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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암기 - 김학찬 유고 산문집 ㅣ 김학찬 유고집
김학찬 지음 / 교유서가 / 2025년 8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이때까지 쓰지 못했던 명작을 지금 와서 쓸 수 있을 리는 없다. 갑자기 삶이 달라졌지만 갑자기 깨달은 것은 없다. 암과 함께 찾아온 일생일대의 작품이 있을 리 없다. 이런 등가교환은 일어나지 않는다. 갑자기 좋은 작품을 쓴다면 이건 행운일까 노력일까 불행일까... 건강할 때도 쓰지 못했던 명작을 투암을 하면서 쓰기는 어렵다. 몸도 마음도, 무엇보다 머리가 온전하지 않으니까. 그래도 쓰고 싶은 건 어쩔 수 없다. 행운과 노력으로 될 일이 아니더라도 시도할 수밖에 없는 게 있다. p.62~63
2025년 2월에 세상을 떠난 김학찬 작가의 유고 산문집이다. 서른아홉에 폐암 4기라는 선고를 받게 된 작가가 일기처럼 써 내려간 글이다. 의기소침한 기분에서 벗어나기 위해, 글을 쓰다보면 의기양양해질 때가 있기 때문에, 일기를 통해 마음을 다스리고, 생에 대한 의지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암에 걸렸지만 세상은 여전히 아름답고 꿋꿋하게, 아무렇지도 않게 이겨내겠다는 글은 쓸 생각이 없었다'고 그래서 이 글은 따뜻할 수 없는 글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지만, 이상하게도 페이지 곳곳에 온기가 가득했다. 특유의 블랙 유머가 빛을 발했기 때문일 수도 있고, 담백하게 흘러가는 그의 일상이 내면의 단단함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임상 실험 대상자로 렉라자라는 약을 투약받으면서 스스로를 슈퍼히어로처럼 '렉라자맨'으로 지칭하는 작가는 대학에서 10년 동안의 강사 생활을 접고, 연구소 자리를 빼고, 집에 있는 책들의 절반 이상을 버리기 위해 애쓴다. 그런 와중에도 좋아하는 작가의 신작을 아껴가며 읽고, 책을 더 늘릴 수는 없으니 사두고 읽지 않았던 책을 찾아 읽는다. 주기적으로 검진을 받고, 병원에서 설문조사를 하며, 의연하게 삶을 부여잡고 하루하루를 보낸다. 애초에 임상 실험 대상자가 되는 것도 쉽지 않은데, 다행히 대상자가 되었다며 그는 이렇게 생각한다. '행운보다는 불행이 더 빠른데, 불행 없이 행운은 또 알기 어려운 모양이다.' 라고. 왜냐하면 임상 연구 대상 선정의 조건이 "뇌 전이가 있을 것"이었기 때문이다. 정확하게 알면 알수록 희망을 갖기 어려운 상황, 그럼에도 일상은 여지없이 계속되고 있었다. 렉라자맨이 된 다음날 방송에서 폐암에 대해 다루는 것을 보고는 '생로병사의 비밀을 깨달았지만, 비밀과 무관하게 병사를 피할 순 없다'며 병사 바로 위에 놓여서 비관에 대한 궁리를 하고 있는 저자의 담담하고, 담백한 문장들을 읽으며 독자인 나는 아쉬웠다. 아 왜 이런 작가를 이제야 알게 되었을까 하고. 아니지, 이제라도 알게 되어 다행인건지도 모르겠다.

아픈 와중에도 뭔가를 사게 된다. 무소유를 실천하고 있어도 택배는 어쩔 수 없다. 지금 한국에 태어나면 톨스토이도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질문에 명확하게 "택배"라고 대답할 것이다. 도스토옙스키라면 <죄와 택배>를 쓰겠지. 불편하다는 핑계로 택배 주문이 늘었는데, 재활용품을 내놓을 때가 되면 잠깐 죄책감을 느낀다. 할 수 있는 것까지는, 장바구니를 사용하고 분리를 성의껏 하는 방식으로 지구에게 사죄하며 산다. 카드값은 다음달의 렉라자맨에게 맡기기로 하자. 지나간 걱정은 잊고 밝은 쇼핑의 세계에 몰두하자. p.198
죽음은 누구에게나 급작스럽게 찾아온다. 그걸 막을 수 없다면, 할 수 있는 건 단 한가지다. 남아 있는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이냐를 결정하는 것. 그는 병원에서 버킷리스트를 쓴다. 괜히 비장해지기도 하고, 시간을 보낼 방법이 없었으니까. 퇴원하면 집에 있는 책을 정확하게 절반만 버리겠다고. 살아가게 된다면 읽지 않을 것이다. 죽으면 더 읽을 수 없다. 따라서 책은 버려야 한다. 하지만 책을 버리기란 쉽지 않다. 책을 버리려고 할 때마다 마음이 약해져, 무조건 하루에 열 권씩 버리기로 하지만 정해진 할당량을 채우는 것도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다행히 렉자라맨이 되고 나서 약의 효과로 발열이 잡히고 기침도 줄어들어 '대화'를 할 수 있는 몸상태가 된다. 저녁 산책도 가고, 잠깐의 자유가 생기지만, 언제 기습적으로 구속당할지 모르는 것이 약의 내성이었다. '효과가 너무 좋은 약이라 다시 삶을 부여잡고 싶게 된다'는 말에 마음이 아팠다. 왜냐하면 렉라자는 짧은 시간이지만 예전처럼 지낼 수 있게 해주는 대신, 병을 치료하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저 잠시 유예의 시간을 벌어주는 것뿐이었다.
얼마나 살지도 모르는데 시간이 생기자 다시 소설책부터 펴드는 자신이 한심하다는 글을 읽으며 뭔가 귀엽다는 생각도 들었고, 건강할 때도 쓰지 못했던 명작을 투암을 하면서 쓰기는 어렵다는 말에 마음이 또 아파왔고, 중고 서점에 책을 팔면 하루치 일용할 양식이 생긴다는 대목에서 나랑 비슷한 거 같다며 공감하고, 어쩐지 매사에 불만 가득한 투덜이 스머프가 된 것 같다는 문장에 스머프를 알다니 나랑 비슷한 어린 시절을 보내셨었구나 싶은 마음에 따스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투병기의 형식으로 쓰였으므로 내용이 슬프고 어둡지 않을 수 없겠지만, 김학찬 작가의 문장은 위트있고, 담백하고, 유머러스해서 전반적으로는 밝은 기운이 더 가득했던 그런 글이었다. 이 책을 통해 김학찬 작가를 새롭게 '발견'하게 된 것 같아 그의 소설들을 찾아서 읽어 보려고 한다. 그의 새로운 작품을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것은 아쉽지만, 그럼에도 글이라는 형태로 그의 영혼이 세상에 아직 남아 있으니까. 누군가의 죽음 앞에서도 삶은 계속 흘러 간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