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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에서
김사과 지음 / 창비 / 2013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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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여기서 오해하지 마시길. 그의 영화를 싫어한다는 게 아니라, 단순히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에게 정이 안 간다는 얘기니깐. 그냥 나의 개인적인 취향이다. 솔직하다 못해 찌질하게 보일 정도로 자신의 속내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감정 표현도 싫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기는커녕 오로지 자신 밖에 모르는 개인적인 성격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러니까 같이 있으면 옆 사람을 불편하게 만드는 사람, 다음 행동이 어디로 튈지 너무 뻔히 보여서 오히려 당황스러운 사람이 싫다. 실제 현실에서 그런 인물들이 많다고 하더라도, 왜 우리가 '이야기' 속에서 조차 이런 인물들과 만나야 한단 말인가 싶은 것이다. 그래서 누가 봐도 속물인데 누구보다 고고한 척하는, 허세 돋는 행동만 하고 있으면서 정작 본인은 평범하게 살고 있다고 착각하며 살고 있는 인물들이 등장하는 이 작품이 나에겐 좀 버거웠다. 어쩔 수 없이 김사과의 작품을 읽는 내내 홍상수 감독의 영화 속 인물들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자연스레 주인공에게 감정 이입이 되지 않아 책의 진도가 정말 나가지 않았다. 두껍지도 않은 이 책을 끝까지 다 읽는데 며칠이 걸린 건지 모르겠다. 범상치 않은, 문제적 작가라는 평가를 듣는 김사과의 작품은 이번에 처음 만나는 건데, 첫 만남부터 이렇게 삐걱거리느라 작품을 온전히 이해한 건지도 사실 잘 모르겠다.

 

이야기는 맨해튼의 로어이스트사이드에 있는 오 층짜리 아파트의 옥상에서 시작한다. 건물 전체가 아버지의 소유인 매력적인 뉴요커 써머와 그녀의 남자친구 댄, 그리고 우리의 주인공 케이는 공연과 파티와 마약으로 이어지는 세련되고 근사한, 힙해 보이지만 속은 텅 비어있는 몇 달을 보낸다. 하지만 그렇게 반짝이는 한철은 케이가 서울로 돌아오면서 끝나버리고, 다시 현실로 돌아온 그녀에게 일상의 모든 것은 시시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왜 서울의 베이글은 이렇게 맛이 없어? 왜 서울의 커피는 이렇게 싱거워? 왜 서울에는 센트럴 파크 같은 게 없어? ? 왜 서울은 이렇게 후진 거야? 이렇게 불평불만을 늘어놓는 일이 잦아진다. 왜냐하면 뉴욕의 케이, 서울에서도 케이이기 때문이다. 이 말은 즉, 케이의 친구 누구도 그녀를 본명으로 부르지 않더란 말이다. 멀쩡한 이름 놔두고, 서울에 돌아와서도 다들 그녀를 '케이'라고 지칭한다. 그리고 그게 자연스럽다는 거. 뉴욕에서 몇 달을 보내고 왔다고 해서 서울의 그녀가 뉴욕의 누군가가 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솔직히 요즘 케이는 모든 것이 시시하게 느껴졌다. 그것은 뉴욕에 갔다 온 뒤로 시작된 증세였다. 돌아온 뒤 서울의 모든 것이 하나같이 어딘가 모르게 덜 떨어지게 느껴졌다. 특히나 사람들이 그랬다. 세련되게 젊음을 탕진하는 귀여운 백인 여자애나 3개 국어를 할 줄 아는 어딘가 천재 같은 유대인은 서울에서는 기대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물론 서울에서 만난 사람들도 좋은 점은 있었다. 하지만 나쁜 점도 그만큼 있었다. 한마디로 어정쩡했다. 돌아온 뒤, 모든 게 대체로 그런 식이었다. 하나같이 어정쩡했고, 그 점이 정말이지 짜증났다.

 

케이는 서울 시내에 있는 한 사립여대의 국제학부에 재학 중인, 평범한 여대생이다. 우리가 소위 중산층이라 일컫는 무리의 대표 캐릭터라 하겠다. 같은 학부의 학생들 대부분은 돈이 많고, 영어를 잘하며, 명품 백을 들고 다니며 오로지 관심이라곤 외모를 가꾸는 것과 연애를 하는 것밖에 없다. 케이는 그런 여자애들을 경멸하지만, 사실 엄밀히 따지자면 그녀도 같은 부류이긴 하다. 어정쩡하고 평범하고, 허세 가득한 남자애한테 반해서 그와 연애를 하는 평범해 보이지만 사실은 속물 근성이 가득한 그런 여대생 말이다. 그녀는 시종일관 서울에 대한 불평을 하며 뉴욕에서의 생활을 그리워하지만 겨우 사실 한두 달 뉴욕에 다녀왔다고 해서 뉴요커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말이다. 물론 케이네 집안이 아슬아슬하게 서울 중산층의 생활양식을 유지하고 있고, 아버지의 퇴직이 가까워오고 있었고, 저축보다 빚이 더 많았지만, 그렇다고 그녀가 집안의 가장 역할을 한다거나 학비가 부족해 아르바이트를 한다거나 하는 것도 아니다. 뭐 이건 결국은 그녀 또한 다른 여대생들과 별다를 게 없는 생활을 누리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주인공과 등장인물은 비 호감이고, 그다지 공감을 불러일으킬만한 부분도 없었지만, 인물들의 이야기 사이사이 작가가 짚어내고 있는 현대 사회에 대한 덤덤한 말투의 비판과 세태에 대한 건조한 문체는 매우 흥미로웠다. 인물들을 둘러싼 현실에 직설적인 어조로, 마치 기득권층에서 쏘아붙이는 기세로 말하는 대목들은 충분히 이해와 공감을 가져왔으니까. 출판사의 소개 글을 보니 <눈길을 끄는 것은 이야기 틈틈이 끼어드는 작가적 논평이다..거의 모든 인물들에 대해서, 그리고 주인공 케이와 그를 둘러싼 현실 자체에 대해서도 작가는 직접적인 논평을 덧붙이기를 잊지 않는다>라고 언급이 되어 있던데, 그렇다면 대체 이걸 왜  '소설'이라는 형태로 쓴 건지에 대해서는 약간 의문이 들긴 하다. 왜냐면 이 작품에서 작가가 만들어낸 '허구의 이야기'는 그다지 매력이 없고, 마치 물 위에 동동 떠 있는 기름처럼 부유하는 느낌인데 반해, 작가가 설명하고 있는 '직접적인 논평'이라는 부분은 흥미롭고, 때로는 유쾌하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 이래서 김사과라는 작가가 독특하고 개성적인 문체를 가지고 있다고들 하는지도 모르겠지만

 

그래, 거기는 천국이었어. 그런데 여자는 울어. 대체 뭐가 잘못된 거야? 여기는 천국이야. 근데 왜 나는 울고 있냐고? ....분명히 뭔가 잘못된 거야. 뭔가 심각하게 잘못된 거라고. 그런데 여기가 천국이래. 근데 천국이 잘못되었을 리가 없잖아? 그러니까, 잘못된 게 있다면 그건 바로 너야. 행복해하지 않는 너라고. 슬퍼하고, 화가 나는, 이 천국을 부수고 싶어하는 너야. 이 천국을 의심하는 너야. 왜냐하면 여기가 천국이라니까! 너는 천국에 있는 거라고. 네가 이상한 거라고.

 

삶에 대한 답을 얻지 못해 무력감에 시달리며 방황을 하던, 케이도 결국엔 답을 찾는다. 더 이상 뉴욕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고, 화려한 뉴요커의 삶을 만끽하던 친구들에 대해서도 거의 잊어버리고. 왜냐하면 결국 기억이란 빠르게 희미해질 수밖에 없으니까. 유한한 존재인 우리가 기억의 강을 건너 영원히 간직할 수는 없는 법이니까. 우리는 우리가 발을 딛고 서 있는 현재의 서울, 여기에서 살아내야 하니까. 그렇게 숨쉬며 살아 있으니까 말이다.

 

수족관 속에 있는 물고기가 수족관을 부수면 어떻게 돼?

죽겠지. 뻔하지. 하지만 수족관 속에 있는 건 살아 있는 거야? 그래, 나는 이게 묻고 싶은 거야. 그러니까 내 말은,

 

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누구에게나 평화롭다. 실제 밖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건 간에. 멀리서 보기엔 뭐든 쉬워 보이니까. 안전한 내부에서, 바깥으로 나가려고 하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 겁이 나지만, 나가본 적이 없어서 무섭지만, 그렇지만 이 안에서 더 이상 즐겁지가 않다면, 행복하지가 않다면, 그렇다면 틀을 깨뜨려버리고 한 번쯤 나가 봐야 하지 않겠는가? 그것이 바로 당신의 천..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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