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그 이후의
이야기, 어느 해 여름에서
겨울까지의 이야기다. 베어타운과 그 옆 마을 헤드의 이야기,
두 하키팀 간의 경쟁이 돈과 권력과 생존을 둘러싼 광기 어린 다툼으로 번진
이야기다. 하키장과 그
주변에서 두근대는 모든 심장의 이야기, 인간과 스포츠와 그 둘이 어떤 식으로 번갈아 가며 서로를 책임지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의 이야기, 꿈을 꾸고 투쟁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우리 중 몇 명은
사랑에 빠질 테고 나머지는 짓밟힐 테고, 좋은 날도 있을 테고 아주 궂은 날도 있을 것이다.
이 마을은 환희를 느낄 테지만 또 한편으로는 불타오르기 시작할 것이다. 끔찍한 충돌이 벌어질 것이다. p.15
해마다 점점 일자리가
사라지고, 인구도
줄고, 매 계절마다 숲이
혜가를 집어삼키는 조그만 도시 베어타운, 그 곳의 유일한 희망은 바로 아이스 하키라는 스포츠에 대한 사랑이었다. 주목할 만한 게 거의 없는 곳이지만 이곳이 하키 타운이라는 것만은 모든 주민들의
자랑이자 그들을 유일하게 흥분시키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그런 그들에게 도시의 경제와 자존심과 주민들의 생존이 걸려 있던, 청소년 하키팀의 준결승을 앞두고 무슨 일이
벌어진다. 그들은 결승전까지
진출했지만 그 경기를 가장 뛰어난 스타플레이어 없이 치러야 했고,
그래서 아깝게 패배했다.
하키팀의 스타였던 남학생이 여학생을 성폭행했기 때문이다. 팀의 에이스였던 케빈은 하키팀 단장의 딸인 마야를
성폭행한 걸로 조사를 받았지만 경찰 측에서 아무것도 입증하지 못했기에 그냥 풀려 난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 대부분은 가해자인 케빈의 편을
들었고, 피해자인 마야를
비난했고, 그녀의 아버지를
하키단 단장직에서 해고하려고 했다. 그때 사건 당시 그 집에 있었던 증인이 등장했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경찰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고, 마을은 침묵했고, 어른들은 마야를 도우러 나서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 날 밤에
무슨 일인가가 벌어진다. 그것이 전작인 <베어타운>의
마지막 장면이었다. 이야기는
그렇게 끝이 났지만, 나는 그
뒤로 이들의 삶이 어떻게 흘러갔을 지 매우 궁금했다.
비극이든 해피엔딩이든 간에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면 모든 이야기는 그걸로 끝이 나게
마련이다. 하지만
내게 <베어타운>은
그렇지 않았다. 언제라도
페이지 바깥으로 뚜벅뚜벅 그들이 걸어 나오더라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만큼,
생생하게 살아 있는 인물들에게 마음을 고스란히 빼앗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베어타운에서 벌어진 그 비극이 너무도 가슴
아팠고, 먹먹했고, 신경이
쓰였다. 게다가 프레드릭
배크만은 마지막 장면이 시작하기 전에 십 년 뒤 누군가는 프로 선수로 활약할 지도, 누군가는 아빠가 되고, 엄마가 되었을 지도, 또 누군가는 죽었을 지도 모른다는 말을 슬쩍 흘렸으니, 나는 너무도 이 작품의 후속작이
기다려졌다.
벤이는 숲의 다른 쪽을 혼자 달리고
있다. 몇 년 동안 쌓은
무수한 훈련을 토대로 새로운 은신처를 찾는다.
그는 그 어떤 것도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어른이 되었다. 어린애들이나 거저 이루어지는 일이 있다고 생각하는
거다. 예를 들면 단짝 친구가
늘 곁에 있는 것. 자기
본연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 원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 이제 벤이에게는 그 어떤 것도 거저 이루어지지 않기에 그는 뇌에서 산소를 달라고 헐떡이고 더 이상 아무것도 느낄 수 없을 때까지 숲
속 더 깊숙한 곳을 향해 계속 달린다. 그러다 나무 위로 올라간다. 거기서 바람이 불길 기다린다. p.90
<우리와 당신들>은 바로 그 <베어타운>에서 벌어졌던 비극 이후 겨우 두어 달이 지난 시점에서
시작한다. 전작의 마지막
장면에서 벌어졌던 그 날 이후로, 갑자기 케빈이 바깥출입을 하지 않았고,
그가 정신병에 걸렸다는 소문이 번지는가 싶더니, 어느 날 아침, 그와 그의 가족이 아무 소리 없이 마을을
떠난다. 하지만 이걸로 다시
평화가 찾아오게 된 것은 아니었다. 사람들은 항상 복잡한 진실보다 단순한 거짓을 선택하곤 하니 말이다. 진실은 현실에서 벗어날 수 없는 반면 거짓은 쉽게 믿을 수만 있으면
된다. 사건 이후 케빈의
아버지는 아들의 소속 팀을 베어타운에서 헤드로 바꿨고,
코치와 후원사와 우수한 선수들을 거의 모두 설득해 함께 데려갔다. 베어타운 아이스하키단이 없어진다는 소문이 마을에
퍼지고, 사건 당시 사람들
앞에서 증언을 했던 하키 신동 아맛도, 케빈의 단짝이었지만 우정을 버리고 마야의 편을 들었던 벤이도,
이제 더 이상 하키를 할 수 없게 된다. 마야와 그녀의 동생 레오를 향한 사람들의 증오는 커지고, 하키단이 사라지면서 인생 전체가 사라져 버린
페테르는 절망한다. 과연 이
지독한 비극의 끝은 어떻게 될 것인지, 이야기는 전편보다 더 묵직하고,
먹먹하게 펼쳐진다.
프레드릭 배크만의 <오베라는 남자>와 <브릿마리 여기있다>,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달랬어요에> 등의
작품을 모두 읽었고 좋아했지만, 사실 이제 그의 대표작은 바로
<베어타운>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 두 번째 이야기인 <우리와 당신들>을 읽고 나니 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생생하게 살아 있는 캐릭터, 입에 척척 달라붙는 음식처럼 눈에 쏙쏙 들어오는
묘사들, 믿어지지 않을 만큼의
노련한 구성과 스토리의 그 정점에 있는 작품이기도 하고,
삶에 대한 놀라운 통찰력이 아름답고 우아한 문장들로 완벽하게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런 일은 어느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고 하겠지만 그럴 리
없다. 속으로는 우리도 진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의 잘못이라는 것을. 우리의 잘못이라는 것을.
어쩌면 우리들 대부분은 좋은 사람인
동시에 나쁜 사람일 수도 있다. 좋은 사람인 동시에 나쁜 사람일 수 있다는 것은 삶의 많은 순간들이 선과 악, 옳고 그름으로 분명하게 나눌 수 있는 건 아니라는 말이기도
하다. 현실은 흑과 백보다 그
사이에 존재하는 무수한 다른 색들로 훨씬 더 많이 이루어져 있으니 말이다.
원제인
'우리 대 당신들'처럼 우리 편 아니면 적이라고 편가르기를 할 수 없는 세상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이 작품은
그저 '소중한 사람을 지키려고
용기를 낸 어느 조그만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어떻게 읽고 받아들이냐에 따라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