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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 - 우리가 천재라고 부르는 세기의 지성인! ㅣ 도도 휴먼 사이언스
다니엘 스미스 지음, 허수빈 옮김 / 도도(도서출판) / 2015년 8월
평점 :
절판
아인슈타인하면 떠오르는 것이 많은데 우선 머리스타일과 표정, 생각을 깊이 해서 자신의 딸도 못 알아보았다는 유명한 일화 등도 생각난다.
이 책은 아이슈타인의 과학적인 연구에 촛점이 맞춰진 책이라기 보다는 인간 아인슈타인에 대해서 재조명 하는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논픽션 작가이자 편집 연구가인 저자 다니엘 스미스는 아인슈타인 일생의 행적을 쫓으며 그의 말과 행동, 가치관 등을 분석하고 있다.?
아인슈타인은 학문적 업적을 남기거나 과학적 재능을 가진 집안에서 태어나진 않았다. 그의 선조들은 대부분이 상인이거나 기술자들이었고 크게
말해 유태인이었다. 소년 아인슈타인은 재능을 타고났다기보다는 오히려 미숙한 아이였다. 말을 순조롭게 하지 못했으며, 늘 환상에 잠겨있었던
아이였다.
역사적으로 아인슈타인은 경이로운 과학적 성과를 거두었으며, 자유로운 의지와 개성을 존중하는 도덕성과 정치적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정부가 요구하더라도 양심에 반하는 짓은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던 아인슈타인. 그는 국제평화주의자로서 파시즘을 증오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임박한 1939년 아인슈타인은 독일이 원자폭탄을 제조하여 세계를 제패할 것을 우려한 동료 과학자의 요청에 따라 썩 내키지 않았지만
독일보다 먼저 원자폭탄을 제조할 것을 권고한 편지에 서명하여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보내기도 했다. 당시 독일의 악화되어가는 정치적 상황에도
불구하고, 아인슈타인은 국가주의를 공격했고 평화주의 사상을 장려했다. 베를린에서 반유대주의 물결이 거세어지자, 아인슈타인은 "물리학에서의
볼셰비키주의자" 범주로 구분되었고, 그가 시오니즘 운동을 대중적으로 지지하기 시작하자 우익집단들의 그에 대한 격노가 거세졌다. 또한 아인슈타인은
1955년 4월 18일 삶을 마감하기 한 달 전 영국의 철학자 버트란트 러셀과 함께 ‘러셀-아인슈타인 선언’을 주도한다. 핵전쟁에 대한 심각성을
경고한 이 선언은 2년 후 핵무기를 반대하는 과학자들의 모임인 ‘퍼그워시 회의’가 탄생하는 데 결정적인 구실을 한다. 이 회의에서 많은
지식인들은 과학자들에게 과학자의 사회적 책임감을 촉구했다.아인슈타인이 이런 판단 착오를 한 것은 나치에 대한 증오심에서 기인한 듯하다. 사촌 두
명이 강제 수용소에서 죽은 것을 포함해 그의 친척 상당수가 나치에 의해 목숨을 잃었던 부분도 영향을 미쳤을것이라 생각된다.
아인슈타인이 과학자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 평생 동안 진지하게 고민하고 실천했던 것도 꼭 기억해야 한다. 세상을 뜬 지 50년이
지난 후에도 전 세계인이 그를 기억하는 데는 과학적 성과뿐만 아니라 그가 보여줬던 실천적 지식인의 면모도 한몫했을 것이다
우리는 시간
안에서 살아간다. 아니 시간 안에 갇혀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수도 있겠다. 하루의 일과는 시간에 의해 짜여져 있고 여기에 따라 종종걸음 치다
보면 하루가 간다. 하루는 한달이 되고 한달은 일년. 그렇게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때문에 우리는 시간 안에서 쫓기기만 했지 그것을 밖에서
살펴볼 여유가 없었다. 아이슈타인의 여러가지 창의적 발상 자체가 무척 흥미로웠다. 올해는 아인슈타인이 특수 상대성 이론을 발견한 지 꼭
100년이 되는 해이다. 세계의 천재적인 과학자 아인슈타인이 어떻게 위대한 과학적 상상력을 발휘할 수가 있었는지를 꼼꼼하게 보여주며, 그의
일생과 업적을 새로이 인식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