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게네 네 형제 오치근 그림책 컬렉션 시리즈
백석 글, 오치근 그림 / 소년한길 / 2009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언제 읽어도 좋은 백석 선생님의 동화시 - 집게네 네 형제

백석 선생님의 이야기는 정말 재미있다. 운율이 딱딱 떨어지는 리듬감있는 시로 이뤄진 동화라니! 정말 신기하지 않은가? 

처음 백석 선생님의 동화시를 접한 것은 [개구리네 한솥밥]이었다. 조그만 책으로 만난 그 이야기 속에서 개구리들의 일상의 모습이 참 재미있게 보였는데, 나중에 나온 그림책을 통해 다시 만난 [개구리네 한솥밥]은 그림과 너무나 잘 어울려 나와 아이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그 뒤로 새롭게 매료된 동화시를 찾아 백석 선생님의 다른 이야기들을 찾아보았는데, [집게 네 네 형제] 역시 다른 출판사의 책을 먼저 읽고서, 이 책으로 두 번째 만나게 되었다.  

특히나 이 책에서는 연필로 세밀하게 그린 그림을 보며 한 눈에 반했다. 그림책이란 이런 것이구나! 할 정도로 백석 선생님의 동화시를 더욱 돋보이게 만드는 그림이었다. 얼마나 집게를 길러보고 싶은 생각이 너무나 간절해졌는지 모른다. 그리고 싱가포르에서 볼 수 있는 커다란 달팽이가 떠올랐다. 

한국에 있을 적에 정말 조그만 곤충이며 물고기들을 많이 길렀다.  할로윈크랩이랑 가재, 새우, 금붕어와 구피 등 각종 물고기와 심지어 철갑상어까지... 그리고 누에와 장수풍뎅이와 사슴벌레도 몇 년을 길렀다. 장수풍뎅이는 알에서 애벌레, 번데기에서 다시 성충이 되어 그 성충이 짝짓기를 통해 알을 낳고 또 그 알이 애벌레가 되고...  이렇게 집 안 가득 다양한 동물들이 살았었는데... 아이와 함께 이렇게 책을 보며 옛 추억에 잠시 잠기기도 했다. 우리 아이 역시 집게를 보니 옛날 길렀던 동물들이 떠오르고 집게 역시 길러보며 애정을 쏟아보고 싶은가보다.  소라게가 집게인 것 같은데 아쉽게도 소라게는 기르지 못했기에 더욱 그렇다.

가끔은 집 앞에서 개구리를 잡고 여름엔 매미를 잡아 관찰해보고, 가을이면 잠자리채를 갖고  동네 잠자리를 잡고 저녁에 다시 풀어주고... 개구리는 며칠동안 집에서 기르기도 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인지 세밀하게 그려진 집게들이 정말 살아있는 것 같아서 만져보고 길러보고 싶은 생각이 새록새록 든다. 여기서도 지금은 집에 몇 마리 물고기들을 기르기 시작했다. 구피들이 치어를 낳아서 그 치어들도 무럭무럭 잘 자라는 중이다.  처음 싱가포르에 왔을 땐 비가 오고 난 후 집 근처에 보이는 커다란 달팽이를 갖고 와서 며칠 길러보기도 했는데...  집게는 직접 보지 못했지만

내가 살고 있는 곳엔 한국인들이 많이 있다. 특히나 아이가 다니고 있는 학교는 중국계 싱가포리언과 인도계와 말레이계에 이어 아마도 한국인이 4위를 차지하고 있는 듯 그렇게 많아서 더 그런 것 같다. 

그러다보니 살면서 영어와는 조금 멀리 떨어져있고, 집에 있으면 여기가 싱가포르인지 한국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그나마 기러기 맘으로 살면서 이런 생활이었기에 적응했을런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어찌되었건, 따끈따끈한 신간을 친구 집에서 발견했을 때의 기쁨이란 멋진 책을 발견했을 때보다 2배의 가치가 있다. 그것도 이국 땅에서 마음에 드는 한글 동화책을 발견하는 것은. 

어느 바닷가 물웅덩이게 살던 집게 네 형제. 하지만 막내 동생을 제외하고서 세 형제는 자신들이 집게인 것이 싫었나보다. 그래서 그들은 남들처럼 딱딱한 껍질을 쓰기 시작했다.  딱딱 떨어지는 운율과 반복적인 언어의 묘미, 게다가 요즘엔 자주 사용하지 않지만 정말 아름다운 우리말이 어른들 뿐 아니라 아이들도 동화시의 세상으로 푹 빠져들게 만든다. 

강달소라 껍질 쓰고 / 강달소라 꼴을 하고강달소라 짓을 했네  

배꼽조개 껍질 쓰고 / 배꼽조개 꼴을 하고 / 배꼽조개 짓을 했네

우렁이 껍질 쓰고우렁이 꼴을 하고  /  우렁이 짓을 했네

이러한 전개. 시도 되고 동화도 되는 독특한 문학을 형성한 백석 선생님의 동화시. 더 많은 동화시를 만나보고 싶은데, 아직 백석 선생님의 동화시 이외엔 보지 못한 것 같다.  

강달소라와 배꼽조개와 우렁이 역시 우리 아이는 이 책을 통해서 자세히 관찰해본다. 정확히 소라와 강달소라가 어떻게 다른지, 배꼽조개와 조개가 어떤 점이 다른지 모르지만, '강달소라'라는 낱말과 '배꼽조개'라는 낱말이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책을 넘기면서 하나씩 나타나는 멋진 세밀화에 자꾸 감탄을 하게 된다. 나도 이렇게 그림을 그리고 이야기를 쓰고 싶어서, 비온 후 날이 개면 밖으로 나가 달팽이를 관찰하고 그 느낌을 이렇게 동화시로 혹은 시로 쓰고 그림을 그려볼 수 있을까 하는 욕심이 난다.

다시 내용으로 돌아가보자. 세 형들과 달리, 막내 동생은 자신이 집게로 태어난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막내동생은 / 아무것도 아니 쓰고아무 꼴도 아니 하고 / 아무 짓도 아니 하고 / 집게로 태어난 것 / 부끄러워 아니 했네

그러던 어느 날, 오징어와 낚시꾼과 황새에 의해 첫째와 둘째, 셋째가 차례로 생을 마감하게 되었다. 그리고

집게로 태어난 것 / 부끄러워 아니하는 / 막내동생 집게는 / 평안하게 잘살았네

이렇게 이야기는 마무리되었다. 자신의 그대로의 모습을 사랑하던 막내동생은 편안하게 잘 살았다고... 어찌보면 인간 세상을 빗댄 집게들의 모습에서 자신을 사랑하고 부끄러워하지 않는 모습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일 줄 아는 겸허함이 필요하다고 느낄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왠지 서글픔이 느껴져 슬프기도 하다.  

일제시대와 한국전쟁을 모두 거친 백석 선생님의 아픔이 담겨져 있기 때문일까 그렇게 생각을 해본다. 

 

백석 선생님의 다른 동화시 역시 토속적이고 순박한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어서 함께 읽으면 정말 좋다. 게다가 이렇게 멋진 그림까지 함께 볼 수 있는 책이 가득한 요즘 아이들이 너무나 부럽다.  

 

남의 것을 부러워하지 않고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 아마도 이 책을 읽는 아이들 역시 자연스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처음 장면과 마지막 장면이 내 머릿속에서 고스란히 남아있다. 네 형제와 마지막 남은 막내의 모습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