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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드펠 수사 시리즈 1~10 세트 - 전10권 - 클래식 블랙 리미티드 에디션 ㅣ 캐드펠 수사 시리즈
엘리스 피터스 지음, 최인석 외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10월
평점 :
"이보게. 죽음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있네." 마크 수사를 지켜보던 캐드펠이 말했다. "작년 여름 마을에서 아흔다섯 명이 죽었지. 살인을 저지르지도 않았는데, 그저 편을 잘못 들었다는 이유로 죽은 게야. 죽음은 전쟁 중엔 죄 없는 여인들에게 떨어지고, 평화로울 땐 악인에 의해 저질러지지. 누구에게도 해를 끼친 적이 없는 아이들에게, 선한 일을 하며 살아온 노인들에게, 잔인하고 무분별하게 떨어진다네. 하지만 저세상에는 균형이 존재한다는 믿음이 흔들려선 안 돼. 자네가 보는 건 완벽한 전체에서 부서져 나온 조각에 불과하네." - 4권, <성 베드로 축일> 중에서, p.257~258
18년이라는 세월에 걸쳐 완성된 엘리스 피터스의 역사추리소설 '캐드펠 수사 시리즈' 총 21권 중에 먼저 1~5권이 나오고, 이번에 6~10권이 나왔다. 10권의 책을 한 꺼번에 보관할 수 있는 한정판 박스세트로도 구성되어 있는데, 낱권으로 구매하는 것도 ‘클래식 블랙 리미티드 에디션’으로 구매하는 것이 20%된 가격이라 구매를 미루었다면 이번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겠다. 특히나 이 시리즈는 책 등이 예쁘게 디자인되어 있어 박스 세트로 담아 놓으면 정말 근사하다. 블랙 컬러의 케이스에 실버 컬러의 문구만 심플하게 새겨져 있고, 측면을 비스듬히 깎아 더욱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박스 커버다.
원작의 시리즈 완간 30년을 기념해 전면 개정된 버전으로 새롭게 옷을 갈아 입고 출간되지 않았더라면, 미처 만나지 못하고 지나갔을 텐데 리커버 버전이 나와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정말 시공간을 뛰어 넘어 여전히 심금을 울리는 보물 같은 작품들이니 말이다.
엘리스 피터스는 움베르트 에코가 큰 영향을 받았다고 고백한 작가로 '캐드펠 수사 시리즈'가 12세기 수도원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라 <장미의 이름>에 비견되기도 한다. 직접 만나보니 움베르트 에코보다는 루이즈 페니의 중세 버전같은 느낌이 더 들었지만 말이다. 시리즈의 주인공인 캐드펠 수사는 십자군으로 전쟁에 출정했었고, 바다에 나가서도 10년 동안이나 해적선을 격파했던 거친 과거를 가지고 있다. 지금은 수도원에 귀의해서 평화롭게 살아가는 중이고, 관심사는 오로지 식물의 탄생과 성장과 번식에 관한 것뿐이었다. 허브밭을 가꾸며 신에게 봉사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그의 주변에 사건이 일어나고, 그가 '탐정'이 되어 사건을 풀어나가는 것이 이 시리즈의 주요 서사이다.
인생의 절반 이상을 치열한 전쟁터에서 보냈지만, 지금은 허브밭을 가꾸며 평화롭게 살아가는 캐드펠 수사. 그는 베네딕토회의 계율과 아무런 마찰도 빚어내지 않되 자신의 욕구에도 멋지게 들어맞는 일상의 규율을 마련해 충실히 지켜오고 있었다. 늘 아침기도가 시작되기 전 허브밭에서 두어 시간 밭일을 하고 대회의실에 가면 가장 어두컴컴한 구석의 기둥 뒤에 앉아 꾸벅꾸벅 조는 것이 일종의 루틴인데, 이렇게 인간적인 면모가 가득한 캐릭터라 더욱 공감되고 매력적이다. 캐드펠은 참전 군인으로 살았던 거친 과거를 묻어둔 채 수도원에 귀의해 평화롭게 살아가는 친절한 노수사로 등장하는데, 시리즈가 거듭되면서 그의 과거 속 인물이 등장한다거나 하는 식으로 조금씩 비밀이 드러나면서 재미를 더해준다.
그러나 삶은 계속되어야 하고, 돈을 벌기 위한 연중의 농사, 철이면 철마다 해야 하는 쟁기질과 써레질, 씨를 뿌리고, 잡초를 뽑고, 수확하는 일도 계속되어야 하는 법이었다. 영혼의 씨앗을 뿌리고 잡초를 뽑고 수확하는 이곳 수도원과 교회의 일상도 마찬가지였다. 캐드펠 수사는 인간에 대한 두려움이 전혀 없었다. 고작 인간에 불과한 존재가 얼마나 대단한 일을 벌일 수 있겠는가. - 6권, <얼음 속의 여인> 중에서, p.17
이 시리즈에는 매번 끔찍한 살인사건이 등장하지만, 작품마다 한 쌍 이상의 연인을 통해 사랑의 다양한 형태에 대해 보여주었다. 격렬한 사랑, 풋풋한 사랑, 아낌없이 퍼주는 사랑, 멀리서 지켜주는 사랑, 이별 후 재가 되어버린 사랑, 죽음을 앞둔 불꽃같은 사랑 등... 사랑의 온도도 다르고, 배경도, 방식도 제각각이다. 인간은 아주 사소한 일로도 살인을 저지를 수 있지만, 사랑 때문에 죽음도 불사할 수 있는 존재이기도 하다. 앨리스 피터스는 이러한 삶에 대한 아이러니를 통찰력 있는 시선으로 바라보며 추리소설의 품격을 한 단계 높여 주었다.
매 작품마다 새롭게 등장하는 캐릭터들이 대단히 생동감있고, 매력적이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페이지를 넘기게 만들어 준다. 캐드펠 수사 시리즈' 각 권은 독립된 이야기로 읽어도 무방할 정도로 완결성을 가지고 있는데, 주요 서사 외에 차곡차곡 쌓이는 배경과 인물들이 빚어내는 하모니가 정말 조화롭다. 그래서 이 시리즈는 순서대로 읽어도, 원하는 이야기만 골라서 읽어도 훌륭하다. 드라마틱한 서사를 담백하게 풀어내는 방식, 군더더기 없는 분량, 다양한 인물 군상에 대한 애정과 이해를 바탕으로 쓰인 통찰력있는 문장까지... 추천해주고 싶은 부분이 너무 많은 시리즈이다. 대부분의 시리즈물이 그러하듯이 이 작품 역시 이야기가 거듭되면서 캐릭터의 매력이 더해지면서 깊이 있는 서사를 보여주고, 중세 영국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역사추리소설이라는 점이 줄 수 있는 차별화된 매력 또한 다음 작품에 대한 호기심을 더해주는 마성의 시리즈로 완성시켜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먼저 나왔던 1~5권을 정말 재미있게 읽었었는데, 이번 6권에서는 유리처럼 반짝이는 얼음 속에서, 얼음처럼 찬 시체가 되어 발견된 소녀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귀족 가문의 남매와 그들을 안내하던 어린 수녀가 사라졌고, 캐드펠 수사는 눈과 얼음으로 뒤덮인 산속에서 사라진 이들을 찾다가 피살당한 ‘얼음 속의 여인’을 발견하게 된다. 차디차게 죽어 있는 소녀에게 얼음이 관이 되었고, 그녀의 육신은 살인을 고발하기 위해 죽었을 때의 모습 그대로 남아 있었다. 대체 어린 소녀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계절적 배경이 지금과 딱 맞아 떨어져서 서늘한 겨울의 풍경을 고스란히 느끼면서 읽을 수 있는 작품이었다. 캐드펠 수사는 얼음 속에 갇힌 시신이 단순 강도 살인 사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번 작품 역시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해 각자의 의무감과 욕망에 따라 행동하는데, 덕분에 살인 사건은 한층 더 복잡하게 뒤얽히며 미스터리와 긴장감을 차곡차곡 쌓아간다. 시리즈가 거듭될수록 작가가 살아온 세월만큼의 깊은 통찰력과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쌓아온 연륜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이야기에 애정을 느끼게 된다. 총 21권이나 되는 긴 시리즈라서 좋은 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아직도 내가 읽지 않은 작품들이 많이 남았다는 것, 그래서 설레이는 마음으로 아껴가며 충분히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매혹적인 중세 역사 미스터리를 놓치지 말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