틸리 서양철학사 - 소크라테스와 플라톤부터 니체와 러셀까지
프랭크 틸리 지음, 김기찬 옮김 / 현대지성 / 2020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소크라테스는 철학사에서 독특한 인물이다. 그는 전혀 글을 쓰지 않았지만, 제자 플라톤을 통하여 서양 철학의 전체 발전에서 헤아릴 수 없는 영향을 발휘한 진정한 사상가였다. 플라톤의 대화록은 스승과 제자의 사유가 결합되어 있음을 보여주며, "진짜" 역사적 소크라테스가 실제로 개진한 이론과 소크라테스를 대변가로 삼은 플라톤의 이론을 구별하는 문제는 풀 수 없다... 역사적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이상화된 소크라테스를 구별하기 위하여 우리가 갖고 있는 독자적인 증거는 거의 불충분하다.   p.92

 

20세기 전반에 걸쳐 미국 각 대학의 철학과 역사학 분야에서 오랫동안 교과서로 사용되었던 책이다. 서양 철학을 다루고 있는 책들이 많이 있지만, 프린스턴 대학에서 평생 철학 교수로 가르친 프랭크 틸리 교수가 쓴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객관성과 공정성'일 것이다. 그는 철학사에서 나중에 등장하는 체계들이 앞선 학파에 대해 아주 훌륭한 비판을 제공한다는 확신을 갖고서 자신의 비판을 최소한으로 줄였다. 러셀의 <서양철학사>가 저자의 개성과 주관이 강하게 반영된 책이라 철학사에 대한 공정성과 균형 잡힌 객관성이 다소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는데 비해, 조금 더 공정하고 균형 잡힌 철학사를 다루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책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1914년에 초판이 발행되었고 이후 몇 차례의 개정을 거치는 동안, 철학 교재로 많이 채택이 되었던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을 테고 말이다.

 

러셀의 <서양철학사>는 단순히 철학의 역사를 있는 그대로 기술하고 있지 않고 책을 읽는 독자들이 철학적으로 사고할 수 있도록 명쾌하고 재미있게 쓴 책이라, 누구라도 쉽게 철학에의 입문을 시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하지만 다소 어렵고, 딱딱하고, 지루하더라도 있는 그대로의 철학사를 객관적으로 한편 살펴보고 싶다면, 틸리의 <서양철학사> 읽어보는 것이 더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틸리는 역사적 철학자들과 그들의 관계에 대한 자신의 이해를 명료하게 하려는 목적으로 이 책을 썼고, 이러한 명료함은 이 책 전체에 스며들어 있으니 말이다.

 

 

칸트의 철학은 수많은 문제를 암시했다. 맨 처음이며 아마 결코 어렵지 않은 과제는 철학에서 일어난 칸트의 "코페르니쿠스적 혁명"의 성격을 이해하는 데 있다. 정신이 자연에 법칙을 규정하지 그 반대가 아니라는 그의 의도 말이다. 당대의 문헌을 보면, 그 의미를 파악하려는 시초의 노력들 가운데 많은 것이 어떻게 실패했는지 드러난다... 어떤 사람들은 칸트의 가르침에서 종교의 역사적 토대를 파괴하고 자연주의를 증명하는 교묘한 술책을 파악했고, 어떤 사람들은 그의 가르침이 쇠퇴하는 신앙-철학을 위한 새로운 토대가 아닌가 하고 의심했다.   p.557

 

철학사란 단순히 철학 이론의 연대기적 나열과 설명이 아니라 철학 이론간의 관계, 그것들이 산출된 시대, 그리고 그 이론을 제공한 사상가들과 관련된 연구로 오랜 기간 숙고된 인간의 사유가 어떻게 발전했는가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는 각각의 세계관을 그 고유한 상황에 놓고, 그것을 현재와 과거와 미래의 지적, 정치적, 도덕적, 사회적, 종교적 요소와 연결 지으려고 노력하는 것이므로, 우리가 지금도 여전히 철학사를 다루고 있는 책을 읽어야 하는 것이다. 

 

이 책은 서양 사상의 모든 체계를 떠받치는 초석을 놓은 그리스 철학에서 시작한다. 당대의 환경, 정치, 문학, 그리고 종교적 기원을 살펴본 후 기본적인 그리스 철학의 개관을 짚어 보고 소피스트 이전 철학이 어떻게 발전했는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탈레스, 피타고라스 등을 거치며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위대한 체계가 시작된 시대를 다루면서 더 깊이 있게 그리스 철학의 세계를 탐험하기 시작한다. 이어지는 중세 철학과, 근대 철학, 현대 철학에 이그리까지의 과정은 그 내용도 방대하거니와 분량도 엄청나서 한번에 요약할 수도, 읽고도 제대로 다 소화했다고 할 수도 없을 것이다. 정말 교과서처럼 자주 들여다보고, 여러 번 재독해야 서양철학사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게 되었다고 할 것 같다. 어떤 철학 교수는, “철학사는 특색과 장점이 저마다 다를 수 있기 때문에 그 종류도 또한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국내에도 여러 철학사 책들이 출간되어 있는데, 각각의 장단점이 있을 테니 다양하게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서양철학사를 제대로 공부해보고 싶다면, 가장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쓰인 서양 철학사를 만나보고 싶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20세기에 전반에 걸쳐 오랫동안 사랑 받은 불후의 명저라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초딩 2020-04-24 1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고 싶은 책 바로 추가했습니다~~ 감사합니다

피오나 2020-04-25 13:14   좋아요 0 | URL
ㅎㅎ 재미있게 읽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