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의 의뢰인 TURN 11
가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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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이제는 최정훈이 입을 다물 차례였다. 서연우의 느긋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세상에 의미 없는 일이 뭐가 있겠어요. 어떤 식으로든 결과가 돌아올 거라고 생각해요."

"너무 낙관적인 거 아냐?"

"비관적인 것보다는 낫죠."                 p.71


심부름센터를 운영 중인 최정훈은 사흘 잠복한 뒤로 카페에서 졸다가 깨어난다. 수면 상태에 빠진 태블릿 PC와 얼음이 거의 다 녹아가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이 눈에 들어왔다. 사무실에서 나오다가 급하게 의뢰인의 연락을 받고 카페에 들어와 자료를 훑어보다가 까무룩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화장실에 갔다가 의뢰인과 전화 통화를 하고 다시 자리로 가려는데, 사람들이 모여 웅성대고 있었다. 덩치 큰 남자 손님이 성을 내던 중이었는데, 갑자기 자신이 태블릿 PC 도둑으로 몰린 것이다. 재수가 없거니 했지만 설마 이렇게까지 없을 줄은 예상치 못한 최정훈은 억울함에 분통이 터지는데, 그를 도와준 건 카페 사장 서연우였다. 서연우의 기지로 위기를 모면하고, 누명도 벗게 되는데, 얼마뒤 그를 의뢰인으로 만나게 된다. 


사실 최정훈은 어릴 적 친구가 누명을 쓰고 살해 당한 사건 이후 경찰을 그만두고 나온 전직 경찰이다. 그는 진범이 따로 있다고 믿고 있었지만, 자그마치 3년이 지나도록 별다른 증거를 찾을 수는 없었다. 그런데 10여 년 전 잠깐 외출한다면서 나갔다가 실종된 부모를 찾아달라는 서연우의 의뢰를 조사하면서, 자신이 오래도록 매달려온 사건과의 연결점이 보이기 시작한다. 게다가 처음으로 3년 전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된 자신의 친구가 무죄일지도 모른다는 서연우로부터 말을 듣게 된다. 아무런 증거도 없었고, 아무도 관심 조차 없었던 사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최정훈은 갑작스럽게 카페 새벽에 들이닥친 마약 중독자 ‘오태훈’의 뒤를 밟으며 점차 그날의 진실에 가까워지기 시작한다. 과연 그는 수년 전에 죽은 친구의 결백을 밝히고, 10여 년 전 잠깐 외출한다면서 나갔다가 실종된 서연우 부모의 사건에 감취진 진실을 찾아낼 수 있을까. 




".....어쩐지. 네가 속수무책으로 덜미를 붙잡혔다 싶더라니."

이정민이 아득하게 중얼거렸다. 좀처럼 사람을 곁에 두지 않는 최정훈이 별 반항도 하지 못하고 길들여진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저 앳된 사장의 순수한 호의와 약간의 장난기에 반발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세상에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게, 호락호락한 놈이 아니라니까."  

최정훈은 약간의 죄책감을 담아 대답하며 커피를 다시 크게 들이켰다.                 p.282


지금 가장 새로운 이야기로의 가뿐한 귀환, 턴(TURN) 시리즈 열한 번째 작품이다. 커피를 아주 좋아한다는 가언 작가는 이 작품의 배경으로 카페를 자주 등장시킨다. 목차마저 아이스 아메리카노, 딸기 스무디, 바닐라라테 등으로 지었을 정도이니 말이다. 턴 시리즈에는 표지 이미지를 담은 엽서가 포함되어 있는데, 뒷면에 작가의 친필 인쇄 메시지가 있다. 커피 한 잔과 함께 이 이야기를 즐겨 주시면 정말 기쁠 것 같다는 작가의 말에 커피를 마시며 읽었는데, 덕분에 더 재미있는 시간이었다. 카페라는 공간을 좋아하고, 커피를 사랑하기에 수많은 장소를 다녀 봤는데 그래서인지 이 작품에 등장하는 카페 새벽도 극중 묘사만으로 금세 친근해진 공간처럼 느껴졌다. 어릴 때는 카페를 운영하는 친구가 있으면 좋겠다, 그럼 매일 아지트처럼 찾아가서 시간을 보낼 수 있을 텐데 하고 생각하기도 했다. 나처럼 그런 로망이 있었다면 이 작품을 더 즐기며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 작품은 추리 소설치고는 좀 색다른 분위기를 만들어 내는데, 왜냐하면 고즈넉한 카페의 분위기부터 다정한 성격의 카페 사장이 만들어 내는 선함이 독특한 재미를 선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덕분에 서사 자체는 스릴 넘치는 미스터리이지만, '상냥한 추리극'이라는 문구처럼 어딘가 선한 분위기가 시종일관 맴돈다. 시종일관 해사한 미소와 다정한 태도를 잃지 않는 카페 사장 서연우와 어울리다보니, 무뚝뚝하고 시니컬한 전직 경찰 최정훈마저 그에 동화되는 느낌이랄까. 두 캐릭터의 독특한 케미가 이 작품의 진짜 매력이기도 하다. 막판에는 담배 연기에 찌들어서 질식사할 것 같던 최정훈이 카페 새벽에 가기 전에는 환기를 시키고, 탈취제까지 뿌리기에 이르니 말이다. 계속 커피 얻어먹고 싶으면 담배 끊으라고 잔소리하는 서연우의 의도대로 최정훈이 달라지는 걸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그래서 두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시리즈가 만들어져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추리, 미스터리 장르를 좋아하고, 카페라는 공간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작품이었다. 자, 한계 없는 턴의 이야기, 지금 바로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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