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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왜 도서관이 필요한가
양쑤추 지음, 홍상훈 옮김 / 교유서가 / 2025년 5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자네는 틀림없이 이 책을 좋아할 걸세."
그 책을 다 읽고 나자 누군가가 내 등을 살짝 떠밀어주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는 개인이 낯선 분야에서 스스로 학습할 수 있도록 이끌었고, 자기가 '읽을 수 없는' 책을 읽을 수 있고, '쓸 수 없는' 것을 쓸 수 있다고 굳게 믿으라고 했다. 책을 덮고 나자, 나도 앞으로 나아가고 싶어졌다. 새해에는 '만들 수 없는' 도서 목록을 스스로 만들고, '할 수 없는' 일을 해낼 수 있기를 바랐다. p.106~107
대학에서 문학을 가르치던 저자는 지방 행정기관 임시직으로 1년 동안 근무하며 우연히 도서관 설립을 담당하게 된다. 지금까지 도서관이 하나도 없었던 지역에서 제대로 된 부서도, 예산도, 인력도 없이 시작된 이 프로젝트는 막연히 상상했던 것과는 다르게 현실적인 문제들이 곳곳에 포진해 있었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도서관 사서를 꿈꿔봤겠지만, 도서 구매비 100만 위안으로 도서관 전체의 책을 선정할 수 있다는 것은 완전히 다른 규모의 일이니 말이다. 그렇게 서가 하나하나를 채워줄 책들을 고르는 도서 목록 작성부터 시작해 내장공사, 시설 점검, 책상 및 의자 배치, 도서관 근무자 훈련 및 자리 배정 등 도서관을 짓고, 운영하는 일들이 하나씩 시작된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모두 집 책장에 있던 책, 도서관에 있는 책, 친구에게 빌린 책, 어딘가의 대기실에 있는 책들을 펼치며 자신만의 독서 편력을 시작해 왔다. 처음부터 제 돈으로 책을 구매해서 읽는 경우란 없을 테니 말이다. 나 역시 어린 시절 교실에 비치되어 있던 학급도서부터 책 대여점, 시립 도서관 등을 거치며 차근차근 책을 읽어 왔다. 어떻게 보면 모든 사람은 자신만의 '도서관'에서 성장한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그렇게 독서 경험을 쌓아 가며 우리는 조금씩 더 나은 사람이, 조금 더 성숙한 어른이 되어 가는 것이니 말이다. 도서관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나, 도서관에 대한 에세이들은 많이 읽어 왔지만, 아예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도서관 건립에 관한 이야기는 처음이라 너무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게다가 이 도서관 건립의 역사 이면에는 책을 사랑하는 한 사람이 온 마음을 쏟은 역정의 역사가 은연중에 담겨 있었으니 말이다.

책을 선정하는 것은 확실히 어려운 문제이다. 한 사람에게는 보물일지라도 다른 사람에게는 지푸라기일 수도 있다. 책을 선정하는 직위를 감당할 수 있는 이는 어떤 사람일까? ... 일단 책벌레로 학문적 소양이 풍부하여 아이들에게 좋은 책을 읽도록 이끌 수 있어야 한다. 다만 그 책벌레는 절대 책만 알고 세상사에는 어둡거나 지나치게 책에 빠져 있어서는 안 되고, 자주 밖으로 나와 활동함으로써, 사회적 약자들과 어울리지 않는 까닭에 저학력자들의 수요를 이해하지 못하는 지경에 빠지지 않은 사람이어야 한다. p.196
이 책에는 도서관 건립에 필요한 수많은 회의와 고민 등 실무적인 부분이 많이 담겨 있지만,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무엇보다 도서 목록 선정이다. 100만 위안의 경비로 총 3만 권을 구매하기로 결정하고, 동일한 책을 3권씩 갖춘다면 총 1만 종이 된다. 저자는 서적상들에게 각기 1만 종의 도서 목록을 받았는데, 그들의 리스트는 저자를 실망시킨다. 어쩌다 문학 거장의 작품이 있더라도 정작 대표작은 없었고, 어쩌다 대표작이 있더라도 하필 좋은 출판사를 피해갔으며, 아동서적에는 국제적인 상을 받았거나 베스트셀러를 기록한 그림책은 전혀 없었다. 상인들은 헐값에 책을 한꺼번에 판매하는 방식으로 일을 해왔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저자는 '도서관의 영혼은 도서목록'이라고 생각하고, 자신의 생각으로 계속 일을 해 나간다. 이후 목록을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궁금한 책을 발견하고 '도서관에 책이 도착하면 내가 제일 먼저 대출해야지!'라고 생각하는 저자의 모습에서 책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 마음을 엿볼 수 있었다.
하지만 도서관 건립을 한다는 것이 이렇게 설레는 일들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오죽하면 도서관 때문에 노심초사하느라 밤마다 잠을 이루지 못해 얼굴이 누렇게 뜨고, 머리카락은 축 처져 있었을 정도인데, 자신의 모습이 그 모양인 줄도 몰랐다고 하니 말이다. 학자이자 대학교수인 저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공무원 사회란 온갖 부조리한 일들과 권력 싸움으로 가득했고, 자신의 도서 목록을 지키기 위해 그야말로 고군분투해야 했다. 책을 읽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세상에 도서관이 왜 필요한지에 대해서 자연스럽게 생각해 보게 만들어 준 시간이었다. 예전에 사내 도서관을 몇 년간 운영했던 적이 있는데, 매달 책을 선정해서 구매하고, 그걸 직원들에게 읽히기 위해 고심을 했던 시간이 있어서인지 저자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것 같아 더 공감하며 읽었다. 책더미 사이에 들어가 책을 고르는 일, 가격을 따지지 않고 공금으로 책을 구매하는 사치를 부리는 일에 대한 저자의 즐거움을 나도 느껴본 적이 있으니 말이다. 공공 도서관의 설계에서 서가의 구성, 선정 도서 하나하나에 얽힌 고민과 에피소드까지, 애서가들이 궁금해 할만한 요소로 가득한 이 책을 놓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