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장된 표현형 - 출간 40주년 기념 리커버판
리처드 도킨스 지음, 홍영남.장대익.권오현 옮김 / 을유문화사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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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적 환경이 주는 영향 그 자체는 무관심한 환경과 같은 이유로 예측하기 힘들지만 악의적 환경에는 추가 위험이 따른다. 즉, 희생자가 '실수'를 저지르게 한다. 자기 둥지에서 뻐꾸기 새끼를 키우는 개똥지빠귀의 실수는 어떤 의미에서는 부적응적인 큰 실책이리라. 이는 환경의 비악의적 부분이 품은 통계적 예측 불가능성으로 일어나는 단발성의, 짐작하기 힘든 사건이 아니다. 오히려 반복해서 일어나는 실책으로서 많은 세대에 걸쳐 개똥지빠귀에게 피해를 입히며, 심지어 한 개통지빠귀 일생에서 여러 번 일어나기도 한다.       p.103

 

리처드 도킨스의 <확장된 표현형>이 출간 40주년을 기념해 리커버판으로 새롭게 나왔다. 이번 표지는 <이기적 유전자>와 함께 마치 DNA의 이중 나선 같은 하나의 세트로 디자인되었다. 1982년에 발표한 <확장된 표현형>은 리처드 도킨스의 학문적 성취를 보여 주는 명저이자 저자가 가장 애착을 보인 저서이기도 하다. 리처드 도킨스가 <이기적 유전자>로 세상에 혁명적 시각을 던졌다면, <확장된 표현형>은 저자의 관점에 깊이를 더하고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했던 바를 명쾌하게 보여 주는 완성작이라고 해서 매우 기대가 되었다.

 

<이기적 유전자>에서 '인간은 유전자의 꼭두각시'라고 선언하며 진화론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던 리처드 도킨스는 이 책에서 '확장된 표현형'이라는 생소한 개념을 들고 나온다. 유전자가 자신의 복제 욕구를 위해 개체(운반자)를 고안했다는 주장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유전자가 자신의 목적을 위해 다른 개체들마저 자신의 운반자로 만들어 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도킨스는 이 책에서 유전자의 확장된 표현형에 대한 다양한 사례를 비롯해서 흰개미집 건설에 사용되는 진흙 선택과 유전적 작용, 달팽이에 기생하는 흡충이 달팽이 껍데기에 끼치는 영향 같은 여러 가지 흥미로운 사고실험를 통해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유전에 관한 상식을 바로잡아 준다. 뿐만 아니라 <이기적 유전자>를 둘러싼 오해와 논쟁에 대해 답하고, 자신의 사상이 유전적 결정론이라 오해받는 것에 대해 명쾌하게 반박한다.

 

 

 

왜 발생하는 몸의 모든 세포에는 완전한 유전자 무리가 있어야 할까? 분화하는 동안 유전체 일부가 떨어져 나가, 간 조직이나 콩팥 조직 같이 특정 유형의 조직이 되는 필수 유전자만 보유한 생명 형태를 상상하는 건 쉽다. 그저 생식 계열 세포만이 유전체 전체를 소유하면 될 것이다. 그 이유는 단지 물리적으로 생식 계열 세포의 유전체 일부가 떨어져 나가는 게 쉽지 않아서이리라. 어쨌든, 발생하는 몸에서 특정 분화 구역에 필요한 유전자가 모두 한 염색체에 한정된 건 아닌 듯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왜 이렇게 되지 않고 그렇게 되었는지 물을 차례다.         p.419

 

도킨스는 이 책에서 이기적 유전자를 개체라는 개념적 감옥에서 해방시키려 한다고 썼다. 유전자가 발하는 표현형 효과는 자신을 다음 세대로 전달하는 지렛대와 같은 도구이며 이러한 도구는 유전자가 자리한 몸 밖으로, 심지어 다른 개체의 신경계 깊숙이까지 '확장'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자연계에서 일어나는 여러 현상들을 지금까지와는 달리 유전자적 관점으로 바라보면 알려진 것과는 다른 새로운 해석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몸속 유전자가 자신의 표현형을 몸 밖으로 멀리 확장시켜 심지어는 다른 생물체의 신경계에까지 깊숙이 도달하는 모습을 비롯해 확장된 표현형 사례들을 소개한다. 유전자가 세계에 자신의 영향을 미치는 표현형을 확대해 나가며, 자신을 담고 있는 개체뿐만 아니라 다른 세포, 다른 종에서도 그 개체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은 매우 흥미진진하고도 놀라웠다.

 

개인적으로는 <이기적 유전자>보다는 조금 어렵게 느껴지는 전문적인 개념들이 많아서 읽는 게 수월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도킨스 역시 이 책을 쓰며 염두에 둔 독자로 자신의 동료들, 진화생물학자와 동물행동학자, 사회생물학자, 생태학자, 진화학에 관심 있는 철학자와 인문학자라고 밝히고 있을 정도로 어느 정도 진화생물학과 그 전문 용어를 잘 안다고 전제한 상태에서 썼다고 하니 말이다. 하지만 해당 영역의 전문가가 아닌, 구경꾼 독자로서 즐기는 일도 가능하다. 특히나 <이기적 유전자>를 흥미롭게 읽었다면,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 한번쯤 읽어봐야 할 필요성은 있는 작품인 것은 분명하다. 진화생물학에 관심이 있다면, <이기적 유전자> 그 후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이 책을 만나 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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