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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하게, 독서중독 - 낮에는 양계장 김씨로, 밤에는 글쓰는 김씨로 살아가는 독서중독자의 즐거운 기록
김우태 지음 / 더블:엔 / 2016년 11월
평점 :
나도 책 중독자로 살아온 지 저도 어느덧 삼십 년은 넘은 것 같다. 어릴 때부터 책과 함께 지냈고, 대학생 때도, 직장을 다닐 때도, 그리고 결혼해서 아이가 생긴 지금도 책은 변함없이 가장 가까운 친구이니 말이다. 하지만 책을 너무 많이 읽다 보면 가끔 그 속에 빠져서 내가 제대로 읽고 있는 건지, 방향 감각이 없어질 때가 있다. 그럴 때 누군가 제대로 책을 읽는 방법을 알려주면 좋겠다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 책의 저자가 어쩌면 그렇게 지나치게 책에 중독되어 있는 나에게 색다른 관점의 가이드를 제시해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32세라는 늦은 나이에 책과 만났지만, 이제는 게임중독자에서 독서중독자로 거듭났다고 하는, 낮에는 양계장 김씨로 일하고, 밤에는 글 쓰는 김씨로 살아가는 독서중독자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분명히 한글로 쓰여 있는데 읽어도 무슨 뜻인지 모르는 책들이 있다. 보통 철학 책들이 그렇다. 한 문장씩 독파해 나가다 보면 자꾸 오리무중에 빠지고 중도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입에 '발'자가 계속 달리게 된다. x발........이럴 때 방법은 없을까?
힘 빼고 여러 번 읽어보자. 한 문장, 한 글자 힘 빡 주고 읽지 말고 느슨하게 읽는 거다. 뜻이 안 들어와도 상관없다. 내 눈에 단어들, 문장들을 눈에 익혀둔다는 정도로만 읽으면 된다.
그는 평생 책을 읽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던 사람, 중고등학교 때 읽은 책은 교과서가 전부이고, 술과 담배, 텔레비전과 게임이 유일한 친구였던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우연히 책을 만나게 되고, 그 읽는 재미에 푹 빠져 돈보다 책이 좋아지게 된 상황에 처하게 된다. 그리고 요즘 회사업무에 치여 책 읽을 시간이 없어, 한 1년쯤 안식년을 갖고 책만 보며 느긋하게 지내고 싶은 게 꿈이다. 30년간 책과는 담을 쌓고 지냈던 게임중독자가 어떻게 책 중독자가 되고, 이렇게 책까지 출판하는 작가가 된 걸까. 저자는 '지극히 개인적인' 자신의 독서활동과 독서방법, 그리고 독서에 대한 여러 가지 잡생각들을 늘어놓으며 이야기한다. 당신도 책을 읽어 보라고. 독서광이 된다는 거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어떤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읽지 않아도 되고, 두꺼운 책은 찢어서 읽으면 되고, 동시에 여러 권을 읽어도 상관없다고 말이다.
저자는 빠르고 느리게 읽고는 사실 중요한 게 아니며, 문제는 제대로 읽었느냐 라고 말한다. 시간이 없어서 독서를 못하는 것은 아니며, 책을 읽다 보면 내면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한다. 어려운 책을 읽어야 성장할 수 있으며, 목적에 따라 읽는 방법이 다르다며 독서초보의 책 읽는 방법에 대해서 알려주기도 한다. 신변잡기처럼 그저 편안하게 늘어 놓는 이야기 속에 책에 대한 애정이 듬뿍 담겨 있고, 책을 읽으면서 확립한 나름의 독서 방법에 대한 자부심도 있다. 이 책이 새로운 방법을 제시하거나, 뛰어난 직관을 선보이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책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의 자세가 매 페이지마다 담겨 있어 읽는 내내 친구를 만난 것처럼 편안했다. 당신도 그렇게 될 수 있다. 무려 32살이 되어서야 책과 만나게 된 이 사람도 있지 않은가.
책을 다 읽을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책에도 80대 20의 법칙이 성립되기 때문이다. 물론, 문장 하나하나에 혼신을 불어넣는 문학작가들의 문학작품들은 예외로 한다. 한 문장을 가지고 석 달 동안 고민하는 게 문학작가들이다. 문학작품에 80대 20의 법칙을 적용해서 읽는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스토리가 있고, 서사가 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줄 한줄 음미하면서 읽어야 하는 문학작품은 여기서 제외하기로 하자.
전체의 20프로가 나머지 80프로를 대표한다는 파레토의 법칙은 매우 그럴 듯 하다. 이는 전체의 20프로는 핵심이고 나머지 80프로는 껍데기라는 뜻이다. 이런 책일 경우 핵심만 파악해서 저자가 말하고 싶어 하는 게 무엇인지 그 내용만 발췌해서 읽으면 된다고 말이다. 물론 내가 지금 읽고 있는 이 책 <소소하게, 독서중독> 역시 마찬가지로 파레토의 법칙이 적용된다. 아마도 책과 그다지 친하지 않은 독서 초보들이라면 처음부터 찬찬히 정독해도 좋을 듯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그러니까 웬만큼 책 좀 읽었다 하는 이들이라면 이미 다 아는 내용에 새로운 부분이 거의 없기 때문에 필요한 부분만 찾아서 읽어도 된다는 뜻이다. 다만, 너무 책을 많이 읽어서 그 속에서 허우적대다가 지친 경우에는, 이 책을 통해서 잠시 쉬어 가는 것도 도움이 될 것 같다. 내가 제일 처음 책을 사랑했던 순간과, 책과 만났던 잊지 못할 기억 속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도와줄 테니 말이다.
몇 년 전에 70대 할머니가 소설가 조정래의 <태백산맥> 10권을 21개월 만에 필사해 화제라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계속 되었던 필사는 평일에는 3시간, 주말에는 6시간까지도 했다고. 필사한 200자 원고지를 세로로 쌓으면 무려 일 미터가 넘는 어마어마한 분량이라고 말이다. 당시에 태백산맥 전 권 필사를 마친 사람은 전국에서 6명이라고, 그들의 필사 완성 기간은 짧게는 6개월에서 길게는 5년 정도라고 해서 대단하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이 책의 저자도 역시 <태백산맥> 10권을 필사했다고 한다. 1152일에 걸쳐 했다고 하니, 3년이나 되는 시간이다. 물론 그가 필사를 하게 된 이유가 태백산맥 문학관에 내 이름 석 자가 박힌 채로 필사본이 영구 보관된다는 달콤한 유혹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그것을 기어이 해냈다는 데 대단한 의지가 아닐 수 없다. 수십 년 동안 책 중독에 빠져 살아온 나라도 전혀 도전하고자 생각도 못해봤던 그것이라 더욱 대단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말이다. 무엇이든 사랑하면 못할 것이 없지 않은가. 책도 마찬가지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