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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의 한국민족종교 말살책 - 종교사회총서 1
윤이흠 / 고려한림원 / 1997년 11월
평점 :
품절
이 책의 저자는 서울대 종교학과 윤이흠교수로 이 책을 통해 일제시대 한국민족종 교 말살정책의 실상을 구체적 자료와 함께 일제 종교정책의 흐름, 민족종교정책의 유형, 민족종교의 수난과 선택을 비롯해 일제의 민족종교 탄압사례를 구체적 자료와 함께 분석 고찰했다. 책은 모두 2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일제의 한국 민족종교 탄압 정책”을 총괄적으로 살피고 있다. 2부에서는 일제하의 민족종교인 천도교, 보천교, 대종교의 각 교단별로 행해진 구체적인 탄압사례를 살펴보고 있다. 저자는 우리 사회에서 사교와 공포의 표본으로 여기는 백백교의 경우도 일제의 말살책과 조작으로 인한 것일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이 책에서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는 종교는 천도교와 보천교, 대종교다. 우리나라 민족종교는 1860년 발생한 동학을 그 출발점으로 삼고 있다. 동학이 발생하던 조선조 후기는 여러 가지 사회적 아노미 현상이 나타난 시기였다. 각지에서 도적이 들끓고 민란이 발생하는가 하면, 관직에 등용되지 못한 양반층이나, 경제적 수탈을 당한 하층민들은 절망 상태에 빠져들었다. 동학이 창도된 이래 이 땅에서는 여러 가지 ‘새 종교’가 일어났다. 이러한 사회적 혼란 속에 천주교가 유입되었고 민중들의 호응을 얻어 급속도로 확산된 것이 그 다음의 이유였다. 또한 일찍이 밖에서 들어온 불교·도교·유교 그리고 천주교 등의 외래 기독교가 1800년대 말에서 1900년대 초 한국의 사회적 변환기를 맞는 한민족의 종교적 욕구를 고루 충족시켜 주지 못했다는 해석이 가능해지면서, 상대적으로 그와 같은 새 종교운동은 한민족의 주체성이 종교를 통해 드러나는 것으로 볼 수 있어서, 한국의 새 종교운동은 한민족의 종교사는 물론 정신사적 입장에서 볼 때 매우 높이 평가된다.
사회적 혼돈을 치유하는 대안으로 새로운 종교운동이 발생하게 되는데, 이것은 단순한 신앙운동에 그치지 않고 관료의 폭정에 항거하는 등, 민중운동의 성격도 지니고 있었다. 이러한 민족종교들은 그 교리나 구체적 방법론에 있어서는 차이가 있지만, 모두 한민족 중심의 개벽을 지니고 있었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나라를 잃고 방황하고 있는 우리 민족에게 희망을 주고 민족의 주체성을 확립시키는 정신적 근거였다. 그것은 곧 독립의 의지를 불태우는 역할을 하였으며, 독립운동으로 이어지기도 하였다. 이러한 민족 종교들은 일제에게 있어서는 민족정기와 항일정신을 고취시키는 배후였기 때문에 조직적 탄압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민족종교에 대한 잘못된 이해는 일차적으로는, 앞에서 지적하였듯이, 일제의 식민지 문화정책에서 비롯된다. 일본 총독부는 처음부터 천도교, 대종교, 증산교 등 사회적으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세력을 지니고 있었던 한국 자생 민족종교들을 종교로 인정하지 않았다. 다만 이들을 종교와 유사한 단체라는 뜻에서 유사종교類似宗教, 또는 종교를 닮았으나 종교가 아니라는 뜻에서 사이비종교似而非宗教라 규정했다. 이처럼 민족종교는 처음부터 존재를 거부당했던 것이다.(p.21)
일제는 한반도를 통치하면서 시대와 상황에 따라 정책을 바꾸어 가면서 식민지 사회를 보다 효과적으로 억압했는데, 이러한 태도는 종교정책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일제는 3·1운동 뒤 최대 종교였던 천도교를 최린 등 일본 유학생 출신의 요인들을 포섭해 분열시켰다. 또한 이른바 혁신 세력을 통해 종교단체에서 민중교회와 사회개혁운동 단체로 전향하도록 유도해 영성적 권위를 잃고 사회문화운동단체의 성격을 띠게 했다. 천도교는 개신교 신자가 불과 20만 명에 불과했던 1920년대 신자 300백만 명이었을 만큼 이 땅의 대표 종교였다. 또 보천교도 한 때 수백만의 신도를 자랑했다. 대종교도 만주 일대에서 수많은 민족학교를 세워 민족혼을 되살려냈다. 그러나 일본 불교를 등에 업은 불교와 미국과 유럽 등 제국의 지원을 받는 개신교, 가톨릭과 달리 민족종교는 이 땅의 힘없는 민중 외엔 기댈 데가 없었다. 그래서 일제는 가톨릭, 개신교, 불교는 ‘종교’로 예우했지만, 민족종교는 ‘유사 종교’ 취급을 하면서 분열시키고 탄압해 철저히 무너뜨렸다.
그것은 한민족의 정신을 담은 민족종교들이 민족운동의 원천이고 고갱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그래서 일제는 한반도에서뿐 아니라 민족종교가 쫓겨 간 만주지역까지 쫓아가 민족종교를 탄압했고, 거대한 민족종교들은 내부 분열이 일어나도록 원격 조정해 와해시켰다. 당시 신문들도 일제의 인식에 동조해 민족종교들을 유사종교로 여겼던 것이다.
동학의 대외 투쟁 이후민족종교들은 각각 두가지 가운데 한가지를 선택하였다. 하나는 끝까지 투쟁의식을 고취하여 실제적인 무력 투쟁을 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대외 투쟁의 한계를 인정하여 종교 운동의 방향을 신비주의 운동으로 전환시키는 것이다. 일제 강점기에 지속적인 대외 투쟁을 전개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결국 투쟁의 역량을 다른 운동 유형으로 전환하는 길 또는 대대적인 투쟁을 지속하기 위해 새로운 입지를 찾아가는 길 또는 대대적인 투쟁을 지속하기 위해 새로운 입지를 전환하는 길 또는 대대적인 투쟁을 지속하기 위해 새로운 입지를 찾아가는 길이 대안으로 모색될 수 밖에 없었다(p 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