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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였으므로 나는 행복하였네 - 한국인이 애송하는 사랑시
김선우 외 지음, 클로이 그림 / 비채 / 2008년 12월
평점 :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행복하였네』는 ‘한국인이 애송하는 사랑 시’를 선정하기 위해 시단의 원로와 중진, 신예 시인 14명을 추천위원으로 추대하여 추천위원마다 10편씩을 추천을 받아 그중에서 1920년 소월의 '진달래 꽃'의 맨앞장에 실려있는 '먼 후일' 등 50편을 선정해 실었다. 각 시마다엔 아름다운 삽화와 장석남, 김선우 시인의 해설이 함께 실려있는데 수록된 각시에 대한 이해에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어서 좋았다. 또한 말미에는 수록된 시의 출처 및 발표연도를 함께 수록해 작품의 시대적인 부분에 대해 궁금하던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있다.
이 책은 문학사적인 의의도 찾아볼 수 있을것 같다, 과거 우리나라 사람들의 애송시를 꼽으라면 김소월의 '진달래꽃'이나 윤동주의 '서시'였다. 그만큼 시를 만날 수 있는 공간이 교과서에 수록되어 있는 시가 대부분이었으니 그런 결과가 나올만도 할것이다.
세상에 가장 아름다운 언어에는 관통하는 힘이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시대를 초월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정서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아름다운 언어가 시로써 다시 공감할 수 있다는것을 느끼게 된것이다. 시는 문학의 원초적 형태이자 지향점이라는 말이 있다. 시는 감정이 분출하는 상상의 언어이자 정열의 언어이다. 그러기 때문에 시는 현실언어가 아닌것이다. 시는 만나고 사랑하고 이별하는 언어이다.
순정한 사랑이 숨어버린 시대에 작은 불빛과 같은 희망을 만날 수 있는 아름다운 시들을 이 시집을 통해 만날 수 있었다.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뒤에/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중략)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미친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기형도, 질투는 나의힘, 1988)
29살의 나이로 요절한 젊은 시인 기형도의 시 '질투는 나의힘'을 만났다. 삶을 소유하지 못했던 시인의 탄식. 분노에도 이르지 못하는 조그만 인생을 느낄 수 있는 시이다.『입 속의 검은 잎』이라는 시집의 전반적인 시들은 대체로 절망적인 색채를 띠고 있었다. 속속들이 나의 마음을 찡하게 하기도 하였고, 시를 읽은 후 갑자기 공허감을 느끼게 만들기도 하였다. 그 중 사랑의 상실에 대한 이 시를 읽고 또 다른 시각으로 바라본 나의 생과 사랑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사랑하지 않는 일보다 사랑하는 일이 더욱 괴로운 날, 나는 지하철을 타고 당신에게로 갑니다. 날마다 가고 또 갑니다. 어둠뿐인 외줄기 지하통로로 손전등을 비추며 나는 당신에게로 갑니다. /(중략)/가랑잎이라도 떨어져서 마음마저 더욱 여린 날, 사랑하는 일보다 사랑하지 않는 일이 더욱 괴로운 날, 그래서 바람이 부는 날은 지하철을 타고 당신에게로 갑니다. (김종해, 바람 부는 날, 1990)
시인 김종해씨의 젊은 날의 무모하고도 순수했던 20여년 전의 사랑의 느낌을 평이한 언어를 사용하여 세대를 뛰어넘는 공감을 느낄 수 있다. 시에 대한 지식이 별로 없는 나에게도 깊은 이해와 함께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는 면에서 먼저 산 시인과 내가 시간의 간극을 뛰어넘는 감정의 공유를 하게되는 경험을 할 수 있게 되어 좋았던 시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