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읽어주는 예수
고진하 지음 / 비채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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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심에 가득 차, 가던 길 멈춰 서서

잠시 주위를 둘러볼 틈도 없다면,

얼마나 슬픈 인생일까?

햇빛 눈부신 한낮, 밤하늘처럼

별들 반짝이는 강물을 바라볼 틈도 없다면

                                        -윌리엄 데이비스 <가던 길 멈춰 서서> 중에서

특별한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은 나 같은 독자라면 '예수'가 시를 읽어준다고? 하며 반감부터 가질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재미있게도 이 책은 별다른 거부감 없이 술술 읽힌다. 서른여섯 편의 시와 산문들 각각에 시인의 해석이 에세이처럼 덧붙여져 있는데, 컨셉이 예수의 목소리로 들려주는 시일 뿐이지 시 자체가 종교적인 내용을 설파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이 책 덕분에 참으로 오랜만에 ''를 읽게 되었는데, 복잡한 플롯과 긴 서사를 사랑하기에 소설만 주구장창 읽어대다, 이렇게 만나게 되는 ''는 뭐랄까, 마음의 쉼표를 잠시 찍어주는 것 같은 여유로움을 안겨 주었다.

사실 하루 하루 너무 바쁘게 보내다 보니, 뒤를 돌아볼 여유도, 내 곁을 지나는 바람도 느낄 겨를이 없이 올해를 맞이했고, 어느새 2월도 내일이면 마지막 날이다. 새해가 시작되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두 달이나 지나버리고 나니, 그저 두 달이라는 시간을 통째로 잃어버린 것 같은 기분 마저 들었다. 윌리엄 데이비스의 <가던 길 멈춰 서서>라는 시에서는 '한가로이 오랫동안 바라볼 틈도 없다면' '별들 반짝이는 강물을 바라볼 틈도 없다면' '미소가 입술로 번지는 것을 기다릴 틈도 없다면' 그렇다면 그 인생은 불쌍한 인생이라고 말한다. 가던 길 멈춰서 잠시 주위를 둘러보고, 그저 바라볼 틈마저 없다면 대체 무엇을 느끼고, 생각하며 사는 것일까. 어쩐지 요즘의 내 삶을 그대로 보여주는 시 같아서 뜨끔하기도 하면서, 서글퍼진다. 저자는 이 시에서 ''에 주목한다. 생명이 싹을 튀우는 곳도, 사랑이 자라나는 곳도 바로 틈이라고. 감옥의 독방에 갇혀 절망한 어느 시인이 우연히 창살 사이로 갈라진 시멘트 틈을 비집고 나온 작은 풀꽃을 보고 살아갈 이유를 발견했다는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고 말이다. 그의 말처럼 우주만물은 틈 없이 존재할 수 없는 건지도 모른다. 나의 일상에도 바로 이런 ''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긴 하다.

 

그대가 정말 불행할 때

세상에서 그대가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을 믿어라

그대가 다른 사람의 고통을 덜어줄 수 있는 한

삶은 헛되지 않으리라

행복의 한쪽 문이 닫히면 다른 쪽 문이 열린다

그러나 흔히 우리는 닫혀진 문을 오랫동안 보기 때문에

우리를 위해 열려 있는 문을 보지 못한다.

                                                 -헬렌 켈러 <행복의 문> 중에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소중한 것은 보이거나 만져지지 않고, 단지 가슴으로만 느낄 수 있다고 말하는 헬렌 켈러의 시는 그저 읽는 것만으로도 위안을 준다. '나는 눈과 귀와 혀를 빼앗겼지만 내 영혼을 잃지 않았기에 그 모든 것을 가진 것이나 마찬가지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헬렌 켈러의 강인한 정신력과 긍정적인 마음을 본받고 싶다. 사실 같은 상황도 마음 먹기에 따라 천국이 될 수도, 지옥이 될 수도 있지 않은가. '마음'이라는 것이 생각만큼 쉽게 제어가 되지 않아서 문제이지,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중심을 잡을 수만 있다면 뭐든 극복하지 못할 것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저자는 눈도 캄캄, 귀도 캄캄, 목소리도 캄캄하게 닫힌 이의 눈물겨운 고백에 가슴이 아리고 먹먹해진다고 쓰고 있다. 고통의 뒷맛이 없으면 진정한 삶의 기쁨이나 행복은 맛볼 수 없다는 것을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봐도 그렇다고 말하면서 말이다. 저자의 말처럼 몸이 아파 보지 않은 사람은 건강의 소중함을 모를 수밖에 없다. 잃어버리지 않은 사람은 그것은 소중함을 모른 체 허투루 대하는 경우가 많은 것처럼, 우리는 상실을 경험해봐야 그것의 중요함을 깨닫는다. 우리 모두 그저 인간이라는 나약한 존재이기에 어쩔 수가 없는 일이겠지만 말이다. 그럴 수록 이런 시가 필요한 것 같다. 구구절절 설명하거나, 변명하지도 않고, 단어 몇 개 만으로도 심금을 울릴 수 있으니까.

성경을 제대로 읽어 본 적도, 예수의 가르침이 드러난 글을 읽어본 적도 없기에, 어쩌면 내가 이 책을 저자의 의도대로 제대로 읽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언제나 책은 독자의 오독에서 자유롭지 못한 운명 아닌가. 어떻게 읽든, 어떻게 해석하든 읽고, 느끼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것 아닌가 싶다. 게다가 나는 오랜만에 ''를 읽게 되어 괜히 들뜨고 설레이는 마음을 감출 수가 없더라. '시는 새로운 독자와의 만남으로 늘 완전해지려고 하는, 언제나 미완성인 작품이다'는 시인 옥타비오 파스의 말처럼 독자 여러분들이 이 글을 완성해달라는 저자의 말은 이런 나의 마음에 더욱 힘을 실어주기도 하고 말이다. 어쩌면 종교를 가지고 있는 독자들이라면 "예수는 시인이다. 은유의 천재다."라는 저자의 말에 동의하며 더욱 감탄할 지도 모르겠다. 암튼, 비종교인인 내가 읽기에도 참 좋은 책이었고, 종교인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선물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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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2-27 17: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성서가 멋진 은유로 이루어진 표현이 많아서 무교도 읽으면 좋은 책이에요. ^^

피오나 2015-02-27 17:37   좋아요 0 | URL
아. 그런가요? ㅎㅎ 저도 선물받아서 한 권 가지고 있긴 한데, 한번 읽어봐야겠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