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맞은 자부심 - 상실감, 수치심 그리고 새로운 우파의 탄생
앨리 러셀 혹실드 지음, 이종민 옮김 / 어크로스 / 2025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나는 미국인들이 물질 경제뿐만 아니라 물질만큼이나 중요한 '자부심 경제' 속에서도 살아간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자부심과 수치심은 언제나 개인적인 감정처럼 느껴지지만 그 뿌리는 더 넓은 사회적 환경 속에 자리하고 있다.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다양한 자부심의 기반을 발견했다. 지역적 자부심, 직업윤리에 대한 자부심, 아웃사이더로서의 자부심, 회복에 대한 자부심이었다. 그러나 한 공동체의 주요한 자부심의 원천인 고임금 일자리가 사라진다면 어떻게 될까?           p.28~29


이 책의 저자인 앨리 러셀 혹실드는 '감정노동'을 최초로 개념화한 '감정사회학'의 선구자이다. 국내에도 소개되었던 <감정노동>이란 책에서 그는 감정이라는 개인적인 행위의 '사회적 의미'에 대해서 심층적으로 연구했었다. 이번에 그는 '자부심과 수치심'이라는 감정이 어떻게 미국 정치를 뒤흔들었는지 탐구한다. 한 공동체의 주요한 자부심의 원천이 사라지고, 실제 문제에 대한 실질적 해결책이 없는 상황에서 상실감과 수치심이 정치인들이 캐내려는 '광석'이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상실감과 수치심을 정치적 서사로 이용한 결과는 2020년 대선을 "도둑맞았다"는 주장으로 드러났다. 하나의 주장이 강렬한 전류처럼 미국 우파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나라를 둘로 갈라놓은 것이다


겉보기에 트럼프는 지지자들에게 자부심을 되찾아주고 있었다. 그는 대다수 미국인이 거짓이라고 여기는 것들을 그들에게 제공했고, 그 거짓을 한 가지 진실과 결합했다. 바로 '잃어버린 자부심'이라는 진실이었다. 덕분에 그는 지지자들과 강하게 결속했고 심지어 하나가 됐다. 그리고 '잃어버린 것'이 '도둑맞은 것'으로 바뀌면서 수치심도 차츰 비난으로 바뀌었다. 2019년 무렵 증오 범죄와 증오 발언이 급증했던 이유에 대해 대다수의 미국인이 "정치인들이 조장하거나 부추겼기 때문"이라며 소셜 미디어와 인터넷이 이를 더욱 증폭시켰다고 답했다. 분노의 이면에 '정치를 움직인 감정'이 있었던 것이다. 자부심과 수치심의 이야기 아래에 어떠한 보상도 애도도 받지 못한 끔찍한 상실이 있었던 것이다. 




하나의 장면이 만들어졌고 그 장면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우연처럼 겹친 상실 속에서 수치심은 자부심의 역설 속으로, 마치 문화적 분쇄기에 고기를 집어넣듯 밀어 넣어졌다. 강한 자부심의 문화와 개인주의 윤리가 엄격히 지켜지는 사회에서 '성공하면 내 공, 실패해도 내 잘못'이라는 사고방식이 자리 잡으면 그 고통스러운 결과는 수치심일 수밖에 없다. 지역 사회의 몰락은 개인의 수치심으로 전이되고 이는 다른 형태의 수치심까지 끌어들이는 자석이 된다. 수치심은 가장 자주 겪는 사람에게도 때로는 당혹스럽게 느껴진다.            p.333


저자는 애팔래치아의 작은 도시에 사는 남성에게 초점을 맞춰,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그 지역은 미국에서 백인 비율이 가장 높고 두 번째로 가난한 선거구에 속했는데, 중도적 정치의 중심지에서 주민의 80퍼센트 이상이 트럼프를 지지하며 대표적인 보수 지역으로 변모한 곳이다. 저자는 아프리카계 미국인, 유대인 난민, 무슬림 이민자 출신 의사, 주지사, 시장, 사업가, 교사, 정원사, 예술가, 중범죄자, 마약 중독에서 회복 중인 사람들과도 직접 찾아가 대화를 나눈다. 위에서 아래까지, 좌에서 우까지 최대한 다양한 관점에서 이해하기 위해서 말이다. 전 세계적인 우경화의 원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감정적인 기반을 이해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공감의 벽을 허물기 위해서는 그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과정이었다. 마이클 샌델은 이 책에 대해 '문화적, 정치적 분열을 넘어서는 경청의 기술의 진수를 보여준다'라고 말했다.


가난한 사람들이 왜 트럼프를 지지하게 되었는지, 개인이 느끼는 상실감이 어떻게 '도둑맞았다'는 정치적 메시지로 전환되는지, 자부심과 수치심은 사회와 정치의 흐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정치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 '이념'이 아니라 '감정'에 집중한 것도 흥미로웠고, 수백 시간의 인터뷰와 7년에 걸친 심층 취재의 결과 답게 새롭게 부상한 우파의 도덕과 정치 심리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이 책은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선정한 ‘2024년 최고의 책’, 〈뉴욕타임스 북리뷰〉가 뽑은 ‘2024 올해의 책’에 이름을 올리리고 했는데, 그만큼 현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큰 것 같다. 우파 정치세력에 열광하는 것은 미국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전 세계적 경향이기도 하다. 이러한 정치적 양극화와 우경화 현상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고 싶다면 이 책이 훌륭한 가이드가 되어줄 것 같다. 전 세계에서 경제적 박탈감과 정체성의 위기를 경험한 이들이 우파 정치세력에 열광하고 있는 요즘, 이념보다 빠르게 확산하는 이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우리가 가야 할 길은 어디인지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된다면 좋을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탐정 명아루 : 폐가 괴물 사건 - 제1회 셜록 홈즈상 대상 수상작 THE 미스터리
배연우 지음, 불키드 그림 / 비룡소 / 2025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우리가 무언가를 무서워하는 이유는 알지 못하기 때문이야."

하지만 아루가 무섭지는 않았다. 굳이 말하자면 궁금했다.

"알지 못하니까 무서워해. 그리고 무언가를 신비롭다고, 신기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도 알지 못하기 때문이지. 다르게 말하면, 무언가를 알게 되면 더는 신비하지도 무섭지도 않아져. 그런데 너는 지금 무언가를 무서워하는 것이 무서워서, 알려고 하지 않고 있어."             p.46


오컬트와 호러를 좋아하는 서하와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하준이는 단짝 친구이다. 점심시간에 대부분의 친구들이 운동장으로 뛰어나가면 서하는 교실에 남아 있는 친구들을 모아 불 꺼진 교실에서 괴담을 들려주기 시작한다. 오늘의 괴담은 학교 뒷산에 있는 폐가에 대한 거였다. 학교를 둘러싼 담장 너머에 큼직한 언덕이 있었는데, 그 중간에 방 두 칸은 겨우 있을까 싶은 크기의 작은 폐가가 있었다. 학교 담장과 나무 사이로 언뜻 보면 귀신이 튀어나올 듯 음침한 곳이었다. 바로 그 폐가에 인간이 아닌 뭔가가 살고 있다는 거였다. 근처 중학교를 다니는 한 언니가 용기를 내 폐가에 가 보기로 했고, 그곳에서 발견한 것은 좀비도 귀신도 거미도 아닌 것 같은 이상한 괴물이었다는데, 폐가의 비밀은 무엇이었을까.


최근에 학교 주변에 오싹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서하가 말한 괴담을 비롯해 학교 연못의 물고기들이 다 죽는 일도 있었던 거다. 어느 날부턴가 학교 연못에서 심상치 않은 냄새가 나더니 물고기들이 죽어 둥둥 떠오르기 시작했다. 이후로는 연못에 파란 천이 덮여있는 상태인데, 이러다 연못을 아예 메워 버리는 건 아닐까 걱정하던 참이다. 그러던 중 서하의 사물함에서 '인형'이 사라지는 사건이 벌어지는데, 그것은 저주를 막아 주는 인형으로 서하가 부적까지 넣어 만든 거였다. 범인을 찾기 위해 하준이는 옆반의 아루를 찾아 간다. 아루는 뭐든지 잘하고 모난 데 없이 똑똑한 모범생이었는데, 학교에서 '탐정'이라 불리고 있었다. 과연 아루는 범인을 찾고, 서하의 저주 인형을 찾을 수 있을까. 




"귀신을 믿지는 않아."

그 말에 서하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그런 와중에도 하준이는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당장 서하와 몇 년을 함께 한 자신도 귀신이나 서하가 말하는 이야기를 전부 믿지는 않는다.

"하지만 귀신이 없다고 증명할 방법은 없다는 것도 알아. 귀신 이야기가 괜히 나오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하고.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귀신이나 괴물의 짓이 아니라고 밝힐 수 있는 일은 밝히고 싶어."             p.67


비룡소의 어린이를 위한 추리소설 시리즈 ‘더 미스터리', 그 첫 번째 책이다. 제1회 셜록 홈즈상 수상작인 <탐정 명아루>와 제2회 스토리킹 본심작 <행운음원>이 함께 출간되었다. 두 작품 중에 만나보게 된 것은 오컬트와 본격 미스터리를 결합한 <탐정 명아루>이다. 이 작품은 “괴이한 일이 탐정의 논리로 해결되는, 미스터리 장르의 매력을 잘 살린 모범적인 작품.”이라는 심사위원들의 평가를 받으며 당선작으로 선정되었다. 추리 소설을 좋아하는 이공계생인 작가는 일본 추리 소설가 아야츠지 유키토를 가장 좋아한다고 하는데, 본격 미스터리 붐을 꿈꾸는 마음으로 아이들을 위한 본격 미스터리 작품도 언젠가 써주시길 고대한다. 


이 작품에는 항상 탐정 수첩을 들고 다니며 관찰하고, 교내에서 벌어진 몇몇 사건을 해결하며 '탐정'이라 불리는 명아루를 비롯해 사건을 의뢰했다가 그를 도와주게 되어 결국 '조수'가 되는 하준이, 그리고 호러 소설들과 무섭게 생긴 인형, 부적 같은 것들을 사물함에 넣어 두고 다니는 괴담 마니아 서하까지 어린이 독자들의 공감을 불러 일으킬 등장 인물들이 등장한다. 학교 연못의 미스터리, 폐가의 괴물, 사라진 저주 인형... 등 수상 쩍은 사건들을 해결하는 과정 또한 흥미진진했다. 개인적으로 추리 소설이라는 장르를 처음 접했던 것이 초등학생때 였는데, 당시 미스터리 소설들을 정말 많이 읽었던 기억이 난다. 탐정 명아루의 모험은 그 시절 추리 소설을 사랑했던 나를 떠올리게 해주었다. 수수께끼 같은 사건과 오싹한 괴담, 불길한 징조들과 조각난 퍼즐을 맞추는 재미까지... 앞으로 시리즈로 이어져도 좋을 것 같다. 탐정과 조수가 콤비가 되어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을 통해 어린이들이 추리소설이라는 장르의 매력을 알게 된다면 더 좋을 것 같고 말이다. 게다가 초등학생을 위한 본격 추리 동화가 '더 미스터리'라는 시리즈로 계속 출간될 예정이라고 하니 앞으로의 이야기들도 매우 기대가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구름은 바람 위에 있어 열다
헤르만 헤세 지음, 폴커 미헬스 엮음, 박종대 옮김 / 열림원 / 2025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오, 하늘에 떠 있는 아름다운 구름이여, 안식을 모르는 구름이여! 나는 철없던 시절부터 구름을 사랑했고 구름을 보며 살아왔다. 하지만 그때는 몰랐다. 나 또한 한 점 구름처럼 살아가게 될 줄은, 어디서든 낯선 존재로서 시간과 영원 사이를 둥둥 떠다니며 방랑하게 될 줄은. 어린 시절부터 구름은 나의 사랑스러운 연인이자 누이였다. 나는 길을 걸을 때마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우린 서로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 나누었고, 잠시 눈을 마주쳤다. 그 시절 구름에서 배운 것은 지금도 잊지 못한다.               p.21


거장들의 품격 있는 문장과 사유를 소개하는 열림원의 '열다' 시리즈, 그 다섯 번째 책이다. 헤르만 헤세의 <미친 세상과 사랑에 빠지기>, 빈센트 반 고흐의 <싱싱한 밀 이삭처럼>, 버지니아 울프의 <모두의 행복>, 로베르트 발저의 <전나무, 손수건, 그리고 작은 모자가 있는 숲>에 이어 이번에 나온 것은 헤르만 헤세의 <구름은 바람 위에 있어>이다. 에세이, 시, 소설, 편지 등 다양한 장르의 글과 사유의 흔적들을 찾아 모으고 엮은 것이 이 시리즈인데, 이번 책은 헤르만 헤세의 산문, 시, 단편 중 ‘구름’을 테마로 삼은 텍스트를 중심으로 새롭게 엮은 것이다. 


사실 헤르만 헤세는 시도 때도 없이 변덕스럽게 변하는 구름의 다채로운 변주에서 많은 영감을 이끌어낸 작가로 유명하다. 초기 작품 <페터 카멘친트>를 여는 유명한 대목 "이 넓은 세상에서 나보다 구름을 잘 알고 깊이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면 나와 보라!"는 어쩌면 헤세 스스로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는 이 작품을 시작으로 만년의 소설 <유리알 유희>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시와 성찰, 자연 묘사로 구름에 대해 표현하고 해석해 왔다. 이번 책은 그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글을 모은 것이다. '열다' 시리즈의 첫 포문을 열었던 <미친 세상과 사랑에 빠지기>도 헤세의 글을 모은 것이었기에, 함께 읽어도 좋을 것 같다. 




자기만의 세계에서 고요히 움직이고 많은 갈래로 나뉜 이 흐린 하늘이 내 마음의 반영인지, 아니면 내가 내 마음속 이미지를 단순히 이 하늘에서 읽고 있는 것뿐인지는 결코 말할 수 없다. 때로는 이 모든 것이 너무 불확실하다! 어떤 날은 지구상의 누구도 공기와 구름의 분위기를, 색조와 향기, 습도의 변화를 나처럼 예민한 시인과 방랑자의 감각으로 정밀하고 섬세하고 충실하게 관찰하지는 못할 거라고 확신한다. 그러다 오늘 같은 날이면, 내가 정말 이 모든 걸 실제로 보고 듣고 냄새 맡았는지, 아니면 내가 인지했다고 생각한 모든 것이 외부로 향한 내 마음속의 이미지에 불과한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든다.                 p.91~92


어릴 때는 구름이 솜사탕처럼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실체가 있는 무언가라고 생각했었다. 자라면서 비행기도 타고, 비행기 창문 너머로 구름을 보기도 하고, 과학 시간에 원리에 대해 공부하면서 구름의 진짜 정체를 알게 되고 꽤나 실망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 속 어딘가에는 어린 시절 꿈꾸었던 구름 조각들이 아직 남아 있다. 세상에는 아름다운 기상 현상이 아주 많지만, 구름만큼 우리에게 친숙한 것도 없을 것이다. 매일, 아무때나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관찰할 수 있으니 말이다. 푸르른 여름 하늘과 예쁜 뭉게구름을 보고 있자면,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풍경 속으로 쓱 들어간 듯한 느낌도 든다.


구름은 손으로 잡을 수 없고 그저 눈으로만 볼 수 있다. 구름은 공간에 실체감을 부여해 텅 비어 있는 하늘을 가득 채워준다. 헤르만 헤세는 구름을 보다 시적인 대상으로 그려내고 있다. '구름은 허공을 뚜렷이 가시화함으로써 공기의 움직임을 더 생생하게 인지하게 해'주고, '지상의 물질로서 그것 말고는 다른 어떤 물질도 볼 수 없는 저 높은 상공에서 여전히 지상의 물질적인 삶을 이어 간다'고 말한다. 그는 여러 작품에서 이 넓은 세상에서 자신보다 구름을 잘 알고 깊이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면 나와 보라고, 이 세상에 구름보다 더 아름다운 것이 있으면 말해 보라고, 썼다. 구름에 대한 그의 애정이 페이지 곳곳에 묻어나서, 정말 오랜 시간 구름에 대해 사유하고, 관찰하고, 글을 썼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구름의 움직임이 노래가 되고, 언어로 빚어져 시가 되고, 어느 순간 구름의 표정과 몸짓이 눈앞에 고스란히 보이는 듯한 느낌이 되는 그런 책이었다. 헤세의 책은 많이 읽어왔지만, 이렇게 '구름'에 관련된 글만 모아서 한 권이 되니 또 색다른 기분으로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열다' 시리즈 다음 책에서는 또 어떤 작가의 글들을 만나볼 수 있을지 기대가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는 나뭇잎에서 숨결을 본다 - 나무의사 우종영이 전하는 초록빛 공감의 단어
우종영 지음, 조혜란 그림 / 흐름출판 / 2025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생물학적 방법은 몸으로 계절을 느끼는 것입니다. 졸음이 오고 개나리와 진달래가 피면 봄, 꾀꼬리가 집을 짓기 시작하고 계곡에 함박꽃이 피면 초여름, 모기가 극성을 떨고 몸이 끈적이면 여름, 찬바람이 불고 단풍이 들면 가을, 곤충들이 사라지고 따듯한 손길이 그리워지면 겨울입니다. 이런 현상들은 모두 지구가 삐딱하게 돌면서 생긴 현상입니다.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지구가 똑바로 돈다면 어떻게 될지를.                p.143


식물은 광합성을 거쳐 산소를 생성하고, 동물은 이 산소를 사용해 호흡한다. 동시에 동물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하고, 식물은 다시 이 이산화탄소를 흡수한다. 이는 생태계에서 모든 생명체가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인간의 활동으로 인해 해양 생물의 9퍼센트인 1550여 종이 멸종 위기에 처해 있으며, 곧 여섯 번째 대멸종이 올 거라고 과학자들은 전망한다. 세계는 지금 온난화로 인한 산불과 홍수로 몸살을 앓고 있으며, 우리에게 익숙했던 날씨와 계절이 사라지고 삶이 위협받을 지경에 이르렀다. 그럼에도 여전히 인류는 성장에만 몰두할 뿐이다. 자연을 파괴하고, 수많은 생명체들이 살 곳을 없애는 것이 결국 인류의 생존조차 위협하고 있음에도 말이다. 


이 책은 자연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하는 '생태감수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생, 태, 감, 수, 성이라는 다섯 개의 주제로 수십 개의 단어들을 묶었고, 그것들을 통해 인간과 다른 생명의 관계에 대해 질문하고, 그 연결고리를 짚어본다. 감정 이입, 움벨트, 경쟁, 부엔 비비르, 백두대간, 미기후, 상호 의존성, 반려동물, 생태계, 비오톱, 기후 변화, 과학철학, 실수, 희망 등의 단어를 토대로 자연을 잊고 소비와 성장에만 몰두해온 사람들에게 숲의 목소리를 들려 준다. 저자인 수십 년간 나무를 돌보며 그 곁에서 배운 삶의 지혜를 이 책을 통해 들려준다. 30여 년의 시간, 전국 수만 그루의 나무들을 치료해온 나무의사이자 자연이 전하는 삶의 가르침을 담담하고 우직한 태도로 기록해온 작가로서 자연을 공부하며 그러모은 수십 개의 생태단어들을 통해 우리에게 자연을 일깨워준다.




내 몸에 타인의 그림자가 배어 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이것은 한 생명체가 다른 생명체와 깊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를 생태학의 관점에서 설명하려면 우선 우리가 사는 생태계 내에서의 상호 의존성과 연결망을 이해해야 합니다. 생태계에서 모든 생명체가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은 서로의 건강과 안정성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입니다... 이러한 순환은 생태계 내에서 물질과 에너지의 흐름을 가능하게 하며 생명체 간의 복잡한 교류를 통해 유지됩니다.              p.274


저자는 말한다. 생태계 파괴로 인한 자연의 역습이 현실이 된 상황에서 올바른 길을 찾으려면 따뜻한 마음으로 우리가 사는 곳을 들여다보아야 한다고. 그러면 자연스럽게 생태감수성도 피어날 거라고 말이다. 생태감수성을 올리려면 우선 일상에서 자연과 직접적으로 접촉하는 것이 중요하다. 알면 사랑하게 된다는 말처럼. 산책이나 캠핑, 텃밭 가꾸기처럼 다양한 야외 활동을 하거나 집 안에 작은 화분을 들이거나 화단을 만들어 상추, 깻잎, 방울토마토 등을 직접 재배해보자. 식물들의 생태를 알아가다 보면 생태감수성이 쑥쑥 올라가며 식물과 하나가 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생태감수성이란 생태계가 환경 변화에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는지를 알아차리는 능력이다. 우리의 행동 하나하나가 지구의 생태계뿐 아니라 우리 자신과 미래 세대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많은 사람들이 알면서도 모른 척 한다. 하지만 생태감수성이 풍부한 사람들은 생태계를 위한 행동에 적극적으로 나서며 노력한다. 


나무는 공기를 정화하고 물을 가두며 흙을 움켜쥐고 모든 생명을 보듬는다. 따라서 지구의 모든 생명체는 나무에게 빚을 지고 있다고 이 책을 말한다. 그러나 나무의 고마움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럼에도 나무는 불평하지 않고 어디서든 잘 자라며 봉사할 준비가 되어 있는 이타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 대목을 읽으며 <아낌없이 주는 나무>라는 책이 떠올랐다. 나무가 사랑하는 소년에게 그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내어 주며 행복해하다, 더 이상 줄 게 없을 만큼 세월이 지난 뒤 자신의 나무 밑동울 내어 주며 쉴 수 있게 해준다는 내용이었다. 인생의 참된 가치, 진정한 사랑과 베품의 의미를 보여주는 작품이었지만, 실제 역사를 돌이켜보더라도 나무는 인간과 늘 공존해왔고, 우리에게 많은 것들을 제공해왔다. 인류 문화사에서 거의 대부분의 시간 동안 나무와 숲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아낌없이 베풀었고 무지를 일깨워 왔으니 말이다. 지금 우리의 지구는 위기에 처해있다. 이제 우리가 살아남는 유일한 방법은 나무에게 지혜를 구하고 실천하는 데 있다. 이 책이 담고 있는 것들이 우리에게 생태감수성을 일깨워 주고, 나무와 생물들에게도 공감하는 마음을 갖게 해준다면 좋을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늘의 의뢰: 너만 아는 비밀 창비교육 성장소설 14
김성민 지음 / 창비교육 / 2025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마법소녀 : 힘들고 괴로운가요? 누군가 해결사처럼 짠 나타나 문제를 해결해 줬으면 하고 바라시죠?

'이게 뭐야?'

눈물로 앞이 아른거려서 채팅방에 올라온 글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손등으로 눈물을 닦아 냈다.

마법소녀 : 그럼 이곳으로 들어오세요. 당신의 문제를 해결해 드립니다. '해결 사이트 http://h.me/***** (비번 @#$%^&)'            p.141


도경이 가족은 지난주 주말, 해민이네 집 2층으로 이사를 왔다. 세를 놓은 2층이 통 나가질 않아 걱정하던 해민이 엄마는 방이 나가자 기뻐하며 이것저것 챙겨주려고 한다. 해민이 엄마는 미혼모로 해민이를 낳았고 동네에서 반찬가게를 운영하는 중이다. 도경이는 부모님의 이혼으로 이사를 왔고, 엄마랑 단둘이 살고 있는 엄마의 심부름으로 도경이네 집에 반찬을 가져다 주러 간 해민이는 그집 부모님이 다투는 모습을 우연히 목격하게 된다. 해민이는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도경에게 호기심을 느끼고 동네와 학교를 오가며 점차 친구가 된다. 


해민이와 같이 문예 창작 동아리인 소정이는 예의 바르고 공부도 잘하는 모범생으로 친구들과 선생님들에게 평판이 좋았다. 곧 있을 학생 문예 대회 '공감 에세이' 부문에 해민이와 소정이가 참가하게 되었는데, 소정이는 작년에도 이 대회에서 대상을 받았던 터라 자신만만하다. 하지만 해민이는 선생님의 적극적인 추천에 차마 거절은 못했지만 계속 걱정이 앞선다. 해민이는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솔직하게 글을 썼고, 그 글이 대상을 수상하게 된다. 소정이는 우수상을 수상한 것이 분하고 억울하다. 늘 대충대충, 열심히 하지도 않는 것처럼 보였던 해민이가 대상이라니.. 분명 표절했을 거라고, 표졀인 게 밝혀지면 자신이 다시 대상을 수상할 거라고 생각한다. 급기야 소정이는 해결 사이트에 진실을 밝혀 달라고 의뢰하게 된다. 자기 손으로 차마 하지 못하는 일을 떠남길 수 있는 이곳은 다른 사람의 의뢰를 해결해 줘야 자신의 의뢰를 올릴 수 있는 자격이 생긴다. 그렇다몬 소정이는 벌써 누군가의 의뢰를 해결한 적이 있다는 건데, 타인에 대한 악의로 가득한 이곳에서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이런 거 누가 믿냐고? 어허, 믿음이 없으면 얻는 것도 없는 법이지. 못 믿겠으면 초대 링크를 무시해 버리면 그만이야. 근데 궁금하지? 고민할 시간 없어. 여차하면 문은 닫혀 버려. 기회는 지금뿐이야.

해결 사이트에 입장했다면 축하해. 넌 이제 소원을 이룰 수 있어. 물론 먼저 노력을 좀 해야 해. 남의 소원을 먼저 들어줘야 너한테 자격이 생기거든. 현대판 상부상조라고나 할까? 와, 내가 생각해도 이 시스템은 정말 멋져. 대체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는지 궁금하지?            p.224~225


힘들고 괴로운 일이 있을 때, 누군가 해결사처럼 짠 나타나 문제를 해결해 줬으면 하고 바랬던 적이 한번쯤 있을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나에게 '당신의 문제를 해결해 드립니다.' 메시지가 온다면 어떨까. 이 각박한 세상에 요정도 산타도 램프의 지니도 없지만, 이곳에 들어오면 거짓말 같은 일이 일어난다는데 궁금해지지 않을까. 스팸 메일 문구처럼 수상하기 짝이 없더라도, 만약 해결하고 싶은 문제가 있다면 뭔지나 한번 볼까 하는 생각부터 들 것이다. 


청소년 독자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으며 제4회 창비교육 성장소설상 대상을 수상한 이 작품은 어떤 의뢰든 해결해 준다는 비밀 채팅방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가림중학교에는 아이들이 이용하는 오픈 채팅방이 있다. 그날의 급식 투표, 시험 자료 공유, 각종 소문에 대한 게시글들이 있는 그곳에서는 가끔 수상한 링크가 포함된 초대장을 받을 수 있다. 아무한테도 말 못 하고 끙끙 앓고 있는 고민, 자기 손으로는 차마 하지 못하는 일을 해결해주겠다는 것이다. 단, 조건이 있다. 고민을 의뢰하려면 먼저 다른 사람의 소원을 들어줘야 한다. 전교 1등이 시험을 망치게 해 주세요, 짝사랑하는 대상에 대한 개인 정보를 알려 주세요.. 부터 친절하지 않았던 문구점의 유리창을 깨 주세요. 동네 골목에 시끄러운 개를 죽여 주세요... 등 불법적이고, 위험한 의뢰가 이어진다. 이 작품은 네 명의 청소년들을 중심으로 또래 독자들이 공감할 법한 고민과 갈등을 겪으며 선한 의지로 연대하며 위기를 돌파하는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다. 작가가 현직 교사라서 그런지 굉장히 현실감있고 입체적으로 캐릭터를 그려내고 있어 아주 흥미롭게 읽었다. 요즘 청소년들의 고민과 현재를 알고 싶다면 이 작품을 만나보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