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레퀴엠 버티고 시리즈
로버트 크레이스 지음, 윤철희 옮김 / 오픈하우스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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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비스 콜과 조 파이크는 12년 간 함께 탐정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다. 조 파이크는 동료 살해범이라는 불명예를 안고 퇴직했는데, 덕분에 LA경찰 전체가 아직도 그에게 적대적이다. 그들은 전부터 조가 알고 지내던 프랭크 가르시아의 딸이 실종된 사건 수사를 의뢰 받지만, 그녀는 다음 날 시신으로 발견된다.

중년 여성이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우리는 또 다른 미소를 주고받았다. 중년 남성은 아직도 신문에 빠져 있었다. 내가 거기 있는 내내, 두 사람 다 상대에게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들은 서로에게 해야 할 말을 몇 년 전에 모두 다 한 건지도 몰랐다. 그렇지 않을 수도 있고, 그들의 침묵은 별개의 인생을 살아온 두 사람에게서 비롯된 게 아니라, 천생연분이라서 그저 가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사랑과 커뮤니케이션을 도출할 수 있는 두 사람에게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을 아무 이유 없이 죽이는 세상에서, 우리는 그런 것들을 믿고 싶어 한다.

프랭크는 경찰이 자신의 신고에 반응을 보이지 않아 딸이 목숨을 잃었다고 생각하며 그들의 수사를 신뢰하지 않고, 수사 상황을 감시하고 정보전달을 해달라며 엘비스와 조에게 살인 사건 조사도 곁에서 지켜봐 달라고 부탁한다. 프랭크의 딸인 카렌은 과거 조가 경찰이던 시절 그의 연인이었다. 조와 오랜 기간 함께 시간을 보냈지만 그의 과거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는 엘비스는 이번 사건을 통해 처음 알게 된 사실이지만 말이다. 조가 경찰들과 껄끄러운 관계라 주로 수사는 엘비스에 의해 진행되는데, 평범한 살인 사건처럼 보였던 그녀의 죽음이 사실은 연쇄살인의 다섯 번째 희생자였다는 것이 드러난다. 카렌의 시신을 발견해 용의자로 지목된 남자마저 살해된 채 발견되고, 유일한 목격자는 다름 아닌 조 파이크를 범인으로 지목한다. 경찰들은 안 그래도 눈엣가시였던 그를 구속해서 심문하고, 엘비스 콜은 친구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이송 차량에서 탈출해 도망자가 된 조와 함께 그들은 과연 사건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

이번 작품에서 이야기는 과거 조 파이크가 정복 경찰이던 시절, 아일랜더 팜스 모텔에서 시작했다. 선배 경찰과 함께 제보를 받고 소아 성애자를 쫓던 그 상황에서 용의자와 선배가 죽는다. 그 선배는 내사과에 의해 뇌물수수 혐의를 받던 중이었고, 당시 수사를 맡았던 크란츠는 몇 년 간 조가 그의 파트너였기에 그도 공범일 거라고 의심한다. 물론 당사자가 죽었기 때문에 내사는 그대로 종료가 되지만, 조는 동료들에 의해 공범 혹은 동료 살해범으로 낙인 찍히고 만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카렌의 살인 사건 수사와 더불어 과거의 이야기가 중간 중간 등장해 밀도를 높여주는데, 작품의 후반부에 이르러서야 우리는 그 진상을 알게 된다. 그날 진짜 조가 선배를 죽였는지, 그가 비리와 관련이 있었는지, 그날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에 대해서 말이다. 로버트 크레이스의 작품에서는 사건 수사 외에도 캐릭터들의 사연에 만만치 않은 비중이 있는데, 이번 작품 역시 덕분에 캐릭터들의 매력이 더 빠져들 수 있었다. 엘비스 콜가 여성판 조 파이크라고 말하는 여형사 사만다 돌런과의 공조 수사도 흥미롭고, 변호사로 일하다 지역 방송국의 법률분석가로 일하면서 최근에 엘비스와 함께 하기 위해 LA로 이사를 온 그의 연인 루시와의 관계도 극에 재미와 긴장감을 더해준다. 어쩌다 보니 이들 세 사람 사이에서 삼각관계가 형성되기 때문이다. 과거 조의 연인 카렌과의 관계와 선배와 관계, 그리고 그가 묻어둬야 했던 사랑이야기까지, 이 작품은 범죄 소설로서의 장점 외에도 매우 뛰어난 드라마를 구성하고 있다. 한마디로 600여 페이지가 지루할 틈 없이 흘러간다.

나는 차에 앉았지만 시동을 걸지는 않았다. 사건을 조사하는 건 인생살이와 비슷하다. 머리를 낮추고 있는 힘껏 쟁기를 끌며 나아갈 수 있지만 그러다가 무슨 일이 생기면, 세상은 더 이상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곳이 아니다. 갑자기, 우리가 만사를 보는 방식이 달라진다. 세상이 전에 거기에 있던 것들을 감추고는 다른 식으로는 보지 못했을 것들을 드러내면서 색깔을 바꾸기나 한 것처럼.

범죄 소설에서 캐릭터는 플롯만큼이나 중요한 역할을 한다. 아니, 사실 거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면에서 로버트 크레이스의 작품은 그야말로 기가 막히게 걸출한 두 명의 캐릭터를 탄생시켰으니, 웬만해서는 재미 없기란 쉽지 않은 시리즈가 되었다. 거기에 더해 탁월한 플롯과 구성, 담백한 문장과 속도감, 리얼한 경찰 수사 과정과 LA라는 도시에 대한 매혹적인 묘사까지 더해졌으니 뭐, 이 시리즈는 어떤 작품을 만나도 최고일 수밖에 없다.

엘비스 콜이라는 인물은 그 이름 때문에 어딜 가나 주목을 받는데, 거의 하루 종일 농담만 해대는 캐릭터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러니까 시종일관 농담과 수작으로 일관하는 인물처럼 보이는데, 수사를 할 때는 또 완벽하다. 스스로 팩트 파악 분야에서는 최고 레벨이라고, 자신은 모든 걸 보고 모든 걸 듣는다고 말할 정도이다. 자칭 세계 최고의 탐정이라고 농담처럼 떠벌리지만, 그가 하는 걸 보고 있노라면 어느 정도 수긍이 될 수밖에 없다고나 할까. 게다가 그는 눈에 띄는 여자에게는 항상 작업을 걸 정도로 타고난 바람둥이에다 멋쟁이이기도 하다. 남성적인 매력과 부드러운 매너로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데, 거의 매번 고객과 감정적으로 얽히고 만다. 사랑에 빠지거나, 혹은 사랑을 받거나. 이번 작품에서는 고객이 아니라 수사 동료와 핑크빛 기류가 생기지만, 그럼에도 꿋꿋이 지조를 지킨다. 바람둥이처럼 보였지만 사실 자신의 여자가 있을 때는 그 관계에 최선을 다하는 순정남이기도 했던 거다. 그는 뛰어난 입담으로 긴장을 늦출 수 없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도 시종일관 툭툭 던지는 재치 있고 천연덕스러운 농담을 던진다. 덕분에 복잡한 플롯과 무거운 스토리 속에서도 마치 잘 빠진 할리우드 영화에서처럼 독자들이 긴장을 풀고 다시 이야기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조 파이크는 그 어떤 상황에서도 절대 선글라스를 벗지 않는다. 하지만 누구든 그가 선글라스를 벗으면 그 깊고 파란 눈에 매혹되고 만다. 해병출신의 전직 경찰로 약자를 괴롭히는 놈들을 가장 증오한다. 어린 시절 알콜 중독자 아버지에 의해 어머니와 함께 하루가 멀다 하고 퍼부어지는 폭력에 시달려야 했고, 덕분에 정의를 위해서는 반드시 자신부터 지켜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학대와 폭력으로 그의 유년기가 물들 동안 경찰도, 친구도, 이웃도, 그를 보호해주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것에서 벗어나기 위해 힘을 길렀고, 지금도 매일같이 체력을 단련한다. 그는 또한 절대 웃거나 미소를 띄지도 않는다. 어떤 감정도 겉으로 드러내 보이지 않는, 차갑고, 단단하고, 위험하고, 불가사의한 아웃사이더라고나 할까. 오로지 앞으로만 전진하고, 어떤 후회나 망설임도 내비치지 않기에, 악인에게 무자비하고 냉혹하다. 그는 가치 있는 일에는 희생을 아끼지 않는다. 아무리 위험한 일이라도 기꺼이 몸을 던지며, 일반적으로 법의 철칙이라고 부르는 것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자신만의 엄격한 도덕과 윤리 강령이 있으며, 자신의 행동에 완벽하게 책임을 지려고 최선을 다한다. 등골을 오싹하게 만드는 침묵과 무뚝뚝함과 거칠어 보이는 외모 덕분에 다가서기 어렵게 보일 수도 있지만, 영혼의 비극적 결함 덕분에 쿨한 섹시가이로 느끼는 여자들이 더 많다.

L.A.레퀴엠은 엘비스 콜 시리즈 여덟 번째 작품으로, 로버트 크레이스 최고의 걸작으로 불린다. 국내에서는 무려 6년여 만에 만나게 되는 로버트 크레이스의 신작이다. 이 시리즈의 주인공은 엘비스 콜이다. 그리고 그의 둘도 없는 친구이자 최고의 파트너로 등장하는 조 파이크는 이 작품 L.A.레퀴엠에서 거의 투톱의 주인공으로 활약하다 마침내 워치맨이라는 작품에서 단독 주인공으로 나서기에 이른다. 그리고 이후 퍼스트 룰과 센트리 등 조 파이크가 활약하는 작품들이 시리즈를 통해서 계속 선보이고 있다. 물론 모든 시리즈에서 두 캐릭터가 거의 항상 같이 등장하지만 말이다. 시종일관 농담을 툭툭 던지는 엘비스 콜과 항상 냉철하고 무뚝둑한 조 파이크는 동전의 양면처럼 외모도 성격도 너무도 다른 상반된 캐릭터이다. 하지만 작가는 이들에 대해 통일된 내면을 가진 일종의 이란성 쌍둥이라고 말한다. 다만 그들은 살아남기 위해서 하나는 농담을, 하나는 쿨함을 선택했을 뿐이라고 말이다. 그러지 않고서는 이 잔인한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없었기에.

 

엘비스 콜과 조 파이크라는 인물은 그 어떤 작품 속 캐릭터들보다도 더 현실적이고 개성 있으며, 인간미가 넘친다. 엘비스 콜의 농담 덕분에 살인 사건이 등장하는데도 유머스럽고 경쾌하고, 거칠고 퉁명스럽지만 절대 미워할 수 없는 조 파이크 덕분에 스토리는 더욱 진지하고 깊어 진다.  군더더기 없이 간결한 문체도 속도감을 더해주어 장르의 재미를 살려주고, 그 와중에 작가가 세상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이 느껴져 순간순간 뭉클해지기도 한다. 현재 이 시리즈는 올해 여름에 출간될 작품까지 모두 17편이다. 그 중 국내 출간작은 이번 작품까지 단 세 편. 물론 시리즈 외에 스탠드 얼론 두 작품이 있긴 하지만. 부디 버티고에서 이 시리즈는 계속 출간해주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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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증명
도진기 지음 / 비채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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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뒤가 맞는 설명이 된다고 하여 진실은 아니다. '우리 딸이 절대 자살할 사람이 아니다'라는 유족의 비논리적인 감이 경찰이 모아온 차가운 사실의 조합보다 더 많은 진실을 내포할 때도 있다. 살인이든 자살이든 물리법칙에 맞는 설명보다 더 우선되어야 할 것은 바로 '동기'. 동기라는 인과를 벗어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동기 없이는 사건도 없다고 할 수 있다. 사실을 구성하는 블록이 차례차례 맞아 들어가 물리법칙에 근거한 모든 의심을 잠재운다 하더라도 동기가 제대로 납득이 되지 않는다면 사건을 처음부터 다시 들여다보아야 한다. 해령의 모친인 타분의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해령의 자살은 선뜻 동기를 납득하기 어려웠다.

                                                                                      -'선택' 중에서

식당주인 50대 여성이 귀갓길 식당 앞에서 피살된다. 피의자는 생활고에 시달리다 못해 범행을 마음먹었고, 살인은 우발적으로 저질렀으며, 순순히 자신의 범행 사실을 자백했다. 게다가 CCTV라는 완벽한 증거도 있었기 때문에 법정에는 살인사건에 걸맞은 긴장감은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피의자는 모든 범행 사실을 부인한다. 수사기관에서 자백은 했지만 본의 아니게 거짓말한 거라며, 자신이 범행을 저지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피고인이 법정에서 부인을 하면 수사기관에서의 진술은 증거로서 가치가 없어지고, 자백조서가 모두 휴지조각으로 변하고 만다. 하지만 다른 증거들이 워낙 명백하기 때문에 검사 입장에서는 크게 동요하지 않는다. 대체 피의자는 무슨 속셈인 걸까. 피고인 측은 피고인의 형을 증인으로 신청하는데, 그가 법정에 등장하자 방청객이 수군거리기 시작한다. 그들은 일란성 쌍둥이였던 것이다. 피고인과 피고인의 형 모두 사건 당일 알리바이가 없고, CCTV에 찍힌 사람이 형인지 동생인지 구분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둘 중 누구란 말인가. 그들 두 형제에게 놓인 혐의의 양과 질은 똑같으며, 따라서 피고인이 유죄일 확률은 50퍼센트, 무죄일 확률 또한 50퍼센트라는 것이 피고측의 주장이었다. 형사재판에서 유죄판결이 나려면 '합리적 의심 없는 증명'이 필요하고, 무죄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의심이 들고, 그 의심에 합리성이 있다면 유죄로 할 수 없다. , 검찰 측에서는 과연 어떻게 이 사건을 해결할 수 있을까.

변호사 사무실에 일흔을 넘었을 성싶은 할머니가 찾아온다. 사위는 3년 전에 죽었고, 딸에게 아이가 둘이 있었는데, 그 중 둘째가 딸과 함께 같이 차를 타고 가다가 교통 사고로 죽었다고 한다. 그렇게 딸과 막내 손녀를 한꺼번에 잃고, 남은 건 첫째 손녀딸 한 명 인데 앞으로 어떻게 키워야 할지 막막하다고. 마침 딸의 생명보험금이 있는데, 보험사에서는 딸이 자살을 했기 때문에 지급할 수 없다고 거절하고 있다고 했다. 교통사고로 죽은 건 맞는데 경찰조사에서는 자살로 결론이 나왔다고. 이유인즉 딸이 운전 중에 외과용 메스로 자기 손목을 그었다는 것이다. 운전 중에 손목을 긋다니, 게다가 뒤에는 아기를 태운 채로? 전대미문의 이상한 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 경찰 얘기로는 아기하고 동반자살하려고 운전 중에 손목을 그었다는데, 누가 봐도 상식적으로 좀 이상한 결론이 아닐 수 없었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이 사건은 사고인가, 타살인가, 자살인가? 검사 생활을 접고 변호사를 개업한 연정은 의혹을 안고 사건을 맡기로 한다.

 

"내가 결론 갖고 뭐 말할 수 있는 건 아니고........ 그저 조금 아쉬운 생각이 들었을지도 모르겠네요."

김옥선은 빙그레 웃었다. 백제의 마애불 같은 미소였다.

"어떤 아쉬운 생각이요?"

"그냥, 사람을 모르니 저런 판결이 나는 구나, 하는. 아이구 아니, 아무튼 그걸로 됐어요."

"사람을 몰라 내린 판결이라.........무슨 말씀이신지?"

                                                                              -'구석의 노인' 중에서

도진기 작가하면 '백수 탐정 진구' '어둠의 변호사 고진' 시리즈가 대표적인 그의 캐릭터이지만, 이번 소설집에서는 그에 못지 않게 매력적인 여성 캐릭터도 만나 볼 수 있어 매우 흥미로웠다.  그가 쓴 첫 번째 단편인 <악마의 증명>과 그를 작가로 데뷔하게 해준 한국추리잡가협회 미스터리 신인상을 수상한 <선택>이라는 두 작품에서 등장하는 호연정 검사이다. <악마의 증명>에서는 검사로 등장해 쌍둥이 용의자 앞에선 딜레마를 해결하는 모습을 보여줬고, <선택>에서는 검사를 그만두고 변호사로 일을 시작하며 모두가 자살이라 말하는 의문의 교통사고를 조사한다. 그녀가 그 사건의 끝에서 마주하게 되는 진실은 정말 가슴이 먹먹해지는 여운을 남겨 주었는데, 모성이라는 감정이 뭔지, 엄마라는 존재가 자식을 위해 어떤 일까지 할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해주는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도진기 작가는 만약 자신의 딸이 법조인이 된다면 이런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희망으로 이 캐릭터를 만들었다고 하는데, 언젠가는 호연정 검사를 주인공으로 하는 시리즈도 만나볼 수 있기를 고대해 본다. 물론 진구와 고진이라는 걸출한 캐릭터들이 버티고 있어서 새로운 시리즈의 히어로를 세우기가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말이다. 도진기 작가의 작품은 그 동안 장편으로만 만나왔는데, 이번 소설집을 읽으면서 느낀 건 추리 소설의 묘미가 단편에서 정말 잘 살아난다는 거였다. 짧은 이야기라 복잡한 플롯을 구성하지는 못할 테고, 캐릭터의 매력도 보여주기 어렵지 않겠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단편 소설에 대한 편견을 여지없이 깨뜨린다고나 할까. 여기 실린 단편들은 기존에 다른 출판사를 통해 발표되었던 작품 7편과 미발표 원고 1편이다. 그가 추리소설을 써보려고 마음 먹은 후 쓴 첫 번째 단편 소설도 있고, 미스터리 신인상을 받게 해준 작품, 그의 오컬트 취향이 드러난 독특한 작품, 미스테리아 창간호에 실렸던 작품, 나혁진 작가가 원고를 읽고 최고의 단편이라고 극찬을 퍼부었던 작품도 있다. 굉장히 다양한 소재를 색다른 방법으로 접근한 이야기들이라 정말 흥미진진했다. 앞으로 국내 추리 소설가들의 단편도 이렇게 소설집의 형태로 자주 만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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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임당 빛의 일기 - 하
박은령 원작, 손현경 각색 / 비채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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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도>를 보겠다며 담을 넘어 들어왔던 당찬 소녀.....당신이 그려내는 그림들을 다시 볼 수만 있다면...나는 무슨 짓이든 할 것이오."

그 말을 끝으로 이겸은 까무룩 잠이 든다. 사임당은 그제야 참았던 눈물을 주르륵 흘린다. 가슴이 저릿하다. 자신의 전부를 내걸고 달려오는 이 남자를 어쩌면 좋단 말인가. 갚을 길 없고, 마주 볼 수 없는 마음이 아닌가. 하늘이 제아무리 높고, 땅이 제아무리 넓다 한들, 목숨을 내건 사랑만큼 높고 넓을 것인가.

<사임당 빛의 일기> 그 두 번째 이야기는 이겸이 사임당을 위해 자신의 삶을 어떻게 희생했는지, 그 전모를 알게 되면서 시작한다. 그는 왜 갑작스레 사임당이 자신과의 혼인을 파기하고 다른 남자와의 삶을 선택했는지 알 수 없어 괴로웠는데, 비로소 전모를 알게 된다. 그 모든 일들의 배후에 전하께서 내린 시가 있었다는 것. 그 시를 본 사람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이가 바로 사임당이라는 것도. 예정대로 두 사람이 혼인을 했다면 목숨을 부지할 수 없었다는 것도 말이다.

'미안하오! 미안하오! 당신의 희생으로 내가 살아왔소! 이제부턴 내가 당신을 위해 살 차례요. 조선에서 제일 힘 센 사내가 될 것이오. 당신을 위해..... 아무 걱정 없이 오롯이 화가 사임당으로만 살아갈 수 있도록!

한편, 사임당은 종이공방에서 아주 오래 전 세상을 떠난 유민들을 위한 제사를 이십 년째 지내고 있다. 그 동안 겪어온 양반들과는 전혀 다른 사임당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았던 종이 공방의 대장은 그들을 귀한 사람들이라 지칭하는 그녀의 말에 당황한다. 그러다 팔봉의 고백에 의해 운평사 유민들이 몰살당한 것이 그녀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녀의 그림과는 상관없이 애초에 놈들은 고려지 비법만 챙기면 죄다 쓸어버릴 심산이었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된 것이다. 죄책감과 울분이 숨통을 조이던 이십 년 세월 앞에 사임당은 무릎에 힘이 풀리고 만다. 그 와중에 종이공방의 유민들이 포교에 의해 줄줄이 잡혀 들어간다. 그 동안 어마어마하게 밀린 조세 때문에 구속이 되고 만 것이다. 사임당은 남편 이원수에게 그들을 구하기 위해 땅문서와 집문서를 담보로 속전을 구해야겠다고 말한다. 어떻게든 나머지 금액을 구해오겠으니 사람들을 풀어달라고. 부서질 듯 여리고 작은 모습 어디에 대장부보다 더 큰 배포가 숨어 있는지, 유민들은 감격한다.

"그 소녀는 이제 세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지금 공 앞에 있는 저는 보잘것없는 아낙일 뿐입니다. 단 한 번뿐인 인생, 지나간 인연을 위해 공의 인생을 허비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현명한 사랑이란 게 있소? 사랑은......어리석은 자들이 하는 것이오."

"............"

"그저.......마음이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사임당과 유민들은 나머지 돈을 구하기 위해 운평사 고려지를 만들어내기로 하지만 수월치 않다.  그 과정에서 민치형과 휘음당은 더욱 악독한 방법들로 그것을 방해하고, 이겸은 묵묵히 뒤에 서서 그녀를 보호하고 도와주기 위해 애쓴다. 휘음당의 계책에 의해 결국 사임당의 아들 현룡은 자진 출재하는 걸로 중부학당을 나오게 된다. 그 와중에도 '아이보단 그 아비의 권세와 재물을 더 중시하고, 나라의 근간이 되는 백성들마저 우습게 여기면서까지, 오로지 과거공부만을 강요하는 이곳에선 더는 배울 것이 없기 때문'이라고 당당히 말하는 그녀의 모습은 쫓겨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나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중부학당 자모회 수장 자리가 다른 이를 짓밟으면서까지 그토록 지켜내야 하는 것이라면, 댁은 계속 그리 사시오."

화가 머리끝까지 솟구쳐 온몸이 타 들어갈 것만 같은 휘음당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이렇듯 선과 악의 대비, 쫓기는 자와 괴롭히는 자, 음모를 꾸미는 자와 그것을 빠져 나오는 자의 대비로 이야기는 시종일관 흘러간다. 어찌 보면 우리 나라 사극의 거의 모든 드라마가 이런 방식일 것이다. 하지만 지루하거나 뻔하지 않다. 아마도 사임당과 이겸이라는 독보적인 캐릭터 때문이 아닐 까 싶다. 그들이 실존 인물이고 우리 역사 속에서 큰 위치를 차지하는 인물이라서가 아니라, 그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과 마음이 그대로 독자들에게도 전달이 되어서 일 것이다. 바위처럼 단단하고, 횃불처럼 뜨거운 남자 이겸, 그리고 삶이 어떤 고통과 역경을 주더라도 넘어질지언정 무너지지는 않는 여자 사임당. 다만 아쉬운 점은 타임슬립이라는 장치가 아닐까 싶다. 한국미술사를 전공하는 강사 지윤이 미술사학계의 실세인 민정학 교수에 의해 위기를 겪고, 그녀가 우연히 발견한 고서를 복원해서 과거 사임당의 일상을 담은 일기로 교차 진행되는 스토리는 상권보다 하권에서 더 몰입을 방해한다. 사임당과 이겸의 스토리에 푹 빠져들려고 하면 갑작스레 등장한 현재의 이야기가 그 흐름을 끊어낸다고 할까. 타임슬립이라는 장치를 빼고 그냥 정통 사극으로 풀어냈다면 드라마도 더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살다 보면, 어느 순간 삶이라는 덫에 걸려 옴짝달싹 못하고, 무너지고야 말 때가 올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순간이 와도 삶에 휘둘리지 않고, 넘어질지언정 무너지지 않았던 사임당의 모습을 떠올려보면 어떨까. 삶은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는 것이라고, 어떤 순간에도 희망을 놓지 않았던 그 모습이 아마도 당신에게도 다시 일어설 힘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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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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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당신에게 벌어질 일을 다 알고 있는 미래의 자신과 꿈속에서 얘기를 나누게 된다면 뭘 물어보고 싶을까? 혹은 수십 년 전으로 돌아가 젊었을 적의 자신을 꿈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면, 그럼 무슨 말을 하게 될까.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4년 만에 내놓은 신작 소설 <>은 인간의 뇌 활동이 가장 활발히 일어난다는 제6단계 수면을 다루는 모험 소설이자 과학 소설이다.

자크의 두 번째 생일날, 카롤린은 깊이 잠이 든 아들 곁에서 우연히 에드거 앨런 포의 글을 접했다. <낮에 꿈꾸는 사람은 밤에만 꿈꾸는 사람에게는 찾아오지 않는 많은 것을 알게 된다. 흐릿한 시야에서 영원의 틈들을 포착한 그는 깨어나는 순간 위대한 비밀의 문턱에 잠시 머물다 왔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전율한다.> 이 순간, 그녀는 지금까지 알려진 잠의 세계를 확장하겠다는 원대한 계획을 세웠다.

유명한 신경 생리학자인 카롤린은 수면을 연구하는 의사이다. 잠의 세계를 연구하는 비밀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수면의 단계를 아주 얕은 잠인 1단계부터, 아주 깊은 잠인 4단계에 이어 5단계 역설수면까지 나누는데, 5단계는 전체 수면 과정에서 아주 기이한 단계이다. 심장 박동은 느리고 체온은 떨어지는데, 뇌는 가장 빠르고 활발하게 움직여 멋지고 환상적인 꿈을 꾸게 만드는 단계이기도 하다. 카롤린은 그 다섯 번째 단계를 지나 그 다음 6단계가 있다고 믿고 있다. 꿈 너머의 꿈, 콜럼버스의 시대에 탐험가들이 발길이 닿지 않은 미개척지를 발견했던 것처럼, 그녀는 그곳을 미지의 영역, 새로운 영토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 비밀 실험을 하던 중, 피험자가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고 만다. 피험자는 잠의 대가로 불리는 인도인 요가 수행자였는데, 잠의 5단계까지 너무도 빠르게 집입해 바닥까지 내려갔으나, 6단계에 이르러 갑작스레 심전도와 맥박이 불규칙해지고 심폐 소생술을 하기도 전에 사망하고 만다. 그 사건은 신문에 대서특필되고 병원에서 해고 된 그녀는 다음날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진다. 유일한 가족인 아들에게조차 알리지 않은 채, 실종되어 버린 것이다.

 

카롤린의 아들인 자크는 28세의 의대생이다. 항해사였던 아버지는 자크가 열한 살 때 항해 중에 목숨을 잃었다. 어머니는 자크가 어렸을 때부터 그에게 꿈을 통제하는 방법을 가르쳤다. 숙면을 취하지 못하는 그가 4단계인 숙면에 이르도록 유도했고, 덕분에 그는 몸과 정신을 고루 사용하며 기억력이 뛰어난 아이가 된다. 그리고 5단계인 역설 수면에 이를 수 있도록 꿈속 여행에 대해 더 가르치면서, 꿈을 기억할 수 있도록 하고, 더 다양한 꿈의 세계를 위해 책을 읽는 습관을 만들어 준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한 스트레스로 야뇨증이 생기자, 그것을 극복할 수 있도록 꿈의 세계를 통해 현실 세계의 문제를 풀 수 있고, 삶을 바꾸기 위해 자유 의지를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도 알려준다. 그렇게 그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선생이자 존경하는 어머니였던 카롤린이 갑작스레 사라져 버리자, 경찰에도 찾아가고, 탐정에게 의뢰도 해보려 했지만 소용이 없자 불면증에 시달리게 된다. 그러다 어느 날 꿈속에서 20년 뒤의 자신, 48세가 된 자크를 만나게 되는데, 그는 어머니가 말레이시아에 있다며 위험한 상황이니 어서 구하러 가라고 말한다. 그렇게 꿈의 민족이라 불리는 수수께기의 세노이족을 찾아 말레이시아로 향하는 자크는 과연 어머니를 만날 수 있을까?

봤지. 믿음 때문에 현실과의 괴리가 생기게 되는 거야. 엄마가 전에 얘기해 줬지? 역설수면 중에 꾸는 꿈이 우리를 다시 진실로 데려다 놓는다고. 꿈은 언제나 우리를 도와주는 선물 같은 거야. 꿈의 메시지는 상징이나 알레고리, 기묘한 이미지 등의 형태로 우리에게 전달돼. 무의식이 말을 하는 거야. 무의식은 의식보다 훨씬 많은 것을 이해해. 그러니까 꿈을, 네가 꾸는 꿈은 믿되 사람은 믿지 마, 이 엄마조차.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이 책을 쓰게 된 계기가 자신이 과학 전문 기자 시절에 썼던 자각몽자에 관한 르포였다고 말한다. 자각몽이란 자고 있는 사람이 스스로 꿈이라는 것을 자각하면서 꾸는 꿈을 말하는데, 아마도 다들 한 번쯤은 그런 경험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꿈속에서 더 오래 버티고 싶어 잠이 깨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거나, 꿈속에서 깼다가 다시 잠이 들어 꿈속으로 되돌아간다거나 하는 것 말이다. 그리고 불면증을 겪으면서 스마트폰에 수면 곡선 분석 프로그램을 깔아 놓고, 수면의 다섯 단계를 밟아 역설수면에 이르며 수면 시간의 효율을 극대화하려고 했던 경험도 역시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사실 꿈과 현실의 경계에서 벌어지는 일을 그리는 작품은 영화나 소설에서 자주 만나왔던 소재이다. 베르베르는 꿈 속의 세계를 일종의 신대륙처럼 설정해 환상의 영토로 모험을 떠나는 이야기를 그리며, 여타의 작품들과는 뚜렷하게 다른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모국인 프랑스에서보다 한국에서 더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 작가로 알려진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작품답게 이번에도 역시나 실망시키지 않는 재미와 흡입력을 보여준다. 기발한 상상력과 방대한 철학, 그리고 과학적인 정보들이 어우러져 한 편의 거대한 세계를 구축해내는 그의 능력은 이번 작품에서도 제대로 보여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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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의 고양이
샘 칼다 지음, 이원열 옮김 / 북폴리오 / 2017년 6월
평점 :
절판


작년에 뉴스에서 내전으로 폐허가 된 시리아 알레포에서 고양이를 위해 사는 남자의 사연을 본 적이 있다. 내전으로 인해 수백만의 사람들이 피난 가는 시리아에서 100마리가 넘는 길고양이들을 보살피는 남자의 사연이었다. 계속되는 내전으로 고통 받는 상황에서 도망가는 사람들이라면 보통 자신이 키우던 반려동물을 두고 가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그렇게 버려진 고양이들을 돌보기 위해 시리아 알레포를 떠나지 않는 남자가 있었으니, 바로 '캣맨'이라고 불리는 그였다. 그 뉴스를 보면서 새삼 남자들이 고양이에 대한 애정을 보여주는 경우가 많았다는 걸 깨달았는데, 이번에 바로 그 증거라고도 할 수 있는 책을 만나게 되었다.

 

아이작 뉴턴, 마크 트웨인, 윈스턴 처칠, T.S.엘리엇, 레이먼드 챈들러, 어니스트 헤밍웨이, 말런 브랜도, 앤디 워홀, 칼 라거펠트, 그리고 무라카미 하루키!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과학자부터 작가, 정치가, 배우, 미술가, 패션 디자이너까지 각 분야에서 이름을 알렸던 이들은 얼핏 전혀 공통점이 없어 보인다. 이들의 공통점은 바로 캣맨이라는 것이다. 수 세기 동안 미술가, 작가, 과학자, 철학자 등 수많은 남성들이 자신의 서재와 스튜디오를 고양이들과 공유해왔다. 이 책은 아름다운 일러스트와 위트 넘치는 설명, 그리고 역사 속 캣맨들의 명언을 담은 아트북이다. 고양이에 매혹된 남자들과 그들의 고양이라니...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패션 디자이너들은 뮤즈와 짧지만 강렬한 관계를 맺는 것으로 유명한데, 전설적인 디자이너이자 샤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칼 라거펠트의 뮤즈는 그가 무척 아끼는 털이 긴 샴 고양이 슈페트다. 그는 77세라는 늦은 나이에 캣맨이 되었다고 한다. 원래 개를 좋아한다고 말해왔던 그가 친구의 고양이를 봐주다 슈페트와 사랑에 빠졌다고. 디자이너 식기로 라거펠트와 함께 점심과 저녁을 먹고, 슈페트가 하는 행동과 기질을 매일 일지에 기록하는 개인 집사가 두 명이나 있다고 할 정도이니 뭐 그에 대한 애정을 짐작할 것이다. 오죽하면 라거펠트는 슈페트가 자신의 첩이며, 합법이었다면 결혼했을 것이라고 말한 적도 있다고.

 

10년 동안 미국을 떠돌며 술을 마시고, 잠시 피클 공장에서 일하고, 우체국에서 여러 해 동안 일한 부코스키는 마흔아홉 살이 되어서야 전업 작가 생활을 시작했다. 폭력적이고 생생하며 때로는 다정했던 그의 시들에는 햇볕을 받으며 조는 고양이, 자동차들 아래를 돌아다니는 고양이, 새를 잡아먹는 고양이 등 고양이 수십 마리가 등장한다. 그는 세상을 떠나기 얼마 전에 나눈 인터뷰에서 "기분이 나쁘면 그냥 고양이를 보라. 기분이 좋아질 것이다. 고양이는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고양이를 많이 키울수록 더 오래 산다. 고양이가 100마리 있다면 10마리 있을 때보다 10배 더 오래 살 것이다." 라는 말을 한 적도 있다. 주로 힘든 삶을 거칠게 그그리기로 알려졌던 그가 말년에 아내와 여러 고양이와 함께 살았을 때는 굉장히 감상적인 글을 썼다는 것만 보아도 그의 애정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고양이들 옆에서 저녁 식사하기를 좋아했던 윈스턴 처칠. 그가 임기를 두 번 수행하는 동안, 그의 고양이들은 치열한 환경에 꼭 필요한 가벼움을 제공했다. 탱고, 미키, 넬슨 등 그가 그린 여러 고양이는 손님들에게 필수적인 직원으로 알려졌다. 고양이를 무려 19마리나 키우기도 했던 마크 트웨인도 있다. 그는 '먹이를 잘 먹고, 적절한 돌봄과 사랑을 많이 받는 고양이가 없는 집도 어쩌면 완벽한 집일 수 있다. 하지만 그걸 어떻게 증명한단 말인가?'라는 명언을 남기기도 했다. 배우 말런 브랜도의 고양이 사랑 역시 영화 역사에 길이 남을 상징적인 캐릭터에도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영화 <대부>의 오프닝 장면에서 등장하는 고양이는 원래 시나리오에 없었다고. 현장에서 코폴라 감독이 우연히 발견한 고양이로 착안을 했는데, 브랜도는 고양이가 추가되어 무척 좋아했지만, 고양이 울음소리가 너무 커서 그의 대사 대부분은 오버 더빙해야 했다고 한다.

 

인상주의 대표 음악가로 꼽히는 모리스 라벨은 <어린이와 마술>이라는 오페라에서 고양이 연인 두 마리를 등장시키는데, 그들은 뮤지컬 <캣츠>에서 만큼이나 매력적인 모습을 선보인다. 그는 샴 고양이 두 마리를 키웠는데, 그들 고양이는 피아노 위에 앉아 20세기 프랑스에서 중요한 작곡가 중 하나인 라벨의 뮤즈가 되어 주었다. 고양이하면 하루키도 빼먹을 수 없다. 그는 여러 소설을 쓸 때 고양이를 대동했다. 그의 이야기는 우물 바닥으로, 고립된 도서관으로, 다차원적 호텔로 독자들을 데리고 가는데, 그 속에서 사람들은 고양이에게 말할 수 있고, 고양이들은 대답한다. 팬들의 질문을 받는 임시 웹사이트에서 한 독자가 잃어버린 고양이 찾는 법을 조언해달라고 부탁하자 그는 "고양이는 가끔 그냥 없어집니다. 주위에 있을 때 사랑해주고 고마워해아 합니다"라고 답했다. 과연 하루키 다운 대답이 아닐까 싶다.

아이작 뉴턴은 최초로 고양이 문을 발명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와 윈스턴 처칠의 집에는 아직도 그들이 키웠던 고양이들의 후손이 있다. 윌리엄 S. 버로스와 앤디 워홀은 고양이에게 영감을 받은 책을 썼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남성들 중에는 고양이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의 천재성과 유산에 고양이의 기여가 있었다. 찰스 디킨스는 '고양이의 사랑보다 더 큰 선물이 무엇인가' 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그만큼 이들의 고양이에 대한 무한 애정 공세는 그들의 삶과 그 궤적을 같이 해 감동을 주기도 한다. 샘 칼다의 감각적이면서도 아름다운 일러스트 또한 캣맨들의 삶과 그들의 명언을 더욱 돋보이게 해준다. 그렇게 고양이에 대한 순수하고 끈질긴 사랑이라는 공통점을 가진 서른 명의 유명인들은 고양이가 인간의 진정한 친구라는 것을 멋들어지게 보여주고 있다. 고양이를 사랑하는 이들이라면, 더없이 훌륭한 이 아트북을 꼭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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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6-17 08: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렸을 때 읽은 뉴턴 위인전에 고양이 문을 만든 일화가 있었어요. 뉴턴이 어미 고양이가 출입하는 문, 새끼 고양이가 출입하는 문을 따로 만들었어요. 뉴턴의 친구가 그걸 보고 어미와 새끼 모두 출입 가능한 문을 만들지 않느냐고 지적하니까 뉴턴이 다시 고양이 문을 만들었어요. 제가 기억하는 내용은 이렇습니다. ^^

피오나 2017-06-17 08:19   좋아요 0 | URL
그 내용이 뉴턴 위인전에도 있었군요ㅎㅎ 이 책에도 뉴턴의 고양이 문에 대한 일화가 실려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