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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신저 23
제바스티안 피체크 지음, 염정용 옮김 / 단숨 / 2016년 9월
평점 :
절판
매년 수십 명의 승객들이 크루즈선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왜냐하면 스스로 목숨을 끊기에 그곳만큼 완벽한 장소도 없기 때문이다. 난간에서 한번 뛰어내리기만 하면 그걸로 끝, 시체도 목격자도 찾을 수 없으며, 실패할 확률도 전혀 없었으니 말이다. 진짜 무서운 것은 이런 일들이 이 작품 속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로 꽤 많은 사람들이 크루즈선과 페리에서 바다로 떨어져 사라지고 있다.
"지금 현재 대양을 누비고 다니는 모든 크루즈선에서 우리는 매년 평균23명의 승객들이 뛰어내려 자살을 한다고 추정합니다."
그래서 패신저 23이군!
이제 그녀는 다니엘이 무엇을 의도하는지 명확히 깨달았다.
"당신들 배에서 또 한 명이 실종되었나요?"
우리 배에서 패신저 23이 발생했어요!
"아뇨." 다니엘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다면 문제가 되지 않겠지요. 그런 걸 감추는 것쯤이야 우린 밥 먹듯이 하니까요."
잠입 수사관인 마르틴 슈바르츠는 5년 전 아내와 아들을 잃은 후, 삶에서 아무런 의미도 찾지 못한 채 살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온다.
"당신은 최대한 빨리 배를 타야만 해요."
술탄호는 크루즈선으로 5년 전 마르틴의 아내가 아들을 뱃전 밖으로 던져 버리고, 스스로 50미터 아래로 뛰어 내려 자살을 했던 바로 그 배였다. 그는 그날 이후, 앞으로 살아가면서 더 이상 크루즈선에 발을 들여놓지 않기로 다짐했었지만, 그는 그 배에 탈 수밖에 없었다. 이름 모를 노파가 전화로, 아재가 자발적으로 죽으려 뛰어내리지 않았다는 증거가 있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그의 가족들이 어쩌면 아직 살아 있다는 단서일지도 모르겠다며, 그에게 누더기가 된 조그만 테디 곰 인형 하나를 건네준다. 그것은 아들 테디의 것이었다.

같은 시간, 열다섯 딸 리자와 함께 배에 오른 율리아는 남편의 배신 이후로 3년동안 삭막한 시간을 보내오다, 이번 크루즈 여행을 통해 딸과 호젓한 휴가를 보낼 꿈에 부푼다. 그런데 딸의 멘토 교사이자 잠깐 연애 상대였던 톰이 전화를 해서, 딸이 남자와 함께 등장하는 지저분한 영상의 존재에 대해 알려주고, 그것이 인터넷에 퍼져 리자가 자살할지도 모른다고 당장 배에서 내리라고 말하지만, 이미 배는 출발한 상태였고, 리자는 이 넓은 배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현재 이 배의 관계자들이 가장 주목하고 있는 사건은 바로, 8주 전 술탄호에서 어머니와 함께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가 어느 날 갑자기 다시 나타난 아누크라는 여자아이였다. 해운 회사의 오너는 마르틴에게 그 아이의 실종에 대한 수사를 해달라고 제안한다. 이 일이 세상에 알려지면 크루즈선은 엄청난 금전적 손실을 가질 수밖에 없었고, 그 아이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낸다면 마르틴이 가족의 죽음에 대한 의구심을 해소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당신의 생각 하나하나가 시럽에 젖어 유리 가루 범벅이 된 듯한 느낌이 들 겁니다." 그녀는 그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다. "그리고 당신이 따님을 간절히 생각할수록 그 생각들은 당신의 마음속의 드러난 상처에 더욱 피가 나도록 비벼댈 겁니다. 당신의 머릿속에서는 적어도 두 목소리가 동시에 외칩니다. 한 목소리는 당신의 따님이 도움이 필요했을 때 당신이 왜 그 자리에 있지 않았느냐고, 어째서 그 징후를 알아보지 못했느냐고 외치죠. 또 다른 목소리는 당신의 삶의 의미가 사라져버린 마당에 무슨 권리로 손을 놓고 여기에 우두커니 앉아 있느냐고 비난에 차서 묻습니다..........."
이야기는 크게 세 가지 갈래로 진행된다. 실종되었다가 다시 나타난 아이를 통해 사라진 자신의 가족에 대한 단서를 수사하는 마르틴과 딸이 자살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휩싸인 율리아는 선장과 함께 수색에 나서고, 누군가에 의해 특정 공간에 갇힌 채 살면서 자신이 저지른 가장 큰 잘못을 고백해야만 하는 여자가 등장한 다. 같은 시간, 다른 장소에서 벌어지는 여러 인물들의 이야기는 크루즈선이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밀도 있는 스토리를 차곡차곡 쌓아간다.

무엇보다 제바스티안 피체크의 작품이 주는 가장 큰 재미는 무엇보다 '예측할 수 없음'에 있다. 그동안 만나왔던 전작들에서도 그랬지만, 두툼한 페이지를 숨쉴 틈 없이 달려가 범인이 밝혀지고 난 다음에도 해결과 해소의 안도가 아니라, 아직 남아 있는, 그 어떤 예정된 것에 대한 불안감, 그러나 전혀 상상할 수 없는 그것에 대한 기대감까지 차오르게 만들어주는 이야기. 치밀하게 계산된 설계도를 따라 가다 보면, 결국 지나쳐 온 모두가 복선이 되어 만들어내는 무시무시한 반전도 재미있지만, 그 모든 것의 결론이 난 뒤에도 남아 있는 주인공에게 벌어질 일들에 대한 우려는 너무도 오싹하고, 충격적이고, 당황스럽다. 그렇게 항상 여운(?)을 남기는 그의 작품은 사이코 스릴러라는 장르에 걸맞게 파격적이고, 끔찍하기도 하지만, 이상하게도 감정적인 부분들이 꽤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는 사이코 스릴러, 심리 스릴러의 대가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본인은 가족 이야기를 쓰고 있다고 말한다. 그가 이렇게 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농담으로 받아들인다고는 하지만, 선한 것이든 악한 것이든 모든 것은 가족들 속에 근원이 들어 있다고 생각하는 그는 여전히 그것이 맞다고 생각하고 있으니 말이다.
우리는 안타깝게도 언젠가 후회하게 될 그 순간에 충분히 귀 기울이지 못하곤 한다. 누군가의 죽음에 직면해서야 다시는 그런 실수를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지만, 이미 지나간 일들을 되돌릴 수는 없다. 이미 나쁜 결말이 정해져 있는 상태에서, 내가 그때 왼쪽으로 가지 말고, 오른쪽으로 갔더라면 이라는 선택에 대한 후회, 그때 나를 기다리고 있을 미래를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결정한 행동으로 인한 파급효과들은 어쩔 수 없이 비극에 이르게 된다. 그렇게 다시는 되돌릴 수 없지만, 다시 한번 시간의 끝을 잡고 돌아가고 싶은 회한의 선택들. 하지만 과거로 되돌아간다고 한들, 나라는 인간 자체가 변하지 않는 한, 결국 내가 하는 선택은 같을 수밖에 없다는 걸 우리는 미처 깨닫지 못한다. 우리가 생에서 하는 수많은 결정들로 인해, 결국 우리의 미래가 달라지는 것처럼, 미리 조심하지 못하고 물이 엎질러진 다음에야 우리는 수습하느라 정신이 없다. 늘 그렇지 않은가. 그 가슴 아픈 회한의 순간으로 피체크는 우리를 초대한다. 이것은 당신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