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샤의 후예 1 : 피와 뼈의 아이들
토미 아데예미 지음, 박아람 옮김 / 다섯수레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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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넋 나간 얼굴로 아마리를 바라본다. '거짓말이야.' 마법을 되찾을 수는 없다. 마법은 11년 전에 죽었다.

우리의 의심을 읽은 듯 아마리가 다시 입을 연다. "나도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내 눈으로 똑똑히 봤어. 신성자가 이 두루마리를 건드리는 순간 마자이로 변했어......" 아마리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진다. "손으로 빛을 불러왔어."            p.105


이 작품은 스물세 살 젊은 신예작가가 서아프리카 문화와 신화를 바탕으로 창조해 낸 데뷔작으로 엄청난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뉴욕타임즈 40주 연속 베스트셀러, 아마존 리뷰 1700개 이상, 31개 언어로 번역 계약, 21세기 폭스와 영화 계약 체결, 거기다 다양한 분야의 작가들이 극찬한 소설이기도 하다. 국내에는 마법 판자지 3부작의 첫 번째 작품 <피와 뼈의 아이들>이 2019년에 출간되었는데, 이번에 두 번째 작품이 나오면서 첫 작품도 조금 디자인을 바꾸고 함께 개정판이 나왔다. 당시에 너무 재미있게 읽었던 터라 이번에 두 번째 작품을 읽기 전에 다시 읽어 보았는데, 여전히 시선을 뗄 수 없는 매혹적인 스토리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다. 


오래 전 오리샤 왕국에는 희귀하고 신성한 마자이족이 번영을 누리며 살았다. 열 개 부족으로 이루어진 마자이들은 신들로부터 제각기 다른 재능을 부여받고, 마법의 힘을 휘두를 수 있었다. 불을 일으키거나, 마음을 읽거나, 미래를 내다보거나, 질병을 치료하거나, 죽은 자를 불러오거나 등등.. 마자이는 태어날 때부터 새하얀 머리칼을 갖고 있는데, 모두가 날 때부터 신들에게 재능을 받는 건 아니었다. 선택받은 아이들은 열세 살 이후부터 마법을 부릴 수 있게 되는데, 11년 전부터 마법이 세상으로부터 모두 사라져 버렸다. 일부 힘있는 자들이 마법을 남용하기 시작했고, 마법의 힘을 가지지 못한 코시단은 점점 마자이에 대한 두려움과 증오로가 커져 결국 그들을 모조리 학살하기에 이른 것이다. 새하얀 머리칼을 갖고 태어났으나 부모와 마법을 한꺼번에 잃은 마자이의 아이들은 왕국의 최하층민으로 전락해 온갖 차별과 폭력 속에 살아가게 된다. 





두려움을 핑계로 진실을 내버리진 않을 것이다.

"당신은 우리를 짓밟고 우리의 피와 뼈 위에 왕국을 건설하려 했지. 당신이 실수한 건 우리를 살려 둔 게 아니야. 우리가 저항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 거지!"

이난이 입을 굳게 다물고 우리를 번갈아 보며 앞으로 걸어 나온다.           p.519


시리즈의 주인공 제일리 역시 여섯 살 때 왕이 보낸 병사들에 의해 엄마가 죽는 장면을 목격했고, 엄마처럼 검은 피부에 새하얀 머리칼을 가진 마자이였다. 그러던 어느 날, 왕에 의해 바다 깊숙한 곳에 버려졌던 성물이 발견된다. 세 개의 성물을 모아 신성한 의식을 치르면 사라졌던 마법을 다시 불러올 수 있다고 한다. 제일리를 비롯한 마자이들은 마법을 되찾기 위해 모험을 떠나게 되고, 왕의 명령으로 왕자인 이난과 왕이 총애하는 총사령관 카에아가 그들을 쫒는다. 제일리는 그녀의 오빠지만 코시단인 제인과 성물 중 한 가지인 두루마리를 궁에서 훔쳐 쫓기게 된 아마리 공주와 함께 전설의 사원으로 향한다. 과연 그들은 무사히 왕의 추격을 피해 세상에서 사라진 마자이들의 마법을 다시 되찾을 수 있을까. 


작가인 토미 아데예미는 무장하지 않은 흑인 어른들과 아이들이 경찰의 총에 맞은 사건을 연일 접하게 되던 시절에 이 작품을 썼다고 한다. 두렵고 화가 났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무기력함과 분노를 이야기를 통해서 보여주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는 세상의 악과 맞서 싸울 힘을 갖고 있다고, 무고한 사람들을 위해서 울어 주길, 그리고 이제 일어나 작게나마 저항의 몸짓을 시작하길, 그리하면 세상이 조금 더 나은 곳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 주고 싶었던 것이다. 흑인 작가들이 인종차별에 대한 문제를 다루고 있는 여타의 작품들에 비해, 토미 아데예미는 마법의 세계를 창조해 현지에서는 하퍼 리의 <앵무새 죽이기> 판타지 버전으로 평가 받았다. 판타지라는 가장 현실성이 결여되어 있는 불가능의 문학을 통해 실제 현실 속 고통과 두려움, 슬픔, 상실을 보여주고 있는 이 놀라운 작품을 만나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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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이언트 임팩트 - 인플레이션, 금리, 전쟁, 에너지 4개의 축이 뒤흔드는 지금부터의 세계
박종훈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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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세계경제는 저금리에 중독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돈값이 그야말로 제로에 수렴할 정도로 싸지면서 너도나도 최대한 돈을 빌려 투자에 나선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일시적 금리 상승이 아닌 추세적 금리 상승이 시작될 경우, 세계경제와 자산시장은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 때문에 앞으로 금리가 장기적, 추세적으로 어떤 방향으로 움직일지가 너무나 중요합니다.         p.125

 

지난 25년간 깊이 있는 통찰과 분석으로 신뢰할 만한 경제전문가로 자리매김한 KBS 박종훈 경제전문기자의 신작이다. 그는 최근의 세계 경제 변화를 45억 년 전 화성만한 크기의 행성이 지구와 충돌하면서 두 행성이 떨어져 나간 수많은 파편이 지구 궤도 위를 돌다가 다시 뭉쳐 달이 되었다는 가설, '자이언트 임팩트(Giant Impact)’에 비유한다.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의 발발로 도처에서 군사적 충돌 위험이 감지되고 있으며, 미국과 중국의 패권 전쟁으로 인해 세계경제에 대한 불안감이 극대화되고 있는 요즘이다. 게다가 40년 만에 찾아온 심각한 인플레이션과 연준의 금리 인상으로 인해 세계경제가 혼란의 도가니에 빠져들고 있다.

 

이 책은 우리가 과거 수십 년 동안 경험하지 못했던 대변동의 실체와 그로 인해 세계경제가 어떻게 변화하게 될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저자는 '자이언트 임팩트'라고 할 만한 패러다임 전환의 맥락을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플레이션, 금리, 전쟁, 에너지로 이루어진 네 개의 축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먼저, 오랜만에 세계경제의 이슈가 된 인플레이션부터 살펴본다. 왜 30여 년 만에 인플레이션이 돌아왔는지,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지, 그로 인해 세계경제 어디로 가게 될 지 조망한다. 두 번째는 전 세계적으로 치솟고 있는 금리에 대해 이야기한다. 전 세계 주식, 부동산, 가상화폐 등 자산의 상승이 멈췄고, 실물 경제에 상당한 타격이 가시화되는 중인데, 앞으로의 세계 금융시장의 동향을 점검하고 그 대응 방안을 찾아본다.

 

 

 

“나는 더 이상 현금이 쓰레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세계 최대의 헤지펀드 브리지워터 어소시에이츠의 창업자인 레이 달리오가 2022년 10월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한 말입니다. 레이 달리오는 평소 ‘현금은 쓰레기’라는 말을 해 왔는데 2022년 5월에는 ‘주식이 현금보다 더 쓰레기’라고 했다가 급기야 현금은 더 이상 쓰레기가 아니라고 선언한 겁니다. 인플레이션이 시작된 상황에서는 돈의 가치가 떨어져서 현금이 쓰레기가 될 것이라고 착각하기 쉬운데요. 왜 레이 달리오는 더 이상 현금이 쓰레기가 아니라고 한 것일까요?         p.174

 

미국이 세계 유일의 패권 국가였던 시대가 저물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지정학적 위험과 긴장감이 표출되었다. 저자는 패권 전쟁이 격화되면서 세계 질서가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 짚어본다. 마지막 네 번째는 새로운 무기로 급부상하고 있는 에너지이다. 패권 전쟁으로 에너지가 무기화되면서 에너지가 미래 패권을 바꾸는 핵심 요소가 되고 있다. 이상기후가 현실로 다가왔으니, 신재생 에너지로의 전환을 가속화해야 하는 시점이기도 하다. 저자는 에너지 전환 과정에서 나타날 새로운 위협과 기회를 살펴본다.

 

이미 세계 질서를 송두리째 바꿀 만큼 거대한 충격, 즉 자이언트 임팩트는 시작되었다. 미,중 패권 전쟁이 격화되고 탈세계화 속에서 40년 만에 인플레이션이 부활한 탓에 세계경제가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다. 시대의 변화를 자각하고, 향후 세계경제에 거대한 패러다임 전환을 견인할 네 가지 축에 대해 우리가 제대로 알아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인플레이션, 금리 인상, 환율 폭등, 지정학과 전쟁, 반도체, 탄소중립, 에너지 패권 등 현재 가장 뜨거운 글로벌 경제 이슈를 모두 담고 있는 책이라 해당 분야에 관심이 있다면 꼭 읽어 보길 추천해주고 싶다. 인플레이션, 금리, 전쟁, 에너지 네 개의 축이 새로운 글로벌 패권의 향방을 어떻게 좌우하게 될 지, 앞으로 벌어질 패권 변동의 시나리오를 예측해보고 싶다면 이 책을 만나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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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장된 표현형 - 출간 40주년 기념 리커버판
리처드 도킨스 지음, 홍영남.장대익.권오현 옮김 / 을유문화사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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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적 환경이 주는 영향 그 자체는 무관심한 환경과 같은 이유로 예측하기 힘들지만 악의적 환경에는 추가 위험이 따른다. 즉, 희생자가 '실수'를 저지르게 한다. 자기 둥지에서 뻐꾸기 새끼를 키우는 개똥지빠귀의 실수는 어떤 의미에서는 부적응적인 큰 실책이리라. 이는 환경의 비악의적 부분이 품은 통계적 예측 불가능성으로 일어나는 단발성의, 짐작하기 힘든 사건이 아니다. 오히려 반복해서 일어나는 실책으로서 많은 세대에 걸쳐 개똥지빠귀에게 피해를 입히며, 심지어 한 개통지빠귀 일생에서 여러 번 일어나기도 한다.       p.103

 

리처드 도킨스의 <확장된 표현형>이 출간 40주년을 기념해 리커버판으로 새롭게 나왔다. 이번 표지는 <이기적 유전자>와 함께 마치 DNA의 이중 나선 같은 하나의 세트로 디자인되었다. 1982년에 발표한 <확장된 표현형>은 리처드 도킨스의 학문적 성취를 보여 주는 명저이자 저자가 가장 애착을 보인 저서이기도 하다. 리처드 도킨스가 <이기적 유전자>로 세상에 혁명적 시각을 던졌다면, <확장된 표현형>은 저자의 관점에 깊이를 더하고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했던 바를 명쾌하게 보여 주는 완성작이라고 해서 매우 기대가 되었다.

 

<이기적 유전자>에서 '인간은 유전자의 꼭두각시'라고 선언하며 진화론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던 리처드 도킨스는 이 책에서 '확장된 표현형'이라는 생소한 개념을 들고 나온다. 유전자가 자신의 복제 욕구를 위해 개체(운반자)를 고안했다는 주장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유전자가 자신의 목적을 위해 다른 개체들마저 자신의 운반자로 만들어 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도킨스는 이 책에서 유전자의 확장된 표현형에 대한 다양한 사례를 비롯해서 흰개미집 건설에 사용되는 진흙 선택과 유전적 작용, 달팽이에 기생하는 흡충이 달팽이 껍데기에 끼치는 영향 같은 여러 가지 흥미로운 사고실험를 통해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유전에 관한 상식을 바로잡아 준다. 뿐만 아니라 <이기적 유전자>를 둘러싼 오해와 논쟁에 대해 답하고, 자신의 사상이 유전적 결정론이라 오해받는 것에 대해 명쾌하게 반박한다.

 

 

 

왜 발생하는 몸의 모든 세포에는 완전한 유전자 무리가 있어야 할까? 분화하는 동안 유전체 일부가 떨어져 나가, 간 조직이나 콩팥 조직 같이 특정 유형의 조직이 되는 필수 유전자만 보유한 생명 형태를 상상하는 건 쉽다. 그저 생식 계열 세포만이 유전체 전체를 소유하면 될 것이다. 그 이유는 단지 물리적으로 생식 계열 세포의 유전체 일부가 떨어져 나가는 게 쉽지 않아서이리라. 어쨌든, 발생하는 몸에서 특정 분화 구역에 필요한 유전자가 모두 한 염색체에 한정된 건 아닌 듯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왜 이렇게 되지 않고 그렇게 되었는지 물을 차례다.         p.419

 

도킨스는 이 책에서 이기적 유전자를 개체라는 개념적 감옥에서 해방시키려 한다고 썼다. 유전자가 발하는 표현형 효과는 자신을 다음 세대로 전달하는 지렛대와 같은 도구이며 이러한 도구는 유전자가 자리한 몸 밖으로, 심지어 다른 개체의 신경계 깊숙이까지 '확장'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자연계에서 일어나는 여러 현상들을 지금까지와는 달리 유전자적 관점으로 바라보면 알려진 것과는 다른 새로운 해석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몸속 유전자가 자신의 표현형을 몸 밖으로 멀리 확장시켜 심지어는 다른 생물체의 신경계에까지 깊숙이 도달하는 모습을 비롯해 확장된 표현형 사례들을 소개한다. 유전자가 세계에 자신의 영향을 미치는 표현형을 확대해 나가며, 자신을 담고 있는 개체뿐만 아니라 다른 세포, 다른 종에서도 그 개체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은 매우 흥미진진하고도 놀라웠다.

 

개인적으로는 <이기적 유전자>보다는 조금 어렵게 느껴지는 전문적인 개념들이 많아서 읽는 게 수월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도킨스 역시 이 책을 쓰며 염두에 둔 독자로 자신의 동료들, 진화생물학자와 동물행동학자, 사회생물학자, 생태학자, 진화학에 관심 있는 철학자와 인문학자라고 밝히고 있을 정도로 어느 정도 진화생물학과 그 전문 용어를 잘 안다고 전제한 상태에서 썼다고 하니 말이다. 하지만 해당 영역의 전문가가 아닌, 구경꾼 독자로서 즐기는 일도 가능하다. 특히나 <이기적 유전자>를 흥미롭게 읽었다면,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 한번쯤 읽어봐야 할 필요성은 있는 작품인 것은 분명하다. 진화생물학에 관심이 있다면, <이기적 유전자> 그 후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이 책을 만나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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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까스를 쫓는 모험
이건우 지음 / 푸른숲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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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머릿속으로 돈까스를 떠올려보라. 걸쭉한 브라운 소스를 부은 한국식 돈까스, 두꺼운 등심을 바삭하게 튀겨 썰어낸 일본식 돈까스 등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돈까스를 상상하면 된다. 자, 이번에는 돈까스 옆으로 시선을 옮긴다. 돈까스와 함께 나온 샐러드는 무엇인가? 십중팔구 가늘게 채 썬 양배추 샐러드를 떠올렸으리라. 지금까지 먹은 돈까스가 어떤 스타일이었든 그 곁을 지킨 건 대개 양배추였을 것이다. 그런데 왜 하필 양배추, 그것도 가늘게 채 썬 양배추가 터줏대감처럼 돈까스 옆자리를 차지하게 되었을까?         p.41

 

돌아보면 삶의 중요한 모든 순간에 음식이 함께 했다. 어린 시절 처음 가족끼리 외식이라는 걸 했던 동네의 경양식 집, 동생은 느끼하다고 했지만 나는 너무 맛있었던 돈까스에 대한 기억은 아직도 엊그제 일처럼 선명하다. 대학에 입학했을 때, 처음으로 독립했을 때, 첫 직장에서 첫번째 월급을 받았을 때, 첫 남자친구와 근사한 데이트를 했을 때 등등... 뭔가 기념할 만한 일이 생기거나, 오래 기억해두고 싶은 순간에 우리는 좋은 사람들과 맛있는 걸 먹으러 갔었다. 워낙 다양한 맛집이 있고, 여러 종류의 음식들을 먹어 왔지만 그래도 외식에 대한 추억을 떠올릴 때는 항상 돈까스부터 생각이 나는 것 같다. 물론 돈까스는 어른이 된 지금도 여전히 즐겨 먹는 음식 중의 하나가 되었고 말이다.

 

나에게는 추억의 음식이자, 여전히 현재를 함께하는 음식은 '돈까스'에 대한 탐방기라고 해서 이 책이 굉장히 궁금했다. '돈까스를 쫓는 모험'이라는 귀여운 제목의 이 책은 돈까스에 진심인 돈까스 애호가이자 일본어 번역가인 저자가 들려주는 돈까스 탐방기를 그리고 있다. 저자는 2017년부터 블로그 '돈까스를 쫓는 모험'을 운영하며 서울과 경기 일대의 돈까스 가게 수백여 곳을 탐방하고, 자신이 먹은 돈까스에 대한 품평을 써오고 있다. 블로그에 리뷰를 남긴 돈까스만 200여 개가 훌쩍 넘어간다고 하니, 그야말로 '돈까스 오덕'이자 '돈까스 전문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 책에는 저자가 방문한 수백 곳의 돈까스집 중에 맛, 접객,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분위기 등 어떤 측면에서라도 소개할 만한 요소가 있는 가게들만 추려서 그 중 딱 29곳이 수록되어 있다.

 

 

 

상을 받아드는 순간부터 감탄이 절로 나온다. 참으로 정갈하고 정성 가득한 한 상이다. 돈까스 경험이 이쯤 쌓이면 조금 과장해서, 척 보면 딱 답이 나오는데, 드레싱이며 소스며 다 직접 만들었을 것이다. 게다가 생선까스와 새우튀김에 맞춰 타르타르소스까지 따로 냈다. 이런 세심한 점이 초장부터 마음을 사로잡는다. 주문 실수에서 비롯된 찜찜함은 이미 눈 녹듯 사라진 지 오래다. 어떤 순서로 먹어볼까? 이는 돈까스를 즐길 때 꽤 중요한 요소다.           p.177

 

첫 주자는 1986년부터 명맥을 이어온 한성대 앞의 한아름이다. 얇은 고기를 바삭하게 튀겨내어 새콤달콤한 소스를 뿌리고 치즈를 얹어 녹여낸 익숙하지만 맛있을 수밖에 없는 조합의 돈까가 일품인 곳이다. 두 번째는 한국식 돈까스를 제대로 선보이는 종로의 김권태 돈까스 백반이다. 이곳은 독특하게도 돈까스에 밥을 곁들이는 형태가 아니라 밥반찬 중 하나로 돈까스가 나오는 돈까스 백반 메뉴가 유명한데, 점심시간에는 직장인들이 줄을 서서 먹는 가게라고 한다. 그외에도 걸쭉한 브라운 소스를 부은 추억의 경양식 돈까스, 두꺼운 등심을 바삭하게 튀겨 썰어낸 일본식 돈까스, 얼큰한 냄새 폴폴 풍기는 돈까스 김치 나베, 카레 돈까스, 짬뽕과 함께 나오는 중식 돈까스, 입에 넣는 순간 눈이 번쩍 뜨이는 참치까스 등등 다양한 맛과 조합을 선보이는 돈까스가 소개되어 있다. 이 중에는 누구나 알만한 유명한 집도 있지만,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숨은 맛집도 있어서 맛집 탐방을 좋아한다면 훌륭한 가이드가 되어줄 것 같다.

 

무엇보다 돈까스 맛집을 탐방하고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돈까스라는 음식을 제대로, 깊이 있게 즐길 수 있는 저자만의 방법을 알려주고 있어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특히나 저자가 일본어 번역가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어서 음식에 얽힌 일본 문화나 역사, 언어와 관련한 해박한 지식들을 함께 풀어내고 있어 더 흥미로웠다. 그리고 돈까스 집 사장님과의 대담, 집에서 즐기는 냉동 돈까스 비교, 서울, 경기 지역 돈까스 지도 등이 알차게 수록되어 있어 정보로 활용하기에도 좋다. 어떤 음식은 나의 지나온 한 시절을 기억나게 만들고, 또 어떤 음식은 함께했던 누군가를 떠오르게 만드는 것 같다. 그래서 내가 먹어온 음식만큼, 내가 지나온 시간만큼의 추억들이 쌓이고 쌓여서 나라는 한 사람을 이루게 되는 것일 테고 말이다. 평생 한 가지 음식만 먹어야 한다고 했을 때 망설임 없이 돈까스를 고를 수 있는 저자의 애정이 고스란히 묻어나 있는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먹어온 돈까스와 그 시간들에 얽힌 추억도 함께 떠올랐다. 돈까스라는 크고도 아름다운 세계가 궁금하다면 이 책을 만나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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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ick 스틱! (15주년 기념판) - 1초 만에 착 달라붙는 메시지, 그 안에 숨은 6가지 법칙
칩 히스.댄 히스 지음, 안진환.박슬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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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어떻단 말인가? 이건 그저 인간의 뇌에 대한 작은 상식일 뿐이지 않은가? 좋다, 우리가 진실로 말하고 싶은 건 이런 거다. 간결한 메시지는 더 잘 달라붙는다. 하지만 간결함 그 자체만으로는 아무런 쓸모도 없다. 진정으로 가치 있는 것은 심오한 내용을 지닌 간결한 메시지다. 그러므로 심오한 메시지를 간결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짧은 메시지 안에 다양한 의미를 압축하여 채워 넣어야 한다. 어떻게? 깃발을 사용하라. 청중이 이미 가지고 있는 기억을 두드려 깨워라. 이미 존재하는 것을 활용하는 것이다.       p.89

 

출간 후 전 세계 300만 부 이상 판매되며 비즈니스 3대 명저가 된 <스틱!>이 출간 15주년을 기념해 리커버 기념판으로 새롭게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뇌리에 한번 달라붙으면 절대 떨어지지 않는 스티커 메시지 창조 기법을 담은 이 책은 수많은 사례를 통해 굉장히 실용적인 방법들을 알려준다. 이 책은 도시 괴담은 왜 그렇게 사람들의 기억 속에 뚜렷이 각인되는 것인지, 어째서 어떤 선생님의 수업은 다른 수업보다 훨씬 오래 기억되는 것인지, 거의 모든 문화권에서 비슷한 속담이 발견되는 건 무슨 이유에서인지, 어째서 어떤 정치적 메시지는 널리 퍼져나가는 반면 다른 메시지는 그렇지 못하는 건지에 대해 방대한 연구와 치밀한 분석 끝에 스티커 메시지 창조의 6 원칙(SUCCESs)을 추출해냈다.

 

10년 동안 수백만 명의 행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메시지 안에 공통적으로 담겨 있는 특성 여섯 개는 다음과 같다. 단순성(Simple), 의외성(Unexpectedness), 구체성(Concreteness), 신뢰성(Credibility), 감성(Emotion), 스토리(Story)가 그것이다. 요약하자면, 성공적인 메시지를 창출하려면 '간단하고 기발하며 구체적이고 진실되며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스토리'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 단어들의 첫 글자를 따면 성공이라는 의미의 'SUCCESs'가 된다. 그런데 이 여섯 가지 원칙은 대부분 비교적 명백하고 상식적인 내용들을 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사람들은 탁월한 스티커 메시지들을 손쉽게 만들어내지 못하는 것일까? 저자는 그 이유를 우리의 머릿속에 존재하는 악당인 '지식의 저주'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지식의 저주'로부터 벗어나는 방법과, 여섯 가지 원칙을 사용하는 방법에 대해서 알려 준다.

 

 

 

언어란 종종 추상적이다. 그러나 삶은 추상적일 수 없다. 교사는 학생들에게 전쟁과 동물과 문학작품에 관해 가르친다. 의사는 우리의 위와 등과 심장에 생긴 문제들을 해결한다. 기업은 소프트웨어를 만들고 비행기를 건조하고 신문을 발행한다. 자동차 회사는 작년보다 더 빠르고 싸고 예쁜 차들을 제조한다. 심지어 가장 추상적인 비즈니스 전략마저 종국에는 인간의 행동으로 발현되어야 한다. 추상적인 전략보다는 실제 행동이, 인간 정신에 대한 복잡하고 추상적인 언어 유희보다는 포도가 시다고 투정을 부리는 여우를 이해하는 편이 훨씬 쉬운 법이다.           p.163~164

 

신장을 훔쳐가는 장기 밀매 괴담, 콜라가 사람의 뼈와 이를 부식시킨다는 속설, 중국의 만리장성이 우주에서 육안으로 볼 수 있는 유일한 인공 건축물이라는 것, 인간은 평생 뇌의 10퍼센트밖에 사용하지 않는다는 사실 등 이러한 말들은 누구나 한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게다가 대부분 이 말들이 사실일거라고 믿고 있을 것이다. 도시 전설, 루머, 속담, 음모 이론, 온갖 농담들은 왜 오랜 시간 동안 사람들 사이에서 떠도는 것일까. 마치 바이러스처럼 번져가는, 사회적인 전염 현상에 대한 수많은 사례들은 대단히 흥미진진하다. 뿐만 아니라 이 책은 시대를 관통하는 이야기, 평생 기억에 남는 가짜 뉴스나 루머, 사지 않고 못 견디는 광고 카피, 대중의 행동을 바꾼 선거 캐치프레이즈에 이르기까지, 수세기 동안 살아남은 메시지에 관해 분석한다. 그 속에 숨어 있는 6가지 원칙만 잘 활용하면 천재 카피라이터나 창의성 넘치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아니어도 누구나 착 붙는 스토리텔링이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이 책은 메시지를 스티커처럼 끈끈하게 만들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각 장이 끝날 때마다 '메시지 클리닉'이라는 코너를 수록하고 있다. 예를 들어 메시지를 보다 잘 달라붙게 만들 수 있는 지를 실천적인 측면에서 설명해주고 있어 활용도가 높다. 그리고 청중에게 착 달라붙는 프레젠테이션의 다섯 가지 법칙, 경영자부터 신입직원까지 관통하는 전략 소통법, 나쁜 소문을 떼어내는 방법, 학생들에게 착 달라붙는 스티커 교수법 등 실전에서 바로 응용해볼 수 있는 스틱의 기술들을 아낌없이 알려주고 있어 비즈니스 바이블이라는 평이 괜한 말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책이었다. 사람들의 기억에 잊히지 않는 불멸의 메시지를 만들어 내는 방법이 궁금하다면 이 책을 만나 보자. 마케팅, 커뮤니케이션을 비롯한 비즈니스 전 영역은 물론 타인을 설득하고 마음을 움직이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훌륭한 가이드가 되어줄 것 같다. 이 책을 통해서 배운 것을 바탕으로 나만의 '한 줄 평'을 써본다면 이렇다. 상대를 설득하고, 마음을 사로잡는 강력한 한 문장이 필요하다면 '스틱!'이 당신을 도와줄 것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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