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이었던 소녀 스토리콜렉터 41
마이클 로보텀 지음, 김지선 옮김 / 북로드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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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적 세계보다는 감정에 관해 더 많은 것을 알고 있고, 어떤 상황을 경험하기보다는 이해하는 편이 더 쉽다고 말하는 뛰어난 심리학자이지만, 파킨슨 병이라는 치명적인 친구를 데리고 사는 남자 조. 전작인 <용의자>에선 살인 혐의로 체포가 되더니, <산산이 부서진 남자>에서는 딸은 범인에게 납치를 당하고, 아내는 별거를 요구한다. 역시나 이번 신작 <내 것이었던 소녀>에서도 사건을 조사하는 내내 그의 삶은 점차 수렁으로 빠져 든다.

 

이렇게나 주인공을 수난에 빠지게 만들고 못살게 구는 작가가 또 있을까 싶을 만큼 마이클 로보텀은 조를 매 작품마다 시험에 들게 만든다. 이제 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인데, 그 시리즈의 마지막에 다다랐을 때는 과연 조의 곁에 누가 남아 있게 될지 걱정이 될 만큼 말이다. 게다가 바로 이런 점 때문에 독자 입장에서는 사건을 따라가는데 수동적일 수가 없어 굉장히 피곤하게 책을 읽어야만 한다. 주인공의 눈으로 사건을 보고 겪으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 단순히 '감정이입'이라고 하기에도 모자랄 만큼 '실제 체험' 같다고 해야 할만큼의 강도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야기가 중반부에 다다를 때까지 책장을 넘기는 속도는 축축 쳐지고, 이야기 진행도 느리며, 대체 이 두꺼운 책이 언제 끝날지 아득하다는 느낌마저 경험해야 한다. 그런데 정말 이상한 점은, 이 와중에 '지루함'이라는 단어는 생각조차 나지 않는 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마이클 로보텀의 힘이 아닐까 싶다.

프로이트는 우리의 기억이 트라우마적인 과거 사건들의 저장소라고 말했지만, 그 사건들은 실제라기보다는 단순한 망상일 때가 많다. 현실 세계가 아니라 오로지 마음속에서 일어난 사건인 것이다. 우리 마음은 존재하지 않은 것들과 일어나지 않은 사건들의 방대한 저장고다. 나는 가끔 내 기억들이 진짜인지 궁금할 때가 있다. 그것들에 집중해서 너무 가까이 들여다보려고 애를 쓰면, 기억이 내 목을 틀어막아 나는 숨을 쉬려고 발버둥을 치게 된다.

피투성이가 되어 나타난 열네 살 소녀. 시에나는 조의 딸인 찰리와 절친이다. 공황상태에 빠져 있는 것 같은 시에나를 병원에 데려다 주고 보니 팔 안쪽에 자해의 흔적이 보인다. 그제야 그는 생각한다. 자신이 그 동안 자주 집에서 봐왔던 딸의 친구라는 보여지는 모습 외에 시에나에게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이어 시에나의 방에서 죽어 있는 그녀의 아빠가 발견된다. 전직 경찰인 레이 헤거티의 옷에는 시에나의 피 묻은 손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는 상황이고, 모든 증거와 정황이 그녀를 범인으로 지목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조는 시에나를 믿고 싶다. 시에나의 주변과 사건을 점점 조사해갈수록 무언가가 일어났다는 설명할 수 없는 확신 같은 것이 드는 것이다. 그것이 직관이든, 지각이든, 통찰이든 그저 그의 본능이 시에나가 자기 아버지를 죽이지 않았다고, 그녀가 누군가를 보호하고 있다고 말이다. 형사도 아닌 일개 심리학자가, 결정적인 증거나 목격자를 찾은 것도 아니면서 용의자가 범인이 아닐 거라고 믿는다니. 여기서 조 올로클린이라는 독특한 캐릭터가 또 빛을 발한다.

독자 입장에서 보더라도 어쩐지 그의 생각보다는 다른 이들의 견해에 힘을 보태주고 싶을 만큼 무모해 보이지만, 꾸역꾸역 자신의 생각을 밀고 나가는 우직함. 평범한 두 아이의 아빠답게 아이들 걱정에 잠을 설치고, 누군가 아이들에게 해를 가하려는 기색만 보여도 달려들 수 있는 과격함. 별거 중인 아내가 새로 데이트하는 상대에 대한 질투심을 고스란히 인정하는 사내다움. 아내의 속마음을 알고 싶어 심리학자가 되었다고 할 만큼 아내를 사랑하지만, 가끔은 분위기에 휩쓸려 실수를 하기도 하는, 그리고 그걸 꼭 아내에게 들키고 마는 멍청함. 너무 젊은 나이에 찾아온 파킨슨 병이라는 무시무시한 친구에게 시달리면서도 아주 가끔은 그것을 농담으로 표현할 수 있는 여유. 하루하루가 생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살아야 하는 때에도 상처 받은 아이의 마음을 헤아리고 싶고, 누군가를 다치게 한 나쁜 놈을 벌주고 싶어하는 오지랖. 무엇보다 페이지가 진행될수록 드러나는, 그가 완벽한 인간이 아니라는 점들 때문에 그는 매력적인 캐릭터가 된다.

"당신은 다른 사람들하고 달라." 고든이 말한다.

 

"어떤 다른 사람들?"

 

"경찰 말이야. 경찰들은 과정을 알고 싶어 하지만 당신은 이유를 알고 싶어 하지. 그것도 간절히. 내가 어렸을 때 학대를 당했는지, 혹시 내가 어떤 아저씨나 교구 신부한테 후장이라도 뚤렸는지. 어머니를 일찍 여의었는지, 침대에 오줌을 쌌는지, 엄마가 그 벌로 나를 젖은 침대에 그대로 재웠는지. 당신은 원인과 결과가 있다고 생각하지. 그리고 그게 당신 약점이야. 이해해야 할 건 아무것도 없어. 나는 원래 사냥꾼으로 태어났어. 우리 모두는 그렇게 시작했어. 그렇게 살아남았고. 그렇게 진화했지. 우리 중 일부는 다른 사람들보다 좀 더 진화했고. "

 

이 작품은 실제로 1982년 호주에서 발생했던 리네트 도슨 실종사건을 토대로 쓰였다고 한다. 잘생기고 매력적인 학교 선생의 아내가 홀연히 사라지고, 어느 날부턴가 그 집에는 열여섯 살짜리 제자가 함께 살게 되었고, 경찰은 남편을 의심했지만 어디에서도 아내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사건은 미제가 되었고 사라진 아내의 가족들은 3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그녀를 찾고 있다고 한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사라진 자식을 기다리는 부모의 심정은 그것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 아이를 잃는다는 것은 그 어떤 고통스러운 일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의, 그 누구의 이해도 넘어서는 영역이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마이클 로보텀 역시 세 딸을 키우는 아빠로서 그런 부모로서의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엄청난 기쁨 뒤에 숨겨진 고통과,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행복 뒤에 그것을 잃어 버릴 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함께 존재하는 일이니 말이다.

그는 극중 조의 생각을 빌어 이렇게 말하고 있다. 부모 노릇이란 공중곡예와 같다고. 언제 놓아줄지 알아야 하고, 아이가 자신을 시험하는 과정을 지켜보아야 하며, 거기서 부모가 할 일이란 언젠가 아이가 다시 이쪽으로 날아올 때를 대비해 잡아줄 준비를 하고, 도착하면 잘 토닥이고 힘을 주어 다시 세상으로 쏘아 보내주는 일이라고 말이다. 아이들은 어느 시점이 되면 항상 너무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 한다. 정작 어른이 되어 버린 우리는 그때 그 시절을 그리워하지만, 아이들이 그걸 깨달을 무렵이면 이미 너무 늦어버린 시점이 되고 말이다. 이 작품은 자식을 둔 부모들이라면 더욱 공감할 부분이 많은 감성 스릴러이기도 하고, 부모가 아니더라도 한때 소년, 소녀였던 자신의 시간을 떠올릴 수 있다면 이해할 수밖에 없는 심리 스릴러이기도 하다.

마이클 로보텀은 심리학자 조 올로클린 시리즈와 전직 형사 빈센트 루이츠 시리즈를 번갈아 가며 출간하고 있는데, 재미있는 건 각각의 캐릭터들이 자신이 주인공이 아닌 작품에서는 조연으로 등장한다는 것이다. 바로 이번 작품에서 빈센트 루이츠가 조 올로클린의 사건 수사를 돕는 것처럼 말이다. '조 올로클린' 시리즈는 첫 번째 <용의자> 두 번째 <산산이 부서진 남자>에 이어 세 번째 <내 것이었던 소녀>가 출간되었는데, 심리 스릴러인 이 시리즈에 비해 조금 다른 느낌의 액션 스릴러로 진행되는 '빈센트 루이츠' 시리즈도 함께 나오길 기대해본다. 로보텀의 첫 작품인 <용의자>에서 루이츠는 조를 살인 용의자로 체포하는데, 용의자와 수사관으로 등장하기 때문에 그들의 시작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사실 <용의자>에서 두 사람은 끊임없이 부딪히지만 서로를 믿지 못하고 뭔가 미심쩍어 하는 듯한 느낌으로 진행이 되기 때문에, 앞으로 그들이 각별한 사이가 될 거라고는 상상조차 하기 어렵긴 했다. 하지만 두 번째 작품인 <Lost> 이후로는 둘도 없는 친구가 되어 완전히 다름에도 불구하고 서로에게 도움을 주고, 위로를 주는 사이가 된다고 하니 대체 그들에게 어떤 일이 있었던건지 이 작품도 궁금해진다.

 

올초 마이클 로보텀은 스탠드얼론인 <Life or Death>로 쟁쟁한 후보들을 물리치고 골드대거를 수상해 화제가 되었었다. 7월에 <Say You're Sorry>가 국내에 출간될 예정이고, 올해 <Life or Death>도 출간될 예정이라고 하니,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첫 작품인 <용의자> 이후 다음 작품을 만날 때까지 무려 10년이 걸렸는데, 올해만 마이클 로보텀의 신작을 무려 세 권이나 만날 수 있다니, 행운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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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남겨두고 간 소녀
조조 모예스 지음, 송은주 옮김 / 살림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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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26년 프랑스의 작은 마을 생페론에서 시작한다. 독일군이 마을을 점령하자 이곳엔 음식도, 자유도, 웃음도 모두 사라져 버렸다. 오죽하면 음식을 먹는 꿈을 꾸어야 할만큼 허기진 그들은 독일군 트럭 뒤 칸에 실린 돼지우리에서 빠져 나온 아기 돼지 한 마리를 빼돌려서 숨기고 있는 중이었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먹을 수 있을 만큼 자라기를 바라면서 몇 주 동안 도토리와 음식 찌꺼기로 살을 찌우는 중이었는데, 누군가 그걸 독일군에게 밀고해 호텔 르코크루주에 독일군 사령관과 부하들이 찾아온다. 독일군이 돼지를 찾아내면 그들은 모두 체포되고, 목숨 조차 부지하기 어려워진다. 소피는 불안해하는 동생 엘렌과 그녀의 아기, 그리고 아래층에 온 독일군에게 이미 잡혀있는 동생 아우렐리앙을 보호하고, 마을 사람들의 유일한 낙이었던 돼지를 무사히 지킬 수 있을까. 소피의 용기 있는 결단과 행동이 돋보이는 이 에피소드는 재미있기도 했지만, 매우 인상적이었다. 단 한 장면으로 소피라는 캐릭터는 페이지 속의 인물이 아니라 페이지 바깥으로 나올 수 있을 만큼의 매력적인 인물이 되어 버린다.

조조 모예스의 사랑 이야기가 특별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는 힘닿는 데까지 아이들로부터 최악의 것은 숨기려 했지만, 아이들은 남자들이 길거리에서 총에 맞고, 금지된 숲 속을 돌아다녔다거나, 독일군 장교에게 제대로 경의를 표하지 않았다거나 하는 사소한 잘못을 가지고 낯선 사람들이 자기 어머니들의 머리채를 잡아 침대에서 끌어내는 세상에 있었다. 미미는 말없이 의심에 가득 찬 눈으로 우리의 세상을 봤다. 엘렌은 그것을 마음 아파했다. 아우렐리앙의 가슴에는 분노가 쌓여갔다. 화산의 힘처럼 그의 안에 분노가 커져가는 것을 보면서, 매일 동생이 마침내 폭발하더라도 그로 인해 너무 큰 대가를 치르지는 않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위험천만했던 그 첫 번째 에피소드 덕분에 소피는 그녀와 가족이 운영하는 호텔에서 매일 독일군의 저녁 식사를 차려야 하는 임무를 맡게 된다. 매일 밤 그곳에서는 숨막히는 긴장과 분열이 일어나지만, 독일군 사령관은 점차 소피에게 특별한 관심을 보이게 된다. 그가 관심을 표하게 된 계기는 바로 그녀의 집에 있는 소피의 초상화 때문이었는데, 인상주의 화가였던 그녀의 남편이 직접 그린 그림이다. 그림 속 소녀는 오로지 표정으로 만족감을 주고받는 것이 무엇인지, 사랑을 받는 다는 것이 어떤 건지 보여주고 있었고, 무엇보다 대단한 용기와 자부심으로 빛을 발하고 있다. 물론 굶주림과 공포 때문에 지금은 더 이상 소피에게서 그림 속의 소녀를 찾을 수 없었지만, 그녀는 그림을 볼 때마다 남편인 에두아르가 돌아올 때는 다시 한 번 그가 그렸던 그 소녀가 되겠다고 맹세하곤 한다. 하지만 전쟁은 좀처럼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식량은 점점 더 줄어들고, 마을의 상황은 나빠지기만 한다. 그러던 중 소피는 남편이 최악으로 소문난 교화 수용소로 갔다는 소식을 듣게 되고, 남편을 살리기 위해, 남편의 자유를 위해,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선택을 하게 된다. 그로 인해 앞으로 자신의 삶이 어떻게 산산조각 날지는 상상조차 하지 못한 채 말이다.

그러부터 약 100년 후인 2006년 런던에서 제2부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현재에서 주인공은 젊은 미망인 리브, 그녀는 건축가인 남편을 잃고 망연자실한 채로 살아가고 있다. 리브의 유일한 보물은 신혼여행 중에 남편에게 선물 받은 여인의 초상화, 우리가 이미 지나온 과거 속의 바로 그 그림이다. 그리고 약탈당한 예술품을 원래의 주인에게 반환해주는 일을 하는 전직 경찰 폴이 등장하고, 우연히 리브와 알게 되어 그들은 사랑에 빠지게 된다. 폴은 리브의 집에서 자신이 소송을 맡게 된 바로 그 문제의 그림을 발견하고, 그녀와 그림의 소유권을 놓고 법정 소송 다툼이 시작된다. 사실 이야기의 분량은 과거보다 현재가 두 배정도 많다. 하지만 내가 리뷰에서 과거의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고, 현재의 이야기는 짧게 언급한 이유는 100년 전의 이야기가 훨씬 재미있고, 몰입감 있고, 드라마틱하기 때문이다. 2부가 시작되면서 스토리는 많이 평범하게 진행되어 다소 루스해지는 감이 없지 않다. 하지만 이렇게 그냥 흘러 가면 조조 모예스가 아니지. 싶은 생각이 드는 지점이 후반부에 등장하고, 그림 한 점을 둘러싼 세기의 공방이 이어진다. 남편을 추억할 수 있는 유일한 그림이라 빼앗기고 싶지 않은 여자와 도난 당한 그림이기 때문에 반드시 유가족에게 반환해야 한다는 남자. 그렇게 이야기는 런던에서 프랑스로 가서 소피의 후손을 찾아가게 되면서, 우리 모두가 궁금했던 소피의 나머지 삶에 대해서 알게 된다. 소피가 위험한 선택을 한 이후 어떻게 되었는지, 그리고 남겨진 사람들이 그녀에 대해 어떻게 이해하고 생각했는지.. 우리는 그제야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르코크루주에 걸려 있어야 할 그림이 어떻게 런던에 있는 리브의 집까지 오게 되었는지에 대한 미스테리가 더해져 이야기는 더욱 흥미진진해진다.

"제가 본 여자와 당신이 묘사한 소피를 연결하기가 힘들군요. 제가..... 그녀의 초상화를 가지고 있답니다. 언제나 그 그림을 참 좋아했어요."

그가 고개를 약간 더 쳐든다. 모가 프랑스어로 옮겨줄 동안 그는 그녀한테서 눈을 떼지 않는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녀는 사랑 받는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잘 아는 사람처럼 보인다고 생각했어요. 활기가....." 그녀는 어깨를 으쓱한다. "넘쳐 보였어요."

조조 모예스를 우리 나라에게 처음으로 소개해주었던 작품 <미 비 포유>는 사실 불의의 사고를 당했지만 매력적이고 돈까지 많은 젊은 남자와 집안 형편상 돈을 벌어야 하는 씩씩한 여자의 만남이라는 다소 뻔한 설정에서 시작했지만, 그 흔한 신파나 눈물 한 자락 없이, 현실을 직설적으로 반영하고 있어 여타의 최루성 신파 멜로, 휴먼 드라마의 패턴과는 완전히 달랐다. 사지마비환자와 간병인, 게다가 엄청난 부자 남자와 평범한 집안의 젊은 여자라는 이야기 거리만으로도 앞으로 그들의 관계가 어떻게 진행될지 너무도 뻔히 보일 수밖에 없었는데도 말이다. 눈물을 자아내는 감동의 휴먼 멜로 드라마로 흘러가는 것이 당연할 것 같았지만, 지나치게 담백하고, 때로는 유쾌하고, 잔잔하게 따뜻하며, 거기에 추가로 목이 메일 것 같은 슬픔으로 페이지를 가득 채웠다. 평범한 멜로가 아니라 인간의 삶과 죽음에 대해 정면으로 승부하는 길을 택했던 것이다

그런 작가였기에 이후에 출간되는 그녀의 작품들에도 항상 관심이 갔다. 그녀의 작품은 모두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긴 했지만, 그것만이 전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번 신작 <당신이 남겨두고 간 소녀>에서는 무려 100년이라는 시간차를 두고 벌어지는 이야기를 통해 '사랑의 가치', 그리고 그걸 넘어서 '인생의 가치'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전쟁터로 남편을 떠나 보내고 기다리는 여자 소피와 갑작스레 남편을 잃고 망연자실한 미망인 리브가 자신에게 소중한 무엇을 지키기 위해서 어떻게 하는지, 혼자의 힘으로 온갖 고난과 상실을 딛고 자신 앞에 닥친 문제를 극복하면서 성장하는 모습은 단순한 '사랑'을 넘어서 '인생'이란 것의 의미와 가치를 보여주고 있다는 느낌마저 든다.

사랑 앞에서 당신은 얼마나 용감해질 수 있을까. 전쟁과 사별이라는 엄청난 시련 앞에 선 여성 캐릭터의 모습은 무엇보다 공감과 이해를 불러 일으키는 부분이 있어 이번에도 조조 모예스가 여성 독자들의 마음을 제대로 저격한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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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시간에 끝내는 기초영어 미드천사: 왕초보 패턴 - Top10 미드추천, 1004문장으로 기초 영어공부 혼자하기! 기초영어 미드천사 시리즈
Mike Hwang 지음 / 마이클리시(Miklish)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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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를 웬만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한번쯤은 다들 그런 생각해봤을 것이다. 영화관에서 할리우드 영화를 볼 때도 그렇고 말이다. 자막 없이 볼 수 있다면.. 이라고.

이 책은 기초실력이 전혀 없는 왕초보도 미드를 활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다. 이 책을 8시간안에 다 끝내면 미드를 자막 없이 볼 수 있냐고? 글쎄, 그건 당신이 직접 경험해보라.

 

실제 원어민과 대화 시에 활용할 수 있는 영어를 알고 싶어하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팝송이나 미드를 통해서 영어 공부를 시도해 보았을 것이다. 문법적으로 딱 들어맞는 문장보다 실생활에서 바로 쓸 수 있는 문장들을 더 많이 배울 수 있는 매체이니 말이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이 책이 딱이다. 미국인들이 방송에서 쓰는 단어 41,284단어 중에 가장 많이 쓰는 단어 1004단어가 책에 실려 있는데, 이 정도면 간단한 일상회화에는 충분한 어휘의 양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이 책에 실려 있는 단어들만 정복해도 우리는 영어 앞에 기죽지 않고 당당해질 수 있다는 얘기다.

 

 

미드는 보통 한 시즌이 10편에서 20편 정도로 이뤄져 있고, 짧은 것은 20분에서 보통은 40분, 긴 것은 60분 정도로 되어 있다. 그런데 우리 나라 드라마도 그렇지만, 고르기가 어려울 만큼 편수가 너무 많다. 아무 거나 보지 말고, '가장 효율적이고 선호도가 높은 미드'부터 만나봐야 되지 않겠는가. 이 책에는 미드 카페 설문 조사를 통해 선호도가 높은 미드 10개의 리스트를 뽑고, 이 중 영어공부하기 어렵다고 생각된 것을 빼고 영어 공부하기 좋은 미드를 추가해 10편이 실려 있다. 재미도 있으면서 대중적이고, 영어 공부에도 활용하기 좋은 미드들 말이다.

 

예를 들자면, 로스트, 엑스파일, 위기의 주부들, 심슨이 또박또박 말하는 편이라 발음공부에 좋고, 빅뱅이론과 왕좌의 게임은 안 쓰는 어휘가 많아서 어렵다.

 

 

그리고 각각의 미드 속에서 나온 대사 중에 기본 활용할 수 있는 패턴을 문장으로 뽑아내고, 그것을 다양한 경우로 활용해서 변주할 수 있도록 정리가 되어 있다. 미드에서 추천하는 1004개의 명대사를 문법패턴으로 분류했고, 미국인들의 일상회화 89%를 해결하는 영어단어 1004개가 실려 있다.

 

 

각 미드마다 에피소드 줄거리와 등장 인물 소개가 간략히 되어 있어 미드 자체에 흥미와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고, 웹사이트에 접속하거나 팟빵을 통해 들을 수 있는 무료 강의를 통해 왕초보라도 혼자서 영어공부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사실 영어단어 1004개도 단어 수가 너무 많은 것 아니냐, 이걸 어떻게 다 외우나 시작도 하기 전에 막막할 수도 있지만, 책의 가벼운 두께만큼이나 전혀 부담스럽지 않게 구성되어 있어 걱정할 필요 없다. 한 번에 두 페이지씩 공부할때 나오는 12문장에서 새로운 단어가 6단어 이하라, 문장을 공부하기 전에 제시된 그 단어들부터 차근차근 공부하면 되니까 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쉬운 문법 용어조차 되도록 쓰지 않았고, '기초 영어'라는 말 답게 너무 쉬운 패턴들로 구성되어 있어 실제로 읽어보면 너무 쉬운거 아니냐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실제로 외국인을 만났을 때 말을 할 수 있도록, 어떤 경우에서도 응용가능한 방법이 제시되어 있다는 것. 그러니 학교 졸업 후 단 한번도 영어 공부를 해 본적이 없다는 직장인부터, 대체 내가 언제 학교를 갔었나 싶을만큼 나이를 드신 어르신들까지 부담없이 시작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재미있는 미드도 보고, 쉽게 패턴도 익히고, 그러면서 회화까지 가능하도록 도와 주는 책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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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문장으로 끝내는 유럽여행 영어회화 - 그리스부터 영국까지 유럽 여행 에세이로 익히는 기초 영어회화 (부록 CD: 핵심 강의 + 원어민 음성)
Mike Hwang 지음 / 마이클리시(Miklish)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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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여행을 계획할 때마다 항상 여행지에서 활용하기 좋은 영어회화 공부 좀 미리 해가야겠다 마음 먹지만, 사실 대부분 미루기만 하다가 정작 여행 당일이 되면 에잇, 될 대로 대라는 식으로 가버리곤 한다. 사실 콩글리시 조차도 아닌 그저 단어 몇 개만 나열해도 웬만한 호텔이나 음식점, 관광지 등에서는 그들과 대화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그리스, 이탈리아, 스위스, 독일, 오스트리아, 체코, 프랑스, 영국에 이르기까지 유럽 8개국을 여행하면서 겪은 여행기와 그곳에서 필요한 필수 영어 회화를 함께 공부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아래와 같이 날짜별 일정 표도 함께 수록되어 있는데, 그날의 일정과 숙박장소, 경비, 준비해야 할 일에 이르기까지 실제 여행을 준비하거나, 현지에서 매우 유용하게 도움이 될 것 같다.

 

그리고 각 나라마다 한 패턴씩 총 8패턴을 공부할 수 있도록 정리가 되어 있다. 여기서 패턴이란 한 문장에서 한 단어만을 바꿔가면서 익히는 것을 말하는데, 이 책에 실려 있는 8개의 패턴은 500문장 이상으로 응용할 수 있는 가장 핵심적이고 활용도가 높은 문장이다.

 

게다가 저자가 '영어를 읽기도 어려운 부모님께서 배낭여행을 간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으로 고심했다는 것처럼, 한글 발음이 큰 글자로 적혀있어 정말 영어 왕초보도 부담없이 도움을 받을 수 있을 만한 책이다.

가장 재미있는 점은 여행기, 혹은 여행 에세이를 그냥 이야기를 읽는 것처럼 쭉 따라 읽기만 해도, 그 일정 안에 필요한 영어 문장들이 숨어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여행을 했구나 싶은 마음에서 그대로 따라가기만 해도, 다 읽고 나서 영어 문장들이 머릿속에 남는 다는 말이다.

 

 

영어 회화 뿐만 아니라  외국에서 현금인출하는 방법, 영어로 한글 적기, 여권 발급 방법 등 여행에 필요한 정보들도 수록되어 있다. 그리고 각 나라의 대표 음식 만드는 방법까지 깜찍하게 수록되어 있는데, 그리스의 차지키, 이탈리아의 알리오 올리오 레시피가 함께 있다.

 

사실 긴 여정을 잡고 떠나야 하는 유럽 여행의 경우, 매번 끼니를 외식으로 때울 수는 없기에 한 끼 정도는 마트에서 장을 봐서 숙소에서 직접 해결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이런 음식 만드는 정보 또한 여행에서 꽤나 쏠쏠한 정보가 아닐 수 없다.

 

여행 가이드북도 그렇지만 두툼한 책들은 여행 시에 불필요하게 짐만 될 뿐이다. 그러니 현지에서 활용할 수 있게 하려면 콤팩트한 사이즈와 가벼운 무게감이 필수인데, 이 책은 한 손에 쏙 들어오는 미니 사이즈에 꼭 필요한 정보들만 콕콕 실려 있어 여행 중에 들고 다니기에 매우 편리할 것 같았다.

 

원어민의 녹음과 미니강의가 담긴 CD도 부록으로 수록되어 있어 활용도가 높고, 550단어의 미니 한영사전, 미니 영한사전도 포함되어 있어, 현지에서 급할 때 찾아보기도 좋을 것 같다.

 

 

이 책과 스마트폰만 있다면, 유럽배낭여행을 가더라도 가이드 없이 편하게 다녀올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처음에 제목을 보고는 어떻게 여행영어가 단 8문장으로 끝낼 수 있다는 거지? 낚시 아닌가? 싶었는데, 사실 생각해보면 우리가 여행을 가서 사용하는 영어란 매우 기본적인 단어, 문장들 아닌가.

 

딱 중요한 기본 패턴만 제대로 숙지하고 있다면 어떤 상황에서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너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너무 쉽고, 놀라우리만큼 단순하고, 책의 무게만큼이나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영어 회화 책은 처음이라, 올해 계획중인 해외 여행지에 가져가서 제대로 활용해보고 싶어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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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달랬어요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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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좋아하는 책 중에 <빨강 머리 토리>라는 동화책이 있다. 아이의 태명이 '토리'였던 탓에 우연찮게 선물 받은 책인데, 내용을 이해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이도 참 좋아해서 책장이 너덜너덜 해질 때까지 보았던 책이기도 하다. 주인공인 토리는 머리색이 빨갛다는 것 때문에 친구들이 놀리는 것 때문에 속상했는데, 거기다 설상가상으로 어느 날 아침 자신의 머리카락이 커다랗게 자랐다는 걸 알게 된다. 게다가 토리의 머리는 지리 시간에는 지도 모양으로, 과학시간에는 행성 모양으로, 역사시간에는 나폴레옹 모양으로 마구 바뀌게 된다. 토리는 부끄럽고 창피했고, 걱정으로 머리가 아파오더니 몸까지 아파서 학교를 하루 쉬게 된다. 다음날 몸은 좀 나아졌지만 너무 가기 싫은 학교에 억지로 등교해보니, 친구들과 선생님의 머리 모양이 모두 각양각색의 커다랗고 화려한 모습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그렇게 친구들과 깔깔대며 웃으며 토리는 특별한 누군가가 아니라 친구들 덕분에 다시 평범한 누군가로 바뀌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독특한 머리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게 된다. 빨강 머리여도 괜찮아. 머리가 제멋대로 자라도 괜찮아. 나는 나라서 아름다운 거야. 라고 말이다. 우리는 원래 모두다 정말 다른 존재이니까 말이다.

비록 어린이를 대상으로 쓴 동화책이었지만,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참 따뜻한 위로 같은 기분을 느꼈던 기억이 난다. 남과 다르면 '다르다'가 아니라 '틀리다'부터 가르치는 우리 사회의 풍경 속에,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이들의 이야기가 마치 어른들을 위한 동화 같았기 때문이다. 프레드릭 배크만의 신작을 읽으면서도 이 책을 통해 느꼈던 부분들이 내 마음을 움직였다.

할머니가 있다는 건 아군이 있는 것과 같다. 그게 손주들의 궁극적인 특권이다. 자초지종이 어떻든 항상 내 편이 있다는 것. 내가 틀렸더라도. 사실은 내가 틀렸을 때 특히.

할머니는 검이자 방패다. 학교에서 그게 무슨 잘못이라도 되는 것처럼 엘사 더러 "특이하다"고 할 때, 엘사가 멍이 든 몸으로 집에 돌아올 때, 교장선생님이 "튀지 않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할 때. 그럴 때 할머니는 지원군이 되어 엘사가 사과하지 못하게끔 한다. 자기 탓을 하지 못하게 한다.

이 작품의 주인공 엘사는 일곱 살 이라는 나이에 비해 너무 성숙한데다 얄밉도록 지나치게 똑똑해, 학교에서는 친구들에게 왕따, 선생님들에게는 눈엣가시이며, 주변 어른들에게도 좀처럼 적응이 안 되는 독특한 존재이다. 해리포터에 열광해 그리핀도르 목도리를 두르고, 빨간 사인펜을 넣고 다니며 누군가 맞춤법을 틀리면 사인펜으로 고쳐 준다. 엘사는 그야말로 다른 아이들과 완.. '다르다' 그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는 어른들의 세계 속에서 부대끼며 살아가는 엘사는 말 그대로 애 어른 같은 캐릭터이다. 당연히 친구도 없고 말상대라고 해 봤자 병원 운영으로 너무 바쁜 엄마를 제외하고 할머니뿐이다. 그런데 엘사의 할머니 또한 만만치 않게 독특한 캐릭터이다. 일흔일곱의 그녀는 괴팍한 성미에 입이 거친 걸로 유명하고, 손녀인 엘사에 관한 일이라면 병원에서 탈출할 정도로 지극정성이다. 이야기의 시작도 그녀가 병원을 탈출해 동물원에 무단 침입해서는 경찰한테 똥을 던져서 경찰서에 있는 걸로 출발하니 말이다. 사실 그날은 학교에서 엘사를 미워하는 상급생이 엘사를 때리고 목도리를 찢어 버린 날이라, 그걸 잊어버리게 하려고 만든 상황이었다. 그녀의 신조는 '나쁜 게 사라지지 않을 것 같으면 좋은 걸로 덮어버려야지'였으니 말이다.

엘사의 엄마는 할머니와는 모든 면에서 정반대이다. 언제나 냉정하고 침착하며 언성을 높이는 법이 없다.  기본적으로 질서 정연한 엄마와 언제나 뒤죽박죽인 할머니는 자주 옥신각신한다. 아주 오래 전부터, 거의 모든 것을 놓고 말이다. 하지만 할머니의 기이한 행동은 남들과는 조금 다른 생각을 하는 손녀를 당당하고 떳떳하게 자라게 하는 양분 역할을 한다. 남들과 다른 엘사에게 교장 선생님이특이하다거나튀지 않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할 때, 남들과 다른 건 특별한 거라고 가르쳐주는 멋진 할머니이다. 그런데 할머니는 이야기가 시작할 때부터 병원에 있었고, 그러니까 암이다. 그래서 이야기 초반에 일찍 하늘 나라로 가 버린다. 그녀는 마지막으로 엘사에게 편지 배달이라는 임무를 맡기고, 엘사가 사람들을 찾아 할머니가 그들에게 사과하며 전하는 안부 편지를 전달해주는 것이 거의 스토리의 전부이다. 이야기를 지어내는 데 도사였던 할머니와 엘사만의 비밀스런 왕국이었던 깰락말락 나라, 그리고 그곳에 있는 여섯 왕국 가운데 하나인 미아마스에 대한 스토리 또한 이 작품의 매력적인 부분이다. 할머니와 엘사가 공유하는깰락말락나라라는 판타지적 설정은 묘하게 현실을 비추어 아이의 순수한 시선으로 세상의 진리를 거울처럼 비춰 준다. 할머니와 엄마, 그리고 손녀인 엘사까지 모녀 3대의 가족사와 아파트에 함께 사는 절대 평범하지 않은 이웃들의 사연까지 엮이게 되면서 이야기는 뭉클하고, 기분 좋게 흘러간다.

믿음이 있어야 해. 할머니는 입버릇처럼 그렇게 말했다. 믿음이 있어야 동화를 이해할 수 있다. "뭘 믿는진 중요하지 않고 다만 뭐라도 믿는 게 있어야 한다. 그러지 않을 거면 차라리 전부 다 잊어버리는 게 낫지."

결극 이 모든 사태의 핵심은 그것일지 모른다.

이 책은 <오베라는 남자>로 엄청난 즐거움을 안겨 주었던 프레드릭 배크만의 신작이다. 밉지만 짠한, 무섭지만 뭉클한 오베라는 캐릭터는 정말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고, 유쾌하면서도 울컥하는 기분이 들게 하는 작품이라 다 읽고 나서도 여운이 길게 남았었다. 생생하게 살아 있는 캐릭터, 데뷔작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의 노련한 스토리, 그리고 입에 척척 달라붙는 음식처럼 눈에 쏙쏙 들어오는 문장들이 잠시도 한 눈을 팔 수 없게 만들어주었던 책이라, 프레드릭 배크만의 다음 작품은 그냥 덮어놓고 무조건 궁금했고, 읽고 싶었다. 오베라는 캐릭터에게 워낙 반해 있던 터라, 사실 이번 작품의 주인공도 엘사의 슈퍼 히어로인 할머니가 아닐까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일곱 살 어린 아이의 시선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그 아이 또한 전작의 오베 못지않게 독특하고, 개성 있고, 살아있는 캐릭터가 아닐까 싶다.

특이한 사람들의 숫자가 어느 선을 넘으면 아무도 더 이상 평범해질 필요가 없다. 그때는 더 이상 튀지 않으려고 노력할 필요도, 남들의 시선을 의식해 피해 다닐 필요도 없다. 그저 있는 그대로의 당신 모습을 자랑스럽게 여기면 된다. 괜찮다. 모두 다 괜찮다. 뚱뚱해도 괜찮고, 키가 작아도 괜찮고, 공부를 좀 못해도 괜찮다. 당신은 당신만의 특별한 무언가를 가지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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