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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전통주 교과서 - 제2판
류인수 지음 / 교문사 / 2018년 3월
평점 :
술을 빚어 보고 싶다니까 이구 동성으로, 하나같이 나오는 탄식이 "이건 좀 아닌 거 같아요."였다. 다시 말하자면, 술을 만들면 안 된다는 뜻이다. 그냥 슈퍼에 가면 널린 게 술인데 사 먹고 말지. 뭐 하러 만들어서 먹냐는 식이다. 가용성으로 술 자체로 보면야 만들어 먹는 것보다 사 먹는 게 훨씬 간편하고 빠르고 좋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과정이 빠졌다는 것. 과정의 즐거움을 느낄 수 없다는 것. 술이 무조건 대기업의 양조 공장에서 일률적으로 찍어낸 똑같은 맛만 봐야 하는 결과는 정말 별로다. 술을 맛으로 먹나 취하려 먹지.라는 발상도 아닌 거 같기도 하고, 특히 만들기의 과정에서 나오는 다른 방식의 미묘한 맛의 차이는 너무나도 크다. 과정의 즐김이라는 것이 생략된 오늘날의 술 문화는 너무 멋 대가리가 없다. 하기야 미묘한 차이의 디테일을 모르고 지나면 삶이 억울한 건데 무척 아쉽다.
갑자기 뭔 뜬금없는 술타령인지는 모르겠으나, 언젠가 시골로 내려갔을 때 하고 싶은 일을 정하고 계획을 세우는 것의 사전 준비과정이라고 생각했다. 술도 한번 만들어 마시고 싶은 자급자족형의 삶이라고 할까 그런 의미에서 술을 만들고 싶었다. 어떤 규모의 양조장을 만들어서 술장사할 생각은 없다. 술장사도 대규모의 자본이 들어가는 제조 공장이 필요로 하고 생산과 판매에 대해 면허가 필요하고 행정적인 절차까지 밟아서 제조 허가까지 구비해야 가능한 일인데 그걸 다 할 수가 없는 현실적인 판단이 앞선다. 그렇다고 판매를 하지 않는 방식의 개인 주류 생산 방식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물론, 그동안 살아온 이력과 경력에 비추어 술을 만들겠다는 발상은 사실 전혀 엉뚱하다는 것도 안다. 양조장에서 만들어 돈 벌어먹고 살아온 이력이라면야 비슷한 분야니까 그 연장 선상에서 생각이 되겠지만, 전혀 아니란 생각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좀 아닌 거 같다는 반응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지. 왜 모르겠나. 그러나,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살아온 대로 살아갈 것이라는 과정의 흐름에서 보자면 살아온 대로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는 않지만 재미가 없다. 없어도 너무 없다. 먹고 살 제약이 어느 정도 경감이 된다면 다른 분야의 삶도 한 번쯤은 해보고 죽는 것도 또한 나쁘지는 않다. 무슨 거창하게 그럴싸한 양조 제조소를 차려 놓고 전문적인 과정의 시스템적 공장은 불가능하나 시골 집에서 소소하게 제조할 수 있는 여건은 충분히 만들 수 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일제 시대 전에만 해도 우리나라의 소규모 양조장은 무척 많았다. 물이 좋기로 유명한 곳에는 지역마다 어김없이 양조장이 있었고 그 지역에서 생산되고 소비되었다. 조세제도가 확립되지도 않았고 집집마다 밀주처럼 만들어 마셨던 것은 역사적으로도 문헌으로 증명할 수 있다. 그러나 일제 시대에 접어들면서 무수한 양조장이 폐쇄의 길로 접어들었고 집집마다 고유의 술은 제조가 금지되기도 했다. 일제는 술에 세금을 매기고 술의 임의 재조를 막고 면허를 발급해서 일정 요건을 갖춘 자만이 술을 만들게 했다. 그 술 제조의 면허 조건이 특혜가 되었고 주세법으로 세금을 거둬 들이는 수단이 되었다. 즉 우리나라 전통적으로 전해 내려왔던 집집마다 가문의 술맛은 전부 사라지게 되었다. 이제 내가 만들어 마셔 보겠다는데 뭐가 문제인가? 자급자족할 수 있는 술이라면 내 꼴리는 대로의 맛을 볼 부당한 이유는 없다. 모든 이에게 술을 만들 자유를 허락한다.
다만, 술은 축복이자 저주이다. 흡사 담배의 해악만큼이나 저주스러우면서도, 미학과 예술을 발전시키는 동기를 부여한 인류가 발견한 위대한 물질이다. 개인적으로 술 먹고 개소리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다. 집안에도 술 때문에 어릴 때부터 무진장 스트레스받았고 자랐다. 꼭 못난 놈들이 술 처마시고 자신의 삶뿐만 아니라 주변에 미치는 해악은 말로 이루다 못할 지경이다. 알코올 중독에 빠진 놈치고 간간이 예술가도 있겠지만은, 주변 사람에게 미치는 고통은 진절머리 나게 한다. 자신을 잃어버린 술 주정을 대하면 커다란 곤장으로 엉덩이에 피가 흐르도록 태형으로 다스리고 술이 다 깰 때까지 때려야 성이 찰 지경이다. 주변 사람에게 술주정뱅이가 있다면 그 삶의 고통은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는다. 술은 젖소가 마시면 우유를 만들듯이, 덜떨어진 양아치가 마시면 폐악질을 만든다. 길바닥에 널브러진 술에 쩔은 인생치고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것도 없을 지경이다. 어쩌다 한 번의 실수가 두 번이 되고 세 번이 되고 혹시나 운전대라도 잡는 날이면 살인자급이 되지 말란 법도 없다. 음주운전에 다치거나 죽어간 사람들에겐 술은 그야말로 악마가 뱉어놓은 저주의 물질이나 다름없다. 제어되지 못할 때, 제어가 안될 때. 불행은 밑바닥에서부터 치밀어 오른다. 술은 그야말로 뇌를 알코올로 적셔 흥건해진 삶의 널브러진 짐이다.
오늘도 술 한 잔이 간절하다. 그러나 돈만 주면 내오는 널려 빠진 술집에서 마시는 술은 술이지만 술 같지가 않다. 운치도 없고 풍류도 없고 그저 취하는 용도일 뿐이다. 직접 만들어서 그 긴긴 시간의 발효과정으로 기다림이 만든 나만의 술로 어떤 향기를 만들어 내는 나의 브랜드를 가진 술을 만나고 싶다. 이 책은 그야말로 전통주로써 술을 빚어야 하는 교과서이다. 이 교과서를 통해서 기초를 다지고 다시 응용하여 새로운 술을 만들 수 있는 기초 지식을 알게 한다는 점에서 또 책을 구입했다. 역시 알코올의 역사와 제조 방법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술 제조기법이 치밀하게 교과서답게 나온다.
언젠가 긴긴 겨울밤, 마당 한 켠에서 뽀글뽀글 기포가 올라오는 술맛이 어떨지는 상상만 해도 입맛이 다셔지는 흥분이 일어난다. 눈 내리고 꽁꽁 언 겨울밤에 얼음 띄운 전통 기법의 증류수에서 나오는 하얀 알코올의 증기가 코를 자극하고 시집 한 권을 펼치게 할는지 상상만 해도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