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녀굴 - 영화 [퇴마 : 무녀굴] 원작 소설 밀리언셀러 클럽 - 한국편 17
신진오 지음 / 황금가지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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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제주도의 김녕사굴에서 시작한다. 산악자전거 동호회 매드맥스의 일곱 멤버가 제주도 라이딩을 하고 유명한 사굴을 탐험해보기로 한 것이다. 동굴의 안으로 들어갈수록 어둠은 짙어지고, 공간은 좁아진다. 그리고 어느 정도 들어갔을 무렵 어디선가 방울 소리가 들려온다. 한두 개가 아닌, 여러 개의 방울이 동시에 부딪치면서 내는 소리가. 그리고 갑자기 대원들 모두 돌처럼 굳어버린 채 가만히 서서 동굴 안쪽만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다. 사람들의 몸은 마네킹처럼 딱딱하게 경직되어 있고, 유일한 홍일점인 희진만이 동굴 안에서 벌어지는 이상한 일에 당황하고 있다. 차츠랑- 차츠랑- 차츠랑- 방울 소리는 점점 증폭되듯 크게 들려오고,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도망치고 싶었지만 어찌 된 일인지 두 다리는 꿈쩍도 하지 않고, 그리고 순식간에 어둠이 모든 것을 먹어 치운다.

그렇게 매드맥스의 멤버들이 쥐도 새도 모르게 실종되는 사건이 일어나고 9개월 후. 진명은 대학 선배인 주열의 빈소를 찾아간다. 진명은 레지던트 과정을 하다 중간에 그만두고, 현재는 퇴마사로 일하고 있다. 귀신을 쫓거나 귀신 들린 사람들을 치료하는 일이다. 진명은 병원에 있는 동창에게 부탁해 영안실에서 주열을 만난다. 그리고 주열의 혼령이 자신에게 무언가 말을 하고 싶어하는 걸 보고, 영력을 이용해 사고 당시의 기억을 들여다보기로 한다. 그런데, 교통사고가 난 원인은 다름아닌 무녀 귀신 때문이었던 거다. 무당 귀신은 정말 흔치 않은 존재인데, 귀신의 저주를 받은 건지 진명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주열은 그렇게 진명에게 자신의 아내와 딸을 부탁한다는 말을 남기고, 이후 주열의 아내 세연의 주변에서 악몽 같은 일이 시작된다.

너무 무서웠지만 본능은 그만 그녀를 되돌아보게 했다. 그것이 바로 등 뒤에 있었다. 고개를 숙인 채 자신을 향해 한 쪽 팔을 쭉 뻗고서.....

"꺄악!"

비명은 방 안에서 울렸다.

제주 김녕사굴에서 실종된 매드맥스 회원들 중에 6개월만에 희진이 살아 돌아오지만 상태가 좋지 못하고, 퇴마사를 취재하고 싶었던 케이블 티비의 박혜인과 병원의 관계자들은 진명을 부른다. 아무래도 희진에게 빙의된 귀신이 무당인 것처럼 보이고, 희진이 하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이 꼭 무당이 굿을 할 때 하는 말 같았기 때문이다. 희진의 담당 의사가 은사였기에 진명은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퇴마 의식을 진행하기로 한다. 그리고 시작되는 퇴마 의식 장면에 대한 묘사는 가히 무시무시하다. 희진을 조종하고 있는 원혼의 힘은 매우 강력해 결구 수사 담당이던 형사와 검사를 죽게 만들고, 진명에게도 상처를 입힌다. 그리고 그 원혼이 금주에 대해 말하는 걸 듣게 되는 진명은 당황한다.

 

과연 매드맥스 회원들을 죽게 만든 원혼과 금주의 주변에서 심상치 않은 일들을 벌이는 원혼은대체 무슨 목적인 걸까. 영화로 치자면 한 씬으로 끝낼 장면이지만, 책에 묘사된 꽤 많은 페이지의 퇴마 의식은 굉장하다. 소름 끼치게 무섭기도 하지만, 그것 외에도 매우 흡입력 있게 독자들을 끌어들이는 힘이 있어 눈을 떼지 못하고 그 장면에 몰입할 수 있었다.

"나를 방해하면 누구든 가만 안 둬. 그게 너라도..... , 잊을 뻔했네. 금주한테는 내가 곧 찾아간다고 전해줄래?"

그녀는 실실 웃었다. 진명은 머리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같은 영가일 거라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직접 그녀의 이름을 듣게 될 줄이야.

"왜 하필 그 사람이지? 말해. 대체 무슨 관계야!"

이 작품은 제주의 김녕사굴 설화를 바탕으로 쓰였다고 한다. 제주의 한 동굴에 은거하던 커다란 구렁이에게 열다섯 살이 된 처녀를 제물로 바치다, 신임 제주 판관이 구렁이를 죽였으나 돌아오는 길에 변을 당했다는 설화이다. 설화를 바탕으로 매우 현대적인 공포 소설이 만들어졌는데, 그 중심에 '퇴마사'라는 이색적인 캐릭터가 있다. 한때 이우혁의 <퇴마록>에 빠졌던 기억이 있지만, 그 이후로는 퇴마 관련된 소설도, 영화도 거의 보지 못했던 터라 우선 소재에서부터 독특함을 발산한다. 아마도 그래서 이 작품을 원작으로 영화가 만들어진 것이겠지만 말이다. 김휘 감독의 영화 <퇴마:무녀굴>은 지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의 폐막작으로 먼저 상영이 되기도 했는데, 아직 개봉전이라 영화에 대한 기대치가 꽤 높은 걸로 알고 있다. 예고편으로 봤을 때도 꽤나 섬뜩하고 무섭게 보이긴 했다.

워낙 공포, 추리, 미스터리 분야의 작품들을 많이 접해와서 웬만큼의 강도가 아니면 이제 꿈쩍도 하지 않는 나이건만, 이 작품은 일부러 낮에만 읽었을 정도로 오싹했다. 밤에 혼자 방에 앉아서 읽는다면 등골이 서늘해질 만한 대목이 군데군데 눈에 띄어 오랜만에 제대로 된 공포를 느낄 수 있었다. 영화도 책 만큼의 완성도를 보일 수 있기를 바라고, 그래도 올 여름 무더위를 쫓아버리기엔 공포 소설이 제격이라는 걸 잊지 말자. 이 책을 읽다보면 에어컨이 필요없을 정도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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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5-08-01 16: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 잘읽었습니다.전 영상으로는 약한데, 활자에는 강해요. 한창때 이우혁 퇴마록 시리즈도 두루 섭렵했었는데 말이죠.추억을 떠올릴수 있어서 잠시 미소지었습니다~^^

피오나 2015-08-01 17:55   좋아요 0 | URL
공포는 영상보다는 활자화된 것이 훨씬 더 무서운 것 같아요. 양철나무꾼님은 대단하신데요^^

cyrus 2015-08-01 2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이 책, 새벽에 읽었는데 세 시간 만에 다 읽었어요. 마침 그 시간에 강정호 출전 메이저리그 경기를 중계하고 있었어요. 중계를 보면서 책을 읽었는데, 강정호가 적시타 치는 장면을 놓칠 정도로 이야기 몰입에 푹 빠졌어요. 중계방송 안 보고 제 방에 혼자서 읽었다면 무서운 기분이 들었을 겁니다. 새벽에 책 읽을 때 너무 조용해서 좋긴 한데, 가끔 무서울 때가 있어요. ^^

피오나 2015-08-01 20:52   좋아요 0 | URL
하핫..야구 중계방송 보면서 새벽에 읽는 것 괜찮겠네요ㅎㅎ 이 책 몰입도가 좋더라구요. 저도 시간가는 줄 모르고 페이지가 넘어갔어요 ㅎㅎ 저는 강정호 출전 경기 새벽꺼는 맨날 놓쳐요. 아침에 할때만 겨우 봅니다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