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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괴 1
히라노 게이치로 지음, 이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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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은 여러 개의 자아를 갖고 있지. 저쪽에서는 저런 나, 이쪽에서는 이런 나, 어제는 저런 나, 오늘은 이런 나. 누구랑 있을 때는 이렇고, 또 다른 누구랑 있을 때는 저렇고, 도저히 수습이 안 돼! 대학 친구와 고등학교 친구를 우연히 한꺼번에 마주치면 왠지 좀 어색하지 않나? 그야 각각 다른 캐릭터니까 당황스러울 수밖에! 연애도 마찬가지야!

 

여기, 너무도 다른 두 형제가 있다. 평범한 회사원인 동생 료스케는 결혼해서 세 살짜리 아들을 두고 있는데 반해, 엘리트 공무원인 형 다카시는 각기 다른 개성의 두 여자와 동시에 연애를 하면서 자유롭게 살고 있다.  미술대회 입상, 육상대회 우승, 명문대 합격 등 하는 일마다 뛰어났던 다카시 덕분에 어릴 때부터 항상 다카시의 동생으로 불렸던 료스케는 형에 대한 열등감을 남모르게 가지고 있다. 그는 자신의 개인사이트에 일기를 통해 아내도 모르게 자신의 그런 열등감이나 고민, 세상에 대한 불만 같은 것들을 웹사이트에 게재한다. 우연히 남편의 컴퓨터를 보게 된 아내 요시에는 항상 형을 자랑스러워하던 남편이었으므로, 정체 모를 거부감과 의아함을 느낀다. 그래서 그녀는 다카시에게 남편의 홈페이지와 일기에 쓰인 내용에 대해 상담을 한다. 한편, 이야기의 다른 축에선 집단 괴롭힘을 당하는 중학생 도모야가 살인에 대한 망상을 키우고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여학생 구가 아유미의 알몸 사진을 획득한 걸로 그녀를 협박(?)하고, 그걸 알아챈 그녀의 남자친구와 일행들에게 괴롭힘을 당한 것이다. 도모야가 어떤 잘못을 저질러도 지나치게 감싸는 엄마의 독특한 교육방식은 때로는 가혹하게 손찌검을 하기도 하는 등 주변 사람들이 보기에 이상한 점이 분명 많다. 그리고 도모야도 개인 웹사이트에 이에 관련된 일기를 기재하고, 그걸 본 누군가가 만나자고 연락이 온다. 도모야는 그렇게 악마를 만나게 된다.

 

다카시가 여자 친구인 지즈에게 하는 말처럼, 누구나 여러 개의 다른 자아를 가지고 있다. 이 말은 즉, 우리가 이중인격이라는 얘기가 아니다. 누구에게나 이런 면과 저런 면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는 것이고, 상황과 환경에 따라 표출되는 부분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다른 것이 당연하다는 얘기이다. 누군가는 나에게 '에너지가 넘친다'고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나에게 '조용하고 내성적이다'라고 말한다. 누군가는 나를 '리더십이고 활발한 사람'으로 기억하고, 다른 누군가는 내가 '그룹에서 나서지 않고 조용히 도움을 주는 사람'인 것처럼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모두가 ''라는 하나의 개인을 구성하고 있는 요소라는 것이다. 그래서 다카시는 남편이 있는 지즈를 만나는 것이 아무렇지 않고, 두 여자를 동시에 만나면서도 당당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부터 열까지 똑같은 인간이 있을 리 없으니까, 같은 부분이 있는 사람끼리 유대를 맺고, 또 나머지는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는 것이 당연하지 않느냐고. 이렇듯 다카시와 료스케는 가치관부터, 생활에 이르기까지 모두 완전히 다르다. 하지만 다사시는 똑똑하고 잘나가는 형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다카시는 동생과 그의 가족들을 아끼고 사랑한다(고 여겨진다).

 

사형, 혹은 전쟁- 문제는 단 하나. 살인이 나 자신에게 일어나느냐 일어나지 않느냐야. 그게 바로 평화라는 것의 기만적인 정체야! 평화가 평화로 느껴지려면 평화롭지 않은 현실이 불가결하지. 어디에 얼룩을 찍을 것인가? 어딘가 먼 곳, 나와 아무런 관계도 없는 곳에서 살인이 일어난다면 기가 막히게 이상적이지!

...자기 몸에 위험이 닥치지 않는 한. 인간은 여전히 어리석어.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지금 이곳의 평화는 인간적인 의미에서 고귀하다. -그게 본심이야.

 

'악마'라는 인간이 늘어놓는 장광설은 매우 아이러니하게도 그럴 듯하게 이해가 된다. 예를 들어 이런 식이다. 버스에 사람들이 타고 있을 때, 어떤 남자가 난데없이 칼을 빼 들고 사람들을 위협을 한다면 어떨까. <어쨌거나 그 남자가 빨리 버스에서 내려주길 간절히 바라겠지. 밖에서는 누구를 죽이든 상관없어>라고 그는 말을 한다. 사실 이게 버스 안에 있던 모두의 솔직한 바램일 것이다. 밖에서 그 남자가 누군가를 해친다면, 나는 버스 안에 있었던 덕분에 살았다고, 다행이라고 여기게 될 테니 말이다. 인간이란 존재가 꼭 이기적이어서, 자기 밖에 모르는 존재라서가 아니라도 말이다. 별다를 것 없는 평범한 일상의 한 순간에 갑자기 끼어든 살의는 무력한 대부분의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만들 테고, 서글프지만 살고 싶어하는 인간의 본능이란 이런 거니까 말이다. 물론 세계의 질서를 흐트리기 위한 악마의 살인을 동시다발적인 익명으로 활성화시키겠다는 의견은 과대망상 같지만, 그가 말하고 있는 인간의 심리에 대한 부분은 안타깝게도 대부분 맞는 말이다. <평화로운 대낮 횡단보도에서 넌 다른 사람들처럼 신호를 기다려. 빨간 불이지만 차는 없어. 그때 나중에 온 사람이 아무렇지 않게 신호를 무시하고 길을 건너기 시작해. 그건 뭐지? 그는 단순히 길을 건넌 게 아니야. 거기 있는 모두를 모욕하나 거라고! 남들이 참가하고 있는 데서 빠져나간다는 것은 그런 의미야> 한 사람이 궤도에서 이탈하게 되면, 반드시 그 뒤를 따르는 사람이 생기게 마련이다. 횡단보도에 대한 이야기는 놀라우리만치 현실성이 있다. 모두가 지켜야 하는 질서, 세계를 평화롭게 유지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규칙이라는 것은 이토록 연약한 것이다. 한 순간 어긋나기 시작하면, 기다렸다는 듯이 우르르 무너질 수밖에 없는 것이고, 악마는 바로 그런 점을 노린다.

 

오사카 출장을 가게된 료스케가 다카시를 만나기로 하고, 요시에는 두 사람이 이야기를 잘해서 문제점을 풀어나갈 거라고 기대한다. 다카시는 동생을 만나고 다음 날, 차를 빌려 지즈와 쿄토에서 밀월 여행을 즐긴다. 그리고 뉴스에서 전대미문의 토막살인사건에 대한 보도가 흘러나온다. 유체가 든 비닐봉지가 발견되고, 전국 각지에서 매스컴으로 범행 성명문이 보내지기 시작한 것이다. 때마침 요시에게서 연락이 온다. 오사카에 출장을 간뒤로 료스케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고. 연락도 되지 않는다고. 그이가 마지막으로 만난게 다카시 아니냐고. 그는 자신을 만나고 나서 홈페이지를 통해 알게된 닉네임 666으로 추정되는 남자를 료스케가 만났다고 말하지만, 요시에는 666이 다카시 아니었냐며 그를 미심쩍어한다. 이후 이후 유체의 신원이 료스케로 판명되고, 요시에의 발언에 의해 다카시가 경찰의 의심을 받게 된다. 처음부터 실제 범인이 악마라고 칭해지는 사이코패스라는 걸 보여주지만, 정작 진행되는 스토리는 형인 다카시를 의심하는 쪽으로 흘러간다.

 

악은 악일 뿐이야. -제아무리 그럴듯한 소리를 늘어놔도 그건 변하지 않아. 죄를 저지른 인간도 속으로는 모두 그렇게 생각해. 처음부터 근성이 썩어빠진 인간은 없으니까. 마음 같아서는 솔직하게 다 털어놓고 싶다. 그런데 계기가 없다. 아까처럼 막무가내로 몰아붙이는 바람에 화가 나서. 실은 말하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다고 나중에야 털어놓는 사람도 있어. 감옥 가는 게 무섭다. 그것도 본심이지. 솔직한 심정이야. 당신은 아닐지 모르지만..

 

2권의 중반 이후까지 형사들은 다카시가 범인일거라는 의심을 버리지 못하고, 요시에와 그의 어머니 또한 마찬가지이다. 물증은 없지만 조사하면 할수록 심증만 깊어지고, 정작 다카시는 자백을 하지 않으니 그에게서 어떻게든 자백을 받아내려고 하는 것이다. 그렇게 작가는 잘못된 심증이 얼마나 무섭게 수사에서 적용되는 요소인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료스케의 일기와 요시에의 증언에 의해 드러나는 사실은, 피해자가 형에게 자격지심과 강한 원망을 품고 있다고 하고, 게다가 형이 피해자의 아내와 불륜관계였다는 소문까지 흘러나온다. 다카시의 주변에 대해 조사를 하면, 공부를 잘했으나 되바라져서 어른을 얕보는 면이 있었다는 담임의 신랄한 평가가 있는가 하면, 초중학교 동창생과 이웃주민은 착하고, 인기가 있고, 리더였으며, 인사성이 밝았다고 정반대 증언을 한다. 그러니 조사하면 조사할수록 '왠지 수상쩍은' 느낌이 들지만, 그렇다고 정확한 물증은 없는 그런 상황인 것이다. 나중엔 경찰의 목적이 '다카시를 자백시키는 것'에 있는지, '살인사건의 진범을 잡는데 있는 것'인지 헷갈릴 정도로, 수사는 다카시를 범인으로 몰고 가는데 집중을 한다. 왜냐하면 인간은 정말로 진지하게, 누가 봐도 믿을 만한 얼굴로 태연히 거짓말을 하는 족속이니까 말이다. 따라서 이 경우에 심증은 수사에 방해가 되는 최악의 요소가 된다. 심증만으로는 어쩔 수 없지만, 심증은 점점 나쁜 쪽으로 굳어가고 있었으니 말이다.

 

이대로 가면 다카시가 정말 동생을 죽였다고 거짓 자백이라고 해야 하는 건가.. 싶을 정도가 되어서야 사건의 방향이 다른 쪽으로 선회하기 시작한다. 실제 범인이 자백을 하게 된 것이다. 사실 1권에서부터 이미 '악마'라는 존재가 살인에 대한 동기를 충분히 밝힌 상황이었으므로, 독자들 모두 누가 범인인줄 알고 있는 상황이었다. 문제는 극중 인물들이 그걸 언제 알아차리느냐,에 관한 문제였는데 사실 히라노 게이치로가 노린 것은 추리극으로서의 서스펜스가 아니었으므로, 범인은 긴 수사과정이 허무하게도 그냥, 자수를 한다. 문제는 범인 한 사람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전국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모방 범죄와 '악마'의 범행 성명문에 영향을 받은 살인 사건들인지도 모른다.

 

, 이제 작가는 독자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

 

단순한 질문을 하겠다! 너는 '행복'한가, 아닌가?

 

누군가 당신에게 지금 당신은 행복하냐고 물었을 때, 망설임 없이 행복하다고 대답할만한 사람이 몇이나 될까? 세상에 대한 불만도 없고, 현재의 상황에 만족하는 사람은 아마도 많지 않을 것이다. 히라노 게이치로의 이번 작품 <결괴>에서 '악마'라고 스스로를 칭하는 희대의 살인마는 가장 불행해 보이는 인간을 골라 그에게 질문을 던진다. "너는 '행복'한가, 아닌가?" 라고. '행복'하지 않다고 솔직하게 말하면 목숨만은 살려 주겠다고. 가짜 행복을 갈구하지 말고, 억지로 행복 하려고 애쓰지 말고, 스스로 불행하다는 걸 시인만 한다면 '행복'의 제국에서 열등민으로 살 수 있는 기회를 주겠다는 거였다. 그러나,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서 세상에 대한 악의와 증오를 토해내던, 가족과 스스로에 대한 불만으로 가득하던, 형에 대한 자격지심에 시달리며 불행해하던 료스케가 자신은 행복하다고 소리친다. 사실은 이 세상이 좋고, 나 자신에게도 만족한다고, 나는 이대로 '행복' 하다고, 다른 누구도 되고 싶지 않다고. 극중 '악마'로 지칭되는 사이코패스는 인터넷에서 세상의 '행복'한 표정을 죽 훑어보며 죽어 마땅한 인간을 물색하다 '스우의 중얼거림'이라는 개인 사이트에서 일기를 발견한다. 그곳을 통해 스스로 '행복'이라는 단어에 집요하게 매달리지만, 놀랍게도 전혀 '행복'하지 않은 료스케를 발견한 것이다. 그렇게 대책 없이 불행하지만, '행복'의 파시즘 세계에 계속 존재하기 위해 어떻게든 자신이 '행복'하다고 믿으려 했던 료스케는 무참하게 살해당한다.

 

전반적으로 이야기는 천천히 진행되는데, 가독성이 좋아 굉장히 빨리 읽힌다. 히라노 게이치로는 현대 사회에서 악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노골적으로 독자에게 던진다. 악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그 가장 밑바닥까지 깊이 들어가는 작가의 방식은 인간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잔인한 악마 성을 마주하게 만들어 독자들을 꼼짝 못하게 한다. 살인 사건이 벌어진 뒤로 이어지는 페이지마다 인물들의 장광설이 다소 현학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을 만큼 곳곳에 포진하고 있지만, 사실 진정한 이 작품의 재미는 바로 그런 부분에 있다. <악의 반대가 선이 아니고, 악의 반대는 행복이다>라는 히라노 게이치로의 견해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건 아니지만, 그가 독자들에게 던지는 깊이 있는 질문은 매우 흥미롭다. “행복해지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하는 현대사회의 시스템자체에 대해 말하고자 했던 의도가 작품에 얼마나 드러났느냐 보다는 이야기라는 매개체로서의 재미에 집중해도 좋을 것 같다. 그의 어떤 작품보다 술술 빨리 읽히지만, 분량은 매우 많고, 살인 사건이 발생하고 그걸 따라가는 형식이지만 주제는 매우 철학적이라 독자로서는 그저 재미있을 따름이다. 매번 그의 작품을 기다리는 이유이기도 하고 말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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