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의 살인 1
베르나르 미니에 지음, 성귀수 옮김 / 밝은세상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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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장 안의 인형들과 더불어 지금 보고 있는 시신 모두 나름의 중요한 발언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 두 경우 다 물이 중요한 요소인 것만은 분명했다. 욕조 바닥에서 뭔가 유기적인 물질이 눈에 들어왔다. 살짝 오줌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세르바즈는 여자가 이 차가운 물속에서 죽음을 맞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안에도 물, 밖에도 물... 비가 내리는 상황... 혹시 살인자는 이 폭풍의 밤을 기다려 범행에 나선 것일까?     p.58

 

폭우가 쏟아지던 밤이었다. 쏟아져 내리는 빗소리와 하늘 저편에서 울리는 천둥의 굉음 너머 어디선가 음악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마르삭 고교의 여교사 클레르가 자택 욕조에서 밧줄로 온몸이 꽁꽁 묶인 사체로 발견된다. 사체의 목구멍에 손전등이 불이 켜진 채 깊숙이 박혀 있었고, 정원의 풀장 안에는 19개의 인형이 떠있었다. 강렬한 빛을 받아 번들거리는 인형들의 희고 유령 같은 얼굴들이 오싹한 현장이었다. 그리고 약에 취한 듯 정신이 혼미한 청년 위고가 풀장 가장자리에 앉아 있다가 경찰에 체포된다. 그는 죽은 여교사가 가르치던 반 학생으로 세르바즈 경정이 오래전 사랑했던 여자의 아들이기도 하다.

 

 

아들에 대한 걱정으로 마리안은 세르바즈 경정에게 연락을 하고, 그는 학창시절의 추억이 녹아 들어 있는 마르삭의 사건현장으로 출동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형사생활 중 가장 끔찍했던 살인사건을을 떠올리게 된다. 2년 전 겨울 치료감호소를 탈출해 사라진 연쇄살인마 쥘리앙 이르트만의 그림자를 발견한 것이다. 무려 40여 명의 여성을 납치 살해한 쥘리앙 이르트만이 철통같은 보안을 자랑하는 치료감호소를 탈출한 이후 특별수사팀이 18개월 동안 추적했지만 결국 검거에 실패해 현재 그의 생사는 물론 행방을 전혀 알 수 없는 상태였다.

 

베르나르 미니에의 전작인 <눈의 살인>에서 쥘리앙 이르트만은 치료감호소에 수감되어 있는 상태로 등장해 마치 '양들의 침묵'에 나오는 한니발 렉터 박사처럼 깊은 인상을 남겼던 인물이다. 세르바즈 경정은 전작에 이어 이번 작품에서도 그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과연 연쇄살인마가 귀환한 것인지, 아니면 수사를 혼란에 빠뜨리기 위한 범인의 트릭인 것인지 이야기는 잠시의 머뭇거림도 없이 앞으로 달려 나간다.

 

 

야바위꾼이 한쪽으로 주의를 끌고는 정작 중요한 손동작은 다른 쪽에서 시도하는 것처럼 갑자기 뭔가 속임수에 걸려든 듯 불쾌감이 엄습해왔다. 한손은 구경꾼들이 보도록 밝은 데서 움직이고, 어둠 속에서는 다른 손으로 수작을 부리고 있다. 지금 어느 누군가는 사람들로 하여금 잘못된 각도에서 사건을 바라 보도록 만들고 싶어 한다. 누군가 무대를 설정하고, 소품과 배경을 꾸미고, 배우와 관객들까지 정해놓은 것이다. 사건의 이면, 아무도 모르게 움직이는 숨은 그림자의 존재에 생각이 미치자 또다시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p.114

 

전작인 <눈의 살인>에서는 눈 덮인 산과 쉴 새 없이 내리는 눈, 거센 바람과 눈보라 등으로 페이지 곳곳에 눈의 풍경이 서려 있었다. 이번 작품 <물의 살인>에서는 천둥이 우르릉대는 소리, 후텁지근한 열기, 정체된 대기와 잿빛 하늘, 그리고 쏟아지는 폭우와 욕조에 잠긴 시신, 풀장에 떠도는 인형들이 등장해 물의 이미지를 형상화하고 있다. 이야기의 배경이 되고 있는 피레네산맥 인근 지역은 베르나르 미니에가 태어나고 성장한 곳이고, 아름다운 숲과 호수, 짙은 안개, 계곡을 흐르는 물, 호수와 숲 언저리에 위치한 전원주택으로 유명한 곳이다. 자신이 가장 잘 아는 지역을 배경으로 이야기를 탄생시키고 있어, 전작도 그렇고, 이번 작품도 그렇고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풍경들을 묘사하는 솜씨가 매우 뛰어나다. 마치 실제로 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줄 정도로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르탱 세르바즈 경감은 어머니가 살해당하고, 아버지가 자살한 과거에서 자유롭지 못한 인물이다. 교수였던 아버지는 아내가 바로 눈앞에서 강간당하고 살해당한 기억에 시달리며 살다 모든 걸 끝내기로 결신했고, 아들이 자신의 시신을 발견하도록 조처해두었다. 라틴어 과목에서 늘 1등이었고, 좋아하는 소설 작품들을 줄줄 외워 늘 입에 달고 살았던 아들은 시신을 발견하고 몇 주가 지난 뒤 공부를 때려치우고 경찰시험을 본다. 그렇게 우등생이자 문학을 공부하고 싶었던 세르바즈는 형사가 되었고 여전히 죽은 아버지의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살고 있다. 치명적인 트라우마를 안고 있지만 수사 실력은 뛰어나고, 게다가 말러의 음악과 문학을 사랑하는 형사라는 점 때문에 더욱 매력적인 캐릭터가 아닐 수 없다. 세르바즈 경정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시리즈는 <눈의 살인>과 <물의 살인>에 이어 <불 끄지 마>, <밤>, <자매> 등으로 이어진다고 하니 다음 작품도 빨리 만나볼 수 있기를 고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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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20-08-12 1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눈의살인> 을 오늘 받을 예정인데... <물의살인>도 사야하는 건가요 철푸닥

피오나 2020-08-12 23:31   좋아요 0 | URL
ㅋㅋ 그러셔야 할 것 같아요. 이번 신작도 재미있더라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