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언제나 늙기를 기다려왔다
안드레아 칼라일 지음, 양소하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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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노년은 잘 무장해야 진입할 수 있는 낯선 세계가 아니라 친숙하던 자신의 세계가 확장되는 시기이다. 노화는 개인적인 것이어서 각자 자신이 잃고 있는 것과 이미 잃은 것, 즉 여기서 무언가를 빼고 저기서 무언가를 더하는 구체적인 리스트를 만들 수 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허영심을 동원하고 심지어 산업적 동반자와 함께한다고 해도 노화에서 벗어날 순 없다. 인생 내내 우리에게 닥쳐온 신체적 변화를 멈출 수 없었던 것처럼.             p.144


누구나 나이를 먹는다. '늙음'은 아무도 피해갈 수 없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나이 드는 것을 두려워할까? 나이가 든다는 것은 기억력이 감퇴하고, 인지 능력이 저하되며, 외모도 달라지고, 다양한 생리적 변화도 일어나는 일이다. 그리고 한때 가졌지만 다신 가질 수 없는 능력과 더 이상 곁에 없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그리워하게 된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 우리의 내면은 지극히 풍요로워진다. 살아온 시간만큼의 통찰과 혜안을 누구나 갖게 되는 것은 아닐지라도, 젊을 때는 미처 알지 못했던 감정의 깊이와 성숙한 시각을 얻을 수 있다. 나이 드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노년은 우리의 삶이 가장 깊어지는 순간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곧 여든 살을 앞둔 노년 작가 안드레아 칼라일은 100세까지 살다 떠난 어머니를 7년 동안 간병하며, 나이 듦에 관한 고정관념에 질문을 품게 된다. 왜 우리는 나이 드는 걸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못할까? 강가의 하우스보트에서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저자는 산책을 하며 삶을 돌아보고, 자연 안에서 많은 것을 느낀다. 시몬 드 보부아르의 <노년>, 진 리스의 <나의 날들> 등 작가들이 나이 듦에 대해 사유한 책들을 읽으면서도 많은 것을 생각한다. 어린 시절부터 수많은 책을 읽어 오면서 주인공에게서 공감할 수 있는 무언가를 발견하고 그로 인해 이야기를 이어갈 수 있었는데, 나이가 들고 보니 나이 든 여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작품 자체가 거의 없었던 것이다. 문화 속에서 중심인물로서의 노인이 거의 부재한 건 이미 느끼고 있는 존재감 상실에 더해 우리를 더욱 보이지 않게 한다고, 저자는 생각한다. 그렇게 저자는 '우리 이야기는 어디에 있는가' 라고 묻는 목소리를 처음 들었을 때부터 온라인에서 삶의 이 시기를 다룬 좋은 소설을 검색하곤 했다고 한다. 그렇게 모은 노년을 주제로 다룬 소설들에 대한 리스트도 매우 흥미로웠다.   





어떻게 하면 오늘날의 중장년층인 우리가 나이 듦에 대한 기존의 편견 어린 인식을 새롭게 하고 절실히 필요한 걸 더할 수 있을까?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은 자신을 드러내는 것에서 시작되겠지만 사회가 외면하라고 지시하고 결국 많은 사람이 우릴 외면하는 상황에서 이를 어떻게 할 수 있을까? 만약 우리가 진정한 인간으로서, 온전한 존재로서 대우받기 위해서 보이고 인식되어야 한다면, 그리고 버려지고 잊힐 집단으로 취급되지 않으려면, 나는 더 많은 사람이 '어떻게'라는 질문 속으로 발을 들여놓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p.186~187


우리가 어릴 때부터 접한 동화 속에서 나이 든 여자, 그러니까 '노파'는 보통 가난했고 외모는 지저분한 수준부터 눈 뜨고 보지 못할 정도로 흉측한 수준까지 다양했다. 과자집에 살면서 헨젤과 그레텔을 오븐에 밀어 넣으려는 노파, 다리 한 쌍을 주는 대가로 인어 공주의 목소리를 받아내는 바다 마녀, 의붓딸에게 독이 든 사과를 건네는 사악한 여왕, 공주가 물레에 찔려 깊은 잠에 빠지도록 주문을 거는 사악한 요정, 라푼젤을 탑에 가두는 사악한 마법사 등 동화 속 노파들에게서 혐오감 외에 다른 감정을 느끼기란 어려웠다. 많은 동화들이 은연중에, 혹은 노골적으로 공포와 두려움을 이용해 어린이에게 교훈을 줬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외롭고, 심술궂으며, 악의적인 존재로 그려지는 나이든 여자의 이미지는 우리의 무의식에 영향을 미쳐 노화를 부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만든다. 


이 책은 노인에 대한 뿌리 깊은 편견이 자리 잡은 역사적, 사회문화적 배경을 설명하며, 이를 걷어내고 있는 그대로의 시선으로 나이 듦을 바라보기를 제안한다. 나이 드는 일이 편안하지만은 않겠지만, 다행한 건 우리가 평생 살아오며 품어온 몸과 자아 그대로를 지닌 채 나이가 든다는 것이다. 이를 받아들이고 나면 새로운 즐거움과 변화가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나이 든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를 탐험하는 이 책을 통해 누구나 머지않아 당도할 노년의 세계를 준비해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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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요괴 병원 1 - 요괴도 감기에 걸려요! 여기는 요괴 병원 1
도미야스 요코 지음, 고마쓰 요시카 그림, 송지현 옮김 / 다산어린이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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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5학년인 미네기시 준은 절 뒤에 있는 연못으로 붕어를 잡으러 간다. 하지만 뜰채로 건져 올린 건 조개껍데기로 만든 작은 단추뿐이었다. 단추가 아주 예뻤기 때문에 버리지 않고 주머니에 잘 넣어 두었는데, 그때만 해도 그 단추 때문에 이상한 세계로 끌려 들어가게 될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 


붕어는 한 마리도 잡지 못한 채 배가 고파서 집으로 돌아가기로 한 준은 익숙한 길에서 낯선 골목길을 발견한다. 좁디좁은 샛길은 집으로 가는 지름길처럼 보였고, 배가 고파 집에 빨리 가고 싶었던 터라 골목길에 발을 들인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걸어도 걸어도 골목은 끝나지 않았다. 그러다 발견한 것은 빛바랜 크림색 건물, 간판에는 <내과, 요괴과 전문 병원>이라고 쓰여 있었다.




그곳은 요괴들을 위한 병원이었다. 어떻게 보아도 수상한 마술사나 사기꾼처럼 보이는 의사인 호즈키 선생님이 골목길에서 봤던 남자를 상대하고 있었다. 남자는 인간 마을에 놀러 가 볼까 하고 변신했다가, 원래 모습대로 돌아가지 못한다고 말하는 중이었다. 그러다 변신했을 때의 모습에서 뭔가를 잃어버리면 다시 돌아가지 못한다는 의사의 말에, 단추를 분실한 걸 알아차리게 된다. 마침 그 단추는 준이 연못에서 주웠던 그 조개껍데기 단추였다. 


그들의 대화를 듣던 준은 자신도 모르게 나서서 단추를 내밀고, 덕분에 호즈키 선생님과 처음으로 대면하게 된다.




마침 응급환자가 있다는 연락이 오고, 호즈키 선생은 준에게 자신이 자리를 비우는 동안 예약 환자가 있기 때문에 잠깐 병원을 지켜달라고 말한다. 그렇게 준은 요괴가 모습을 볼 수 없도록 하는 부적을 등에 붙인 채 홀로 병원을 지키게 되는데, 그야말로 요괴들이 끊임없이 찾아오기 시작한다. 


몸에 달린 눈 100개가 부산스럽게 여기저기를 두리번 거리는 커다란 점토같은 요괴를 시작으로 등딱지에 생긴 곰팡이를 없애고 싶다는 할아버지 요괴, 잠을 잘못 자는 바람에 목을 집어넣을 수 없게 됐다는 긴목요괴, 쉴 새 없이 재채기를 하는 눈이 하나밖에 없는 커다란 스님.... 그리고 예약한 환자인 달걀귀신까지 등장하는데... 과연 인간 아이인 준은 호즈키 선생님이 돌아올 때까지 무사히 병원을 지킬 수 있을까.




일본 판타지의 거장 도미야스 요코가 <수상한 이웃집 시노다> 시리즈에 이어 두 번째로 국내에 소개하는 작품이다. <여기는 요괴 병원> 시리즈는 벌써 4권까지 출간되었고, 이번에 만나본 것은 그 시리즈의 첫 번째 이야기이다. 평범한 초등학생이 요괴들이 사는 세계에 우연히 가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 이야기는 세상에 딱 하나밖에 없는 '요괴 전문 병원'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요괴를 치료하는 '인간' 의사인 호즈키 선생님을 비롯해서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희귀하지만 어쩐지 무섭게만 느껴지지는 않는 여러 요괴들이 등장해 재미를 더해준다. 


요괴도 인간처럼 감기에 걸리고, 어딘가 아파서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는 설정도 신선하지만, 겉모습과는 달리 인간과 비슷한 면모를 보여주면서 느껴지는 친근함이 이 시리즈만의 매력이다. 담대한 성격과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대하는 의사 선생님과 호기심 가득하고 강단 있는 초등학생 조수라는 독특한 조합이 만들어 내는 유쾌한 활약도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자, 앞으로 요괴병원에서 또 무슨 일이 벌어질지 기대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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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마리아 몬테소리 Who 세계인물 30
이동규 지음, 오천년 그림, 경기초등사회과교육연구회 감수 / 다산어린이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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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경제, 인문, 사상, 인권, 환경 등 다양한 분야에서 오늘날 우리들이 살아가는 세상을 만든 인물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who? 세계인물> 시리즈! 이번에는 어린이의 가능성을 발견한 교육자 마리아 몬테소리를 만나보았다. 몬테소리 교육법이란 표현은 다들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바로 그 몬테소리 교육법을 만든 것이 마리아 몬테소리이다. 그녀는 여자가 의대에 들어가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했던 시절, 이탈리아 최초로 여자 의사가 된 인물이다. 정신과에서 어린이 환자들을 돌보는 과정에서 교육으로 아이들이 바뀔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의사에서 교육자로 변신해 가난한 노동자들의 자녀들을 가르치는 어린이의 집을 설립하기에 이른다. 




사실 당시만 하더라도 이탈리아는 열살 이상의 인구 중 4분의 3은 글을 읽지도, 쓰지도 못하는 문맹자들이었다. 부모들은 자식들의 학업에 신경을 쓰기보다는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해 아이들을 생활 전선으로 내보낼 수밖에 없는 경우가 많았다. 가난이나 사정 때문에 자식들을 제대로 교육하지도 못했고 말이다. 그리고 유아 교육은 어른들의 기준에 의해 주입식 교육과 체벌이 중심이 되었으며, 이에 적응하지 못할 경우 뒤떨어졌다고 생각해 제대로 돌보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몬테소리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어린이는 어른과는 다른 특징이 있으며, 어린이들이 스스로 능력을 기를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는 인식이 유아 교육에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이 책은 만화를 통해 재미있게 이야기를 풀어 나가고 있어 마리아 몬테소리가 만든 특별한 교육법에 대해, 그리고 19세기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와 어린이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에 대해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게 해주고 있다. 




몬테소리는 자신의 교육법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어린이가 표현하는 것을 받아들였습니다. 그것이 바로 몬테소리 교육법입니다."


지적 장애 아이들에 대한 관심으로 시작된 몬테소리 교육법은 점차 일반적인 어린이 모두에게 확대되고, 오늘날 우리가 몬테소리 교육의 교구라고 하는 아름다운 모양과 예쁜 색깔의 도구들을 보듯이 여전히 아이들을 위해 이용되고 있다. 어린이의 발달 단계에 맞는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적절한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한 몬테소리가 아니었다면, 지금의 유아 교육이 어떻게 달라졌을 지 생각해 본다면, 그 중요성을 실감할 수 있다. 




통합지식 플러스 코너를 통해 집중력과 도전 정신, 약자를 사랑하는 마음과 추진력 등 몬테소리이 성공 열쇠에 대해 짚어보고, 당시 이탈리아와 19세기 여성들의 생활에 대해 배워본다. 정보들이 꽤나 구체적으로 다양하게 담겨 있기 때문에 재미있게 읽으면서 지식 습독도 할 수 있어 더 좋다. 진로 탐색 코너로 인물의 직업에 대해 알아보고, 독후 활동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되어 있어 활용도도 높다. 

대통령, 변호사, 성직자, 애널리스트, CEO, 사회 운동가, 의사, 철학자, 환경운동가, 문화인류학자, 고고학자, 수필가 등 다양한 직업군을 다루고 있어 아이들이 스스로 자신의 미래에 대해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배울 수 있다는 점도 좋다. 




<who? 세계인물> 시리즈가 새롭게 옷을 갈아입고 개정판으로 출간되었는데, 아이들이 닮고 싶은 롤 모델을 발견하고 스스로 미래를 설계하는 힘을 기를 수 있도록 해주고 싶다면 적극 추천해주고 싶다. 평생을 이끌어 줄 최고의 멘토가 여기 다 모여 있으니 말이다. who? 시리즈 중에 '세계인물' 편은 정치, 경제, 인문, 사상, 인권, 환경 등 다양한 분야에서 오늘날 우리들이 살아가는 세상을 만든 인물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버락 오바마, 힐러리 클린턴, 에이브러햄 링컨을 시작으로 워런 버핏, 넬슨 만델라, 체 게바라, 헬렌 켈러, 마더 테레사, 알베르트 슈바이처, 프리드리히 니체, 존 스튜어트 밀, 헨리 데이비드 소로 등 40명의 인물을 만나볼 수 있다.


시간순으로 나열된 세계사 책은 아이들이 읽기에는 다소 딱딱하고 어렵게 느껴질 수 있지만, 세계의 인물들을 통해 세계사의 주요 사건들을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다는 점도 who? 세계인물 시리즈의 장점이다. 아이들이 스스로 꿈을 찾고 이루어 가는 방법을 배울 수 있도록 <who? 세계인물> 시리즈를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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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넛을 나누는 기분 (시절 시집 에디션)
김소형 외 지음 / 창비교육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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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의 책이 입을 열어/열 개의 이야기를 듣게 되면/백 사람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다는 것//우리는 각자의 반에서 가장 말이 없지만/누구보다 빼곡한 문장이 머릿속에 출렁이고 있지/어디서든 생각에 잠겨 그 속을 유영할 수 있지//뒷자리의 누군가가 네 등을 두드리며/무슨 생각 해? 하고 물어 온다면//한 권의 근사한 책처럼/닫혀 있던 마음을 펼쳐/네가 가진 이야기를 들려줄 수도 있겠지

           - 조온윤, '도서부의 즐거움' 중에서, p.42~43


황인찬, 박소란, 양안다, 박준, 유희경 등 자신만의 고유하고 개성 넘치는 시 세계를 구축한 20명의 젊은 시인들이 저마다의 10대 시절을 추억하며 쓴 창작 시 60편을 모은 시집이다. 스무 명의 시인들은 각각 세 편씩의 시와 시작 노트를 수록했다. 시작노트에는 작품을 쓰면서 어떤 고민을 했고 어떤 마음으로 접근했는지에 대해서, 그리고 자신의 청소년기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렇게 모인 예순 편의 시들은 시 초심자를 위한 일종의 초대장이기도 하다.


시가 뭔지 잘 모르겠고, 읽어도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어 어렵게만 느껴졌었다면 이번 기회에 시의 매력을 조금씩 느껴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이 책은 지난 10년간 출간되어온 ‘창비청소년시선’의 50번 시집 출간을 기념한 것이기도 하다. 시는 학창 시절에 자주 썼던 편지에서, 그 시절을 위로해주던 책과 만화로부터, 이곳 저곳에 붙였던 귀여운 스티커와 어느 소풍날의 기억으로부터 시작될 수도 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커다란 일이 시작되고, 보이지 않는 것에 가 닿으려고 노력하는 것'에서 인생에 무늬가 생긴다. 볼 수 없는 것을 함께 돌아보자는 약속처럼 시를 써 왔다는 시인의 말이 선물처럼 느껴졌다. 





잊은 음악을 듣는다/언제 잊었는지 모를 음악//유난히 머리가 가볍다 생각했더니/거리의 풍경이 텅 비어 있었다//여름의 과실이 굴러간다/어차피 다음 계절까지는 못 버텼을 살구들//진득하게 물러 버린 달콤함이/굴러간다//사라지고 치이고/조금씩 드러나는 불온한 감정들//아이들이 듣는 소리를/어른들은 못 듣는다 한다//... 음과 음 사이 솟은 돌멩이를/툭툭 차며//학교에 간다//속수무책/너를 믿고 싶은 풍경이 펼쳐진다                -김소형, '쉿, 비밀인데' 중에서, p.182~185


오랫동안 어린이는 ‘동시’로 시를 향유한 것에 반해, 청소년은 교과서에 실린 정전, 그것도 그들의 삶과 감각에 맞지 않은 어른의 시를 읽어야 했다. ‘창비청소년시선’은 청소년도 동시대의 좋은 시를 읽고 즐겨야 한다는 취지로 시작되었다. 지난 10년간 ‘창비청소년시선’은 대부분의 시집이 올해의 청소년 도서, 문학나눔 등에 선정되었으며, 2025년부터는 중1 새 교과서에만 7편의 작품이 실리기도 했으니 엄청난 성과다. 다시 또 10년, 20년 이어지며 청소년들을 위한 좋은 시들을 만날 수 있따면 좋을 것 같다.


임경섭 시인은 이 책에 실린 시작 노트에서 이렇게 썼다. '초등학생 때의 나, 중학생 때의 나, 고등학생 때의 나. 각 학년마다, 각 학기마다, 그리고 각각의 계절마다, 심지어는 어떤 날들의 아침과 저녁마다... 전혀 다른 내가 거기마다 서 있다'고. 그때그때의 내가, 너무나 많은 내가 모여 지금의 나로 살아가고 있다'고 말이다. '나'라는 존재가 내가 만들어 가는 '과정'이라는 말이 너무 와닿아서 밑줄을 긋고 여러번 읽어 보았다. 지금의 내가 겪은 시간들이 미래의 내 일부분이 되고, 내가 생각하고, 경험한 것들이 쌓여서 미래의 나를 만들어 간다면, 지금 현재를 더욱 소중히, 즐기며 살아야겠다고 생각해 본다. 도서 구매 시, '시절 시집 필사 노트'도 받을 수 있으니, 책에 수록된 시들을 직접 써보면서 천천히 느껴보면 좋을 것 같다. 시를 쓰고, 읽고, 나눈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해준 예쁜 책이었다. 아직은 시가 낯선 청소년들에게, 그리고 여전히 시가 어려운 어른들에게도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다. 어둡고, 외롭고, 서글픈 나날에 이 책이 위로가 되어주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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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을 삼킨 나라, 대한민국 - 중독이 일상이 된 시대, 마약 없는 내일을 위한 기록 내 인생에 지혜를 더하는 시간, 인생명강 시리즈 29
조성남 지음 / 21세기북스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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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우리는 보통 중독이 2차적 질병이라고 알고 있다. 통증 때문에 진통제를 복용하다가 중독이 된다거나 우울증을 없애기 위해 복용하다가 중독이 된다는 식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독은 유전적, 정신사회적, 환경적 영향을 받는 1차적 질병이다. 일례로 부모 중 한 명이 알코올 중독인 경우 그 자녀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알코올 중독이 될 확률은 네 배나 높다는 통계가 있듯이, 중독은 유전적 성향과 환경적 요소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또한 방치하면 결국 사망에 이르거나 그 전에 자살을 선택하는 등 자신뿐만 아니라 가정이 파괴되고 나라가 망할 정도의 치명적 위험을 유발하는 만성 질환이다.             p.92


대한민국 대표 교수진이 펼치는 흥미로운 지식 체험, ‘인생명강’ 시리즈의 스물 아홉 번째 책이다. 이 시리즈는 역사, 철학, 과학, 의학, 예술 등 전국 대학 각 분야 최고 교수진의 명강의를 책으로 옮겨 다양한 분야의 지식 콘텐츠를 만날 수 있도록 했다. 이번에 나온 책은 마약 중독 치료의 최전선에서 40년간 수많은 중독자들을 치료해 온 조성남 교수가 대한민국의 마약 중독 실태와 그 해법을 밝히는 책이다. 


우리나라는 과연 마약의 안전지대인가, 아니면 위험한 나라인가. 대치동 학원가에서 학생들을 상대로 마약 음료 시음 행사를 하는 어이없는 사건이 벌어지고, 젊은 세대 사이에서 마약류 약물이 마치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데다, 의료용 마약류 중독 또한 심각한 수준으로 증가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더 이상 영화 속 이야기가 아닌 것이다. 특히나 10대와 20대의 젊은 층에서 마약 사범 수가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의 심각성을 여실히 드러내 준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이 책은 마약 범람시대,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한 긴급 보고서이기도 하다. 저자는 중독이 질병이라는 관점에서 출발해 예방부터 치료, 재활에 이르는 회복 과정에 이르기까지 꼼꼼하게 정리하고, 재발 위기 극복과 회복의 과정을 제시한다. 




치료공동체에서는 중독을 어떻게 정의할까? 이곳에서는 중독을 그 사람 전체의 문제로 본다. 그 사람 전체에 어떤 문제가 있기에 중독이 나타난 거라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중독은 하나의 증상일 뿐이며 본질이 아니라고 한다. 다시 말해 그 사람의 가치관이나 행동, 태도에 문제가 있어서 그로 인해 중독이라는 증상이 나타나는 거라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증상만 고친다고 해서 치료가 되는 것은 아니고 그 사람의 가치관이나 행동, 태도를 올바르게 바꿔나가는 게 진짜 치료라고 말한다.                 p.181


1970년대에 우리나라에 희피 문화가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대마가 확산되었다. 대마관리법이 만들어지기 전까지 젊은이들 사이에 대마초가 유행했고, 이어 1980년대에는 필로폰이 국내에 유통되며 급격히 퍼져나갔다. 매우 강력한 중추신경 흥분제인 필로폰은 남용할 경우 중독 증상이 나타나 심각한 의존성이 생기며, 중단 시 금단 증세가 유발되는 무서운 약물이다. 종류를 달리하며 우리의 일상 속으로 파고들었던 마약류 중독이 2000년대에 들어와 확연히 줄어들기 시작한다. 하지만 2010년대에 들어서면서 의료용 마약의 남용이 점점 더 늘어나며 불법 마약보다 더 심각해진다. 매스컴을 통해 흔하게 접하는 프로포폴이 의료용 마약류 남용의 대표적 약물이다. 유명 인사와 연예인들이 프로포폴에 중독되거나 심지어 투약하다가 사망에 이르는 경우가 생겨났다. 최근 들어 문제의 심각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난 약물은 펜타닐이다. 이는 매우 강력한 마약성 진통제이기 때문에 법적으로도 청소년에게는 처방할 수 없으며, 성인의 경우에도 다른 진통제로는 더 이상 진통 효과가 없을 때 마지막으로 선택하는 것이다. 


그리고 2022년 12월, 정부가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한다. 이전에도 이러한 정책은 종종 있어왔지만, 이번에는 마약류 중독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치료와 재활에 대한 언급이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이제는 인터넷을 통한 마약류 관련 정보의 확산과 SNS와 가상화폐 등을 통한 거래나 던지기 수법 등으로 접근성이 너무 쉬워져 일반인들뿐만 아니라 청소년에게도 위험한 상황이 초래되었기 때문이다. 모든 질병은 조기에 발견해 신속히 치료하면 얼마든지 좋은 결과를 볼 수 있다. 중독도 마찬가지다. 우리 모두 마약 중독이 얼마나 무서운 병인지를 깨달아 그에 따른 예방과 대책에 함께 힘을 모아야 하는 이유이다. 마약이 더 이상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닌 우리의 일상을 위협하는 지금, 이 책을 통해 그 실체를 제대로 이해하고 함께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이 된다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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