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을 밟으며 살다 - 함께하는 삶을 일군 윤구병의 공동체 에세이
윤구병 지음 / 휴머니스트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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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장 만나보고 싶은 작가님을 꼽으라면 그 중에 한 분이 바로 '윤구병' 선생님이시다. <어린이 마을>, <달팽이 과학동화>, <개똥이 그림책> 이 책은 우리 아이가 태어나기 전부터 조카에게 정말 많이 읽어주었던 책이다.  그리고 그 책들을 고스란히 물려받아서 우리 아이에게 읽어주었던 때가 꽤 오래 지났다. 

그 때 처음 윤구병 선생님을 알게 되었고, 도토리 계절 그림책으로 다시 만났다. 특히 [심심해서 그랬어] 책은 우리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 때 교과서를 통해서도 만났기에 더욱 애착이 가는 그림책이다. 

그 다음 좀 더 많이 알게 된 것은 보리출판사 탐방을 갔을 때이다.  거기서 윤구병 선생님께서 계신 변산공동체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고, 어떤 곳인가 궁금해서 이리저리 검색해 본 기억이 난다.   

그리고 이젠 [흙을 밟으며 살다] 책으로 본격적인 만남을 갖게 되었다. 이번에 새로 나온 윤구병 선생님의 책 중에서 [꿈이 있는 공동체 학교][자연의 밥상에 둘러앉다], [가난하지만 행복하게] 역시 궁금했지만, 그 중에서 제일 먼저 선택한 책이 [흙을 밟으며 살다]이다. 30년 동안 공동체를 꾸려오면서 쓴 에세이를 주제별로 몇 권의 책으로 나눠 출간한 것이다. 

이 책에서는 1. 땅, 생명들의 놀이터 / 2.흙 위에서 자유로이 살다 / 3. 남의 덕에 우리가 사는 겨 / 4. 내가 꿈꾸는 공동체 이렇게 네 가지 주제로 첫 장에서는 농사 지으면서 느끼는 땅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두번 째 장에서는 윤구병 님의 살아온 흔적을 엿볼 수 있는 어린시절과 청춘시절의 이야기를 읽을 수 있다. 그리고 3,4장에서는 작가의 생각과 견해. 그리고 변산공동체의 생활에 대한 모습과 앞으로 꿈꾸는 미래에 대한 모습을 알려준다. 

나 역시 공동체 생활을 하는 곳에서 일주일 묵었던 적이 있다.
<가나안 농군학교> 아마도 내가 20대 초반에 가게 된 곳인데, 기독교를 바탕으로 한 곳이기에 다소 의미가 다를 수 있지만, 그 곳에 입소해서 집단으로 생활하며 강의를 들으면서 여러가지 생각한 바가 많았던 시간이었다.  

그 땐 왜 젊은 사람들이 시골에 와서 공동체 생활을 할까 궁금하기도 하고, 또 그들의 삶의 철학에 대해서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 꽤 있었지만, 그 때로부터 10년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의 생각은 그 때와는 또 다른 면이 있는 것 같다. 

또한 친정 부모님께서 퇴직을 하시고 시골에 가서 농사를 몇 년 동안 지으셨다. 지금은 많이 연로하셔서 건강상의 문제로 병원 출입이 쉬운 도시로 다시 오셨지만, 몇 년 시골에서 흙을 일구시며 땀을 흘려 농사를 짓던 부모님의 모습이 떠오른다. 

전화 통화를 할 때에도, 직접 찾아뵈었을 때에도 손수 심으신 나무가 잘 자라고 있는지 살펴보며 뿌듯해하셨고, 결혼 후 아이가 태어났을 땐 손수 지은 농산물을 한아름 안겨주시기도 하고, 직접 오이나 호박을 딸 수 있도록 아이가 오기까지 기다리곤 하셨다. 

연고도 없는 시골, 그것도 하루에 버스가 단 세 차례 다니는 시골로 이사하신 후 아파트 하나 안 보이는 시골이라서 더 흐뭇해하신 친정 아버지의 얼굴이 떠오른다. 자전거 하나로 밭에 오가면서 농사를 지으시던 모습. 500평 작은 밭에 콩이며 땅콩, 옥수수와 들깨, 무와 배추 등 조금씩 자잘하게 심고 가꾸시는 모습은 얼마나 평화로워보였는지 모른다.   

농사에 대해선 문외한이지만, 이 책에서 나오듯 오무농법으로 농사를 짓는 것이 얼마나 어려울까 상상이 되었다. 하지만 흙의 소중함을 잘 알고 있는지라 그렇게 노력한 결과 그 수확은 더욱 고귀한 결실이 되었을 것 같다.

[흙을 밟으며 살다] 책을 읽으면서  자꾸만 부모님이 떠올랐다.  노인들만 거주하는 시골의 모습, 그리고 그곳 역시 집성촌이었기에 알게 모르게 친인척으로 구성된 마을 속에서 하나가 되기 위해 노력하시던 부모님. 자라온 삶의 모습이 달랐지만, 시골 속에서 함께 동화되기 위해 먼저 마음의 문을 여신 부모님이셨다. 

지금은 건강 때문에 다시 도시로 왔지만, 늘 흙을 일구며 살고 싶은 친정 부모님을 위해서 열심히 주말농장을 분양받는다. 꽉 막힌 아파트와 수많은 차들과 거리 곳곳에 네온사인들. 시골 모습과는 다르지만 그래도 주말농장을 통해서 흙과 함께 지내실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과연 흙이 우리에게 주는 삶의 의미는 무엇일까?  윤구병님의 에세이는 이 책에서도 마찬가지로 참 진솔하고 흙내음이 난다.  쉽게 공동체의 삶에 뛰어들 수 없더라도, 왠지 그 속에서 함께 하고픈 충동을 준다.  

점점 농촌의 인구가 줄어들고 고령화되며, 앞으로 우리의 먹거리는 어떻게 될런지 걱정이 된다. 이렇게 든든히 농촌을 지키며 일구는 분들이 더 많이 계신다면 참 좋겠는데 싶으면서도 내가 할 수 있다는 생각은 감히 못하는 지극히 소심한 나. 

단순히 농사를 짓는 곳이 아닌, 부유한 농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삶.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지 몸으로 직접 보여주신 그분의 삶의 모습에 경의를 표한다. 자연 속에서 자급자족하며 풍요로이 살아가는 삶의 모습은 현재 우리의 모습과 정말 많이 다르다. 늘 쫓기듯 하루하루를 보내면서, 아이들은 공부 때문에 지쳐하면서 그렇게 살고 있는 우리를 돌아보면서 무엇이 최선이며 최고인지 다시 돌아보게 된다. 

대학교수직을 그만 두고 낙향하고, 그 곳에 변산교육 공동체를 세우셨다. 그렇게 새운 공동체 안에서 농사를 짓고 그 농사를 지은 것으로 상품을 만들며 자녀들에게 공동체 삶이 무엇인지 손수 가르치셨다.  거의 모두가 농촌을 떠나 도시로 가는데, 이와 반대로 최고의 엘리트라고 할 수있는 대학교수에서 농촌으로 오신 분. 농촌은 가난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떨치고 자급자족하고 잘 살 수 있음을 손수 보여주셨다. 

과연 무엇이 정답일까? 교육으로 인해 우리는 늘 맞고 틀리는 이분법적인 삶은 고집할 때가 있다. 맞고 틀린 것이 아니라 나와 다른 삶일 수도 있는데 말이다. 자연 속에서 넉넉한 삶을 유지하고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모습이 요즘엔 참 부럽다.

나중에 우리 아이에겐 어떤 삶이 기다리고 있을까? 어릴 땐 우리 아이 역시 흙 속에서 뛰어놀고 잠자리며 매미며 개구리와 함께 실컷 놀았다. 눈이 내리면 커다란 눈사람을 만들기도 하고, 비가 오면 빗물 웅덩이에 종이배를 띄우기도 하고 풍덩풍덩 발 담그고 놀기도 했다. 놀이터에 가면 모래밭에 앉아서 커다란 모래성을 쌓기도 하고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 집 다오." 노래를 함께 부르면서 놀기도 많이 했다. 나의 어린시절을 떠올리며 난 그렇게 아이랑 놀았는데, 어느 순간에 아파트 놀이터는 모래밭에 쥐들이 와서 병균을 퍼뜨린다며 모래를 다 없애고 푹신한 우레탄으로 바뀌었다.  

그 다음 아이들의 놀이에서 흙과 모래를 갖고 노는 일은 싹 없어졌다. 우리 아이는 제법 커서 놀이터보단 친구들과 어울려 다른 놀이를 하는 것을 좋아했지만, 아파트에 사는 취학 전 꼬마 아이들에게 모래는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놀잇감이 되어버린 것이다. 

아파트 주변 야산과 논밭은 도시계획에 의해 정리되어 높은 담으로 둘러싸이고 하루에도 몇 번 씩 포크레인과 불도저, 트럭이 다니게 되었다. 내가 아이와 함께 놀았던 그 곳이 이미 다 사라져버리자 난 나의 어린 시절의 추억도 우리 아이의 어린 시절도 끝이 난 듯 한 느낌을 받았다.  

흙에서 나와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 인간의 삶인데, 우리는 점점 더 흙을 무시하고 경시여기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요즘 아토피 아이들이 급증하는 것도 흙에서 멀어진 것이 하나의 이유가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게 아니라 자연과 점점 멀어지는 느낌이 든다.

책을 보면서 공동체 삶이 대단해보였지만, 가장 부러웠던 것은 농촌에서 아이들이 실컷 뛰어놀며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윤구병님의 책과 변산공동체 이외에도 난 김용택 선생님께서 계신 섬진강변을 꼭 가보고 싶은데, 이번에 이 책을 읽으면서 언젠가 아이와 함께 이곳 역시 방문해보리란 생생각이 들었다. 

소박하지만 풍요로운 삶. 시간에 쫓기는 게 아니라 여유자작한 삶, 일과 놀이가 다른 게 아니라 하나가 되고, 놀이와 공부가 하나가 되는 그 곳. 이 책을 읽고나선 더욱 변산공동체가 끌린다. 아마 조만간 [꿈이 있는 공동체 학교][자연의 밥상에 둘러앉다] 책을 구입해 읽지 않을까 싶다. 

30년 넘게 소신을 갖고 꾸려온 변산공동체,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흙의 소중함을 알고 흙을 사랑하는 사람이 있기에, 우리의 교육과 생활에 대한 뚜렷한 철학이 있기에 보다 발전된 모습으로 되어갈 것이다. 

“인구의 50% 정도는 농촌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열악한 교육환경, 문화시설 때문에 못 들어오고 있습니다. 제대로 된 교육, 자급경제, 자율적인 문화공동체가 운영될 수 있는 길이 열려야 합니다. 나눔의 울타리가 커지고 전통양식과 현대적 기술이 접목된다면 그 길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앞으로 변산 공동체가 경제, 교육, 문화 생활을 스스로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되면 사회 전체를 바꾸지는 못하더라도 대안적인 삶의 본보기는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라는 말처럼, 언젠가는 변산 공동체가 더욱 멋진 교육환경과 문화시설을 갖게 되길 바란다. 

그리고 점점 사라지는 우리의 농촌이 보다 달라지는 획기적인 계기가 있으면 좋겠단 바람을 가져본다. 농촌을 떠나는 것이 아닌, 농촌으로 돌아갈 수 있는 그런 멋진 대한민국이 되었으면 좋겠다.  

또한 흙의 소중함을 알고, 자연을 사랑하며 우리 가족 역시 자연 속에서 융화되어 살아갈 수 있으면 하는 마음을 가득 담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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