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생긴 여자
마리아피아 벨라디아노 지음, 윤병언 옮김 / 비채 / 2016년 3월
평점 :
절판


얼마 전에 아이를 데리고 외출을 했다가 기저귀를 갈기 위해 수유실에 들른 적이 있다. 휴일이라 수유실에 아이와 엄마들로 북적북적했는데, 너무도 요란하게 자신의 아이에게 눈을 맞추며 이야기를 하는 엄마가 있어 눈길을 끌었다. 자연스레 엄마가 그렇게 사랑스럽게 쳐다보며 다소 오글거리는 혀 짧은 소리로 이야기를 하는 아이에게 먼저 시선이 갔는데, 순간 너무 놀라 움찔 했을 정도로 아이의 얼굴이 평범하지 않았다. 아직 돌도 채 지나지 않아 보이는 어린 아기였는데, 얼굴이 단순히 못생겼다고 표현하기도 뭔가 모자랄 만큼 특이했던 것이다. 웬만하면 아기들은 다 예뻐 보이게 마련인데 내가 그렇게 당황했을 정도면 어느 정도 아마 대충 짐작할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 엄마는 자신의 아기가 사랑스러워 죽겠다는 표정이었으니, 잠시나마 아이를 객관적인 시선으로 평가한 내가 미안할 정도였다. 역시 모성애란 이런 거 아니겠는가. 사실 자신의 아이를 객관적인 시각으로 판단할 수 있는 부모가 세상에 어디 있겠냐 말이다. 다른 사람 눈에는 두꺼비 같아 보여도 내 눈에는 토끼 같은 것이 자신의 자식일 테니 말이다.

그런데, 여기 정말 이상한 부모를 만났다. 아이가 단지 못생겼다는 이유 만으로 아버지는 딸을 외면하고, 어머니는 우울증에 걸린다. 대체 이 아이, 이 가족에게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까.

나는 못생겼다. 진짜로 못생겼다.

그렇다고 불구는 아니어서 남들이 나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아니다. 내 몸에 붙어 있어야 할 것은 다 붙어 있다. 하지만 조금만 자세히 살펴보면 영락없이 어딘가는 기준치보다 조금 더 짧거나 길다. 그것을 일일이 열거하는 건 의미도 없을뿐더러 부질없는 짓이다.

......나는 그렇게 태어났다. '어린아이처럼 예쁘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나는 아니다. 내 외모는 인간이란 종에 대한 하나의 모욕이고 무엇보다도 여성에 대한 모욕이다.

마리아피아 벨라디아노의 <못생긴 여자>에 등장하는 레베카는 태어난 순간부터 부모의 외면과 주위 사람들의 걱정과 우려를 넘어서 험담을 들어야 했다. 게다가 그녀의 아버지는 상당한 미남에, 어머니 또한 한때 상당한 미인이었다니 주변에서 이해가 안 갈만도 하고 말이다. 그녀의 엄마가 그녀를 낳고 처음 대면한 순간에 대한 묘사는 처절하게 슬프다. 엄마는 '그저 자신이 저지른 일생일대의 실수를, 자신이 만들어낸 찌그러진 머리와 잔인한 얼굴 윤곽을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었다. 아이를 안아보려 하지도 않았고, 그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느 누구도 감히 젖을 먹여보라는 말 한마디조차 건넬 수 없는 그런 상황이었던 것이다. 아무리 추악하고 끔찍하게 생겼더라고 하더라도, 세상 모든 엄마에게 자신의 아기는 천사처럼 보여야 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이 책에 묘사된 상황 만으로도 나는 어쩐지 레베카에게 앞으로 펼쳐질 일들이 그려져 막막하기만 했다. 레베카의 부모는 아이를 사람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기에, 유치원에도 보내지 않고 아이를 집에서만 지내도록 한다. 아빠와 이란성 쌍둥이인 에르미니아 고모와 두 살 때부터 그녀를 돌보게 된 보모 마달레나가 그녀가 상대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사람이었던 셈이다. 엄마는 집에 있었지만 거의 그녀에게 말하지도, 챙겨주지도 않았고, 산부인과 의사였던 아빠는 늦게나 집에 돌아왔으니 말이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자신이 무지무지하게 못생겼다는 사실로 얼룩진 존재라는 걸 깨닫게 된다는 건 대체 어떤 기분일까. 태어날 때부터 못생겼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이야기할 줄 모르는 채로 살아간다는 건 대체 어떤 걸까. '못생긴 여자에게 삶이란 세상의 눈썹 끝으로 밀려나 언제나 뒤꿈치를 들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라는 레베카의 체념은 안타깝기 그지없다. 겉모습만으로 사람을 평가하고 외면하고 차별하는 사회는 극중에서뿐만 아니라 2016년을 살고 있는 우리네 현실과 별 다를 바가 없다.  이렇게 우울하고, 어찌 보면 결말이 뻔한 소재를 가지고 있는 이 작품은 이상하게 '아름답다'. 바로 주인공이 '못생긴 외모'로 고통 받고 있는 내용인데도 말이다. 아름답고 우아한 문장 때문일 수도, 주인공이 치는 피아노 선율처럼 리듬이 있는 구성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전반적으로 작품에 깔려 있는 '담담한 희망'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 희망이란 것이 못생긴 여자도 외면보다 내면이 훨씬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본 누군가에 의해 결국 행복하게 살았다는 식의 뻔한 해피 엔딩이 아니라, 외모로 자신을 외면하는 세상과 사람들에 절망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담담하고도 차분하게 자신만의 삶을 살아가려고 하는 한 여성의 모습을 그려내면서 피어나는 것이라 더 은밀하고, 따뜻하고, 아름답게 느껴진다.

그래서 처음 시작부터 우울하고 참담한 슬픔으로 시작해, 각종 편견과 불행한 고통으로 점철된 한 여성의 삶을 그리고 있는 이 이야기가 전혀 쓸쓸하거나 어둡게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나는 신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주장하고 싶지 않다. 신이 정말로 존재하는지 아닌지 나는 모른다. 또 그가 선한 존재인지 전능한 존재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만약 신이 존재한다면, 그는 이따금 지독히도 산만하다는 것이다.

 

이 작품은 신인 작가만을 대상으로 하는 이탈로 칼비노상의 2010년 수상작이자, 이탈리아 최고 권위 문학상인 스트레가상의 2011년 최종후보작이다. 그러니까 마리아피아 벨라디아노라는 작가는 자신의 데뷔작을 이렇게 황홀하게 그려낸 것이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나는 얼마 전에 읽었던 프레드 바르가스의 <트라이던트>가 문득 떠올랐다. 그 작품에서 외모지상주의를 한 방에 날려버리는 멋진 캐릭터를 만났었는데, 바로 여형사 르탕쿠르이다. 그녀는 키 169센티미터, 몸무게가 무려 110킬로그램이나 되는, 마치 미켈란젤로가 그렸을 법한 우람한 체구를 자랑하는 여성이다. 그래서 남자들은 어디를 가나 보릿자루만도 못한 그녀를 쳐다보지도 않고, 이내 그 존재를 잊어버리곤 한다. 하지만 그녀는 사람들에게 무시 당한다고 불쾌해하거나, 관심을 받지 못하는 것을 서운해하기는커녕, 그것을 자신만이 누릴 수 있는 일종의 특권으로 바꾸어 버린다. 그런 상황에서 초연함을 가장한 채 쭈그리고 앉아 있으면, 전혀 들키지 않고 상대방을 샅샅이 관찰할 수 있다는 거다. 그리고 그녀는 그 전략 덕분에 이제까지 수사를 진행할 때 상당한 수확을 거두어 왔다고 한다. 자신의 에너지를 불가시성으로 변환시킬 수 있는 그 능력이야말로 외모를 넘어서서 그녀를 매력적으로 만드는 게 아닐까 싶다. 물론 그녀를 처음 본 사람들에게는 외모가 제일 먼저 눈에 띄겠지만, 그들의 반응과 상관없이 그녀는 어디에서든 적응력이 뛰어나며, 지적이고 전략적인 사고와 행정 처리, 사격 솜씨, 몸싸움까지 우수한 강력계 형사이다. 나는 그녀를 보면서 외모지상주의를 넘어 자신 만의 색깔을 확실하게 구축한 점이 매우 놀라웠는데, 마리아피아 벨라디아노의 주인공 역시 색깔은 다르지만 그녀와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단점을 무기로 내세울 수 있다는 건 정말 어마어마한 용기와 자신감이 필요한 일이니 말이다.

사실 사회 전반에 걸쳐있는 외모지상주의의 가장 큰 피해자는 대부분 남성보다는 여성이다. 외모가 곧 경쟁력이고 힘이며, 누군 가에게는 생존과 직결이 될 정도로 절대적인 부분이기도 하다. 우리는 정상체중의 사람도 체중 강박증에 시달리게 되는 외모강박시대, 외모불안시대에 살고 있으니 말이다. 게다가 외모를 중시하는 가부장적 이데올로기, TV등 대중매체의 이미지 중시 현상 등 외모불안을 조장하는 것들은 이미 사방에 널려 있다. 하지만, 그런 환경 속에서도 누군가는 바로 그 외모 때문에 상처받으면서도 살아가야만 한다. 이 땅의 모든 외모지상주의의 피해자들에게 마리아피아 벨라디아노의 이 책을 건네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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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P 2016-06-08 14: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이 된 것을 보고 들어왔습니다. 역시 당선작이 될 만한 글입니다. 너무 잘 읽었습니다.

외모지상주의 이건 진짜 당해보지 않으면 모르는 것 같아요. 사람들에게 자신이 선택할 수 없이 가지고 세상으로 나온 것 때문에 차별을 받아야 한다는 것 만큼 서러운 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신데로 여자들에게 정말 혹독한 것 같아요. 정말 외모를 따지지 않고 누구에게나 인간적인 사람이 되고 싶어요. 외모 때문에 차별 받아서 생긴 장점은 누구에게나 친절할 수 있는 성품이 조금이나마 갖추어진 것 같아요. 내가 이런 대접을 받았을 때 그 모멸감을 누구에게는 주고 싶지 않아요. 마치 내가 칼에 찔려서 그 아픔을 아는데 누군가를 내가 찌른다 생각하면 소름끼쳐요.

이 책 맘에 드네요 ㅎ

피오나 2016-06-09 15:42   좋아요 0 | URL
ㅎㅎ 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외모 지상주의는 생각보다 너무 주위에 만연해있어서 사람들이 거기에 익숙해져버린 것 같기도 해서 더 무서운것 같아요. 이 책을 통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더 많은 사람들이 이에 관해 생각해 볼 수 있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