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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만 분의 1의 우연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13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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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도로에서 야간에 차량 연쇄 추돌 사고가 일어난다. 알 수 없는 이유로 12톤 탑차 트럭이 넘어지고, 뒤따르던 승용차가 추돌해 불타고, 이어 오던 승용차를 들이받은 중형 승용차. 그 뒤를 추돌한 라이트 밴에 이어 다섯 번째 추돌 차량은 2톤짜리 트럭이다. 그 트럭은 피하려고 오른쪽으로 핸들을 꺾었지만 때마침 맞은편에서 달려오던 중용 승용차와 부딪쳐 모두 대파되고 만다. 무려 6명이 사망하고, 3명이 중상을 입은 엄청난 대형 참사이다.

 

 

상상만 해도 끔찍한 교통사고의 현장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마침 근방에 있던 아마추어 사진가가 그 순간을 카메라로 포착하게 된다. 그리고 <격돌>이라 이름 붙은 그 사진은 신문사 공모에 출품되고  ‘10만 분의 1의 우연이 만들어 낸 사진이라며 격찬을 받는다. 대부분의 사건 보도 사진은 사고가 발생 한 후 시간이 흐른 뒤, 차량의 잔해나 현장 검증을 하는 모습이나, 멀리서 구경하는 군중을 찍게 마련인데, 이 작품은 사고가 발생하는 그 순간의 섬뜩함을 담아 냈다는 것이다. 세 대의 차량에서 화염이 솟구치는 모습도 그렇거니와, 그 불길 속에 죽어가는 사람들이 있었을 것을 생각해보자면 정말 끔찍하기 짝이 없는 사진이다. 신문사에서는 이 생생한 사진을 통해 운전자들의 경계심을 다잡고 교통사고가 감소하는데 일조했으면 좋겠다고 의견을 밝히며, 이 사진에 연간 최고상을 수여한다. 하지만 그 사진은 독자들의 거센 항의가 빗발친다. 사진 찍을 시간에 사람을 구했어야 하지 않냐. 아무리 보도 사진이라고 하더라도 너무 끔찍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스마트 폰이 대중화되고, SNS가 보편화되면서 지하철에서 치한을 만나더라도 지나가다 누군가의 다툼을 목격하더라도 누구나 쉽게 사진이나 영상으로 촬영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굳이 야마가 처럼 사진 작가 지망생이 아니더라도 말이다. 그 순간이 아니면 절대 다시는 만날 수 없을 것 같은 특별한 일이 벌어진다거나, 참혹하지만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는 상황이라던가 그럴 때마다 우리는 별 생각 없이 스마트 폰을 꺼내 든다. 이렇게 평범한 사람도 이러니 야마가 처럼 카메라를 수시로 들고 다니는 사진에 관심이 많은 이라면 두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 일생일대의 순간이 누군가 죽어가는 상황이라면 어떻하겠는가. 셔터를 눌러 그 순간을 영원히 포착할 것인가, 아니면 죽어가는 타인을 돕기 위해 다 내팽개치고 달려갈 것인가. 사회파 미스터리의 거장답게 마쓰모토 세이초는 보도와 인명 중에 어느 것이 더 먼저인가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그러니까 보도사진은 완전히 우연성에 지배되기 때문에 작품의 우열에도 우연성이 크게 작용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우연히 만날 수 있는 결정적 순간이 아무 데나 굴러다니는 것은 아니죠. 때문에 공모하는 측은 일반인으로부터 좋은 보도사진 작품이 많이 모이지 않아 고민입니다.

 

실제로 참혹한 보도 사진이 사회적으로 논란이 있었던 일이 몇 건 있었기 때문에, 보도와 인명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걸로 끝냈다면 이 작품은 추리소설이 아니라 그냥 사회소설이 되었을 것이다.

 

야마가는 정말 1만 분의 1 아니, 10만 분의 1의 기막힌 기회를 단지 운이 좋게 만난 것일까.

 

헌데 야마가 씨, 셔터 찬스라는 건 그저 기다려야 하는 거군요.

이렇게 야마가 씨가 카메라를 준비해 놓은 것을 보니 그런 생각이 드네요. 만 분의 1, 0만 분의 1의 우연도 결국 기다리다가 만나는 것이라고요.

 

그 우연이라는 것이 예상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일어나야만 하는 우연, 즉 결국은 필연이었다면 어떨까. 진짜 우연이었다고 하더라도 무시무시한 사진인데, 그것이 우연이 아니었다면 대체 어떻게 될까. 아무 상관없는 여섯 명의 무고한 죽음이 단지 공모전 수상을 위한 이기심에서 비롯된 거였다면? 내가 피해자 가족 중의 한 사람이라고 생각해보자. 얼마나 억울하고 분할까. 그런데 심증은 가는데, 물증이 없다. 그럼 대체 그에게 어떻게 죄를 고백하게 만들 수 있을까.

 

이 작품은 처음부터 대놓고 범인을 밝히고 들어가는 작품이다. 의문의 추돌사고로 약혼녀를 잃은 남자의 분노. 엄청난 참사가 사고가 아니라 연출된 거였다면 그것은 무려 '살인'이었다는 얘기이다. 그는 차근차근 야마가에게 접근해 그의 범행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사회가 법이라는 제도를 통해 제대로 범인을 처벌하지 못할 때, 우리는 극중에서 벌어지는 개인적인 복수를 어느 정도는 인간적으로 이해하려고 한다. 힘없고 무력한 이들은 피해자이면서도 아무런 위로도 대가도 받지 못하는데, 가해자들은 적당한 처벌을 받고 나서 오히려 법적으로 보호를 받으면서 살아간다. 피해자의 유족들은 다시는 사건이 벌어진 날 이전으로 돌아가지 못하는데, 가해자들은 너무도 쉽게 다시 세상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이렇게 불합리한 것이 사회라는 걸 우리 모두 알고 있다. 그래서 개인적인 복수가 도덕적인 기준에 옳은 일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그들이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를 이해하기에 눈감아주고 싶은 것이다.

 

기적에 가까운 우연이냐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결국, 계획된 필연이냐의 문제의 문제로 진행된다. 스토리는 전혀 복잡하지 않고 술술 읽히는데, 가슴 한 켠이 묵직해지는 잔상이 오래 남는 작품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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