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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스완그린
데이비드 미첼 지음, 송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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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스완그린은 런던도 아니고 리치먼드도 아니고, 다른 그 어떤 곳도 아니기 때문이야. 블랙스완그린은 비밀을 숨길 데가 없어. 네가 로저 블레이크네 문을 두드리는 날에는 우리 모두 그 사실을 알게 될 거야.

 

영국의 작고 보수적인 시골 마을에 블랙스완그린이라는 이름의 호수가 있다. 이름과 달리 실제 백조가 있지는 않은 호수처럼 이곳은 어딘지 삭막하고, 폐쇄적인 마을이다. 이곳에 엄마, 아빠, 누나와 함께 살고 있는 열세 살 소년이 있다. 그는 친구들 몰래 교구 잡지에 시를 쓰고 있고, 남들에게 숨기고 싶은 말더듬 증을 가지고 있다. 지루하고, 조용한 동네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부부싸움이 벌어지는 집안 속에서 제이슨은 어른들의 위선이나 아이들 세계의 위계질서, 행동법칙, 따돌림 등을 벗어나 또 다른 세계를 꿈꾼다. 남루한 현실을 벗어나 꿈을 꾸는 소년을 그린 이 작품을 읽다 보면, 자연스레 영화 <빌리엘리어트>가 떠오른다. 누구나 기억하는 그 장면! 발그레하게 양 볼을 붉힌 소년이 마치 천국에라도 닿을 듯이 공중으로 솟구치는 아름다운 모습말이다. 황홀한 그 순간이 끝나고 나면 소년의 머리 위에는 지저분한 천장과 발 밑의 낡은 침대만 남지만, 팍팍한 현실을 벗어나 꿈을 꾸는 것으로 소년은 의젓하게 비루한 삶을 참아낸다. 꿈이란 바로 그런 것이다. 현실을 버티게 해 주는 달콤한 사탕 같은 것 말이다.

 

 

 

 

빌리가 엄마를 잃고 무력한 아버지와 무뚝뚝한 형, 치매를 앓는 할머니를 부축하며 살아가야 가면서도 결코 변명하거나 울지 않는 조그만 현실주의자였던 것처럼, 이 작품의 제이슨 또한 어딘지 그런 씩씩한 모습이 있다. 물론 그는 남몰래 자신의 말더듬증을 숨기려 애쓰고, 잘 나가는 그룹에 속해있지도, 따돌림을 당하는 무리에 속해 있지도 않은 어중간한 상태였지만, 그 안에서 자신의 모습을 지키려 애쓴다. 자신이 시를 쓰는 것을 감추려고, 말더듬증을 들키지 않으려고 애쓰는 동안, 그것들을 모두 시로 써내려가는 것이다. 사실 눈에 띄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제일 어려운 일이다. 그렇게 이곳 저곳의 눈치를 보다 보니, 감수성 풍부하고 예민한 그는 다른 이들에 비해서 날카로운 관찰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그의 시선으로 진행되는 이야기는 제이슨의 내면적인 성장도, 친구들의 무모한 행동도, 어른들의 이기적인 모습도 예리하게 읽어내고 있다. 그 속에서 판타지는 현실의 갈피에 슬쩍 섞여 들며 초라한 마을 어딘가로 살그머니 내려앉는다. 그래서 빌리가 허름한 담벼락을 따라 달리고 도약하는 장면만큼이나, 제이슨이 시를 배우고 쓰는 모습은 설레임을 느끼게 해준다.

 

 

숨은 계단에 발이 걸려 자꾸 넘어지고 넘어지고 또 넘어지다 보면, 마침내 깨닫게 된다. 저 계단을 조심해야 해! 만약 우리가 너무 이기적이거나, 아니면 너무 예 주인님, 아니요 주인님, 가방 세 개 다 찼습니다 주인님 하거나, 아니면 다른 어떤 식으로 행동하더라도, 그것이 바로 숨은 계단이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문제가 다 숨은 계단이다. 우리가 영원히 자기 잘못을 알아차리지 못한 결과로 고통 받게 되거나, 아니면 언젠가 잘못을 깨닫고 고치게 되거나, 둘 중 하나다. 우스운 건, 일단 머릿속에 그 숨은 계단에 대해 새겨놓고 다시 자, 인생이 그래도 그렇게까지 똥통은 아니야 하고 생각한 바로 다음 순간 꽝! 하고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또 다른 숨은 계단에 걸린다는 것이다.

항상 그게 다가 아니다.

 

 

 

데이비드 미첼은 <블랙스완그린>의 배경이 되는 우스터셔 주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그리고 미첼 또한 어린 시절에 말더듬증을 겪어 언어치료를 받았다고 하니, 문학적인 감성이 풍부한 제이슨의 스토리가 작가의 자전적인 이야기에서 기인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가 전작들에 비해 덜 복잡한 스토리를 구성한 것도 바로 자전적인 소설이라 그런 게 아닐까 싶다. < 클라우드 아틀라스>에서 엄청난 등장 인물과 복잡한 관계가 있었다면, 이 작품에서는 우스터셔 주 블랙스완그린이라는 작은 마을 안에서 제한적으로 전개되고, 등장인물도, 시간적인 부분도 그리 길지 않은 시기로 진행되니 말이다. 지금은 유명한 작가가 된 데이비드 미첼을 어린 제이슨의 모습에 대비해서 보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 될 것이다.

제이슨이 결코 이해할 수 없었던 어른들의 세계는 결국 부모의 이혼으로 마무리된다. 이제 열네 살이 된 제이슨은 새로운 동네로 가서, 이혼하고 홀로서기를 해야하는 어머니와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는 빌리처럼 결코 울지 않는다. 누가가 결국에는 다 괜찮아질 거야, 라고 말하지만, 그는 이 상황이 별로 괜찮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왜냐하면 이게 끝이 아니기 때문이다. 전반적으로 잔잔하게 전개되는 일상의 이야기지만, 마지막 페이지까지 도달했을 때 어딘지 뭉클한 기분이 드는 것은 나만의 느낌이 아닐 것이다. 언젠가 제이슨이 더 높은 곳으로 비야 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가 믿기 때문이다. 고통과, 기쁨, 슬픔을 통과하면서 나이를 먹어가며 그도 언젠가는 어른이 될 것이다. 누구나 겪는 사춘기이지만, 각각의 모습은 너무나도 다르다. 그래서 더욱 가슴 아프고, 설레고, 뭉클한 작품이 아닐까 싶다.

 

. 개인적으로 <클라우드아틀라스>는 영화로만 보았던 터라, 데이비드 미첼의 책은 처음인데, 전작을 읽었던 이들이라면 등장인물들을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할 것 같다.

1.제이슨을 집요하게 괴롭히는 닐 브로즈 => <유령이 쓴 책> ‘에서 다국적 투자회사의  변호사

2.교구목사의 부인인 수다스럽고 오지랖 넓은 그웬돌린 벤딩크스 => <클라우드 아틀라스>에서 강제 요양원의 입주자 위원회 대표

3.제이슨에게 시와 인생을 가르쳐주는 마담 크롬린크 = > <클라우드 아틀라스>에서 작곡가 로버트 프로비셔의 스승의 딸로 등장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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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의딸 2014-02-26 1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담 크롬린크가 너무 매력적이여서 <클라우드 아틀라스>를 읽을 책으로 꼽아두었는데, 닐 브로즈가 다국적 투자회사의 변호사로 나왔다는 <유령이 쓴 책>도 궁금하네요.

피오나 2014-02-26 15:53   좋아요 0 | URL
데이비드 미첼의 작품을 이번에 처음 만난 거였던터라... 이 작품으로 인해 오히려 전작들이 더 궁금해졌어요. ㅋㅋ 저도 <유령이 쓴 책>부터 읽어보려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