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마드랜드
제시카 브루더 지음, 서제인 옮김 / 엘리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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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마드랜드

    

 

길을 나섰다. 더 이상 머무를 이유가 없었다. 소수의 무리들은 나름 앞서는 이를 따랐다. 그는 이전에 이 길들을 여러 번 걸었던 자, 익숙한 자이다. 계절에 따라 혹은 결핍이나 때가 되었기에 나서는 길. 그 길엔 지도도 편의시설도 없다. 열매가 열린 곳, 사냥감들이 있는 곳에 혹은 덜 추운 곳에 도착함에 대한 믿음이 그들을 걷게 한다. 우린 그렇게 걸었다. 정착하기 전 우리는 모든 곳이 집이었고, 모든 것이 감사한 양식이었다.

 

그리고 여기 다시 길을 떠나는 이들이 있다.

태양광 열판을 달고, 임시 화장실을 설치하고, 휴대폰과 SNS, 각종 지도와 정보들. 그렇지만 나서는 목적은 동일하다. 열매와 사냥감 대신 계절 일자리 혹은 임시 일자리를 찾아 떠도는 이들이다. 그렇게 잠시나마의 일로 그들은 일년을 길에서 살아간다. 예전보다 더 혹독할 수 있는 그 길이다.

주변의 눈초리, 경찰들의 검문, 밤 중 차문을 두드리는 소리, 차별과 추위와 신체적 고통이다.

젊지 않은 나이로 나선 길은 그들에게 전기세와 집세와 빚에 대한 두려움에서 해방시킨 듯 하지만, 어쩌면 그건 신포도일수도 있다.

예전 오키들이 분노하며 걷던 그 길을, 그들은 연대와 희망으로 그리고 자유를 그리며 달린다. 그들이 짊어진 분노와 힘듦을 캠프파이어에 던져 넣지만, 그렇다고 사라지는 건 아니다.

 

집값보다 더 비싼 대출금으로 밖으로 내몰린 세대들에 대한 이야기다. 주로 노인들이 대부분이지만 젊은이들도 적지 않다. 그들은 성실했고, 쉬지 않았다. 그렇지만 투자의 잘못, 혹은 은행의 파산, 그리고 나이듦으로 인한 권고사직이나 퇴사로 길로 내몰렸다. 더 일을 하고 싶어도 세상은 그들을 내몰았다. 직장을 잃었다고 해서, 갑자기 내던 집세와 전기세 기타 각종 세금들도 멈추는 것은 아니다. 의식주에 드는 돈들이 갑자기 줄어드는 것도 아니다. 내 몸을 옥죄는 것은 그 많은 고지서들뿐만 아니라, 여기서 탈출할 길이 없다는 것.

그래서 그들은 집을 버렸다. 자신을 버리기 전에 집을 버렸고, 새로운 가정을 꾸려 나간다. 낡은 벤과 트럭에서 만난 그들은 새로운 가족형태를 만든다. 노마드, 유목민, 그들은 새로운 유목민으로 인터넷으로 안부를 묻고 만날 곳을 약속하며 서로에게 기대고 서로에게 힘이 되려 한다.

 

그렇지만 실상은 아프다. 그들은 이미 늙었다. 그 전에도 대부분 힘든 일들을 했었다. 육체는 낡았고 닳았다. 그들이 아마존 캠퍼포스에서 하는 일들은 신체를 갉아먹는다.

아마존에서 그들은 쓰고 버릴 수 있는 인력에다가 국가보조금에 세금혜택까지 받을 수 있는 노령근로자들일 뿐이다.

 

석고보드회사의 관사격이었던 엠파이어 도시는 회사가 망하자 동네가 폐쇄되었다. 그 곳 사람들은 해고뿐만 아니라, 정들어 살던 곳을 떠나 어딘가로 몸을 구겨넣어야 하는 상황에까지 내몰렸다.

저렴한 치과나 안과를 공유하고, 차 정비기술을 서로에게 가르쳐 주고 안전한 주차장소와 마을의 인심정도를 공유하며 생존만이 아닌 삶을 그 순간에도 즐기려 노력한다.

긍정적으로 징징거리며 살지말자는 미국의 대응기제들이 발동한다.

 

 

나는 내 사람들을 찾아냈다. 나를 사랑과 환대로 감싸준 부적응자들, 어중이떠중이 한 무리가 그들이다. ‘부적응자란 패배자나 낙오자라는 뜻이 아니다. 그들은 영리하고 인정 많고 열심히 일하는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뜬 미국인들이었다. 평생 동안 아메리칸드림을 좇은 끝에 그들은 그것이 단지 커다란 하나의 사기극에 불과했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이었다.”

 

견뎌내려는 우리의 의지를 뒤흔드는 고난을 겪으면서도, 별이 빛나는 광할한 하늘 아해 동료 워캠퍼들과 모닥불 주위에 둘러 앉아 있을 때와 같은 공유의 순간들 속에서 행복을 발견하는 일은 가능하다.”

 

 

이 책은 제시카 브루더가 3년간 실제로 차를 집 삼아 그들과 함께 이야기하고 부대끼며 쓴 글이다. 다양한 인물들이 나오지만, 중심엔 린다가 있다. 어스십을 꿈꾸는 린다는 매번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산림관리원이나 아마존 캠퍼포스에 참여한다.

난 마치 은퇴하기 위해 마지막 일을 하고 있는 은행강도 같아요라고 말한다.

평생 일했고, 열심히 살았다. 일자리만 있다면 어디든 무엇이든 하려고 했다. 그렇지만 그들에게 남은 건 지치고 늙은 육신이다. 그리고 빚, 열심히 일하는데도 전혀 줄지 않는 빚과 세금계산서들이다. 그래서 그들은 세금계산서와 집 대신 길을 나섰다.

그럼에도 지치지 않으려, 희망을 가지려 하는 이들을 이야기다.

그럼에도 그들은 추위와 더위에 싸워야 하며, 그들을 보는 시선들에 겁먹어야 하며, 어딘가로 정착하지 못한체 계속 떠돌아야 한다. 계절적 한시적 일자리를 찾아 떠돌며 그래도 그들은 삶을 사랑하려 희망을 가지려 노력한다.

 

친구 패티를 추모하며 올린 글엔 그들의 마음이 절절하다.

마침내 빚진 돈 없이 영원히 살 집을 찾았구나! 이젠 캔자스에서처럼 사막에서처럼 그렇게 추위에 떨며 지내지 않아도 되겠네! 비좁은 집도 이젠 없을 거야. 전화 끊기 전에 내가 항상 말하듯이, 사랑해, 패티, 네가 몹시 그리울 거야.”

 

그렇지만 전직 광고 아트디렉터 앨 크리천슨의 말도 그들을 대변한다.

우린 홈리스가 아니라 하우스리스일뿐이라고. ”

그들은 그렇게 자신이 선택한 방식으로 살아가며, 그 선택에 긍정적이고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며, 또 다른 삶의 모습을 보여준다. 동정하지 마라, 위로하지 마라, 우리의 선택은 신체의 고통과 힘듦과 불편을 가져왔지만, 삶이란 원래 고정관념이 담긴 단어가 아닌 것을.

    

(대부분이 백인들이다. 왜일까 생각해 보니 당연한 일일지도. 흑인들이 벤을 집삼아 타고 다닌다면 마약이나 기타 등등의 의심으로 아마 훨씬 더 위험한 상황에 직면할 것이다.

더 낮은 임금으로 더 오래 삶을 영위해야 하는 여성들의 이야기도 언급된다.

노매드랜드는 영화로 만들어져 아카데미 작품상과 감독상, 여우주연상을 휩쓸었다. 펀역의 프랜시스 맥도먼드-쓰리 빌보드에서 정말 인상 깊었다. 검색해 보니 미국 드라마 올리브 키터리지에서 주연을 맡았다고 한다. 정말 어울린다-와 데이브 역의 데이빗 스트란탄만이 실제 배우이다.

린다 메이와 스왱키, 밥 웹스 등 대부분은 실제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이다. 그리고 그들이 본인을 연기하고 있다. 전혀 어색하지 않았고 감동은 더 깊었다. 책 속 인물들을 영화에서 만날 수 있어 더 실감났고 감동적이었다. 프랜시스 맥도먼드는 영화에서 중심축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가고 있으며, 직접 일을 하며 그들과 함께 했다. 서부지역의 황량한 사막과 평원등의 모습등도 너무 좋았다. 공장이 문을 닫고, 광장과 관련된 사택에서 떠나게 된다. 남편도 잃었고 고향도 떠나야 하는 펀은 밴을 타고 떠나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두려움과 가혹한 현실로 인한 떠남이었다. 그렇지만 길 속에서 다른 노마드들을 만나며 자신을 되돌아보게 된다. 마지막엔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게 되지만, 그것은 제대로 떠나기 위한 돌아옴이었다. 현실에 내몰린 길, 그리고 이젠 스스로 떠나는 길이다.)

 

오키들이 마주한 것은 절망, 그리고 인간의 존엄이 무너지는 현실이었다.

21세기 노마드들이 마주한 것은 미국을 살아내기

그들은 탈출을 계획했고, 타이어 떠돌이들과 만났으며, 더 이상 사탕무할 수 없는 경험들 속에서도 자신을 책임지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밑줄 그은 부분은 책의 차례 제목이다.)

 

2008년 리먼 브라더스 사태시 미국은 그들의 성실한 국민들 대신 타락한 은행 손을 들었다. 새로운 대공황이 왔지만, 그건 개인의 잘못도 나태도 아니었다. 국민들을 보호하는 대신, 그들의 집을 빼앗았고, 그들이 일했던 시간들과 성실함을 노동을 배신했다.

열심히 일했고, 성실했고, 노동의 가치를 믿던 이들이 집 밖으로 내몰렸고, 홈리스들이 되었다. 그렇지만 그들은 다시 선택했다. 우리들은 홈리스가 아니라 하우스리스일뿐이라고.

임금은 끝났고, 연금은 박살이 났다. 저축은 날아가 버렸고, 사회보장제도는 흔들렸다. 그래도 그들은 다시 길 위에서, 일하고 연대하고 삶을 이어나간다. 인간답게 살고 싶고, 서로 도우며 살고 싶기 때문이다. 생존만을 위한 삶이 아닌 생존의 순간에서도 즐길 수도 있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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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5-20 11:07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미니님 이리뷰 💥별폭탄 10개!! 노마드랜드 영화와 원작을 이렇게 탁월하게 해석 하시다니!!성실한 국민을 신용불량자로 만들어 버리고 타락한 은행을 구제해준 미정부 로마시대 메디치와 교황청의 모습과 넘 닮았습니다!!

mini74 2021-05-20 11:14   좋아요 5 | URL
연령대가 비슷해서 아마 더 감정이입해서 읽은 것 같아요 ㅠㅠ 영화도 저는 참 좋았어요. *^^*

새파랑 2021-05-20 12:5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홈과 하우스의 차이가 뭘까 생각해봤어요 ㅎㅎ 생존을 위한 삶이 아닌 즐기기 위한 삶이 중요한거 같아요^^

그레이스 2021-05-20 12:59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하우스리스에 완전 동의!
저 이 책 읽을거라 제목만 봤어요
나중에 읽어볼께요.

미미 2021-05-20 13:1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쓰리 빌보드>에서 보고 매력있다 생각한 배우~^^♡ 책도 읽고 영화도 볼수 있는 작품 너무 좋아요!!

mini74 2021-05-20 13:25   좋아요 4 | URL
저도 쓰리 빌보드 너무 좋았어요 *^^*

바람돌이 2021-05-21 00:4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영화도 책도 다 찜해놓고 있는데 이 리뷰보니 둘 다 빨리 보고싶네요. ^^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서니데이 2021-05-21 23:1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지난 2008년 금융위기로 많은 사람들이 집을 잃거나, 또는 미래를 잃었다고 들었어요.
돌아갈 집과 정착할 지역이 없어서 노마드의 삶이 되는 건 너무 힘든 일입니다.
잘읽었습니다. mini74님,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scott 2021-06-04 20:1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미니님 명품 리뷰
노마랜드
이달의 당선작!!
추카~~추카~~
오늘 맥콜! 드시는 날 ଘ(੭ꆤᴗꆤ)━☆゚.*・

mini74 2021-06-04 20:19   좋아요 4 | URL
고맙습니다. 스콧님도 추카추카 *^^*

그레이스 2021-06-04 20:2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미니님 축하해요~♡

미미 2021-06-04 20:3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미니님 당선 축하드려용~♥

새파랑 2021-06-04 20:5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미니님 알라디너 TV도 당선이신거죠? ㅋ 완전 축하드려요^^

mini74 2021-06-04 20:53   좋아요 3 | URL
지금 책 결제하러 갑니다 ㅎㅎ 새파랑님도 축하드려요 ~~

서니데이 2021-06-04 21:2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mini74님 축하드립니다^^

mini74 2021-06-04 21:33   좋아요 4 | URL
고맙습니다 *^^*

페넬로페 2021-06-04 23:5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mini님의 이 리뷰읽고 home과 house의 의미를 한 참 생각했어요~~이 책을 먼저 읽고, 꼭 영화를 봐야겠어요~~
이 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

그레이스 2021-06-05 07:06   좋아요 3 | URL
restless란 단어도 추가요.

초딩 2021-06-05 17: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 어스십이라는 회사도 있군요 친환경 주거 공간 제공 회사 :-)
mini74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mini74 2021-06-05 18:02   좋아요 2 | URL
초딩님도 축하드립니다. 고맙습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어스십 검색해보니 집들이 생각보다 예쁘더라고요. 친환경하면 패시브주택만 알았는데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