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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의 미래, 중년파산 - 열심히 일하고도 버림받는 하류중년 보고서
아마미야 가린 외 지음, 류두진 옮김, 오찬호 / 위즈덤하우스 / 2016년 10월
평점 :
절판
채권보다 채무가 훨씬 많아져서 채무이행이 불가능해졌을 경우, 또는 채권으로 더 이상 채무를 변제하기 어려울 때 파산을 하고 채권자는 파산자의 채무를 채무자의 남은 채권으로 청산 절차를 밟는 것을 파산이라고 한다. 채권자는 채무자의 파산에 따라 채권을 청산하더라도 채무를 모두 변제받을 수 없어서 손해를 입게 된다. 그러나 이런 파산의 절차는 기업에서는 시쳇말로 손을 털어 버리면 청산이 될 것이지만, 사람은 재산적으로 청산한다 해서 생존이나 삶을 청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인간의 시간에 대한 청산은 죽음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파산하더라도 삶을 이어가야 하나 마땅히 이어갈 수 있을까라는 물음에 도달하게 된다는 점이다. 파산이란 참 무서운 말이다.
일전에 노후 파산으로 리뷰를 썼던 적이 있었다. 노후를 이어갈 만한 재산이나 수입이 없을 때 닥치는 생활에 대한 삶의 부재를 파산이라고 했는데 이제는 한단계 더 내려와서 중년 세대의 파산을 논하게 되는 시대가 된 것은, 그만큼 중년의 삶이 절박하다는 뜻이다. 그런데, 노후의 파산은 노후 세대는 부양의 의무가 다소 희박할 경우에는 노후세대만 파산으로 청산이 가능하다지만 중년의 파산은 사회적인 안정성 문제로써 야기된다. 중년이란 나이가 결국은 한 가정을 책임지고 단위 구성원들의 삶에도 직접적으로 삶의 영향을 미치는, 이른바 파괴적 파급효과가 엄청 크다는 사실이다. 가장이 파탄날 때 가정은 분해된다. 그렇다고 삶을 포기할 수도 없을진대, 중년은 사회의 중추적인 세대이니까 더욱 불안적 요소는 튀어나오기 마련이다.
이 책은 바로 중년 세대가 안고 있는 경제적인 구조적 문제에 봉착하고 파산에 따른 가정의 해체, 가족의 분해에 대한 심각성을 사례별로 나누었다. 통계로 봐도 가계부채의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도 중년 세대이다. 따라서 안정적인 수입과 지출, 가계의 채권과 부채관리는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특히 가장의 책임에 있어서 이를 다하지 못할 때 발생하는 것은 새로운 세대로 채무가 이전되고 중년 세대는 결국 노후의 삶 또한 평탄하지 못한 결과를 낳게 되고, 새로운 세대, 노후세대에 전 과정에 걸쳐 사회적 불안으로 대두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더 심각하다.
오늘날의 신세대는 희망의 위기라면 중년 세대는 책임의 위기이다. 가정의 수입 중 제일 큰 비중을 차지하는 중년의 나이에 새로운 세대의 양육과 노후세대의 봉양과 심지어 자신의 노후까지 책임져야 할 난제가 실체적으로 와 닿고 있는데 이런 위기는 무엇으로부터 야기되었는가?
흔히 중년 세대는 45세에서 60세 사이의 나이대이다. 기업이나 사회, 혹은 가정에서도 중추적인 나이대이긴 하지만 기업에서는 이제 퇴출될 나이가 되었다. 과도한 인건비 지출 항목으로 지목되기도 하여 인건비에 있어서 퇴직의 1순위에 다다랐다. 명예퇴직도 이제는 40대부터 시작하게 된다. 퇴직에는 명예가 없는데도 명예라는 멍에를 쉬우고 나갈 것을 강요한다. 평범한 중산층 가정이 가장의 퇴직으로 한순간에 몰락하고 가난한 삶을 이어가는 경우는 부지기수로 많이 봤다. 그렇게 한 번의 몰락은 다시는 재기할 수 없을 정도로 재무적 체력이 약화된다. 40대 퇴직은 곧 자영업의 시작일 텐데, 우리나라 통계상 자영업에 있어서 업종을 가리지 않고 창업 후 5년 이상 생존율이 5%를 넘지 않는다고 하니 나머지 95%는 전부 망해서 문을 닫았다는 뜻이다. 그럼 95%는 부채로 인해 그동안 모아놓은 은퇴자금, 혹은 각종 금융상품을 모두 잃어버렸다는 의미이니 그렇다면 앞으로의 노후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지는 사실 답도 없다. 극빈층으로 떨어지는 것은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는 것도 이런 의미이다.
중년 세대에서는 아이들에게 교육비가 한창 들어가야 할 나이이고, 부동산(아파트) 장만을 위해 대출을 갚아나가고, 부모 세대를 부양해야 할 나이인데 퇴직으로 수입이 끊기고 이 수입을 만회하기 위하여 무리한 창업의 길로 나서지만 자영업이란 그간의 경험과 기술에 의한 것이 아니라 그저 프랜차이즈 방식으로 모두 아웃소싱하여 창업비용을 지출하나, 직장 다닐 때보다 못한 수입구조는 결국 한해 두해 지나면 점점 자금의 고갈은 불을 보듯 뻔하다. 그렇게 문을 닫게 되고 청산을 하고 나면 남는 것은 빚 밖에 없다면 결국 중년 파산은 예약되어 있는 셈이 아니겠는가.
과도한 인건비의 주범으로 내몰아 명예퇴직으로 내몰아 놓고 그 빈자리에 기계가 대체되던가 새로운 계약직으로 이체된다. 기업은 경비를 과감히 줄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가장 소비지출이 많은 세대도 중년인데 이런 중년의 지출, 즉 가처분 소득이 하락하면 기업이라고 얼마까지 버틸 수 있을 것인가라는 문제는 차후의 예약일 것이다. 경비나 투자가 줄어들면 당장에는 이익이 많이 발생한다 하더라도 장기간은 어렵다. 장기적으로는 더욱 경비 지출 억제와 더불어 매출 감소로 이어진다. 이른바 악순환 구조라는 너무나도 비일비재한 늪에 빠지는 셈이다.
특히, 일부 나이에 정년이 없는 전문직을 제외한, 일반적인 업종의 종사했던 중년은 특별히 새로운 분야에 대한 지식과 경험을 쌓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배운게 도둑질이라고 하던 거 이외에는 살아온 경험에 비추어 상당히 비전문적이다. 그러니 특별히 쌓는 새로운 기술이 있는 것도 아니고 다른 분야에 눈을 돌리고 업종을 열어갈 기초 체력도 부족하다. 그러니 퇴직 이후에는 사실 자영업에 눈을 쉽게 돌리는 이유이다. 경력과 경험을 살리고 싶어도 나이가 많아 더 이상 젊은이들과 경쟁할 수도 없고 그런 나이에 받아줄 기업도 마득하지도 않다. 오갈 데 없다는 것이 무경험의 창업으로 내몰리고 진입장벽이 상당히 낮은 업종으로만 몰리고 그러다 보니 경쟁을 더욱 치열하며 새로운 수익의 창출이 아니라 기존 시장을 나눠먹기식으로 하게 되니 자영업도 그리 오래가지 못하는 형국이 벌어지고 있다. 또 하나의 문제는 기업에 들어가서도 계약직으로 오래 지속될 경우는 더더욱 어려운 문제이다. 정규직에 비해 소득이 적은 상태로 오래 지속하다 보면 자산의 형성이 어렵다. 자산 형성이 안되면 결국은 중년에 이르러서는 계약직으로 유지되지 못할 경우라면 자영업으로 창업도 불가능하고 과도한 부채를 끌어다 쓴다든가 하게 되면 이를 만회할 기회마저 없는 사이클에 빠진다.
더 심각한 문제는 청년세대가 제대로 된 직업을 확보하지 못하면 건전한 자산 형성이 불가능하다. 물론 부모님의 버프를 받아서 이루어 내는 경우도 그리 많지도 않다. 당장에 부모 세대 또한 베이비부머 세대를 거치면서 치열한 경쟁으로 살아왔던 터라 겨우 가계 일가를 이루었는데 여기서 다시 부모가 자식세대에게 자산을 물려주는 경우가 많지는 않다는 뜻이다. 일부 금수저 운운하면서 기업이나 가업을 물려받는 경우라면 차라리 나은 상황이겠지만 이도 역시 그리 많은 사례가 아니라는 점이다. 대수의 청년세대가 과도한 학비 대출부터 시작해서 정규직화되지 못한 파견직이나 계약직으로, 혹은 저소득 아르바이트화된 직군을 떠돌게 될 때, 중년으로 점점 옮아갈수록 상당히 경제적인 불안을 계속 안고 간다고 봐야 한다. 인생의 생애 주기에서 한 번도 넉넉한 경제적 상황을 만들어 내지 못한 구조적인 문제에서 뭔가의 버프가 없이 자수성가란 거의 불가능하다. 이미 연초부터 중년 세대의 경제적 불안 등으로 인한 고독사가 증가하고 하루가 멀다 하고 생을 포기했다는 뉴스는 이제 일상이 되어 버린 지금이다. 세상은 점점 더 암울해져만 가는 것을 느낀다. 따라서 이 책에서도 다양한 사례를 보면 거의가 다 청년 세대의 불안은 중년 파산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확실하게 기술돼 있다.
이제 자본주의 시대는 성장기가 아니라 고착기가 아닐까 한다. 점점 각종 기계가 발달하고 고도화되어 정보산업사회로 전이될수록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점점 줄어든다. 더욱이 자본과 금융이 시스템화되어 있고 대량의 자본만이 살아남는 실정이다. 먹고 먹히는 먹이사슬의 정점은 소수의 자본 집약된 몇몇 뿐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특히 이제는 자수성가라는 기회는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달리 말해서, 부모의 자산과 신용, 그리고 업역의 대물림이 없다면 기회조차 박탈된 상태라는 것이다. 기회조차 가지기가 어렵다. 자본은 없는 자를 약탈해서 커가는 암덩어리인지도 모른다. 암은 자기 이상 분열로 자기 스스로를 죽여가면서 자란다. 결국 암도 자기를 죽임으로써 죽어간다. 과도한 자본적 시스템은 결국 다 죽는 것과 같다. 그렇다면 중년에게는 답이 없는 것일까?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극소수에게 돌아가는 체제라야 자본은 인건비를 줄일 수 있으니 더더욱 고도화시키고 일반적인 교육과 제도에서는 다양하고 많은 사람이 골고루 쓰임새도 없다. 극소수에게는 과도한 이익으로 돌아가고 나머지는 가난으로 전락한다. 어쩌면 인간이 점점 수렁으로 빠져드니 가급적 출산율마저 급격히 줄어드는 결정적인 원인이 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 난제를 풀어갈 방법은 없을까? 어렵겠지만 방법은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도시에서의 삶이란 모든 것이 도시 밖에서부터 조달되어야 한다. 먹는 것, 입는 것에서부터 에너지 등 각종 자원들이 도시로 들어와야 한다. 당연히 들어와야 하는 것에는 개인이든 단체든 많은 비용이 들어야 하고 이 비용을 지출함으로써 삶이 유지되는 상황이다. 각종 공업제품으로써 이루어지는 소비와 이를 충당하기 위한 직업과 노동이 맞물려 돌아가고 여기서 소득과 지출이 이루어지는 시스템이다. 따라서 근로가 없거나 혹은 근로에 대한 소득보다 지출이 상회한다면 유지될 수 없는 측면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는데 있다. 소득보다 지출이 늘어나는 것은 역시 파산뿐이니까 말이다. 도시에서 이루어지는 안락함은 근로의 직업 유지에 목을 매야 하는 상황이다. 따라서 도시에서 할 수 있는 삶을 유지하는 비용을 줄일 수 있는 방법에는 엄연한 한계가 있다. 도시에서는 자급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 자급의 비중이 높아질수록 투입되어야 할 비용은 낮아진다. 문제는 자급에 대한 기술 혹은 생존 방법이 전무한 실정에서 막상 도시를 떠날 수도 없다면 과연 도시에서 선택할 수 있는 것도 별로 크게 없는 실정이다.
TV는 거의 시청하지 않는데 간혹 케이블 방송에서 나오는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프로그램을 시청한다. 도시를 떠나 자연으로 돌아가서 살아가는 사람을 르포 형식의 다큐멘터리이다. 그 프로그램에 나오는 사람들 전부가 산에서 자급 자족의 삶을 영위한다. 그리 많은 비용을 들이지도 않고 산과 함께 살아간다. 문제는 대부분 혼자이다. 그런데 가족들은 산으로 가기를 꺼려하고 자연에 기대서 살려는 사람이었으니까 말이다. 자연은 수고만 할 용기가 있다면 얼마든지 나눠 주는 혜택이 있고 일자리와 직업에 연연하지 않아도 되지만, 도시가 주는 편리함에 젖어 있으니 산으로 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시골에서 일정 부분 자급만이 가능하다면 굳이 도시에서 허겁 지급 산다는 게 얼마나 비굴한 일인지 말이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이 도시를 버리고 떠날 수도 없다면 과밀화되어 치열한 경쟁을 통해 자리보전에 연연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싶었다. 앞으로 도시는 점점 소비만 비대해질수록 사람이 제공할 서비스의 용량은 줄어들고 서비스에 따른 비용도 감소하게 된다. 다시 말하자면 도시의 일자리는 줄어든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흩어지는 게 맞고 흩어짐으로써 사람의 가치는 올라가야 한다. 도시에 사람들이 너무 많다. 사람의 가치가 떨어지고 노동력이 천시 받게 되어 있다. 널려 있는 노동력은 싼값에 사용될 수밖에 없다면, 차라리 공급을 줄여야 한다. 수요는 줄어드는데 공급은 정해져 있다면 결국은 가격(노동력의 비용)은 내려가는 간단한 원리이다. 따라서 이에 대한 방법으로 자급할 기초체력, 자급할 수 있는 기본 자산은 꼭 필요하고 그 터전을 찾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파산하기 전에 떠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