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일록 작전
필립 로스 지음, 김승욱 옮김 / 비채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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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전화를 끊자마자 밤에 침대에서 생각했던 것과 아주 연관이 없지는 않은 생각 하나가 떠올랐다. 마치 내가 쓴 소설을 읽는 것 같다던 아하론의 말이 씨앗이 되었을 가능성이 높지만, 어쨌든 엄청나게 객관적인 사실이라고 다시 확인된 것을 내가 직업적으로 너무나 잘 아는 정신적인 사건으로 변환하려는 또 하나의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주관적인 시도였다... 이들이 모두 활자의 속박에서 해방되어 나를 풍자하듯 닮은 인물 한 명으로 재구성된 거야. 다시 말해서 이것이 할시온 때문도 아니고 꿈도 아니라면, 틀림없이 문학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는 뜻이다. 내면의 삶보다 만 배나 더 터무니없는 외면의 삶은 있을 수 없다는 듯이.             p.39


어느 날 필립 로스는 자신과 똑같이 생긴 사람이 자신을 사칭하며 돌아다니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자신은 뉴욕에 있었는데, 자신을 사칭하는 사람은 예루살렘에서 공포의 이반이라고 알려진 존 데미야뉴크의 재판을 방청하고, ‘유대인은 유럽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정치적 주장을 공표하는 등 각종 파격적인 행보를 하고 있다고 했다. 필립 로스는 이스라엘로 가서 사칭범을 직접 대면하기로 하고, 그가 묶고 있다는 호텔로 찾아간다. 그 순간까지 결코 그의 존재를 진심으로 믿지 않았던 필립 로스는 막상 사칭범과 마주하자 충격에 휩싸인다. 자신과 똑같이 생긴 그는 이목구비가 자신보다 조금 더 보기 좋은 미남 버전에 가까웠는데, 그는 호들갑을 떨며 진짜 필립 로스를 만난 것을 감격스러워했다. 게다가 그는 자신이 당신의 가장 열성적인 팬이자, 당신의 책을 읽고 누구보다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말하며, '사실 당신은 그냥 도구일 뿐'이라고 하는데, 대체 그의 정체는 뭘까. 


필립 로스는 자신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소설을 여러 편 집필했는데, 이번 작품에선 그중 가장 미스터리한 방식으로 등장한다. 가짜 자신에 대한 소식을 들은 뒤 확인을 위해 연락처를 알아내 통화를 할 때도, 사칭범은 자신을 '필립 로스'라고 소개한다. 정말로 그 작가계요? <포트노이의 불평>의 작가? 라고 필립 로스가 되묻자, 사칭범은 그래요, 그래요. 누구십니까? 라고 대꾸한다. 그래서 통화하는 내내 진짜 필립 로스는 아무렇게나 고른 이름을 붙여 자신이 기자인 척 그와 통화를 한다. '수화기 저편에서 놈은 내 행세를 하고, 나는 이쪽에서 내가 아닌 척한다는 사실이 뜻밖에도 사육제처럼 사람을 들뜨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미스터리로 시작했던 이 작품은 점차 첩보소설로 전개된다. 사칭범을 대면하기 위해 방문한 예루살렘의 상황이 나치 집권기의 수용소 간수로 의심받는 인물의 재판이 한창이고, 팔레스타인인의 봉기는 점차 격화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나와 나란히 당신의 목을 매달 거요. 물론, 그들이 당신을 또 다른 필립 로스로 착각한다면, 당신은 조금이나마 희망을 품을 수 있을 거요. 그 필립 로스는 유럽 출신 유대인들이 훔친 땅에서 물러나 유럽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유럽 디아스포라가 그들에게 마땅하다고 주장했으니까. 그 필립 로스는 그들의 친구, 그들의 동맹, 그들의 유대인 영웅이었소. 그리고 그 필립 로스가 당신의 유일한 희망이오. 당신이 괴물로 생각하는 그자가 사실은 당신의 구원이라고. 그 사기꾼이 곧 당신의 무고함이오. 재판에서 그자 행세를 하면서, 온갖 속임수를 동원해 당신들 두 사람이 사실은 하나라고 믿게 만들어야 하오.                  p.502~503


<에브리맨>, <휴먼 스테인>에 이어 국내에 세 번째로 소개되는 필립 로스의 펜/포크너상 수상작이다. 극중 ‘필립 로스’가 자신의 사칭범과 만나면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과 그 이면의 첩보작전에 휘말리게 되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데, 묵직한 분량의 작품을 읽다 보면 누가 진짜이고 가짜인지, 무엇이 현실이고 허구인지 점점 혼란스러워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필립 로스를 사칭하는 수수께끼의 인물은 스스로 반유대주의와 싸우는 투사로 점점 파격적인 행보를 이어가고, 필립 로스의 친척은 제2차 세계대전 때 겪은 폭력의 후유증을 앓고 있는 것으로 나오며, 그 와중에 필립 로스는 이스라엘의 정치적 분쟁에 깊이 관여하게 된다. 


이 작품은 필립 로스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에 관해 정면으로 다룬 최초이자 마지막 소설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묵직한 분량만큼이나 심도 있는 질문을 독자들에게 던진다. 유대인은 피해자인가 가해자인가. 억압받은 민족 혹은 소수자는 어떤 미래로 나아가야 하는가. 또한 특정한 민족 혹은 소수자 집단이 항상 피해자이거나 가해자일 수 없는 세계의 복잡성과 유대인의 정체성에 관한 깊이 있는 사유 또한 작품의 전면에 깔려 있다. 특히나 흥미로운 것은 현실의 경계를 의도적으로 애매하게 만들어 소설 형식을 뛰어넘는 포스트모던 문학으로서의 매력을 지닌다는 것이다. 서두에서 화자는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책을 썼음을 밝히지만, 마지막 장에서 '이 책은 허구다'라고 쓰여있기 때문에 이 작품은 실제로 작가가 전부 실제로 겪은 일일 수도, 혹은 전부 허구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게 현실의 경계를 지움으로써 문학적으로는 더욱 흥미진진하고 매력적인 작품이 되었다. 오래 전에 쓰인 작품이지만, 역사의 폭력은 계속되고 피해자와 가해자는 수시로 뒤바뀌고 있는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여전히 시사하는 바가 많은 이야기였다. 거장이 전성기에 남긴 압도적인 이야기를 경험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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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의 기쁨과 슬픔 - 인간이 꿈꾼 가장 완벽한 낙원에 대하여
올리비아 랭 지음, 허진 옮김 / 어크로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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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많은 이들이 낙원을 잃어버렸고, 또 그런 경험이 없다 해도 잃어버린 낙원에 대한 이야기는 울림을 갖는다. 우리 대부분은 세상이 너무나 새롭고 놀랄 일이 가득한 어린이의 인식이라는 낙원을, 또 몸 자체가 정원이 되는 첫사랑의 달콤하고 풍성한 낙원을 잃어버리거나, 포기하거나, 잊은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세속적인 에덴동산 이야기가 문학에 그토록 많은지도 모른다. 예상치 못하게 열렸다가 다시 잠기는 정원, 우연히 발견했지만 두번 다시 찾을 수 없는 낙원.              p.53~54



올리비아 랭은 마흔 살에 뒤늦게 집을 살 때까지 줄곧 세 들어 살았고, 야외 공간이 있는 아파트에 산 적은 드물었다. 그러다 케임브리지 대학 교수를 만나 사랑에 빠졌고 곧 결혼했다. 애초에 정원 가꾸기라는 공동의 취미 때문에 친구가 되었고, 그의 은퇴 후 정원을 가꿀 수 있는 곳으로 이사를 하게 된다. 그들이 서퍽의 작은 마을에 도착하고 얼마 뒤 코로나로 인해 영국에서 봉쇄 조치가 실시된다. 거의 모든 사람이 집에 갇혔고, 야외 운동은 하루에 한 시간만 허락되면서 너무도 빠르게 움직이던 세상이 딱 멈추게 된 것이다. 


그 시기 동안 올리비아 랭은 집의 오래된 정원에 매료되어, 옛 모습을 복원하고, 식물을 살리기 위해 애쓴다. 전염병의 공포가 커질수록, 정원을 드나들며 위안을 얻었던 것이다. 실제로 전 세계 사람들은 팬데믹 기간 동안 식물과 열병 같은 사랑에 빠졌다. 정원 가꾸기는 발을 땅에 붙이게 하고, 마음을 달래고, 유용하고, 아름다움을 더해주는 것이었기에 사람들 모두가 갇혀버린 현재의 순간에 순응하는 방법이 되어준 것이다. 상상할 수 없는 재난의 문턱에서 시간이 멈춰버린 그때, 씨앗이 펴지고, 싹이 움트고, 나팔 수선화가 흙을 밀며 올라오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놓이고, 보장되지 않은 미래를 기다릴 수 있게 되는 희망이 생기게 된다. 올리비아 랭의 새로운 집에는 유명 정원사 마크 루머리가 디자인한 오래된 정원이 있었기에, 정원을 복원하는 동시에 그것이 역사와 어떻게 교차되는지 추적하기로 한다. '모든 식물은 공간과 시간의 여행자이므로 아무리 작은 정원도 역사와 교차할 수밖에 없다'고 말이다. 그렇게 예상치 못한 곳에서 싹을 틔우거나 이상하게 성장할 수 있는 요소들이 파묻혀 있던 정원의 비밀은 세기를 거스르는 여행으로 확장된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짐을 진 채 어른이 된다. 그 짐의 일부는 개인적이고 개별적이고 독특할 수밖에 없지만 일부는 정치적으로 분류하는 것이 더 적절하고, 같은 환경을 공유하는 사람들에게 주어진 역사와 관련이 있다. 어른이 때로 방사능 물질처럼 위험한 자신의 과거를 처리하고 관리하는 방법은 무척 다양하다. 정원을 가꾸는 행위에서 위안을 찾는 사람이 나 혼자만은 아닐 것이다. 나는 어린 시절의 경험 덕분에 안전하고, 야생적이고, 어지럽고, 풍요롭고, 무엇보다도 공개되지 않은 공간에 대한 갈망을, 끈질기게 계속되는 필요성을 느꼈다. 나는 물론 집을 갖고 싶었지만 내게 정말 필요한 것은 정원이었다.                p.236~237


'제2의 리베카 솔닛'이라 불리는 올리비아 랭의 신작이다. <외로운 도시>, <이상한 날씨>, <에브리바디>까지 차근차근 읽어왔는데, 매번 인문학적인 사유와 빛나는 통찰력으로 정말 좋아하는 작가이다. 개인의 고독을 사회적 소외로 확장한 <외로운 도시>, 혼란스러운 시대에 예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탐색한 <이상한 날씨>, 그리고 질병과 성, 저항과 감옥 등 몸의 여러 다른 측면들을 살펴보았던 <에브리바디> 모두 너무 좋았던 기억이 있다. 특히나 이번 신작은 '정원'을 다룬다고 해서 더 기대가 되었다. 나 역시 나만의 정원을 가지는 것이 오랜 로망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심에서 단독주택이 아닌 이상 정원을 만들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서재가 실내 정원처럼 되어버렸는데, 나름 온실도 있고, 천장까지 닿는 식물들도 몇 있어서 정원이나 다름없는 공간이긴 하다. 이렇게 식물이 주는 위안에 대해 깊이 공감하는 독자로서, 올리비아 랭의 정원 이야기는 기대를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팬데믹, 브렉시트, 극우 세력의 부상 등 시대의 어두운 분위기와 새어머니의 죽음 같은 개인적 문제에 짓눌려 있던 올리비아 랭은 정원에 탐닉하며 자신만의 낙원을 만들어간다. 또한 정원에서 존 밀턴의 《실낙원》을 탐독하며 우리가 잃어버린 낙원에 대해 이야기한다. 《실낙원》을 시작으로 윌리엄 모리스의 《에코토피아 뉴스》, 데릭 저먼의 퀴어 유토피아 등 예술, 역사, 사회사상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지는데, 정원을 돌보는 방법에서 ‘정원’이라는 개념 그 자체로 확장되는 사유가 정말 흥미진진했다. 대정원의 매끄러운 아름다움에 어떤 희생이 담겨 있는지도 놀라웠다. 18세기 영국에서 진행된 대정원화 작업에서는 상류 지배 계층을 위해 오소길, 농장, 때로는 마을 전체를 옮기기도 했다니 말이다. 농지를 개선한다는 명목하에 진행된 인클로저 역시 대정원화와 마찬가지로 자연을 대대적으로 개조하는 작업이었다고 한다. 이렇듯 '숨겨진 비용, 권력 및 배제와의 눈에 보이지 않는 관계'가 정원의 한 측면이라고 생각해보면, 정원의 의미는 완전히 달라진다. 살아있는 것과 죽은 것, 개인의 것과 공공의 것의 경계가 희미해진 공간에 대한 올리비아 랭의 사유는 혐오와 배제, 기후위기와 파국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희망을 잃지 말라고 말해주는 듯하다. 예쁜 책표지만큼이나, 눈부시게 아름다운 책이었다. 자, 올리비아 랭의 아주 특별한 정원으로 당신을 초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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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비와 베끼기 - 자기만의 현재에 도달하는 글쓰기에 관하여
아일린 마일스 지음, 송섬별 옮김 / 디플롯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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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나는 문학이 낭비된 시간이며, 좋은 점이라고는 하나도 없다고 생각한다. 문학은 도덕적 프로젝트가 아니라 그저 지극히 심오한 시간 낭비일 뿐이다. 나는 모든 방면에서 그 모험을 샅샅이 탐구했다. 우리 시대의 위대한 모험을.              p.30



일흔 살이 넘은 지금까지도 '이 시대 희귀한 컬트적 존재이자 록스타 시인'으로 불리는 아일린 마일스의 책이 국내에 처음 출간되었다. 1992년에 노동계급 퀴어예술가로서 미국 대선에 출마해 화제가 되었었는데, 당시 아일린 마일스의 출마에 응답하는 헌시 〈나는 이런 대통령을 원한다I Want a President〉(조이 레너드)는 삼십 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여전히 회자되고 있다. 


이번에 출간된 책에서 원문 도판과 번역을 만나볼 수 있다. 이 책은 예일대학교에서 제정한 윈덤캠벨문학상의 시상식 기조연설을 단행본으로 펴내는 시리즈 '나는 왜 쓰는가'의 세 번째 책이다. 아일린 마일스는 자신이 사십 년 넘도록 살아온 뉴욕의 아파트 이야기로 말문을 연다. 지극히 사사로운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같지만, 매우 시적인 문장으로 사회적이고, 문학적인 사유를 보여주는 글이었다. 그는 '쓰기'란 삶에서 겪는 경험들을 '베끼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다. 핵심은 베끼기copy다. 그는 글쓰기를 삶을 획기적으로 바꿔줄 도구가 아니라, 끝없이 주문을 읊는 하나의 수행으로 지속한다. 우리를 둘러싼 세계를 베끼고 그 허위를 폭로하는 일이야말로 문학적 구원의 길이 된다고 말이다. 





나는 지금까지 쓴 모든 시를 기억한다. 암송할 수는 없지만 그것들은 파도처럼 돌아온다. 모두 내 뇌의 일부니까. 그것들이 내 뇌를 이룬다. 내 뇌는 안팎이 뒤집혀 있다. 시가 나를 증명한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는 조금도 알 바가 아니다. 일전에 시인 애덤 피츠제럴드가 망각에 관한 이야기를 했는데, 아마 루이스 하이드식 이야기였던 것 같다. 망각은 잃어버리는 것처럼 구체적인 게르만적인 것, 그리고 덮이거나 덧씌워지거나 보이지 않게 되는, 사라지는 것에 더 가까운 그리스적인 것으로 나뉜다.                p.92



이 책의 원제는 "For Now"이다. 아일린 마일스는 오랫동안 '중요한 것은 이곳에 존재하는 것, 현재에 있는 것'이라는 개념을 뒷받침하는 온갖 철학으로 무장해왔다. 거의 한평생 살아온 뉴욕의 집을 둘러싼 투쟁의 과정 속에서, 노동계급 퀴어예술가로서 정치적, 미학적 최전선의 글쓰기를 온몸으로 밀고나간 그의 '현재'를 만날 수 있는 책이었다. '이곳에 있고 싶다, 여기에 있다'고 생각하는 마음이 글을 쓰고, 읽힐수록 오롯이 하나의 사실이 되어 간다는 것. 아일린 마일스는 뉴욕의 한 아파트에서 사십 이 년째 살고 있고, 삶의 어지간한 일들은 바로 그곳에서 일어났다. 시간과 장소의 의미가, 현재와 세계가 되어 가는 과정을 느낄 수 있는 글이었다. 


특히나 '나는 문학이 낭비된 시간이며, 좋은 점이라고는 하나도 없다고 생각한다.'는 문장에 매우 인상적이었다. '문학은 도덕적 프로젝트가 아니라 그저 지극히 심오한 시간 낭비일 뿐'이라며, 그 모험을 샅샅이 탐구했다는 말이 그의 문학 세계를 이루는 근간이기도 할 것이다. 자본으로 환원되지 않는, 순전한 시간 낭비로서의 글쓰기라니... 아일린 마일스의 글쓰기 스타일을 제대로 보여주는 게 아닌가 싶었다. 짧은 분량의 책이지만, 어려운 단어로 쓰인 것도 아니지만, 대단히 밀도 있는 글이라 충분히 시간을 들여 읽어야 했다. 책 전체가 한 편의 시처럼 읽히기도 하는 그의 글은 결코 수월하게 읽히진 않지만, 삶과 문학 사이의 복잡다단한 관계를 보여주고 있어 매우 인상적이었다. 글쓰기에 관한 아주 독창적인 시적 통찰이 궁금하다면, 이 책을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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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맥거핀의 인체 친구들 3 - 뉴런, 번쩍 배송을 부탁해! 소맥거핀의 인체 친구들 3
김기수 그림, 서후 글, 박상민.샌드박스네트워크 감수, 소맥거핀 원작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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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소맥거핀의 인체 친구들>이 벌써 세 번째 이야기로 찾아왔다. 이 시리즈는 920만 구독자를 보유한 소맥거핀의 인기 콘텐츠 ‘인체 친구들의 하루’를 어린이 메디컬 개그 만화로 재탄생시킨 것이다. 1권에서는 몸속 기관들을 하나씩 살펴봤다면, 2권에서는 소맥이의 몸속에 들어온 독감 바이러스 때문에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이번에 나온 3권에서는 뉴런 캐릭터가 전면에 등장해 신경계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들려준다.




우리 몸의 주요 인체 기관들을 캐릭터화해 몸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코믹하게 담은 메디컬 개그 만화이지만, 초등 과학 연계로 재미있게 책장을 넘기면서 자연스럽게 '우리 몸의 구조와 기능'을 배울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이 책의 장점이다. 주인공 소맥이 몸속의 인체친구들이 독창적인 캐릭터로 재탄생해 각자 몸의 기관들이 하는 일을 보여주는데, 뇌와 뉴런을 비롯해 혀, 눈동자, 폐, 심장, 근육, 피부가 주요 캐릭터로 등장한다. 




친구들과의 약속을 깜빡하고 늦잠을 잔 소맥이의 정신없는 하루부터 마을 체육 대회에 강제로 참여하게 된 소맥이의 좌충우돌 에피소드, 코피가 나고, 멍이 드는 이유와 외부의 자극을 감각기관이 어떻게 받아들이는 지 등 자극부터 반응까지 모든 순간에 함께하는 뉴런의 활약을 만나볼 수 있다. 


소맥이가 겪는 일과 소맥이 몸속에서 일어나는 일은 다른 모양의 만화 칸으로 구분해서 표현했다. 몸 밖과 몸속 세계가 자연스럽게 구분되어 읽으면 더 재미있을 것이다. 




가족 중 최약체이자 서열 꼴지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주인공 소맥이, 부동의 서열 1위 엄마, 소맥이 괴롭히기가 제일 재밌는 누나에다가 이 시리즈에는 다양한 몸속 친구들이 잔뜩 등장한다. 아무리 힘들어도 절대 쉬지 않는 운동 중독자 심장, 소맥이의 움직임을 책임지는 근육, 열정적으로 운동해서 소맥이를 숨 쉬게 하는 폐, 자주 다치는 소맥이 때문에 상처나 멍에 예민한 피부, 열심히 몸속의 각종 정보를 전달하는 뉴런, 온몸과 신호를 주고받느라 늘 분주한 뇌, 입에 뭐가 들어올지 몰라 쉽게 놀라는 혀 등 귀여운 인체 친구들이 각자의 이야기를 들려 준다.




인체 상식을 알고 읽으면 더 재미있게 즐길 수 있다. 인체 비밀 노트와 '특!' 지문을 꼼꼼히 살펴 보며 이야기를 따라가보자. 그리고 ‘인체 친구들 탐구 편’ 코너에서도 짚고 넘어가면 좋을 인체 지식을 알차게 수록했으니 놓치지 말고 살펴보면 좋을 것 같다. 모든 만화와 정보 글은 의사이자 소설가인 박상민 선생님의 감수를 통해 정확도를 높였다. 


이상형을 만나면 뇌에 설렘 경보가 울릴까? 왜 머리카락은 잘라도 아프지 않을까? 긴장하면 정말 오줌이 마려울까? 운동은 정말 건강에 좋을까? 등 흥미로운 주제들을 귀여운 만화적 표현과 친절한 설명을 통해 알려줘 인체 필수 지식에 대해 재미있게 배울 수 있을 것이다. 과학에 흥미를 붙여주고 싶은 아이들에게 적극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다. 초판 한정으로 구급상자 만들기도 받을 수 있으니 놓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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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작은 무법자
크리스 휘타커 지음, 김해온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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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나쁜 짓 했어, 엄마.'

'누구나 나쁜 짓을 해.'

'근데 바로잡을 수가 없을 것 같아.'

스타는 두 눈을 감고 아직도 기타를 연주하며 노래했고, 딸이 그녀에게 부드럽게 기댔다. 

더치스는 너무나도 간절히 같이 노래 부르고 싶었지만 목소리가 갈라지기 시작했다.

"내가 널 지켜줄게. 그게 엄마들이 하는 거니까."

더치스는 우는 법이 없었지만 그때는 거의 울 뻔했다.                    p.130



열세살 소녀 더치스는 스스로를 '무법자'라 칭한다. 술과 약에 빠져 사는 엄마를 대신해 다섯 살인 어린 남동생을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세상 모든 것으로부터 맞서 싸울 자세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도 우리를 괴롭힐 수 없어. 아무도 우리를 비웃을 수 없어. 내가 너를 지켜.' 라는 말로 소녀는 오직 동생을 보호하기 위해 애쓴다. 사실 소녀와 소녀의 남동생이 태어나기도 한참 전에 비극은 시작되었다. 30년 전, 열다섯 살의 '빈센트 킹'이 '시시 래들리'라는 아이를 죽이고 살인죄로 교도소에 수감된 사건 이후로 모든 것이 바뀌어 버렸기 때문이다다. 더치스의 엄마인 스타의 삶이 잿빛이 된 것도 일곱 살이던 동생 시시가 죽고 나서부터였다. 그리고 이제, 빈센트 킹이 마을로 돌아오면서, 비극의 서막이 다시금 시작된다. 


경찰 서장인 워크는 어린 시절 빈센트 킹과 스타 래들리와 모두 친구 사이였다. 그의 시계는 30년 전 그 사건 이후로 멈춰 있다. 그는 친구를 30년 동안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스타의 아이들을 늘 신경쓰고 보살피며 살고 있다. 빈센트 킹이 출소해 마을로 돌아오고 나서 얼마 뒤 또 살인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이번에야말로 친구를 도와야겠다고 마음먹은 워크는 친구의 결백함을 믿고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나선다. 더치스의 삶에는 계속해서 위기가 생기고, 한번도 찬란한 시기를 보내지 못했던 소녀의 삶은 활짝 피기도 전에 무채색으로 물든다. 극중 더치스는 코코아를 들어 숟가락으로 마시멜로를 퍼서 입에 넣는 장면이 있다. 소녀는 너무 달아서 깜짝 놀라는데, 그렇게 삶의 좋은 것들을 잊어 버린 채 살아온 것이다. 할아버지는 더치스에게 "끝은 또 다른 시작이다."라고 늘 말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밤이 되어 달이 아타야 캐니언으로 숨고 운전기사가 속도를 늦추더니 실내등을 끈 뒤에야 더치스는 로빈 생각이 떠오르는 것을 막지 않았다. 가슴이 아팠다. 누가 좌석 등받이에 버려두고 간 반질반질한 잡지에 나온 연애 이야기 같은 아픔이 아니라, 영혼을 잡아 뽑아버리는 종류의 고통이었고, 너무 격렬해서 소녀는 몸을 웅크리고 숨을 헐떡이며 가방에 손을 넣어 물병을 꺼낸 뒤 병에 대고 얕은 숨을 쉬어야 했다. 운전기사가 소녀와 눈이 마주쳤을 때 그의 눈에 걱정이 어려 있었으나, 헛된 걱정이었으니 소녀는 괜찮지 않을 것이었다. 앞으로 소녀 인생의 그 무엇도 괜찮지 않을 터였다.               p.517



정말 오랜만에 탄탄하게 잘 쓰인, 밀도 높은 범죄 소설을 만났다. 별 다섯 개를 주는 것조차 부족하다고 느껴질 만큼, 완벽한 작품이었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은 뒤에도 결코 눈물을 흘리지 않던 어린 소녀의 삶이 그 뒤로 어떻게 됐을지 궁금해졌을 만큼 긴 여운을 남기는 작품이기도 했다. 출간된 해 골드대거상, 식스턴 올해의 범죄소설상, 네드 켈리 국제상을 휩쓴 이 작품의 원제는 'We Begin at the End'이다. 번역본의 제목도 좋지만, 작품을 읽는 내내 원제의 의미가 가슴을 먹먹하게 해준다. 희망은 세속적인 것이다. 삶은 쉽게 깨지는 거고. 하지만 우리는 이따금 너무 꽉 매달린다. 곧 부서질 거라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 


아이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던 엄마, 30년 동안 친구를 믿고 포기하지 않은 경찰 서장, 동생을 지키기 위해 온 힘을 다해 세상과 맞서 싸운 누나, 마음의 문을 닫아 버린 손녀의 뒤에서 묵묵히 버틴 할아버지, 그리고 병원에 있는 딸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거는 한 남자... 모두 각자의 소중한 대상을 위해 최선을 다했을 뿐이다. 차곡차곡 쌓인 이야기의 끝에 도달해서 가장 슬펐던 점이 바로 그것이다. 각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세상에 나쁜 사람은 없다는 것. 모두 그저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했을 뿐이라는 것. 하지만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는 것이 생의 아이러니이자 비극이다. 잘못에 따른 대가를 치른 인생, 다시 찾아온 기회, 구원을 바라는 애처로운 간청, 소중한 사람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다는 마음... 겉으로 보여지는 서사는 범죄소설이지만, 이 작품은 훨씬 더 많은 것을 담고 있다. '하루하루 분투하며 살아가는 여자아이와 과거에 지나치게 매달리는 경찰관에 관한 이야기, 실수에 관한 이야기, 다시 일어나서 한 걸음씩 발을 내딛는 것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선악의 개념과 희생과 구원에 관한 이 아름다운 이야기는 단 한 페이지도 허투루 넘기지 못하도록 시선을 사로잡는다. 일단 시작하면 절대 손에서 내려놓을 수 없을 만한 작품을 만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 경이로운 작품을 놓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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