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에게-강아솔



그럴 수없이 사랑하는 나의 벗 그대여
오늘 이 노래로 나 그대를 위로하려하오
하루하루 세상에 짓눌려 얼굴 마주보지 못해도
나 항상 그대 마음 마주보고 있다오

겨를없이 여기까지 오느라
손 한 뼘의 곁도 내어주지 못해
불안한 그대여
나 그대 대단치 않아도 사랑할 수 있다오

그럴 수없이 사랑하는 나의 벗 그대여
오늘 이 노래로 나 그대를 위로하려하오
하루하루 세상에 짓눌려 더뎌져가는 우리지만
나 그대 허다한 마음 다 받아줄 수 있다오

기다려주는 이는 없다며
그 어디에도 머물지 못한 채 지쳐버린 그대여
나 그대 대단치 않아도 사랑할 수 있다오

이 노래가 작은 위로가 되길 바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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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역사를 새로 읽는다 - 상식을 뒤집는 일본사 특강 동아시아 라이브러리 1
아미노 요시히코 지음, 임경택 옮김 / 돌베개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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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올해의 책. 일본사 뿐만 아니라 역사를 대하는 자세, 근본적인 생각을 바꾼다. 그림과 언어에서 살피는 세세한 눈이 시간 속에서 보이지 않던 사람을 이렇게 생생하게 살려 놓았다. 민속학적인 접근이 주류 역사가 당연하게 자리했던 기운 시소를 아름답게 들어올리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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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사회/과학/예술 주목 신간 작성 후 본 글에 먼댓글 남겨 주세요.














생각을 가장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해 

탄생한 언어가 암호 아닌가 싶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잠깐 생각났습니다.


부록이 무척 탐납니다.

<D 돼지우리 암호>란 무엇을 말하는 걸까요?















오래오래 두고 읽고 싶은 책입니다.

야심과 재미가 비례하는 일은 어려운데

이 책은 그 둘이 아주 조화로울 것 같군요.

장바구니에 담아놓았습니다. 

다른 이가 몰랐으면 싶은 책이기도 합니다.















드디어 나왔습니다!!

연재로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책으로 엮었네요

정말로 강추하는 작품입니다.

논문을 직접 읽고 소화해서 

만화로 그리는 작가입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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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지의 세계 민음의 시 214
황인찬 지음 / 민음사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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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지는 누구인가. ‘미지라고 하고 싶었는데 어쩌다 그냥 시인의 오류로 태어난 이다희지는 저녁이 오면 '목양견 미주를 부르고목양견 미주는 양들을 이끌고 목장으로 돌아간다희지의 세계」 부분이 싱거운 말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희지가 목장으로 돌아가는 방법이다그는 미주를 부르고’ 미주는 양들을 이끄는데 이때 희지는 미주와 닿지 않는다그를 끌거나 손잡지 않는다이들 사이 확인 할 수 있는 것은 소리소리는 형체 없이 존재했다가 사라진다는 점에서 영혼을 닮았다.

 

영혼은 나중에 온다진흙에 숨을 불어넣어 사람을 만들었다는 숭고가 말하듯이. 그러나 시인은 순서를 바꾼다. 소리가 갖은 곳에서 별 뜻 없이 머무는 것처럼 무심하게 영혼을 '먼저' 놓는다. 시인이 말하는 영혼은 몸이 나종내 지닐 수 있는 고귀함이나 여러 날 수양해야 할 이상이 아니다오히려 말한다. 진짜 ’은 얼마나 어려운가진짜 다치고진짜 아프고진짜 사랑하는 몸. 이런 감당에는 나의 몸이 필요하다. 위험하다. 바친다는 말이 어울리겠다. 그래서 여기는 몸 없이 말이나 소리에 물든 '마음'이 먼저 온다. 깊은 의중없이 아이들 장난, 또는 노래처럼 뜻 없기를 바랐던 목소리에 더해 시인은 실존에 대한 탐구를 시작한다.

 

이제 시간이 늦었다고 그가 말한다

그는 자꾸 내 연인 같다 다음에 꼭 또 보자고 한다

(중략)

나는 말없이 그냥 앉아 있었고

어두운 물은 출렁이는 금속 같다 손을 잠그면 다시는 꺼낼 수 없을 것 같다


실존하는 기쁨」 부분.

 

''는 '그'와 '어두운 물'을 내 연인으로 또 금속으로 의심한다. 연인 '같다'는 의심은 그가 연인이 아니라는 정적을 부르고 금속 '같다'는 추궁은 금속이 아니라는 다행을 부른다. 그러나 '나'의 의심과 달리 실제로 그가 ''의 연인이고 어두운 물이 정말 물이라면? '나'는 금새 시험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물에 손을 담그는 건 너무 쉽고물이거나 물 아니게 될 판단도 금새 올 테니까. 그러나 '나'는 이렇게 쉬운 확인을 하지 않는다. 화자는 감각하지 않아도 되는 자신의 주변을 새삼스럽게 불편해하는 것이다. 당연하게 감각하던 것, 당연하게 존재하는 평온을 비튼다. 그런 위태로운 생각 끝에 만나는 것은 나의 판단으로 바뀔 '그' 혹은 '연인 같은 그'가 아니다. 내가 알지 못했던 ''다시인은 이를 "실존"이라고 제목하며, 그것을 기쁨이라고 수식했다.

 


다른 아이들은 무언가를 열심히 만들고 있는데 아무것

도 하지 않는 너 몰래 사온 빵과 음료를 먹고 있는 너 그

런 너를 위해서 만든 것이다 이 작은 물건은

기다리는 것이다 영혼을 얻을 때까지

 

어떤 혼은 돌아오지 않고 어떤 혼은 깃들지 않는 교실

안에서 시간이 자꾸 흘러 애들이 죽고살아 있던 내가 만

든 작은 물건을 믿을 수 없게 커져 버린 그 피조물을

 

죽어 버린 나 자신이 보고 있었다

 

조물부분.


 

정리하자. 의심하며 '나'를 '다시' 만나는 것에서 '실존'이 있다. 그렇다면 실존과 영혼은 어떻게 만날까. 시인은 과정을 '기다림'이라고 믿는다초등학교 미술시간, 영원할 것 같은 침묵이 순간인 교실이다혼이 나가 있는 존재와(선생님혼을 기다리는 존재(화자가 만드는 찰흙)와 아직 혼이 없는(찰흙)이 함께 있는 시간을 포착했다. '그/ 런 너를 위해서 만든 것이다 이 작은 물건은/ 기다리는 것이다 영혼을 얻을 때까지'조물부분. 찰흙이 영혼을 얻는 것은 기다림으로 인한다. 네가 이 찰흙을 봐주는 것, 너의 눈이 이 찰흙에와 박히는 것, 네 온도가 찰흙에 머무는 것. 그런 것으로 이 찱흙은 무엇처럼 생긴 '것'에서 너의 '것'으로 변한다. '나'는 그런 시간을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나'역시 그 찰흙과 다르지 않다. 찰흙이 영혼을 얻는 것과 내가 영혼을 얻게 되는 과정이 다르지 않다. '조물'이라는 제목에서는 나의 탄생을 엿보는 시선까지 이어진다. 작은 교실에서 무한한 반복으로 일어날 시간이 아니다. 조형에 지나지 않을 찰흙같은 사람들 칠흙같은 밤을 지나 사람이 되거나, 여전히 사람 같은 것으로 남기를 반복한다. 영혼을 얻는 일에는 '타인'이라는 '기다림'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시인은 실존이라는 몸이 기다려 영혼을 얻는 '사건'을 그렸다사건은 시간을 가져서 오해가 많다. '우리'라는 사건에서 오해와 거짓을 끊임없이 받아들이는 시간을 걷어낼 수 있다면불가능하므로 시간을 잘게 쪼개본다. 그것은 충분한 표정이 아닐 것이다. 못알아 볼지도 모른다. 시간을 쪼갠 면에서 존재할 단 하나의 정직한 장면을 발견할 수 있다면 충분히 시도해 볼 수 있지 않을까. 단 몇 분의 대화에서도, 일렁이는 혼동을 ''는 분간하고 싶다"우리는 아름다운 숲속을 거닐게 될 거야"/ 그건 이미 일어났던 일이고(중략우리는 걷는다여름밤 주택가에 늘어선 가로등을 따라조율」 부분나와 너는 몇 개의 행동을 하는데나는 그 대화를 일어났던 일과 일어나는 일 그리고 일어날 일로 분간한다나에 의하면 적어도 세 가지로 분간되는 이야기였다. 너는 여름밤을 걷는 '순간다 말해 버렸다. 게다가 시간을 쪼개 정직한 순간을 만나고 싶은 의 노력은 다시 시간에 매인 '나'로 인해 늘 원점이다. 시간에 구애받지 않으며우리의 장면을 판단할 수 있는 '시선'이 있다면. 이런 순간에 는 백 개의 시선을 생각한다. '네가 나의 가슴을 손에 쥐고 입을 맞추면 나는 울며 사력을 다해 너를 밀곤 했는데 (중략그것은 어느 평일 저녁만 있는 삶에 대한 것// 공중에 백 마리의 새가 있다면 백 개의 시선이 이곳을보겠지 공증부분백개의 시선은 '공중에 새가 있다면'으로 가정할 수 있는 시선이다처음에는 백 마리나 되는 새를 상상하기도 했을 것이다이윽고 단순한 형태가 되는 것하나의 무엇이 되는 것우리가 신이라고 부르는공평무사한 시선일 것이다.

 

한숨처럼 뱉는 '마음이 끝나도 나는 살아 있구나건축」 부분. 를 마지막으로 살피고 싶다. '건축'이라는 제목에 깃든 멋진 비유지만 다음 같은 시와 함께 읽어볼 수도 있을 것이다. '나 잠깐만 죽을게수학자의 아침」* 부분작은 충격을 주었던 독백에서 이제 마음이 죽을 수도’ 없는 처참한 상태에 도착했음을 알리는 것 같다이런 토로 중에 황인찬은 칭송에 쌓인 '과거의 시'에 마음을 입히는 작업이 눈에 띈다김수영의 절망을 멍하면 멍’으로의 다 날려버린 변용은 미지가 희지가 된 사연과 크게 다르지 않아보인다. 김수영의 '절망은 끝까지 그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다'는 구절은 마음보다 몸을 아프게 한다. 그러나 진짜 몸을 내보일 수 없는 세대가 유희로 절망을 넘기려는 노오오오력으로 읽을 수 있다면. 비장의 몫은 더 이상 예전의 전유가 아닐 것이다. 정지용의 '유리에게 차고 슬픈 것이 어려 있다'를 바꿔서는 유리의 마음에 대해서 써내린다. '유리의 마음속에는 고통이 있다'고유리의 마음을 들여다 보다가 뜻 없는 강아지에게 시선을 돌려 절망을 토하는 식으로. ''


강건한 몸에서 비롯된 언어는 '본질'을 모두 받아낸 양 머릿속 가장 높은데서 아름답다. 그와 비교되는 __의 세계』. 저녁이 되면 __는 집으로 얼마나 훌륭하게 돌아가는가. 우리는 서로의 손을 잡지도 않고 저 멀리까지 전해질 넷상을 따라 움직인다. 몸이 감당하거나, 몸을 감당할 속내가 아닌 세계에 살고 있는 것이다. 그곳에서 단순하게 영혼만 챙겨나온 이들은 지금과-옛날을 이렇게 노래한다. 지금만 말하면 잘 모르니까 옛날 노래를 변주하며 마음을 실었다. 실은 열심히 살고 있읍니다. 존재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오라는 대답으로 듣는다면 기쁘겠다. 그러니까 

진짜 ’은 얼마나 어려운가진짜 다치고진짜 아프고진짜 사랑하는 몸. 이런 감당에는 단 하나의 몸이 필요하다. 전화와 메신져와 화상이라는 수십개의 기기 뒤에서 수십으로 존재하며 나누는 마음의 형태는 얼마든지 번창할 것이다. 그러한 창이 하나씩 더 뜰때마다 나는 더 가벼워지고, 더 자유롭게 늘어난다. 그때마다 다를 영혼은 그만 두고 최종내 '나' 대체 불가능한 단 한개 몸을 꺼내 비로소 '실존'하고 싶다는 마음을 읽는다. 쪼갤 수 없는 사건에 엉망으로 묶인 시간을 감당하면서, 너의 눈과 목소리가 내 몸에 박히게 되는 순간으로, 한 순간에 한 곳에서 한 명으로밖에 존재할 수 없는 '너'라는 '기다림'을 통과해서 말이다. 그것은 수십개의 창을 통과해도 되지 못했던 다른 '나'를 만나게 되는 수난이다. 왜 그런 노래를 했던가. '우리 지금 만나/ 당장 만나'「우리 지금 만나」**부분. 그러니까 언젠가 안전하지 않고, 진짜 다치고 진짜 아프기 위해서. '멍하면 멍하고' 대답할 목소리는 아주 가까워서 소리보다 숨이 먼저 닿을 것이다. 




*김소연

**장기하




시집의 중간쯤 은유라는 시는 시집의 안내자처럼 친절하다동시에 희지의 세계를 가장 잘 설명하는 해제로도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겨울이 저녁을 깨물었다'는 정확하게 제목 '은유'를 통과한다'그 장면은 기억과 다르다' 단정한 매음새에서 '장면이 모이면 저녁이 되고기억이 모이면 겨울이 된다'는 설명은 다시 '겨울이 저녁을 깨문다'는 시구와 맞물린다. 이 세계는 장면들이 기억을 깨무는 곳이다. 어떤 것을 실제라고 보존할 수 있을까? ''는 고민에 처한다. 어떤 실제도 기억에 의존해 버티는 실제일 뿐이다. '장면에 대한 기억'이 꼬리를 물며 뜯기는 추격을 오래 벌일 것이다. 다시 백 마리의 새를 상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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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 심리학 - 페이스북은 우리 삶과 우정, 사랑을 어떻게 지배하고 있는가
수재나 E. 플로레스 지음, 안진희 옮김 / 책세상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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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은 존재한다. 나 같은 이가 한 둘이겠나는 긍정, 허수를 생각한다. 그러나 그건 네 생각일 뿐이고, 페이스북은 몇 개의 대도시, 몇 개의 나라처럼 살아 있다. 나는 그 도시에 살지 않는 것일 뿐. 블로거형 인간과 페이스북-트위터의 인간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면, (페북과 트위터형의 인간이 또 다르겠으나) 나는 명백히 블로거형 인간이다. 짧은 글을 올리고 일파만파 퍼져나가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발전'이 언제나 늘 '더 나은'이라는 긍정을 감내하는 것은 아니다. 매체가 '발전'하는 통에도 나는 고릿적 커뮤니케이션을 고수한다. 세대차이는 이제 연령 불문하고 일어나는 것이고. 급기야 이런 책이 나왔다. 그곳에 기쁨과 아픔이 있으니, 페이스북의 영향과 주가와 그밖에 다른 것을 말하기 전에 그곳에 머문 사람들의 심리를  '공부'해야 할 참에 도착한 것은 긍정적이다.


이것은 인터넷과는 다르다. 기술을 사용하는 인간의 생활은 부정할 수 없이 뜻하지 않은 수갈래의 방향으로 구현되고, 그것을 아우르는 세계를 구현한다. '그 속에서 인간의 정서가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라고 느낀건 요새의 일이다. 특히 6장 <십대와 패거리 문화 클릭질>을 감명깊게(!) 읽었다. 


나는 왜 사람들이 계속 문제를 일으키는지 모르겠다. 그들은 온갖 노력을 다해 일부러 사람들에게 상처를 준다. 교장선생님에게 말했을 때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다. "그냥 페이스북을 탈퇴하렴. 전혀 문제 될 것 없어." 선생님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우리는 그냥 페이스북을 탈퇴할 수가 없다. 친구들 모두가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대수롭지 않은 일인 양 말하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려고 하지도 않으면서 어떻게 나를 보호해줄 수 있겠는가? 나는 교장선생님이 뭔가 조치를 취하기를 바랐지만 선생님은 그러지 않았다. 나는 페이스북과 트위터에 대해 공부하는 것은 교장선생님의 중요한 임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교장선생님은 딴 세상에 살고 있는 셈이고 절대 나를 보호해줄 수 없을 것이다.

160쪽


시카고 일리노이 주에 사는 16살 마를린의 말이다. 


이것은 페이스북을 차치하고 16살의 세상을 이해하지 못함으로써 나오는 것이다. 그만두라는 조언이 조언인가. 괴롭지만 그곳에서 내가 있었고, 그곳에서 문제가 일어났기 때문에 해결 역시 '그곳'에서 해야 한다. 어른이 아이에게 말하기 때문에 무슨 지혜나 위엄이 깃들어 있을 것 같나. 심각한 오해다.


최근에 나는 '카카오톡 스토리'와 '애니팡'을 그리고 '트위터'와 '카카오 프렌즈'를 깔았다. 게임이나 소셜을 하지 않는 심심한 인간으로서 모두 불필요한 앱들이었다. 그러나 그곳에 내가 알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다. 채널을 경유하지 않으면 그곳에서 일어나는 마음을 온전히 알 수 없다. 모바일 작은 화면을 밤마다 반짝이며 일주일에 하나 올라올까 말까한 짧은 글줄을 읽고 또 읽는다. 애니팡에 접속해 하트를 선물하는 것. 아직 비공개인 그의 트위터를 알기 위해 프로필 사진을 고심해 갈아 끼우는 것. 카카오 프렌즈의 코인을 선물하며, 내가 모르는 그들이 어떤 세계에서 쉼을 가꾸는지 안부를 전한다.  


할말이 없는 전화보다 나을 때가 있다. 


부모님이 하시는 앱이다. 바뀐 프로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일년도 넘게 바뀌지 않는 내 사진이 걸린 프로필에 대해서 말하지 않는 것. 소셜에서 시작해 마음으로 도착한다. '페이스북 망해라'는 말대신 그곳에 적힌 사유를 우리의 대화로 가져올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야 할 것 같다. 공기가 섞이는 대화로 가져오기, 소셜을 포함할 수 있는 대화가 진정 소셜의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는 시작일 것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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