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야산 스님.초롱불 노래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53
이즈미 교카 지음, 임태균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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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일본문학을 좀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실행에 옮기기 쉽지 않은 것은 왠지 모를 거부감이 일기 때문이다. 장르문학에는 비교적 관대하나 순문학으로 분류되는 작품들에는 어쩐지 마음 속 그어진 선을 넘기 힘들다. 그래도 『읽는 인간』과 『인간 실격』을 읽고 거부감이 많이 사라졌다. 조금 딴 말이지만 다자이 오사무가 턱 밑에 손을 짚고 찍은 사진 애거서 크리스티 닮지 않았나? 나만 그런가? ... 얼마 전 중견 소설가의 표절이 화두가 되면서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과 『금각사』에 흥미가 생겼다. 그러니까 ‘관심을 가지고 보려는’ 일본문학은 현대 문학에 뿌리가 된 근대 소설들이다. 내가 읽으려던 작품들은 『설국』, 『라쇼몬』 등이었는데 몇 번이나 주문 버튼을 달칵거리다 마음이 시들해져 장바구니를 비우기만 했다. 그러다 우연히 그보다 앞선 시기의 이즈미 교카의 소설이 눈에 들어왔다.


책에 실린 두 편의 소설 중 「고야산 스님」이 괜찮았다. 이야기 속에 두 이야기가 포함된 삼중 액자 소설로, 그 자리에 누워 옛 이야기를 듣는 듯한 생동감이 있다. 액자 바깥 이야기의 화자는 기차에서 만난 노승과 동행하여 여관에 묵게 된다. 잠을 이루지 못해 노승에게 이야깃거리를 부탁하고, 꽤 명망 있는 스님이었던 그가 젊을 적에 겪은 이야기를 해 준다.. 어느 마을의 주막에서 약장수는 승려를 조롱하고, 두 사람은 갈림길에서 마주친다. 약장수는 물이 가득 찬 길과 비탈길 중에 후자를 택한다. 지나가던 마을 사람 말에 따르면, 그 길은 50년도 지난 옛 길로 아주 험하다고 한다. 옳은 길로 가려던 승려는 약장수를 좋아하지 않으나, 그에게 사고가 난다면 마음이 불편해질 것 같아 옛길로 접어든다. 나무가 우거진 길을 떡하니 지나가는 ‘몸통’ 밖에 보이지 않은 거대한 뱀에 식겁하였더니, 다음은 더하다. 진짜 책을 읽다 소리를 지를 뻔한 고어 장면인데 XXX가 가득 찬 숲을 지나는 것이다. 책에서 확인하시길... 그렇게 고생하며 외딴 오두막에 도착한 스님. 그 곳에 사는 묘령의 아리따운 여인에 이끌려 계곡에서 멱을 감는다. 스님이 순진한 건지, 도력이 높은 건지 모르겠으나 여러 유혹을 물리치고 잠자리에 든다. 그는 진짜 여러 번 식겁하는데(겁이 많단다) 밤이 깊어오자 온갖 짐승들이 집을 둘러싸는 것이다. 무서움을 누르기 위해 법경을 외고, 다음날 그를 붙잡는 여인을 뒤로 하고 집을 나선다. 그리고 반전이 있었다.


만화를 봐도 그렇고(대표적으로 『백귀야행』) 일본에는 온갖 신과 요괴들이 있는데 이를 현대적인 콘텐츠로 잘 활용한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에도 배경과 소재로 등장하고, 드라마나 영화에서도 신사를 간다거나 마쯔리 같은 축제를 통해 지방색과 함께 슬쩍 드러낸다. 전통 설화, 그 중에서도 민담이 잘 이어지고 있는 것이 흥미로우면서도 조금 화가 나기도 했다. 우리의 세시풍속은 상당부분 왜곡과 수정, 삭제를 거쳐 그 명맥이 전해지지 않기 때문이다. 현대화 과정에서 미신 취급을 당하기도 하고... 예전에 찾아본 바 우리나라 도깨비는 대체로 인간의 형상으로 씨름, 이야기, 장난, 메밀묵을 좋아하고 약간 어리숙한 성격이다. 김서방이랑 어울리고 싶어 하는데 맨날 이용당하는 호구 같은, 그러나 신령스런 존재다. 오래된 물건이나 싸리빗이 둔갑을 하지만 뿔은 없다. 뿔 하나에 방망이 들고 가죽 빤스 입은 도깨비는 일본의 요괴 오니라 한다. 두억시니엔 뿔이 있다는데 더 기억이 나질 않는다. 역사 왜곡 설화로는 고려장을 들 수 있다. 일본의 꼼꼼한 문화 말살 정책 중 하나로, 전통적으로 효를 강조하던 우리나라(고려 포함)에선 말도 안 되는 얘기라 한다. 고려장은 고려와 관련이 없으며, 실제 고려는 불교국가라 화장을 했다.


「초롱불 노래」 같은 경우는 전쟁 얘기가 스치듯 나오는데 큰 주제에서 벗어나지 않기 때문인지 그다지 거슬리지 않았다. 기예, 가부키라는 예술혼이 주제로, 문화재로 지정될만한 예술가들이 등장한다. 두 노인이 풍류소설의 주인공 흉내를 내면서 (마치 돈키호테처럼) 여관을 향한다. 이 이야기와 교차되는 것이 우동 가게로 들어온 떠돌이 악사의 이야기이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란 말처럼 등장인물들의 면면은 서로 이어져 있다. 갈등의 고조되면서 절정에 이를 때 어떤 혼연일치를 보여준다. 그 장면에선 감탄했다. 두 단편으로도 왜 다른 문인들이 이즈미 교카를 흠모하고 존경했다는 것인지 알 수 있었다. 「고야산 스님」의 환상적이고 신비로운 분위기의 묘사에서 낭만주의가 느껴졌고, 「초롱불 노래」의 마지막 장면에서는 어떤 카타르시스도 느껴졌다. 그렇게 길지 않으므로 한번쯤 읽어볼만하다. 그런데 일본인들은 자존심이 강한건지, 약한건지 도통 모르겠다. 조롱당하면 목숨을 끊어버리니... 『아베 일족』에서도 느꼈던 거지만 너무 극단적이야! 그 이야기는 다음에... 번역의 공이 크겠지만 백년이 지난 소설이 이토록 깔끔하다는게 놀라웠는데, 위에서 말했듯이 씁쓸한 여운이 남는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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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5-10-21 16: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으스스한 설화 느낌 좋아하시면 라쇼몬을 쓴 아쿠타가와 류노스케가 취향에 맞으실 지도...단편들에서 특히. 설화를 쓰는 다자이 오사무라고 할 만 하니까요...좋은 건지 싫은 건지 읽는 내내 헷갈리게 만들던 작가;

에이바 2015-10-21 16:12   좋아요 0 | URL
안 그래도 라쇼몬이랑 설국 읽으려고 사뒀는데 선뜻 손이 가질 않아서 일단 교카 거부터 읽었어요. ㅎㅎ
 
설득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44
제인 오스틴 지음, 원영선.전신화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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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오스틴의 작품이 '고전'으로 분류되는 이유는 19세기 영국 남부 지방의 중산층(젠트리) 사회를 구체적이고 사실적으로 그리기 때문이다. 이 시기는 현대 영국에 역사적 연속성을 부여하며, 오스틴의 소설에는 이 시기 젠더와 관습이 녹아들어 있다. ‘결혼’은 젠트리 계급의 주된 관심사이기에 중요하게 다뤄진다. 당시 결혼은 경제적인 거래였는데, 젠트리 여성이 집 밖에서 일할 수도, 혼자 살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상속분이 없다면, 삶을 꾸려나갈 수입과 안정은 '결혼'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었다. 『오만과 편견』에서 사랑이 없는 결혼을 택했던 샬럿의 입장은 이를 잘 설명한다.


장남이 아닌 남성 역시 군인이 되거나, 결혼을 통해 재산을 모아야 했다. 『설득』의 웬트워스나, 『오만과 편견』에 등장하는 피츠윌리엄 대령이 그러하다. 경제적 지위를 획득하기 위해선 목숨을 걸고 전장에 나가야 하는 것이다. 그러한 탓에, 대체적으로 결혼하는 남성의 나이는 여성보다 많았고 오스틴의 소설에서도 유일하게 연하와 결혼한 것은 『오만과 편견』의 샬럿 뿐이다. 이 경우는 둘 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 때문이라 볼 수 있다. 『노생거 사원』의 헨리 틸리는 "남성은 청혼할 여성을 고르지만, 여성에겐 거절할 힘이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오만과 편견』의 리지가 콜린스와 다아시의 청혼을 거절했을 때, 두 사람은 예상치 못했다는 반응을 보인다. 실제로 흔치 않은 일이었으리라. 오스틴도 청혼을 거절한 경험이 있다. 자신과 가족의 힘을 덜어 줄 '경제적 약속'을 거절한 제인은 『설득』을 어떤 마음으로 썼을까.


『설득』에 등장하는 앤 엘리엇은 27세로, 오스틴 소설 여주인공 중에 나이가 제일 많다. 『오만과 편견』의 베넷 부인이 15세를 사교계 진출 최적 나이로 주장함을 볼 때, 27세는 늦은 나이로 보이나, 앤은 귀족이며 1만 파운드의 상속녀로, 독신은 '선택'에 따른 결과로 짐작된다. 그녀는 문학적 소양을 갖춘, 현명하고 사려 깊은 인물이다. 엘리엇 가는 재정 상태를 고려하여, 켈린치 저택을 세놓기로 한다. 세입자는 앤의 전 약혼자, 웬트워스 대령의 누나와 남편 크로프트 제독이다. 『설득』의 배경은 나폴레옹 전쟁의 막바지, 전쟁을 위해 떠났던 젊은이들이 귀향하는 사회 변동기이다. 목숨을 걸고 나라를 지킨 젊은이를 향한 모국의 시선은 따뜻했지만 기득권이던 귀족은 탐탁지 않다. 엘리엇 경이 제독의 볕에 탄 피부를 비웃는 장면은 그런 인식을 반영한다. 전쟁은 상속자가 아닌 남성들이 재산을 모을 좋은 시기였고, 돌아온 그들은 짝을 찾아 정착하려 한다. 웬트워스 대령 또한 전장에서 공을 세워 이만 오천 파운드의 재산을 모은다.


소설 전반부, 집안 살림을 꾸리며 모두에게 친절한 앤의 미덕은 이용가치로 여겨지며, 그녀 역시 거기서 자신의 존재 가치를 찾는 듯하다. 여전히 멋진 옛사랑을 맞이하는 앤은 스스로가 초라하기만 하다. 그와의 접점을 줄여보려 애쓰지만, 오히려 웬트워스는 신붓감을 찾으러 왔다며 앤을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어린 루이자와 어울린다. 팔 년 전, 열아홉의 앤은 스물셋의 웬트워스와 사랑에 빠졌다. 웬트워스의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능력은 보잘 것 없었기 때문에 레이디 러셀은 그가 탐탁지 않았고, 앤은 파혼하라는 설득에 따랐다. 웬트워스는 입대하여 재산을 모은 뒤에도 앤을 용서하지 못해 돌아오지 않는다. 여전히 화가 풀리지 않은 대령은, 과거 앤이 찰스의 청혼을 거절했다는 얘기에 이렇게 말한다. "나는 설득당하는 사람이 싫습니다." 그리고 루이자의 고집, 뚝심을 높이 평가한다.


라임 여행에서 마주친 사촌, 엘리엇 씨는 앤에게 관심을 표한다. 웬트워스는 루이자의 사고로 인해 암묵적인 약혼 상태에 놓인다. 그는 앤을 사랑하는 마음을 깨닫고, 자신의 경솔함 탓에 그녀가 다른 신사의 구애에 응답할까 초조해 한다. 또 자신과 달리, 앤과 어울리는 지위와 재산을 갖추어 가족들에게 환영받는 엘리엇 씨에 질투를 느낀다. 한편 앤은 어퍼크로스, 라임을 거쳐 바스에 도착하며 성장한 모습을 보인다. 먼저 가족과 가까워지려는 엘리엇 씨가 진실되지 않음을 직감하고, 레이디 러셀의 판단력에 대한 의구심을 가진다. 둘째, 레이디 달림플이 아닌 학교 동창 스미스 부인의 선약을 택함으로써, 가족의 가치에 반하는 행동을 보인다. 가족과 자신을 동일시하던 모습을 버린 것이다. 셋째, 연주회장에서 만난 웬트워스에게 먼저 다가가는 용기 있는 모습을 보인다. 시골에 묻혀 있던 지성과 아름다움은 바스에서 빛을 발한다.


오스틴은 앤의 목소리를 빌려, 사회에서 목소리를 낼 수 없었던 ‘여성’의 이야기를 한다. 자신의 입장을 밝힐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기에, 남성들이 부여한 '변심하는 여성'이 되어야 했던 이들 말이다. 연인을 기다리다 세상을 떠난 패니의 처지를 안타까이 여기며, 웬트워스에 대한 마음을 내비치는 앤과 하빌 대령이 나눈 대화는 감동적이다. 이후, 그들을 갈라놓았던 그 '설득'에 대해, 앤은 "모험이 아니라 안전을 권하는 설득에 따랐다"며 후회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 말에 웬트워스는 "수천 파운드를 벌고 영국에 돌아왔을 때 연락했다면, 다시 약혼했겠느냐"고 묻고 앤은 긍정한다. 지금의 기준에선 여전히 수동적으로 느껴지지만, 앤이 용기를 내지 않았더라면 웬트워스는 다시 행복해질 기회를 놓쳤을지도 모른다. 헤어졌던 연인이 다시 만나 사랑에 빠지는 일이 얼마나 있을까. 조건 때문에 파혼당한 남성이, 좋은 조건을 갖추고 돌아왔을 때, 팔 년 전 자신을 찼던 여성을 선택할까? 그 반대의 상황에서도?


제인 오스틴은 '사랑'이 결혼의 동기는 될지언정 필수 요건은 아니었던 시대를 비웃으며, 주인공들에게 사랑과 경제적 능력을 동시에 쥐어준다. 그리고 시대가 지나도 통용되는 보편적 가치인 사랑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여성의 미덕으로만 느껴지는 일편단심이 남성에게도 요구됨을 보여준다. ​소설이 출간된 지 한참의 시간이 흐른 지금, 청춘남녀가 상품으로 기능하는 결혼 시장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젠트리 여성으로서 제한된 삶을 살았던 오스틴의 섬세한 글, 그 낭만에 열광하는 독자들이 여전히 많은 것은 아마도 그 때와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본질은 다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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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14 15: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0-14 18: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단발머리 2015-10-14 16: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이 책 읽었는데도 에이바님 리뷰를 참말 재미있게 읽었네요.
글이 참 좋아서 아는 이야기지만 정리가 쏴아 되네요.
잘 읽고 갑니다. ㅎㅎ

에이바 2015-10-14 18:28   좋아요 0 | URL
오스틴 작품 중에 제일 좋아하고 또 가장 성숙한 작품이라 생각해요. 감사합니다 단발머리님.

한수철 2015-10-14 17: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평소 궁금했던 점 하나.

책 읽을 때 `항상` 메모하세요?


잘 읽었습니더...^^

에이바 2015-10-14 18:32   좋아요 0 | URL
보통은 인덱스 활용하려 하는데 그냥 넘어갈 때가 많아요. 메모는 내용이 방대하거나 할 때 하는데 흐름이 좀 끊겨서 지양하는 편이에요.
 
1인분 프렌치 요리 - 심플하고 우아하게 즐기는 나만의 작은 사치
히라노 유키코 지음, 이지연 엮음 / 민음인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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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보통 프랑스 요리의 순서는 전채, 주식, 후식으로 나뉘어진다. 전채(오르되브르) 이전에 아페리티프로 입맛을 돋우기도 하고, 치즈는 주식사 이후 따로 먹는데 후식으로 나오기도 하고 보통은 생략된다. 후식은 데세르(디저트), 커피나 디제스티프(꼬냑같은 식후주)를 마신다. 다시 정리하면, 아페리티프-오르되브르-앙트레-(프로마주:치즈)-데세르-디제스티프 순이다. 코스 요리로 알려진 탓에, 프랑스 요리는 좀 부담스럽다. 하지만 보통은 플라(plat)라고 해서 일품요리에 디저트 정도를 곁들인다. 점심도 샐러드나 샌드위치 정도, 식당에서 자주 먹는 건 스테이크-프리트(steak-frites)라고 감자튀김을 곁들인 스테이크다.

 

『1인분 프렌치 요리』는 현실에 맞는 요리법을 소개하고 있다. 가지고 있는 요리책 중에서도 가장 쉽고 간단하며, 부담스럽지 않다. 프랑스 가정식은 버터와 생크림을 아낌없이 사용하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음식이 무겁다. 물론 이 책에 소개된 음식들에도 대부분 버터가 들어가지만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가볍다. 딴 말이지만, 버터는 정말 천상의 식재료가 아닌가 한다. 그냥 빵에 발라 먹어도 맛있고, 채소를 졸여 먹어도 맛있고 밥에 비벼 먹어도 맛있다. 책에 소개된 레시피는 44개이다. 그 중 코스 요리로 대접한다고 할 때, 주식사로 활용할 수 있는 것은 16개(+a)이다. 그 외는 전채와 일품요리, 디저트로 활용이 가능하다. 간간히 소개되는 재료에 대한 이야기와 요리 노하우들은 읽는 재미를 곁들인다.

 

레시피가 간단하기 때문에 요리를 직접 해보려고 했는데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가장 쉬운 레시피를 글로 소개한다. 「여름 채소 타르틴」은 브루스케타와 비슷한데, 마늘빵 대신 팽(빵) 드 캉파뉴를 사용한다. 프랑스어로는 ‘시골 빵’인데 호밀이 들어간 식사용 빵이다. 브루스케타는 빵과 채소를 따로 구워 올리지만, 소개된 타르틴은 요리한 채소를 빵에 올린 뒤 오븐에 넣어 살짝 굽는다. 아주 간단하다. 안 굽고 얹어 먹어도 맛있을 듯. 엔다이브(앙디브)를 이용하는 음식도 많고 실제로 자주 먹는 쿠스쿠스도 소개된다. 자주 해 먹을 만한 「크림소스 닭고기」에는 신 맛을 내는 화이트 와인과 송로버섯 향을 낼 수 있는 트뤼프 오일이 사용된다. 종류에 따라 다르겠지만 트뤼프 오일은 진짜 버섯을 잠깐 스치고 지나간다고 해야 하나, 그렇다. 트뤼프가 워낙 비싸다 보니... 모든 재료를 갖추려 하지 않고 자신에 맞게 적절히 첨가, 생략하면서 활용하면 되겠다.

 

책에 소개된 요리들은 모두 와인과 어울린다. 식사나 안주, 어느 쪽이든 괜찮은데 와인에 힘을 주고 싶다면 Part 3에 소개된 일품요리들이 아주 간단하고 활용도가 높다. 차 마실 때 함께 내기도 좋다. 위에서 소개하진 않았는데 생선과 돼지고기를 사용한 레시피들도 좋았다. 샐러드, 그라탱, 부야베스(프랑스 남부 요리), 라타투이... 오일, 식초, 소금, 후추, 버터, 겨자, 생크림 그리고 간단한 와인에 대한 소개도 실려있다. 프랑스 요리를 알고 있는 사람에게도, 입문자에게도 모두 유용하리라는 생각이 든다. 혼자 먹더라도 예쁜 그릇과 커틀러리를 쓰고, 와인 잔을 옆에 놓으면 꽤 분위기 있으니 ‘나만의 작은 사치’로 우아하게 힐링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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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슬비 2015-10-21 2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관심있어서 이번에 도서관 희망도서로 신청했어요. 요리책은 도서관에서 읽고 너무 좋으면 그때 구입하면 좋더라구요.^^ 1인분이라는 점이 마음에 들어요. 이책.

에이바 2015-10-23 09:39   좋아요 0 | URL
저도 예약선물에 혹해서 산 요리책들에 실망한 적이 꽤 있어서 말씀에 공감해요. 이 책이 보슬비님께도 유용했으면 좋겠습니다. ^^
 
마션 - 어느 괴짜 과학자의 화성판 어드벤처 생존기
앤디 위어 지음, 박아람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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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미국의 우주 산업은 벌써, 화성에 세 번째 탐사팀을 보낼 정도가 되었다. 다음 탐사팀 도착일에 맞춰 미리 보급품을 보내는 등 프로젝트가 어느 정도 궤도에 안착했다. 총 여섯 명으로 구성된 아레스 3팀이 무사히 화성에 도착하여 탐사를 시작한다. 착륙 6일째 되는 날, 갑작스런 모래폭풍 탓에 한 대원이 유리된다. 그의 생체장치가 반응하지 않는데다, 폭풍으로 인해 당초 계획했던 프로젝트 진행이 불가능해지자 팀원들은 귀환을 결정한다. 남겨진 대원의 이름은 마크 와트니, 식물학자 겸 엔지니어이다. 지구로 향하는 헤르메스 호 안, 팀원들이 동료를 잃은 슬픔과 죄책감에 빠져있을 때, 화성의 수호신 아레스가 마크를 보우했음이 드러난다. 깨어난 마크는 지구인 최초로 화성을 점령하고, 아레스의 명을 받들어 화성 농부로서 새 삶을 산다. (믿거나 말거나!)


생존기라는 점에서 『로빈슨 크루소』, 영화 『캐스트 어웨이』를 떠올리게 하지만 『마션』의 상황은 더욱 참혹하다. 마크 와트니가 생존하기 위해서는, 다음 탐사선이 올 때까지 4년을 버텨야 한다. 식량은 겨우 400일 분이며, 아레스 4팀의 착륙은 4년 후로 예정되어 있다. 그가 4년 간 생존하더라도, 랑데부 지점은 모래 폭풍과 미지의 지형을 지나는 3,200킬로미터 바깥에 있다. 화성의 대기 95%는 이산화탄소로 이루어져 있고, 유일한 에너지원인 태양 전지는 모래폭풍으로 인해 일정 시간마다 쓸어줘야 한다. 제한적인 상황에서 선외 활동을 해야 하며, 거주용 막사에 설치된 기계들이 오작동을 일으키고 제때 수리하지 못한다면 생존 가능성은 거의 없다. 마크는 그의 식물학적 지식을 이용하여 작물을 재배하고, 수소를 태워 물을 만든다. 1,500 킬로미터가 넘는 패스파인더 착륙지로의 여행도 해냈다. 과연 그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한편 지구의 본부는 딜레마에 빠진다. 재건조가 불가능한 헤르메스 호와 다섯 명의 우주 비행사들 즉 아레스 프로그램의 생존이냐, 생존이 확인된 대원의 구조냐 하는 선택의 기로에 놓인 것이다. 전자의 생존확률은 높으나 여섯 사람의 목숨이요, 후자의 생존확률은 낮으며 한 사람의 목숨이다. 게다가 언론은 와트니의 사진을 원한다. 마크 와트니 구조 사업의 소비 방식, 기금 마련, 보급선 건조, 항공우주국의 대응, 라이벌인 중국 항천국 등 우주산업의 고충도 엿볼 수 있다. 마크 와트니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강철 멘탈과 전문성, 생존 훈련을 거친 엘리트이기도 하지만 특유의 낙천성 덕이다. 그의 유머는 최악의 상황에서 홀로, 600일이 넘는 시간을 버티게 한다. 이미 낙천주의는 인류가 가진 멋진 능력 중 하나임이 증명되었다. 달을 꿈꾸던 사람들이 결국, 사람을 달에도 보내지 않았던가?


아무래도 1인칭 시점에서 진행되다 보니, 드라마틱한 부분도 담담하게 그려지거나 생략되는 부분들이 있다. 영상화하는 과정에서 충분히 살릴 수 있으리라 생각하며, 생존물이기에 밀려오는 후반부 감동은 미국 최고, 이런 분위기를 자아낸다. 태생적 한계라 할 수 있다. 영화에 대해 소개하자면, 리들리 스콧 감독에 맷 데이먼이 주인공이다. 영화 제작 과정에서 미 항공우주국(NASA) 행성학부, 제임스 그린의 자문을 얻었다. 그린에 따르면, 소설에 등장하는 기술들은 사실적(reasonably realistic)이라 한다. 모래폭풍은 극적 효과를 위해 과장되었다. 앤디 위어는 집필을 위해 우주 공학 기술에 대해 조사하였고, 블로그 연재 중 독자로부터 피드백을 받았다고 한다. 얼마 전 나사는 화성에 흐르는 물이 있다고 발표했는데, 그 곳에 정말 생명이 존재할까? 만약 마션(화성인)이 존재한다면, 소설 속에서 언급된 마크 와트니의 화성 정복은 물 건너간 것이리라. 앤디 위어의 다음 작품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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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철 2015-10-09 2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도서관에 예약 걸어놓은 깜빡하고 있다가 지금 생각났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생각해 보면, 낙천적인 기질의 소유자들은 어떻게든 상황을 좋게 타개해 나가더군요. 좀 과장해서 말하자면 어느 시점부터 `상황`이 그의 편을 열렬히 들어준다고나 할까?^^

그나저나 실제의 화성에는 마션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데 전재산을 걸고자 합니다. 외계지성체를 부정하는 게 아니라, 화성 그 자체의 불모성이 너무 가시적으로 현저해서랄까.ㅎㅎㅎ




에이바 2015-10-09 23:35   좋아요 0 | URL
어느 시점에선 상황이 낙천주의자들의 편을 들어준다는 말씀 공감합니다. 지성체까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물은 있다고 하니까 조금 꿈 꿔보는거죠 ㅎㅎ

물고기자리 2015-10-09 2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를 먼저 볼까, 소설을 먼저 볼까 고민되고 있습니다^^

에이바 2015-10-09 23:38   좋아요 0 | URL
어느 쪽이든 좋지만 저는 원작을 먼저 봤습니다. 영화는 아무래도 생략해야 할 부분들이 있으니까요. ㅎㅎ

AgalmA 2015-10-16 19: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들리 스콧이 원작과 다르게 한국계 여성을 백인 여성으로, 흑인 과학자를 인도계 과학자로 바꾼 걸로 인종차별 논란이 있던데...원작도, 영화도 아직 못 봐 답답하네요ㅜㅜ

에이바 2015-10-16 23:03   좋아요 0 | URL
네 민디 파크 같은 경우는 파크라는 성을 한국인으로만 볼 수 없지만(원작 설정에 반하더라도) 밴커트 카푸어는 내정된 인도인 배우가 하차했어도 충분히 다른 배우 기용이 가능했다는 점에서... 2035년 예상가능한 NASA 내 인종다양성, 현재 인도계 과학자들의 높은 비중을 볼 때 리들리 스콧 감독의 작품 이해와 시각에 대한 우려가 남지요... 훌륭한 감독이지만 전작들도 논란이 있고요...
 
오만과 편견 을유세계문학전집 60
제인 오스틴 지음, 조선정 옮김 / 을유문화사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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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 소설의 원형이라 일컬어지는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은 다양한 형태로 변주되었음에도 원전의 매력을 잃지 않는다. ‘클래스는 영원하다’라는 표현이 걸맞다. 작품의 줄거리야 익히 알려져 있지만 조금 소개해 보자면, 각각 ‘오만’과 ‘편견’을 담당하는, 서로에 비호감인 두 남녀가 있다. 둘은 티격태격하며 여러 사건을 거쳐 서로를 인정하게 되고, 결국 장애물을 넘어 결혼에 골인한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이 소설의 인기와 지지를 담당하고 있는 것은 남자주인공, 미스터 다아시이다.


작품에서 ‘오만’을 담당하고 있는 피츠윌리엄 다아시는 재력을 갖춘 신사다. 소설 속에서도 중요하게 다뤄지는 신사(gentleman)란, 원래 출생에 따른 것이었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면서 경제적 능력으로 이 신분을 획득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중요한 것은 출생이 아니라 행동, 매너이다. 작위는 없지만 어머니가 귀족이고, 아버지는 재력가이니 다아시는 태생적 젠틀맨이다. 부모는 그가 '가진 자'로서 오만을 갖추도록 부추겼고, 이것이 지극히 자연스러운 환경에서 성장한다. 이토록 자존심이 강한 남자는 사랑의 열병에 사로잡혀, 오만하기 이를 데 없는 청혼을 한다. 이에 리지는 다아시에게 ‘신사답지 않다’며 거절한다.


이 거절은 다아시에게 두 가지의 충격을 준다. 첫째로, 다아시는 리지가 청혼을 거절할 것이라 예상치 못했다. 베넷 가의 딸은 다섯 명이고, 당시 상속법에 따라 아버지의 재산은 가까운 남자 친척에게 돌아갈 것이었다. 젠트리 계급 여성에게는 사회적 활동이 허락되지 않았기 때문에, 재력 있는 남성과 결혼해야만 했다. 남녀가 상품으로 기능하는 결혼시장에서 다아시의 가치는 어마어마했다. 적은 지참금으로 결혼해야 할 리지에게 다아시의 청혼은 그야말로 ‘로또’였다. 둘째로, ‘신사답지 않다’는 말은 다아시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말이었다. 재력과 매너를 모두 갖춘 ‘신사’ 다아시가 이런 말을 들었으니, 기분이 어떠했을까. 그의 사회적 위치를 고려했을 때 강한 자존심은 덕목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청혼은 오만했던 것이 사실이고, 그는 이 말을 가슴에 새기고 변화하려 애쓴다.


사랑이라는 이상과 결혼이라는 현실 속 줄다리기의 균형은 소설의 재미와 인기에 공헌한다. 두 사람의 관계는 소소한 일상에서 시작하여 드라마틱한 사건과 장애물을 거쳐 발전된다. ‘오만’과 ‘편견’ 모두 등장인물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속성이며, 진실한 사랑을 얻기 위해서는 상대를 ‘진실되게 보는 눈’이 필요하다는 깨달음을 준다. 결혼이라는 현실에서, 이상을 찾던 리지 베넷이 다아시의 청혼을 다시 고려하는 배경은 바로 ‘펨벌리’를 본 후이다. 이 아름다운 장원은 다아시의 재력과 사회적 신분을 상징한다. 리지가 마냥 속물이라기보다는, 여행을 통해 한층 성숙한데다 더비셔 유지인 다아시의 평판을 듣게 된 것이 큰 역할을 했다. 다아시에 대한 자신의 편견을 깨달은 것이다. 이후 리지는 가족의 부적절한 행동으로 인해, 수치심과 함께 미시즈 다아시가 될 가능성을 잃어버렸음을 통감한다.


제인 오스틴은 젠트리 계급의 남성 간 불평등, 젠트리 계급의 남성과 여성 간 불평등을 소설 안에 녹여내었다. 그녀가 속했던 계급과 사회에 대한 섬세한 묘사와 생동감 있는 캐릭터는 현실성을 더한다. 무도회, 산책, 편지를 통한 연애는 현대의 연애 문화와 통하는 구석이 있다. 따라서 현대의 로맨스 소설들이 『오만과 편견』과 유사한 구조와 전개를 띠는 것은 이렇게 오스틴이 포착해낸 사회와 인간관계의 보편성 때문일 것이다. 아, 그리고 리지의 애정을 얻기 위한 말 없는 헌신과 겸손, 존중과 배려는 태생적인 매력과 더불어 다아시를 로맨스 역사상 최고의 남자 주인공 자리에 오르게 한다. ‘당신 덕분에 저는 전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었어요.’라는 고백 앞에, 모든 걸 갖추었지만 사랑 앞에서 누구보다도 겸손해지는 이에게, 감화되지 않을 사람 누가 있을까.


-다아시의 첫 번째 고백 원문과 번역

In vain have I struggled. It will not do. My feelings will not be repressed. You must allow me to tell you how ardently I admire and love you. 저항했지만 소용없었어요. 할 수 없습니다. 내 감정을 억누를 수 없어요. 당신을 열렬히 연모하고 사랑합니다. (18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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