 한 잔과 함께 이 이야기를 즐겨 주시면 정말 기쁠 것 같다는 작가의 말에 커피를 마시며 읽었는데, 덕분에 더 재미있는 시간이었다. 카페라는 공간을 좋아하고, 커피를 사랑하기에 수많은 장소를 다녀 봤는데 그래서인지 이 작품에 등장하는 카페 새벽도 극중 묘사만으로 금세 친근해진 공간처럼 느껴졌다. 어릴 때는 카페를 운영하는 친구가 있으면 좋겠다, 그럼 매일 아지트처럼 찾아가서 시간을 보낼 수 있을 텐데 하고 생각하기도 했다. 나처럼 그런 로망이 있었다면 이 작품을 더 즐기며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 작품은 추리 소설치고는 좀 색다른 분위기를 만들어 내는데, 왜냐하면 고즈넉한 카페의 분위기부터 다정한 성격의 카페 사장이 만들어 내는 선함이 독특한 재미를 선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덕분에 서사 자체는 스릴 넘치는 미스터리이지만, '상냥한 추리극'이라는 문구처럼 어딘가 선한 분위기가 시종일관 맴돈다. 시종일관 해사한 미소와 다정한 태도를 잃지 않는 카페 사장 서연우와 어울리다보니, 무뚝뚝하고 시니컬한 전직 경찰 최정훈마저 그에 동화되는 느낌이랄까. 두 캐릭터의 독특한 케미가 이 작품의 진짜 매력이기도 하다. 막판에는 담배 연기에 찌들어서 질식사할 것 같던 최정훈이 카페 새벽에 가기 전에는 환기를 시키고, 탈취제까지 뿌리기에 이르니 말이다. 계속 커피 얻어먹고 싶으면 담배 끊으라고 잔소리하는 서연우의 의도대로 최정훈이 달라지는 걸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그래서 두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시리즈가 만들어져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추리, 미스터리 장르를 좋아하고, 카페라는 공간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작품이었다. 자, 한계 없는 턴의 이야기, 지금 바로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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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게 웃으며 말 거는 법 - 냉소와 허무를 뚫고 나가는 유머라는 해독제
크리스 더피 지음, 박재용 옮김 / 어크로스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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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어떤 상황에서 유머를 찾는다는 건 현실의 불편하거나 웃기지 않은 면을 부정한다는 뜻이 아니다. 전혀 그렇지 않다. 바로 이 점에서 유머는 이른바 해로운 긍정주의와 결정적으로 구분된다. 해로운 긍정주의란 어떤 상황에서도 밝은 얼굴을 해야 한다는 압박이다. 유머는 구름이 낄 때마다 좋은 면을 찾는 게 아니라 구름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유머는 현실을 마주하면서도 그 현실과 맺는 관계를 바꾸는 방식이다. 유머는 절망을 해체해 희망으로 빚어낸다.                p.20


진지한 스릴러 작품에서 뜬금없이 터지는 유머는 긴장감을 해소시켜준다. 지루한 고전 문학에서 위트 넘치는 문장은 분위기를 환기시켜 작품에 몰입할 수 있도록 해준다. 생과 사를 넘나드는 무거운 이야기 속에서도 웃음을 찾아 내는 능력은 다시 힘을 낼 수 있게 만들어 준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에서는 항상 긴급한 상황에서 웃음을 유발시키는 대사들이 등장하곤 한다. 관객들의 긴장감을 풀어주고, 약간 방심한 상태에서 진짜 중요한 클라이맥스를 펼쳐 보이기 위해서다. 이야기를 만들 때 적절한 유머는 언제나 중요한 역할을 해준다. 물론 일상 속에서도 유머 감각은 우리를 더 나은 삶으로 향하게 한다. 누군가와 처음 만나는 순간에도 유머감각이 있는 상대는 순식간에 호감을 불러 일으킨다. 그래서 잘 웃기는 사람이 보통 인기도 많은 편이다. 왜냐하면 팍팍한 우리 일상 속에서 유머란 정말 귀한 빛을 발하는 재능이니 말이다. 


이 책은 ‘좋은 웃음’이 어떻게 우리를 더 나은 삶으로 이끄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여기서 '유머'란 분위기를 띄우는 요령을 뜻하는 말이 아니다. 세상의 긴장과 무게를 덜어주고, 그 안에서 기쁨과 웃음을 발견하게 만드는 렌즈로서의 유머를 말하는 것이다. 저자인 크리스 더피는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던 시절 여러 압박과 책임감으로 인해 유머감각을 잃어버렸다고 말한다. 삶 어디에도 웃음이 끼어들 틈이 없었고, 그럴 만한 여유도 없었고 말이다. 자신에게 웃음이 주는 카타르시스가 필요하다고 깨달은 어느 날, 그는 삶에 의도적으로 웃음과 코미디를 주입해야겠다고, 유머감각을 길러야겠다고 결심한다. 그렇게 이 책은 저자의 개인적 경험과 과학자들의 연구, 전문가들과 나눈 인터뷰를 통해 유머와 그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저자는 영문학을 전공했고, 교사로 근무했었지만 현재 코미디언이자 TV 방송작가, 라디오 및 팟캐스트로 진행자로 일하며, 다수의 대학교에서 유머에 관한 워크숍을 진행하고 있다. 그의 삶 자체가 유머의 중요성과 그 힘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유머감각이 있다고 해서 이런 문제들이 해결되는 건 아니다. 유머는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하지만 유머감각은 긴장을 조금이나마 풀어줄 수 있다. 정의를 구현하는 일이 공포영화라기보다 코미디처럼 느껴지게 만들어준다. 유머는 냉소와 번아웃에 맞서고, 더 나은 세상을 그려내는 강력한 도구다. 사회 변화를 위한 활동으로 기운을 빼앗기는 대신 오히려 힘을 얻을 수 있다.              p.261


이 책은 유머가 현실을 마주하면서도 그 현실과 맺는 관계를 바꾸는 방식이라고, '유머는 절망을 해체해 희망으로 빚어낸다'고 말한다. 하지만 냉소와 허무가 만연한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웃는 법을 점점 더 잃어버리고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우리를 웃게 만들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웃음을 되찾을 수 있을까. 저자는 유머감각을 되살리고, 세상을 보는 방식을 바꿀 있도록 우리를 이끌어 준다. 더 많이 웃기 위한 첫 번째 단계는 더 많이 알아차리는 것이다. 우리가 그저 평범한 일상으로 받아들이고 지나치는 많은 것들이 사실 우리의 유머감각을 자극한 기회들이다. 사소한 순간들과 디테일을 눈여겨보면, 일상에 자연스러운 웃음이 더 많이 생길 거라고 저자는 말한다. 유머는 거의 항상 뭔가 어긋나거나, 이상하거나, 기이하거나, 유쾌한 점을 알아차리는 데서 생기는 것이니 말이다. 두 번째 단계는 내 안의 우스꽝스러움과 기이함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스스로를 웃음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을 정도의 여유가 우리가 처한 상황을 바꿀 수 있는 계기가 되어준다. 


세 번째 단계는 사회적 위험을 감수하고, 온전히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다. 버스에서 낯선 사람에게 말을 걸어보거나, 자신이 발견한 유머를 친구나 동료에게 나누며 대화를 시작해보고, 얌전히 굴지 말고 더 자유롭게 행동해 보는 것이다. 주변 사람들과 유머러스하게 관계 맺으려는 마음가짐은 웃음을 삶의 여러 맥락 속으로 불러오게 만들어 준다. 이 책을 읽으며 인생의 어떤 힘든 상황에도 유머의 가능성은 존재한다는 사실이 조금 위로가 되었다. 그리고 '유머감각'이란 타고난 재능이 아니라, 삶에서 웃음을 찾아내고자 하는 태도에 가깝다고 말도 어딘가 희망적으로 느껴졌다. 어떤 사람은 원래 웃기고, 어떤 사람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해 왔기 때문이다. 바쁘게 일상을 쫓아 가다 보면 참 웃을 일이 많지 않다. 웃으면서 즐겁게, 여유롭게 주변을 돌아보며 살고 싶었는데 말이다. 지금 이 순간에 깨어 있는 여유, 자신을 잠시 내려놓는 용기, 사회적 위험을 감수하고 자신에게 진실해지려는 시도들이 조금씩 모여 웃음을 되찾게 되는 거라면 누구나 할 수 있을 것이다. 삶이 무거워진 당신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자, 반복되는 평범한 일상 속에서 오늘 하루치의 재미부터 찾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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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환기관 TURN 10
유진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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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누가 무슨 기준으로 누구를 살릴지를 결정하는 건 보통 일이 아니야. 나는 어떤 결정이 나오더라도 공정할 수 없다고 생각해."

주승우의 말에 임호는 한숨을 내쉬었다.

"공정은 너무 어려운 일인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너무 편하게 사용하는 말이야. 모두가 만족하는 방법은 없는 법이지. 어떤 사람이 제 가족을 살릴 기회를 포기하냐고.               p.57~58


살아 있는 인간의 생명을 희생해 죽은 인간을 부활시키는 형벌이 집행되는 시대이다. '전환형'은 살인자를 희생해 살인 피해자를 부활시키는 것으로 그로 인해 살인 범죄가 80퍼센트 이상 줄었다. 하지만 횟수가 줄어들었을 뿐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오랫동안 경찰로 일했던 주승우는 전환기관의 특수감찰부 소속 요원으로 경찰과 검찰이 잘못된 판단을 내리는 것을 막기 위해 그 과정을 검증하는 일을 했다. 전환형이란 피해자에게는 부활이지만 살인자에게는 죽음을 의미했기에, 전환형을 잘못 집행했을 경우 돌이킬 수가 없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에서 일어나는 살인 사건 피의자의 80퍼센트가 남성이었고, 피해자 대부분은 여성이었다. 전환기관에 남자가 들어가 죽고 여자가 살아서 나온다는 뜻이었다. 그러다 보니 전환기관이라는 독재 기관이 매년 남성 수백 명을 살해하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하는 목소리도 생겼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니 이게 현대 사회에서 나올 말이냐고, 한 사람을 희생해서 죽은 사람을 부활시키는 게 말이 되냐고 말이다. 물론 살인자들의 목소리다. 애초에 범죄를 저지르지 않으면 될 것을, 자신도 죽는다고 생각하니 억울한 거다. 하지만 피해자의 시신 훼손 정도가 심할 경우 전환을 할 수 없다. 그런 이유로 전환형 선고를 피하기 위해 일부러 훼손시키는 경우도 생기는 것을 보며 인간의 음습한 악의는 그 끝이 어디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실 이러한 '전환'이라는 것이 굉장히 비현실적이고, SF적인 설정임에도 불구하고 워낙 현실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사건들이 많다보니 실제로 이런 법집행이 가능하다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범죄를 저지른 자들이 제대로 심판받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작품을 읽는다면 누구나 비슷한 생각이 들 것이다. 




누군가가 부조리한 죽음을 맞이했을 때 살아남은 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그들은 죽은 자들을 바라보는 것도 고통스러워 죽은 자를 외면하기에 바빴다. 인간은 그런 부조리함에 해결책을 찾으려 했고, 죄를 심판하는 신과 사후 세계를 만들었다. 주승우는 전환과 전환형도 살아남은 자들이 그토록 찾아 헤매던 완전한 해결 방법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해왔다. 여태껏 진실을 추구함으로써 그것을 더욱 완전하게 만드는 것이 임무라고 여겼다. 그 임무를 위해서 타협하고 공모했다. 이제는 부딪치고 싸울 때였다.              p.269


이 작품은 죽여 마땅한 사람과 살려 마땅한 사람이 제대로 전환될 수 있도록, 정의를 집행하는 한 요원의 사투를 흥미진진하게 그려내고 있다. 피해자가 여러 명일 때 벌어지는 유족 간의 갈등, 전환이라는 부활을 이용하기 위해 계획된 끔찍한 범죄 등 각각의 에피소드마다 다른 사건이 펼쳐지며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게 만들어 주는 작품이었다. 여러 명의 피해자가 발생할 사건의 경우 누구를 전환해 부활시킬지에 관해 명확한 기준을 세울 수가 없다는 점이 여러 갈등을 불러 일으켰다. 재산, 나이, 성별, 가족 등 어떤 것도 기준이 될 수 없었으니 말이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고, 생명은 존귀한 것이니까. 죽은 피해자를 두고 누가 더 가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는 상황 자체가 아이러니한 일이기도 하다. 공정해야 할 일이지만, 그 공정이라는 것 또한 사람이 정해야 하는 기준이었으니 말이다. 이런 부분들 때문에 소설은 더 재미있어진다. 매우 흡입력 있는 이야기였다. 


가장 새로운 이야기로의 가뿐한 귀환, 턴(TURN) 시리즈 열 번째 작품이다. 한국과학문학상, 문윤성 SF문학상 등을 수상했던 유진상 작가의 <전환기관>은 죽은 인간을 되살릴 수 있다는 기발한 설정을 탄탄한 서사와 스릴 넘치는 구성으로 담아냈다. 무엇보다 군더더기 없이 재미있는 작품이었다. 표지에 그려진 이미지가 전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인데, 두 사람이 양쪽 전환기에 누워 이어진 호스를 통해 물리적으로 연결되고, 점차 생명 활동이 멈춘 전환자의 세포가 재생되는 것이다. 딱딱한 제목과 표지 이미지 덕분에 우주를 배경으로 한 SF작품일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막상 페이지를 넘겨 보면 매우 현실감 넘치는 추리 미스터리 물이라 호불호 없이 누구나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욕망과 거짓의 진창 속에서 진실을 꺼내고 최상의 정의를 집행하는 과정 속에서 매번 고민하게 만드는 삶의 아이러니와 인간의 마음, 그리고 정의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 보면 더 좋을 것 같다. 자, 한계 없는 턴의 이야기, 지금 바로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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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는 어떻게 인간을 바꾸는가 - 뇌를 설계하고 사고를 확장하는 다중언어의 놀라운 힘
비오리카 마리안 지음, 신견식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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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질적으로 언어는 사람들을 다르게 만든다. 언어가 달라지면 자신 안에 잠재된 또 다른 측면이 전면에 드러나고 꺼졌던 다른 정체성이 켜진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외국어를 쓰면 모국어 안에 잠자던 또 다른 자신이 깨어날 수 있다. 또 다른 언어를 배우면 정체성, 기억, 인간관계를 넘어 우주를 구성하는 새로운 방법이 생긴다.              p.30


인류는 수천 년 동안 언어를 만들어 의사소통에 사용해왔다. 현재 세계에는 7000개 이상의 언어가 존재하는데, 놀랍게도 세계 인구는 대부분 둘 이상의 언어를 구사한다. 영어와 중국어는 사용자가 각각 10억 명 이상이며, 힌디어와 스페인어도 각각 5억 명이 넘는다. 인류에게 다중언어 사용은 예외가 아닌 표준이다. 유럽 전체 인구의 약 3분의 2가 최소 두 개 이상의 언어를 사용하며, 다중언어 사용이 국가 정책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나라도 많다. 우리도 역시 의무적으로 영어를 배우고, 제2외국어를 익혀왔다. 그럼에도 인류는 이제 막 다중언어적 사고를 이해하기 시작한 단계다. 왜 그럴까? 


'심리언어학'의 세계적인 권위자 비오리카 마리안은 오랜 연구를 바탕으로 '다중언어'의 놀라운 힘에 대해 이야기한다. 저자 역시 10여 개의 언어를 구사하는 다중언어 사용자이기 때문에 스스로의 경험담을 바탕으로 이해하기 쉽게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이 책은 인간이 본래 여러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으며,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것은 현실을 바라보는 또 다른 코드와 새로운 사고방식을 갖게 해준다고 말한다. 언어는 우리 주변 세계의 정보를 처리하고 정리하는 데 쓰는 매우 강력한 도구이다. 현실 인식은 언어체계로 걸러지고, 다른 언어를 배우면 단일언어의 한계에 따른 제약 없이 주변 환경을 인식할 수 있다. 그러니 언어가 의사소통과 성찰이라는 구체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부수적인 수단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순전히 착각이다. 사실 '현실 세계'는 상당 부분 부의식적으로 집단의 언어 습관 위에 세워져 있으니 말이다. 




다중언어 사용이 우리의 뇌, 지각, 기억, 의사결정, 감정, 창의성에 미치는 강력한 변화를 살펴보았으니, 이제 일부 독자는 새로운 언어를 배우거나 자녀에게 새 언어를 배우게 하기로 마음먹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떻게? 언제? 어떻게 단일언어의 장막 뒤편을 들여다볼 수 있을까? 다른 언어를 배울 최적의 시기는 태어나는 순간부터다. 두 번째로 좋은 시기는? 바로 지금이다.             p.231


19세기 이탈리아 사제이자 대학 교수였던 주세페 메초판티는 볼로냐 목수의 아들로, 72개 언어를 알고 2주 만에 새 언어를 유창하게 익힐 수 있었다고 전해진다. 홍콩의 전 총독 존 보링 경은 200개 언어를 알고 100개는 말할 수 있었다고 하며, 1986년 타계한 프랑스 언어학자 조르주 뒤메질은 200개 이상의 언어를 다양한 수준의 실력으로 말하거나 읽을 수 있었다고 한다. 빅토리아 시대의 유명한 탐험가이자 지리학자였던 리처드 프랜시스 버턴 경은 29개 언어와 수많은 방언을 알았고, 탐험 중에도 사용했다고 전해진다. 현대로 오면 바로 떠오르는 것이 언어학자이자 작가인 움베르토 에코이다. 그도 이태리어, 영어, 프랑스어에 통달하고 독일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라틴어, 그리스어, 러시아어까지 해독할 수 있었다고 한다. 사실 모국어를 제외하고 한두개 외국어만 할 수 있어도 좋겠다 싶은 마음이야 늘 갖고 있었지만 막상 실천이 어려운 것이 현실인데, 이렇게나 수많은 언어를 할 수 있는 사람도 있었다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이 책은 막연하게 알고 있던 '다중언어' 능력에 대해서 많은 것들을 새롭게 알게 해주었다. 흥미로운 내용들이 많았는데 운동이 몸을 바꿀 수 있듯이 다른 언어를 배우고 사용하는 정신 활동도 뇌의 물리적 구조를 빚을 수 있다는 점도 놀라웠다. 이중언어 사용자는 전두엽 영역에서 회백질 밀도가 증가한 것으로 밝혀졌다고 하니 말이다. 이중언어 화자의 제2언어 숙달 정도가 높고 습득 연령이 이를수록 여러 피질 영역에서 회백질 밀도가 더 높았다고 한다. 그 외에도 두 개 이상의 언어를 하는 사람이 치매에 걸릴 확률이 낮다는 연구 결과부터 다중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에게만 생기는 능력에, 외국어를 사용할 때와 모국어를 쓸 때 달라지는 점 등 언어에 관심이 많은 나로서는 너무 흥미진진한 책이었다. 드디어 밝혀지는 다중언어의 비밀이 궁금하다면 이 책을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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