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의는 거절하지 않습니다
김남희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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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삶을 관찰하기보다 경험하고 싶다. 삶이 줄 수 있는 더 많은 쾌락을 내 손으로 찾아내 누리고 싶다. 내 삶의 즐거움을 타인의 삶을 들여다봄으로써가 아니라 나만의 온전한 경험을 통해 스스로 찾고 싶다. 몸의 한계를 넘어서고 가능성을 확장하고 싶다. 내 육체를 매일매일 발견하고 개발하며, 몸으로 나를 표현하고 싶다. 이런 기쁨을 아는 몸이 될수록 외부의 충격에도 쉽게 흔들리지 않는 내면의 단단함이 쌓여간다. 내 육체를 움직여 만들어가는 충만함을 아는 몸은 생활을 꾸리는 일에도 성실해진다.     p.47~48

 

코로나로 인해 달라진 많은 것들 중에 가장 아쉬운 것은 바로 여행을 갈 수 없다는 것 아닐까. 마지막 해외 여행은 2019년 가을이었다. 그때만 해도 겨울이 지나 봄이 되었을 때 코로나와 마주하게 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었기에, 그게 마지막이었다는 건 알지 못했지만 말이다. 2020년 한 해가 그렇게 실내에 갇혀 있는 상태로 흘러 가버리고, 2021년이 되었지만 코로나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여행은커녕 집 앞 카페에서 편하게 커피 한 잔 마시기도 쉽지 않은 일상 속에서 바로 그 여행이 직업이었던 이들은 어떻게 생계를 꾸려 나갈까.

 

이 책은 여행 경력 15년차 베테랑 여행가 김남희가 겪은 코로나 그 이후의 일상을 담고 있다. 서른넷에 방을 배고 적금을 깨 배낭을 꾸린 후 15년이 넘도록 유목민으로 세계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살아왔지만, 코로나로 인해 여행가로서의 삶도 멈추었다. 그리하여 이 책은 그녀의 삶에서 처음으로 '여행'을 떼어놓은 글들로 이루어졌다. 생의 마지막날까지 여행을 하고 글을 쓰며 살아갈 수 있을까, 혼자서 나이 들어가는 일을 잘 견뎌낼 수 있을까, 밥벌이는 언제까지 가능할까 등의 고민이 조금씩 생겨났고, 달라진 환경에 맞춰 새로운 길을 모색하기도 했던 시간들에 대한 기록이다.

 

 

 

많은 사람들이 내게 묻는다. 온 세계를 돌아다니다 집에 갇힌 기분이 어떠냐고. 코로나라는 세계를 여행중이라 흥미진진하게 잘 지내요. 이렇게 태연하게 대답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코로나는 내 일상 풍경도 바꾸어놓았다. 무엇보다 혼자 사는 내가 정말 혼자가 되어버렸다!.... 코로나가 내게 일깨워준 건 나는 타인의 온기로 생명을 유지하는 사람이라는 점이었다. 나는 혼자 살기에 적합한 사람으로 태어났지만 그건 일상의 공간을 혼자 점유한다는 것일 뿐. 사람에게 기대어 살아야만 했다.     p.144~145

 

싱글, 여성, 여행작가, 라는 타이틀만 보자면 제법 근사한 조합이다. 자유롭게 세계를 여행하며 살아가는, 하고 싶은 일만 해도 되는, 누구에게도 간섭받지 않고, 책임져야 할 대상이 오직 자신뿐인 라이프라니 얼마나 멋진가. 하지만 모든 일에는 이면이라는 게 있게 마련이고, 김남희 작가는 자신의 자유로움이 경제적 불안함과 동의어라고 말한다. 외로움과 불안함을 반반씩 섞어 자유 위에 덧바른 삶이라고 말이다. 다른 무엇보다 길 위의 삶이 간절했기에, 그것 하나를 얻기 위해 다른 많은 것들을 내려놓고 살아 왔는데, 그렇게 좋아하는 일을 하는 댓가로 근근이 살아가던 삶이 강제로 멈추게 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작가는 멀리 떠날 수 없는 시기에 여자들만의 방과후 산책단을 만들어 매일 다니던 뒷산 산책길을 함께 걸었다. 연말에는 페이스북으로 송년 맞이 사은대잔치를 열어 고마운 사람들에게 소박한 시상식을 하기도 하고, 에어비앤비를 운영하며 여행자들을 위해 정성껏 차린 아침식사를 대접하기도 하며 불안의 시기를 나름의 방법으로 살고 있다. 팬데믹 이후 우리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왔던 많은 일상들이 대부분 사라져버렸지만, 그 속에서 다들 나름의 방법으로 각자의 일상들을 견뎌내고 있다. 단계적 일상회복이 되고는 있지만, 다시 예전처럼 자유롭게 여행을 하게 될까, 낯선 사람과 악수를 하고, 헬스클럽에 가고, 영화관에 가고, 아무 두려움 없이 사람들로 붐비는 거리를 거닐고, 걱정 없이 마스크를 끼지 않고 밖에 나갈 수 있을까 싶은 마음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그래서 이 책이 더 와 닿았던 것 같다. 누군가의 호의와 믿음, 따스한 눈빛과 다정한 말들이 쌓여 지금의 나를 이루었다고 말하는 작가의 글이 삭막하고, 불안으로 뒤덮인 일상 속에서 조심스레 손을 내밀어주는 듯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이 서로가 서로에게 다정한 위안이 되어주는 일상으로 계속 되기를 바래본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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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1-11-25 2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타인의 온기로 생명을 유지하는 사람˝ 공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