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잘해주고 상처받지 마라 (리커버 한정판 스페셜 에디션) - 돌아오는 게 상처뿐이라면 굳이 그 인연을 끌고 갈 필요가 없다
유은정 지음 / 21세기북스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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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조금은 이기적이어도 괜찮다. 가끔은 상대의 기대를 외면해도 괜찮다. 한 번쯤은 거절해도 괜찮다. 때로는 욕을 먹어도 괜찮다. 지금껏 한없이 친절했던 당신이 조금 변했다고 외면할 사람이라면 지금이 아니라도 언제든 떠날 사람이다.

더는 혼자 잘해주고 상처받지 마라. 상대가 원하지 않는 배려를 베풀고 되돌아오지 않는 친절을 기대하지 말자. 당신은 충분히 행복할 자격이 있는 사람이고 지금보다 더욱 사랑 받고 보호받아야 하는 존재다.

 

이 책은 '혼자 잘해주고 상처받지 마라'라는 제목이 너무도 매력적이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들을 주변에서 많이 보아왔기 때문이다. 언제나 모든 사람들에게 친절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거나, 항상 모두를 배려하고, 챙겨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정작 자기 자신은 그렇게 소중하게 여기지 못해 늘 상처받는 사람들 말이다. 요즘은 너무도 개인적인 생활 습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고, 그게 나쁘다고 볼 수도 없는 사회인데다, 개중에는 개인주의를 넘어서 이기적인 사람들도 쉽게 만날 수 있다. 그래서 이렇게 주변에 신경을 지나치게 많이 쓰는 이들의 희생과 배려를, 점점 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무심해지기 시작하다 보면, 당연히 누군가는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책은 시작부터 '혼자 상처받는 일은 그만할 때도 됐다'고 말문을 연다. 내 주변의 소심하고, 착하기만 한 그들에게 정말 해주고 싶었던 말인데, 저자가 너무도 시원하게 그것도 차근차근 설득력 있게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조금은 이기적이어도 괜찮다. 나 자신을 스스로 존중하지 않으면, 아무도 나를 존중해주지 않는다. 우선, 스스로에게 향하는 비난과 부정의 화살을 멈추는 것이 시작이다.

모든 사람에게 사랑 받고 싶은 욕구 때문에, 또는 불편한 상황에 놓이고 싶지 않아서, 좋은 게 좋은 거라며 쉽게 타협하던 사람들이 어느 정도 나이가 들었을 때, 좋은 게 나쁜 거였다는 걸 깨닫게 되는 상황이란 참 서글프다. 사실 모두에게 사랑 받을 필요는 없는데 말이다. 자존감 심리치료센터를 운영하며 가족과 연인, 친구에게 상처받은 수많은 내담자를 만나온 저자라서 그런지 다양한 사례들을 통해서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타인에게 기대하거나 의존하지 말고, 그 마음을 자기 자신에게로 돌려 주체적인 모습을 찾을 수 있도록 말이다. 특히나 타인에게 받은 상처가 스스로 만든 것이라는 얘기는 뜨끔한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자신이 타인에게 배려와 친절을 베풀었으니 타인 역시 그대로 돌려주리라는기대가 만든 상처라는 말에 반박할 만한 무엇도 없을 테니까. 이렇게 직설적인 말로 외면하고 싶었던 진실을 깨닫게 만들어 주고, 돌아오는 게 상처뿐이라면 굳이 그 인연을 끌고 갈 필요 없다며 쿨하게 자기 자신을 바라보게 만들어 준다.

 

 

 

열정을 지니고 도전하지 않았다고 자책할 필요는 없다. 직업을 얻고 나서 '확인하는 시간'을 갖고, 조정이 필요하다면 그때 하면 된다. 뭐 하러 스스로를 괴롭히는가? 누구에게나 시행착오를 통해 내 것과 아닌 것을 분류하는 시간은 필요하다. 그저 남에게 잘 보이고 싶어 선택한 직업이라도, 그 안에서 의미를 발견하고 차곡차곡 실력을 쌓는다면 내 삶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인생의 주체는 나 자신이어야 한다. 제대로 저지르고 용감하게 실수하자. 젊음이라는 자본은 그렇게 사용하라고 있는 것이다.

 

누구나 모두 그럴 때 있다. 아무 것도 아닌 말로 상처 받고, 반대로 사소한 행동 하나로 위로 받고, 지나고 나면 별 것 도 아닌데 그 당시에는 아무 것도 아닌 게 절대 아닌 그런 일들 말이다. 모두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 과정에서 비롯되는 일들이다. 사람은 절대 혼자서는 살 수 없는 사회적 동물이기에,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든, 타인과 관계를 맺어가면서 산다. 가족, 친구, 동료, 연인.. 그 어떤 관계도 쉽게 진행되지 않으며, 내 마음대로만 할 수도 없다. 우리는 그 속에서 상처받고, 위로 받고, 내 편을 찾게 되고, 나의 적도 알아보게 되면서 어른이 되어 간다. 하지만 누구나 겪게 되는 일이라고 해서 상처받는 것조차 당연한 것은 아니다. 이 책은 그런 우리들에게 등을 토닥여주면서 우리에게 길을 인도해준다. 타인을 지나치게 의식하기 때문에 상처받는 사람들이 주요 대상이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이라고 해도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 과정에서 벌어질 수밖에 없는 부분들에 관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심리 처방전이다. 내 마음의 주인은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또 나 자신을 제대로 알고, 자존감을 지키는 것이기도 하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당신도 더 이상 상처받지 않고, 그 과정에서 스스로를 탓하지 않고, 조금 더 주체적인 삶을 위해 한 걸음 내딛게 될 것이다. 시작은, 언제나 옳다. 당신도 할 수 있다.

 

 

이 책은 이번에 리커버 한정판 스페셜 에디션으로 출간이 되었는데, 너무 산뜻하고 예쁜 표지가 시선을 사로 잡는다. 양장 제본과 업그레이드된 리커버도 멋지지만, 내지가 핑크색이라 더욱 따뜻한 느낌이 든다. 몸도 마음도 추운 이 계절, 어디선가 상처 받을 일을 겪었다면, 타인과의 관계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다면, 이 따뜻한 핑크색이 당신의 마음을 어루만져 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연말이라 이런저런 선물할 일이 많은 시기이기도 한데, 선물하기에도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 같다. 사실 책선물은 받는 사람의 취향까지 고려해야 하는 어려운 부분이 있는데, 이 책은 누구한테 선물하더라도 마음에 들어 할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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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하루에 힘이 되어준 한마디 - 정호승의 하루 한 장
정호승 지음 / 비채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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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와 똑같은 해가 오늘도 뜨고, 어제와 똑같은 바람이 오늘도 불어올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그 모든 것은 어제와 다릅니다. 오늘은 오늘의 해가 뜨고, 오늘의 바람이 불어올 뿐입니다.

 

올해도 어느 새 며칠 남지 않았다. 새해 초에 이런 저런 계획을 세웠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과연 나는 한 해 동안 얼마나 치열하고 바쁘게 살아왔는지 돌아보게 된다. 정호승 시인은 매년 12 31일을 '실패 기념일'로 정하고 있다고 한다. 실패를 기념하는 날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지금까지 실패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성공으로 가는 한 과정으로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을 믿기 때문이다. 실패를 기념한다는 생각을 거의 해보지 않았던 터라 굉장히 신선하면서도, 충분히 수긍이 되었다. 올해는 나도 한 해의 마지막 날을 내가 한 해 동안 하려고 했으나 이루지 못했던 것들, 시도했으나 잘 되지 않았던 것들을 다시 한번 돌아보는 시간으로 만들고 싶어 졌다.

 

정호승 시인의 책 《내 인생에 힘이 되어준 한마디》와 《내 인생에 용기가 되어준 한마디》에 수록된 문장들을 365가지 한마디를 발췌해 하루 한 장씩 읽는 일력으로 만들었다. 탁상달력으로 사용하기에도 딱 좋은 크기고, 매일 매일 아침마다 하루의 마음을 다잡는 목적으로 한 장씩 넘겨보아도 참 좋을 것 같다. 매일 아침 커피를 내려 마시고, 비타민을 챙겨 먹고.. 하루에 늘 하는 일들처럼, 하루 한 장 일력을 넘기는 것도 습관으로 만든다면 참 좋을 것 같다.

저자의 말처럼 한마디 말로 지옥과 천국을 경험할 수도 있고, 절망과 희망 사이를 오갈 수도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니 당연히 그 한마디 말이 내 일생을 바꾸어놓을 수도, 절망에 빠진 나를 구원해줄 수도, 하루를 또 버티고 살아낼 힘을 줄 수도 있을 것이다. 바로 그런 역할을 해 줄 수 있는 일력이라 나에게도 훌륭한 선물이 되지만, 누군가에게 연말 선물로 건네기에도 부담 없이 너무 좋을 것 같다.

 

 

 

인생에서 가장 큰 위험은 전혀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 것입니다. 항상 해왔던 것을 하면 항상 얻어왔던 것을 얻게 됩니다. 익숙한 것이 편하다고 해서 마냥 그것에 머물러 있다면, 바로 그 익숙한 것들이 독이 되고 쇠사슬이 될 수 있습니다.

얼마 남지 않은 11일에 해당되는 일력을 넘겨 보았다. 새해의 시작을 하는 한마디는 "오늘 하루를 성실히 살았다면 일생을 성실히 산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하루가 바로 일생입니다."라고 되어 있다. 하루가 일생이라는 그 짧은 한마디에 담긴 의미가 고스란히 와 닿아서 순간 멈칫했다. 무심코 지나치는 매일의 시간들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종종 잊어 버리고 사는 경우가 많았다. 바로 그 사소한 일상들이 쌓여, 하루가 되고, 이틀이 되고, 한 달이 되고, 일 년이 되어 나의 삶을 만들어가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어제와 똑같은 해가 오늘도 뜨고, 어제와 똑같은 바람이 오늘도 불어올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았던 거다. 그 모든 것은 어제와 달랐다." 내가 미처 인지하지 못하고 시간을 스쳐 지나갔을 뿐. 오늘은 오늘의 해가 뜨고, 오늘의 바람이 불어온다. 그러니 그 얼마나 소중한가. 나의 하루라는 것이, 내가 살고 있는 오늘이라는 것이 말이다.

 

 

 

책을 읽었다는 사실만으로, 책을 읽다가 밑줄을 그었다는 사실만으로 마음이 따스해지고 배부를 때가 있습니다. 지하철에 가만히 앉아 있어도 밑줄 친 그 한 구절이 저를 행복하게 해줄 때가 있습니다.

 

늘 반복되는 일상이 허무한 날이 있는가 하면, 행복하다고 느끼는 날도 있을 것이다. 너무도 평범해 보이는 그 일상들 속에 따뜻함도, 뭉클함도, 서글픔도, 쓸쓸함도 다 포함되어 있는 게 아닐까.. 그러니 그렇게 하나뿐인 하루하루를 소중하게 살아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일력을 쓱쓱 넘겨보면서 해당 날짜에 쓰여 있는 한마디들을 읽어 본다. 마치 책처럼 한번에 365가지 한마디들을 전부 다 읽어 버릴 수도 있을 만큼, 멋지고 아름다운 글들이다. 내가 이미 알고 있었던 진리도 있고, 미처 깨닫지 못하고 지나쳤던 부분도 있고, 글을 읽고 서야 깨닫게 되는 말들도 있었다. "오늘 하루하루를 충만하게 사는 것이야말로 죽음에 대한 가장 이상적인 준비"라는 문구에 눈길이 멈췄다. "죽음을 전제로 하지 않고 사는 생은 가짜 보석과도 같다"는 그 한마디가 어쩐지 비수처럼 가슴에 콕 박히는 느낌이다. 나는 과연, 그렇게 치열하게 생을 살아내고 있었던 걸까. 싶어서 말이다.

일력에 쓰여 있는 한마디들은 지친 나에게 토닥토닥 위로를 건네기도 하고, 두려움에 의연하도록 용기를 주기도 하고, 가슴 깊은 곳을 건드려 먹먹하게 만들기도 하고, 내일 또 반복되는 그 하루를 소중하게 여기도록 도와주기도 한다. 소중한 사람에게 선물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적극 추천한다. 기왕이면 두 개를 사서, 자신에게도 선물하면 더 좋을 테고 말이다. 당신의 내년을 응원한다. 올해보다 더 빛나기를, 올해보다 더 아름다운 하루하루를 만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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퐅랜, 무엇을 하든 어디로 가든 우린
이우일 지음 / 비채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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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떠나온 서울에서는 모든 것이 너무 빨라서 더 그렇게 느껴졌겠지만, 이곳 퐅랜 사람들은 정말이지 느리다. 그리고 당연하지만 여유롭다. 내 눈에는 생활 속의 모든 것들이 너무 굼떠서 슬로모션을 보는 것만 같다. 우체국에서도, 마켓에서도, 식당에서도, 내 기준으로는 너무 느려 터졌다. 처음에는 이런 사람들이 모여서 어떻게 아이폰 같은 걸 만들었을까, 어떻게 세계 최고의 대국이 되었을까 의문이 생길 정도였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곧 알게 되었다. 이곳의 느림에는 이유가 있다. 그건 순서를 지키는 것이고 정확하게 일하는 것이리라. 차례를 지키고, 법을 지키는 것이 가장 능률적이고 바른 방법이었다.

'여행은 살아보는 거야'라는 모 회사의 캠페인 슬로건처럼 이제 여행은 꽉 짜여진 스케줄에 따라 이곳 저곳을 단기간에 누비는 것이 아니라, 여행지에 머물면서 현지인처럼 진짜 그곳의 삶을 살아보고, 그 도시의 진짜 삶을 맛보는 것이 요즘 여행 트렌드가 되어버렸다. 이 책은 2015년 어느 가을 날, 미국 오리건 주의 작은 도시 포틀랜드로 날아간 이우일과 그의 가족들이 겪은 현지의 일상들을 그리고 있다. 세상 모든 여행자들의 로망인 현지인처럼 그곳에서 눌러앉아 직접 살아보기를 실천한 여행산문집인 셈이다.

 

 

미국 북서부 태평양 연안의 낯선 도시 '포틀랜드'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거라고는 라이프스타일 잡지 <킨포크> 밖에 없었다. 포틀랜드 교외에서 상업 광고를 배제하고 현재 일상을 투영하되 심플 라이프를 지향하는 잡지를 만들자는 목표로 조그맣게 시작한 <킨포크>, ‘단순한 삶, 함께 나누는 식사의 의미를 현대적 관점으로 재발견하여 감성적으로 보이며 세계인들의 라이프스타일의 변화를 이끌었고, 국내에서도 한동안 큰 인기를 끌었으니 말이다. 개인적으로 <킨포크>가 만든 푸드 스타일링 북인 <킨포크 테이블>을 좋아하는데, 단출하고 소박하지만 정성이 가득하고, 현대적이지만 전통이 깃들어 있으며, 만든 이의 개성이 풍겨는 식탁에 대한 이미지가 음식은 나누어야 제 맛이며 함께 밥 먹는 기쁨이 삶을 더욱 빛나게 한다 느끼게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다. 이런 킨포크의 도시라면, 포틀랜드라는 곳이 대충 어떤 곳일지 짐작은 되지만... 조금 더 자세히 알고 싶어 졌다. 게다가 이 책은 단순히 몇 주나, 몇 달 여행을 다녀온 경험을 쓴 것이 아니고, 아예 그곳에 이 년이라는 시간 동안 눌러 앉아 살아본 것이라 여타의 여행 에세이들과는 완전히 다를 수밖에 없었다.

 

여행을 하다 도착한 낯선 곳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긴장을 풀게 될 때가 있다. 항상 듣던 음악을 다시 들을 때처럼. 이를테면 카페 앞 테이블에 앉아 에스프레소를 마시다가, 무심코 낙서를 끼적이다가. 책방에서 아는 작가의 책을 어루만지다가.

어느 낯선 도시에서건 잉크와 종이 냄새가 폴폴 나는 책방에 들어서면 왠지 마음이 편해진다. 종이로 만들어진 미로 같은 그곳에서 문자와 그림이 가득 인쇄된 책을 꺼내 펼쳐보고 냄새를 맡으면 '아아, 이곳 사람들도 우리랑 비슷하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포틀랜드(퐅랜)은 일 년 중 절반이 비가 집중적으로 내리는 우기를 가지고 있는 도시이다. 보통 10월 말부터 서서히 비 오는 날이 많아져서 이듬해 5월 초순까지 좀 지겹다 싶게 비가 내린다고 한다. 그런데 그곳 사람들은 비가 자주, 많이 오는데도 우산을 쓰지 않는다고 한다. 거리를 걷다가 멸종위기종 같은, 우산 쓴 사람을 가끔 보지만, 십중팔구 외지인이라고. 왜 퐅랜 사람들은 우산을 쓰지 않는 것일까. 그리고 퐅랜은 타투 가게가 유독 많은 곳이기도 하단다. 이우일의 아내와 딸이 타투를 하고 싶어 했다는 에피소드는 굉장히 낯설면서도 흥미로웠다. 이우일은 오래도록 간직하고픈 그림을 고르기가 너무 힘들어 타투를 계속 미뤘다는데, 그가 결국 고른 그림이란... 직접 책에서 확인하시길.

 

이 책이 재미있는 이유 중의 하나는 바로 이우일의 유머러스한 일러스트들 덕분인데, 41편의 에피소드에 200여 컷의 일러스트가 담겨 있으니 거의 글반, 그림반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퐅랜에서 유행하는 수염, 타투, 삼선 슬리퍼등을 총 집합해서 그린 이미지는 정말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반면에 퐅랜의 사람들과 풍경에 대해서 어느 정도 분위기가 짐작이 되었다고나 할까. 퐅랜의 사람들은 독특하고 괴상하고, 유별한 개성으로도 유명하다고 하는데, 그 특이함은 겪어보지 않으면 잘 알 수가 없다고 한다. 사람 좋기로 유명한 그들의 과잉 친절에 대한 에피소드도 너무 재미있었다.

 

서울처럼 복잡한 도시에서 평생을 살아온 사람으로서는 절대 이해할 수 없는 넉넉한 여유로움과 소박한 평화로움이 가득한 그곳, 퐅랜의 매력은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일반적으로 유명한 여행지의 그것보다 훨씬 더 매력적으로 보이는 이유는 바로 그곳에서 꽤 오랜 시간 '직접 살아본 경험'을 토대로 작가가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스키와 눈썰매를 즐기러 후드 산에도 가보고 싶고, 퐅랜 재즈 페스티벌에도 가보고 싶다. 다운타운 얌힐 거리에 있는 기부 요가원에서 여유있게 요가도 해보고 싶고, 플로팅 월드 코믹스라는 만화 책방에도 직접 가보고 싶다. 세상 모든 여행에 관련된 책들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이 책은 정말 제대로 여행 가보고 싶다는 욕구를 마구 불러일으킨다. 그것도 그냥 잠시 다녀오는 여행이 아닌, 그곳에 눌러앉아 살아보는 여행 말이다. 아웅, 나도 여행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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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잡학사전 - 알아두면 잘난 척하기 딱 좋은 잘난 척 인문학
김대웅 지음 / 노마드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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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신사와 프랑스 궁정생활에서 연상되는 단어는 뭐니뭐니 해도 매너(manners)이다. 이 매너의 어원은 라틴어 manus()이다. 처음에는손을 움직이는 방법의 뜻으로 쓰이다가 나중에는방법’ ‘태도로 쓰이고 복수형은예의범절’ ‘풍습으로도 쓰이게 되었다.

라틴어 manus를 어원으로 하는 손과 관련되 다양한 영어를 살펴보자. manufacture손으로 만들어진 것, 수공업 제품을 뜻하며 동사로제조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언어는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가 고스란히 녹아 있는 기호체계이다. 그러니 새로운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지금까지 우리가 살아오면서 경험하지 못했던 완전히 새로운 세상을 만나는 일과도 같을 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영어권 나라의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풍부한 어휘력과 문장 독해력이 필요한데, 무작정 단어를 외우는 무리수를 둘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단어의 어원을 통해서 그 단어가 가지고 있는 고유의 뜻을 이해하고, 거기서 파생된 단어들을 거미줄 치듯이 연상 작용을 통해 엮어서 이해하라는 거다. 이건 비단 언어에만 해당되는 말은 아닐 것이다. 학창 시절 세계사나 지리, 역사 등 주로 암기가 필요한 과목들을 공부할 때는 항상 이와 유사한 방법을 사용했던 기억이 난다. 정말로 암기력이 뛰어나다면 모를까 무작정 외우는 방식은 시간이 지나면 차츰 잊어 버릴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단어의 어원을 익히는 것처럼 꼬리에 꼬리를 무는 연상 작용이 가능한 방법으로 이해를 한다면, 암기라는 것이 절대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알아두면 정말로 쓸모 있는' 이라는 흥미로운 부제가 붙은 <영어잡학사전>은 단어의 어원을 밝히고 그 단어가 문화사적으로 어떻게 변모하고 파생되었는지를 설명해주는 책이다. 이 책만 제대로 읽는다면, 모르는 단어를 만나더라도 어원을 통해 대강의 뜻을 짐작할 수 있게 될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단어의 뿌리는 물론이고 그 줄기와 가지, 어원 속에 숨겨진 에피소드까지 재미있고 다양한 정보가 담겨 있어, 교양상식사전으로서의 역할도 훌륭하게 해낼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Quiet(still, silent 조용한) quit(give up, stop 그만두다) 그리고 quite(completely, wholly, entirely, thoroughly 완전히)는 어감이 비슷하다. 물론 어감뿐만 아니라 거슬러 올라가면 어원도 같다. 모두 라틴어 quies(평온한)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어느 지역에 엄청난 자연재해가 발생했다고 치자. 사람들은 그곳을 버리고 다른 곳으로 떠난다(quit). 그러면 그곳은 조용해지고(quiet), 사람도 동물도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이 완전히(quite) 폐허가 되고 만다. 이렇게 연상을 하면 이해하기가 좀 쉬울 것이다.

 

매너의 어원은 라틴어 manus()이다. 처음에는손을 움직이는 방법의 뜻으로 쓰이다가 나중에는방법’ ‘태도로 쓰이고 복수형은예의범절’ ‘풍습으로도 쓰이게 되었다. 오른손잡이들과 달리 왼손잡이들은 왼손으로 무기를 썼기 때문에 상황이 달라진다. 그래서 왼손잡이는 못 믿을 상대로 생각했으며, ‘불길한(inauspicious)’이라는 뜻의 라틴어 sinister왼손잡이(a left-handed person, a left hander)’라 불렀다. No.1은 어린이의 소변을 가리키며, No.2는 대변을 가리킨다. 우리 식으로는대소변이지만 서양식으로는소대변인 셈이다. 그러면 No.3는 무엇일까? 미국에서는 코카인(cocain)을 가리키는데, 이니셜 c가 알파벳 순서로 세 번째라는 이유에서다. 코카인에 의지해 살아가는 인생이 바로 삼류 인생이지 않을까 싶다.

 

 

 

은행의 기원은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환전상이었다. 은행을 뜻하는 bank는 처음에는환전상의 작업대를 가리켰다. 이들은 가톨릭 신자들로부터 온갖 손가락질을 받아가면서 작업대를 놓고 환전과 고리대금업을 시작했다. 이 작업대의 의미가 점차 확대되어 금융업자의 점포를 가리키게 되었다. 일찍이 이집트인과 로마인은 기름을 바른 동물의 방광과 내장을 페니스의 덮개로 썼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1550년대 이탈리아 파두아 대학 해부학 교수 가브리엘 팔로피우스가 약을 바른 아마포를 귀두에 씌우는 덮개, 즉 지금의 콘돔을 남성용 성병 예방기구로 처음 만들어냈다. 그는 clitoris(음핵)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해부학자이기도 하다. 그 외에도 자연과학과 민족, 인간관계와 사회생활, 정치, 경제와 군사, 외교, 문화, 예술과 종교 등의 카테고리로 나뉘어서 흥미로운 언어의 어원들에 대한 이야기가 가득 하다.

 

 

이 책은 지금 영어 공부를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굉장히 도움이 될 것 같고, 굳이 영어 공부를 하고 있지 않다고 하더라도 세상의 수많은 기원과 문화에 대한 정보들이 넘쳐나서 지식의 보고로서도 매우 훌륭한 역할을 해줄 것 같다. 한 단어에 대한 설명은 보통 한 페이지를 넘지 않도록 길지 않아 부담이 없고, 설명이 끝나면 활용할 수 있는 숙어나 유사어 등이 수록되어 있어 도움이 된다. 언어 공부와 전혀 상관없는 인문학 에세이처럼 읽히는데, 마지막 정리는 영어 공부로 마무리할 수 있도록 되어 있는 구조인 셈이다. 그리고 부록으로 실려 있는 '자주 쓰는 라틴어 관용구'라는 부분도 굉장히 흥미로웠는데, 라틴어라는 언어는 영화나 소설 속에서나 볼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관용구는 현재에서 대단히 많이 활용되고 있어 재미있었고, 이런 자료는 그 어디서도 만날 수 없었던 거라 더욱 흥미롭게 읽었던 것 같다. 억지로 암기하는 지식이 아니라 연상 작용을 통해 기억하게 되는 살아 있는 영어교과서가 필요한 학생들, 그리고 직장인들을 비롯해 영어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많은 분들에게 적극 추천한다. 생각지도 못했던 언어의 기원과 그 역사적 배경과 의미 등을 그저 읽으면서 따라가기만 하면... 재미있게 읽으면서 오래 기억할 수 있는 영어 공부가 될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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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40일 - 손으로 쓰고 그린
밥장 지음 / 시루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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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으로 그림을 그렸다. 그게 가능할까 싶었는데 전혀 불가능하지는 않았다.

지금까지 다녀본 곳 중에서 가장 마음을 움켜잡는다. 동틀 때는 또 어떨지.

벌써부터 설렌다. 평생 우려먹을 이야기 하나를 만들고 있다.

개인적으로 워낙 여행을 좋아해서 많이 다니기도 하고, 관련 에세이들도 많이 읽어본 편이다. 그런데 이렇게 사진 없이, 글과 그림으로만 이루어진 여행기는 난생 처음이다. 이 책은 일러스트레이터 밥장이여행일기이자관찰일기로서 손으로 쓰고 그린 호주의 구석구석을 기록하고 있는 작품이다. 현장에서 손으로 쓰고 그린 페이지들이 고스란히 실려 있어, 더욱 현장감 넘치고 생생한 일기같은 느낌이다. 여행 에세이이자, 함께 여행하는 인물들의 여러 이야기를 담고 있는 르포르타주이기도 한, 독특한 작품이 탄생했다.

밥장은 올해 초 허영만 화백과 저녁을 먹었는데, 그 자리에서 느닷없이 호주에 함께 가자는 제안을 받게 된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 아침 메신저로 왕복 항공권을 받는다. 알고 보니 허영만 화백과 일행들은 오래 전부터 '집단 가출'이라는 이름으로 여행을 다니고 있었단다. 요트로 우리나라 해안을 한 바퀴 돌기도 했고, 자전거로 전국 일주를 하기도 했고, 뉴질랜드와 캐나다도 다녀왔다고 한다. 올해는 캠퍼밴을 타고 멜버른에서 사막을 가로지른 뒤 다윈을 거쳐 퍼스까지 가는 계획을 세웠는데, 그 멤버로 밥장이 함께 하게 된 것이다.

멤버는 총 여섯 명, 형님(허영만), 봉주르(형님의 오랜 친구 김봉주), 총무(아웃도어 브랜드에서 갓 퇴사한 정상욱), 용권 형(사진과 동영상을 맡은 정용권), 태훈 작가(일정 챙기고 글 쓰려고 뉴질랜드에서 온 김태훈) 그리고 막내 밥장까지. 이들은 40일 동안 24시간 내내 차 안에서 먹고 자야 한다. 얼결에 합류하게 된 여행에서 사십 대 후반에 막내 역할을 맡게 된 밥장은, 이 참에 허영만과 형님들을 관찰해보기로 마음 먹는다.

캠퍼밴 생활은 결혼 생활과 몹시 닮았다.

좋아도 같은 공간, 싫어도 같은 공간에서 버텨야 한다.

문제가 생겨도 외부 전문가를 모시거나, 충고를 하거나, 투정을 들어줄 이도 없다.

마치 달 기지에 남은 우주인처럼 같은 물과 같은 공기를 마시며 어떻게든 풀어야 한다.

이들의 여행에 관한 스토리는 허영만 화백의 블로그에서도 만나볼 수 있고, 책으로도 출간되어 있다. 밥장의 책보다 한 달 먼저 나왔다. 그곳에서 만나게 되는 여정은 사진으로 기록된 스토리가 메인이고 중간중간 허영만 화백의 만화 일러스트가 추가되어 있는 스토리라.. 밥장의 책과 비교해가면서 읽으면 더욱 재미있을 것 같다. 호주는 자연이 잘 보존된 아웃백(오지)를 만날 수 있는 독특한 여행지이기도 한데, 이곳에서는 빛나는 밤하늘의 은하수, 그랜드캐니언 마운틴, 지구의 배꼽이라 불리는 울룰루와 붉은 사막에서의 석양도 만날 수 있다. 게다가 캠퍼밴을 통한 여행이라니...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멋지게만 느껴진다. 물론 밥장의 기록을 통해 만나게 되는 정말 리얼하고 상세한 여행기를 보면, 여행이란 마냥 낭만적이지만은 않은 현실이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 현실적인 부분들이 더욱 여행에 대한 생생한 그림이 그려져서 흥미진진했다.

이들의 여행은 멜버른, 애들레이드, 앨리스스피링스, 다윈, 퍼스를 거치는 약 9,000km의 대장정으로 호주 남부에서 중심을 거쳐 북부, 그리고 다시 서부로 내려오는 긴 여정이었다. 밥장이 막내인 덕에 본의 아니게 요리를 거의 담당하고 있는데, 그에 대한 자잘한 에피소드들도 너무 재미있었다. 여행이란 진짜 자잘한 허드렛일이 모인 것뿐이라는 그의 멘트가 고스란히 공감되는 에피소드들이었다. 그리고 밥장의 일기 중간 중간에 '영만짤'이라고 허영만 화백이 그날 던진 명대사들이 소개되어 있는데, 우스갯소리처럼 보이지만 너무도 예리하고 은유적인 부분들이 많아 그것만 따로 찾아서 읽고 싶을 정도로 멋졌다.

나도 여행을 꽤 다녀봤지만, 항상 '남는 건 사진 밖에 없어.'라면서 어디를 가든, 어느 순간이든 사진 찍기에 바빴던 것 같다. 그러다 보면 더 예쁜 사진을 남기고 싶어서, 더 멋진 순간을 기록하고 싶어서, 카메라 앵글 너머로만 풍경을 바라보게 된다. 물론 그게 나쁘다고 볼 수는 없다. 인간의 기억력이란 생각만큼 대단하지 않아서, 시간이 지나면 정말 사진으로만 확인되는 순간이 생기게 마련이니 말이다. 하지만 이렇게 사진을 많이 찍다 보면, 그 순간을 눈에 담고, 마음에 기록하지는 못하게 된다. 이 책을 읽다 보니 나도 다음 번 여행지에서는, 밥장처럼 손으로 쓰고, 그려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을 찍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조금 더 여유롭게 풍경을 즐기고, 맛있는 음식들을 눈에도 담아 보고,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하는 순간들을 가슴으로도 기억해 보는 거다. 손으로 쓰고 그린 이 여행 에세이는, 내가 그 동안 만나왔던 그 어떤 여행에 관련된 책과도 달랐던 것 같다. 특별한 경험을 통해, 나의 다음 번 여행도 조금 달라지길, 그리고 이렇게 특별해지길 고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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