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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정동진에 가면 - 정동진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다
이순원 지음 / 북극곰 / 2015년 8월
평점 :
이순원작가의 작품을 접한것이 이 번이 두번째다. 전작 '워낭'은 석기시대 이후, 우리 민족과 더불어 생업을 함께하며 살아온 소의 내력을 통해 인간세계를 반추해보는 이 작품은 소의 이야기인지, 인간의 이야기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만큼, 소와 사람과 그들이 함께 일군 대지와 쟁기의 삶이 한데 어우러져 있다. 토속적인 느낌이 한껏 살아있는 담백한 문장으로 빚어내는 이순원작가 특유의 서정성이 은근하면서도 묵직한 감동으로 다가왔던 작품이었다. 이번에 읽은 '그대 정동진에 가면'은 정동진 출신의 주인공이 유명 작가가 돼 다시 정동진과 첫사랑의 여인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조선시대 한양의 광화문으로부터 정동쪽에 위치한 바닷가라는 의미로 ‘정동진(正東津)’이라 이름 붙었다. 드라마 ‘모래시계’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추억과 낭만을 쫓는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는 곳이다. 정동진은 바다와 역이 만나는 곳, 해돋이를 보기 위해 새벽기차를 타고 달려오는 곳, 과거와 미래를 잇는 영속성이 묘한 그리움으로 채색되는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누구나 무엇에 대한 그리움, 혹은 어떤 사람에 대한 그리움을 가지고 살아간다. 이 소설은 그러한 그리워지고, 또 미안한 마음이 들게되는 유한한 삶속에서 많은것들을 떠올리게 만든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시절의 추억이 있는 소설속 주인공에게 정동진은 '정동'이라는 지명으로 남아있다. 같거나 비슷하면서도 느낌이 전혀 다른 낯선곳으로 느껴진다는 '정동진'이라는 지명의 괴리 만큼이나 주인공에게 정동진은 특별한 곳이었다.
가난 때문에 진달래꽃을 꺾어 가겟집 아주머니에게 연필이든, 책이든, 국수든 바꿔오던 시절에 만난 미연은 손에 든 진달래꽃보다 더 꽃 같았다. 광업소 부소장집의 딸 미연과의 추억은 그렇게 아름답고 애틋하다. 그렇지만 바라보면 황홀하고 마주치면 부끄러웠다. 아버지는 늘 산으로만 다녔다. 광업소 일을 하던 아버지는 그 일을 그만두고 직접 탄광을 발견하기 위해서 무모하게도 노다지를 캐러 가는 것이다. 여러 해가 흐르는 동안 몇 개의 드러난 석탄 광맥을 발견하긴 했지만 매장량이 터무니없이 작아 채산성이 없는 것들뿐이다. 결국 아버지는 가족이 기거하는 방에 넣을 연탄 한 장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고 산에서 사고를 당한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후, 서울로 이사 가게 된 주인공이다. 이렇게 열여섯 나이에 떠나간 그곳 정동은, 아버지의 꿈이 있었고, 꿈의 상실이 있었던 곳이며, 가난과 부끄러움과 꿈에도 잊을 수 없는 첫사랑의 여인이 있던 곳이었다.솟소설은 성공하기 전에는 결코 그곳을 찾지 않겠다던 주인공은 유명한 작가가되어 어린시절 추억이 있던 그곳을 다시 찾게 된다. 유년 시절 아름답지만 가난했던 봄과 아픈 사랑을 더듬어 가는 여정을 통해 잃어버린 성정과 꿈을 복원하려는 저자의 의도를 읽을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