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에서 이제 문재인 지지자 또는 극성 지지자를 보고 홍위병에 빗대며 비판한다. 홍위병이 무슨 짓을 했는지 알면 홍위병에 빗대지는 못한다.(홍위병의 개념을 찾아 보시라. 관련 책도 있다.) 과연 홍위병에 비할 만큼 지지자들이 욕을 들을 만한 사항일까. 누구도 아닌, 자신들을 공격하는 것으로 보이니 당연히 홍위병으로 매도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데 참 이해가 안 되는 게 노 대통령이 돌아가시고 나서 어느 신문사를 떠나서 어느 언론이 성찰하는 것을 못봤다. 심지어 산화하라고까지 했던 기자들은 분들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할까? 기자들이 불러주는 대로 받아쓰지 않고 진짜 돈두렁에 쫓아가서 찾는 시늉이라도 한 기자 있었나? 없잖아. 불러주는 대로 적어주는 대로 기사를 싣고 이걸 보고 지지자들을 등돌리게 만들었던 짓은 여전하지 않는가 말이다. 언제부터 기자들이 책상에 앉아서 받아쓰기나 잘하는 직업이 되었는지 진절머리가 난다. 발로 뛴다는 말도 모르는 놈들이 무슨 기자인지 그저 복사맨이나 다를 바 없다.
후회를 너무 많이 했다. 왜 그를 그렇게 끝까지 못하고 나 또한 함께 그의 논두렁 시계를 오해하고 지지를 철회하고 욕을 했었다. 설마 노무현이 그럴 사람이 아니라는 강력한 믿음에 금이 갔었는지에 대한 자신의 반성이 필수로 따라붙었다. 슬펐고 후회했고 자책했다. 너무 미안하고 정말 죄송하고 이런 지지를 철회하고 욕하는 놈들에게 동조해버린 과오는 마음으로 면책되기가 어렵다. 그래서 그의 죽음을 생각할 때마다 한이 남는다. 자신을 책망하는 것도 물론 포함되어 있다. 내가 그래서 다시는 이런 후회를 남기지 않겠다는 자기반성으로 절치부심으로 나타났다. 그의 죽음이 슬펐고 내가 미쳐 몰랐던 우둔함이 슬펐고 자책 때문에 괴로워서 울컥울컥하게 된는 이유이다. 그래 반성과 후회가 눈물로 나오는 거다. 마치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의 이별의 눈물하고는 반성의 눈물은 농도가 다르다. 아쉬움, 미안함, 죄책감, 그래도 버텨주셨더라면 하는 원망감 등 이런 여러 가지 복합적인 감정이 섞여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언론을 믿지 않는다. 신뢰감은 더 이상 나오지 않는다. 왜냐. 그들은 여전히 그때의 트렌드로 지금의 지지자를 왕따시키고 있었다. 보도의 질적은 수준도 마찬가지다. 공정성에 대해 불균형감을 느낀다. 그래서 이젠 홍위병까지 등장했다. 조중동이야 어차피 그들의 극우적 스탠스는 다 아는 바다. 앞으로도 여전할 것이고 그게 조중동의 일관성이다. 그렇다면 그래도 아군이고 우리 편이라고 여겼고 지지자들의 후원금이나 도움받아서 만들어진 언론 한경오는 이제 등에 칼을 꼽고 날을 세운다. 기자 양반아. 너희들이 엄마 젖 먹을 때 문재인은 집 대출까지 받아서 주식을 사고 후원자를 모으려 달렸단다. 그렇게 누군가의 뜻과 의지와 자금을 모아서 만들어 낸 것이 지금 오늘날의 모습이란다. 그런데 홍위병이라고 한다. 세 끼들아. 내가 홍위병이냐. 나도 당원이고 당비까지 내는 지지자다. 자발적이란 말이다. 당 행사에 한 번도 안 나가고 통장에 자동인출되는 당비나 뜯기는 것처럼 보이는가? 왜 욕 들어 먹는지 왜 지지자들이 한경오에게 등을 돌리고 있는지 자신의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 보기나 했던가 말이다. 그저 비판하니 맞받아치기 바쁘다. 그런데 어쩌나, 너희들에게 지지자들이 등을 돌리고 신문을 보지 않음으로 신문사 재정조차 위험해질 때 보수층 극우 꼴통들 손을 내밀 거냐? 이미 그들은 당신들을 쳐다보지도 않아. 관심 밖이란 말이지. 그런데 그렇게 위험해지고 나면 칼을 꼿은 지지자들에게 또 손을 내밀 이 뻔뻔스럽고 가증스러운 짓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 것인가라는 점이다. 일간에는 폐간시켜야 한다라든가 또는 폐간을 시키기에는 아까워서 다시 태어나게 해야 한다 등등의 설들이 분분하겠지만 박쥐같은 성향은 그리 쉽게 바뀔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
이제는 기자가 써주는 기사의 정보에 심층이란 딱지가 붙지 않는다면 더 이상 보려 들지 않는다. 때론 인터넷 정보를 통해 여러 가지 방법으로 검증하려 들 것이다. 게다가 뻔한 소식들은 이미 인터넷에서 나돌아 다니고 SNS에서 개개인 유저들이 직접 기사를 퍼 올리고 돌리고 만들어 낸다. 점점 기자가 발로 펙트를 쫓아 뛰지 않으면 기사의 신빙성, 신속성 따위는 개개인들에게 무조건 지게 되어 있다. 1인 미디어 시대가 따로 있는 게 아니다. 그러면 누가 신문을 보겠는가? 이미 종이 신문을 보는 연령대가 전부 노인네급이다. 이제 살날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이분들 돌아가시면 종이 신문은 답이 없다. 그럼 신문사가 인터넷의 정보와 비교했을 때 어떤 우위에 점해야 하는지 따져 봐야 하는지. 이게 언론사의 생운을 가르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언론의 제일 첫 번째 기능이 비판 기능이다. 비판도 사람 가려 가며 하는 짓은 참 짜증난다. 아부 떨 때는 언제고 비판의 칼날은 가려 가면서 비판하게 된다면 이 비판의 기능은 의심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믿지 못한다는 거다. 정말 비판해야 할 때는 찍소리 못하다가 만만하니 개떼들처럼 물고 뜯는 행태는 참 치졸하고 비열하다. 언론이 썩었음을 알 수 있는 단적인 예가 바로 김영란법이다. 권력자들, 돈 있는 놈들에게 빌붙어서 배 터지게 얻어먹다가 이제 못 얻어먹으니 법이 잘못되었다고 깔 때 이미 알아봤다. 거지들처럼 여기서 밥 한 끼 저기서 밥 한 끼 이게 그들이 말하는 취재이고 뜯어 먹는 방식이라는 것은 너무나도 싫다. 국민들의 알 권리를 자신들의 언론사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행사되는 사례는 굳이 열거하기도 싫을 정도로 너희들이 싫다. 그래서 등돌린 후원자 지지자들에게 굿은 소리 들었다고 홍위병이라고 낙인을 찍는다. 정말 홍위병처럼 당해 볼 거냐. 홍위병에게 한번 맞아 보고 싸울 거냐. SNS에서 기자 개인이 쓴 글 싸지르는 거 아니다. 소속이 신문사이면 개인적인 행위도 언론사와 불가분의 관계이다. 아무리 개인 사적인 SNS라도 회사의 존재감과 분리되지 않는다. 기자는 언론사의 이름으로 개인이 쓰는 모든 글은 회사의 얼굴일 수밖에 없다.
씨바, 엇따 대고 홍위병 운운하냐. 완전 열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