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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나의 책 - 독립출판의 왕도
김봉철 지음 / 수오서재 / 2020년 8월
평점 :
나 같은 사람이 만든 걸 과연 정말로 책이라고 불러도 될까? 책은 대학을, 그것도 국문과나 문창과를 전공하고 신춘문예에 당선되거나 문예지 공모전에 등단한 사람들이나 사회의 저명인사들같이 삶에서 어떤 원대한 이상과 목표를 달성해낸 이들이 그들의 고매한 정신을 많은 사람에게 널리 알리기 위하여 적어내는 것이 아닐까? 일도 안 하고 집에서 놀기만 하면서 남들보다 부족한 나의 일상을 기록하는 것은 어쩌면 책에 대한 일종의 모독은 아닐까? 나는 불안했다. p.35
이 책은 30대 무직이었던 한 사람이 독립출판을 하고 출판사를 통해 책을 내게 된 과정을 담고 있다. 저자는 군대를 전역하고 30대 무직 남성의 소소한 하루들과 사소한 일상들을 써서 블로그에 올렸다. 그렇게 블로그를 운영하며 순간순간 스치는 단상들, 매일의 단출한 기록들을 10년 정도 모아서 책으로 냈다. 자신만의 이야기를 형식이나 내용에 구애 받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 바로 이런 독립출판의 장점이다. 독립서점에는 여행기, 사진집, 시집, 소설집, 에세이 등 다양한 분야의 책이 다양한 판형으로 나와 있다.
살면서 책 한 권쯤 내보고 싶다는 생각은 많은 사람이 할 것이다. 요즘은 일반인이 글을 쓸 수 있는 매체도 많은 편이고, 그들을 대상으로 하는 글쓰기 강좌나 독립출판을 한두 달 과정으로 도와주는 워크숍들도 많은 편이다. 바로 그런 사람들에게 이 책은 독립출판의 모든 것을 알려줄 것이다. 책의 판형과 폰트, 자비출판과 독립출판의 구체적인 제작비, 본문을 편집하는 프로그램과 매뉴얼, 표지를 만드는 과정, 그리고 표지 안쪽의 프로필, 제본 방식, 교정과 교열, 책의 가격을 측정하는 방법과 출판사 등록하는 과정, 판매 방식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이 수록되어 있다.
사람이 하는 일들에 모두 의미가 있어야 한다는 것에는 지쳤습니다. 행동에는 목적이 없을 수 있고 그 목적엔 당위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전공자가 아닌 일반인으로 책을 만드는 일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들도 간혹 마주해야 했습니다. 학벌, 경력, 자격증, 살아 있는 것이 목적이라면 그 목적에 대한 당위는 이러한 것들로 채워져야 하는지 모릅니다. 30대 백수 쓰레기와 디자이너와 경제학도가 낸 책들에 이런 당위는 없을지 모릅니다. 그렇다면 그 목적에는, 책을 낸 이유에는, 어떤 의미가 있어야 할까요. p.115~116
요즘은 굳이 작가가 아니라도 너도 나도 글을 쓰는 시대이다. SNS의 발달로 더욱 가속화된 것도 있고, 워낙 사는 게 마음을 헛헛하게 하는 것이다 보니 글을 통해 위로 받고, 공감하는 것이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된 탓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SNS에서 조금만 인기가 있다 싶으면 에세이라는 형식으로 책이 되어 나오는 경우가 많다. 그 중에 몇몇은 책도 베스트셀러가 되었지만, 사실 대부분은 기대에 많이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그렇게 SNS에서는 핫하다는 작가들이 왜 책 속에서는 이렇게 '평범하거나 수준 이하의 글들'을 쓰는 건지 생각해 보면, 아마도 출판에 대한 이해도 자체가 낮아서인 것은 아닐까 싶기도 했다. 그러니 이 책을 쓴 저자처럼 실제 현실에서 발로 뛰고 몸으로 부딪치며 알아낸 과정들을 통해서 독립출판계 문을 두드린 이의 글은 조금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가 처음 출간한 <30대 백수 쓰레기의 일기>가 조금 궁금해졌다. 21세기 보부상, 보따리장수, 독립출판의 전설이라 불리며 강렬하게 독립출판계에 입문했다고 하는데, 사실 나처럼 독립출판물을 많이 접해보지 못한 독자들에게는 낯설기만 할 테니 말이다. 게다가 이 책에는 '내가 쓴 책을 내가 만드는 일에 대한 묵묵한 기록'과 함께 저자의 평범한 일상과 고민들이 에세이처럼 수록되어 있어 누구라도 어렵지 않게 독립출판에 대해 배우면서 자연스레 관심을 가지게 만든다. 언젠간 책 한 권 써보고 싶다고 막연하게 생각했던 이들에게, 글로 써야만 하는 자신만의 이야기가 있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