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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면조와 달리는 육체노동자
천명관 지음 / 창비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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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명관칠면조와 달리는 육체노동자창비, 2014.


'술과 햇볕에 목덜미가 벌겋게 익은 쉰일곱의 육체노동자경구는 자신에게 없는 여자를 생각한다개 같은 년 매정한 년 육시랄 년그리고 불쌍한 년까지그녀들의 이름을 잊은 걸까. 아니다. 그가 부르고자 하는 마음이 소화 되지 못하고 년놈으로 '육화'되어 나온 까닭이다. 그는 그년들에게 말도 못하고 씹어 넘기는 밥 새로 들릴 듯 말듯 욕지거리를 웅얼거린다. 자신이 욕한 걸 자신이 듣는다그가 말하는 방식이다속으로 이렇게이런 식으로울화가 가득 차 있는 그에게 평화는 술밖에 없다일 끝나면 다음 일 걱정에 마시고 일 하면 일의 고됨에 마신다술로 절은 몸을 끌고 들어오면 불 꺼진 집아비를 아는 척 하지 않는 딸년이 있어서 경구도 마찬가지로 제 딸에게 아는 척 하지 않는다대신 불쌍하다고 욕을 좀 하며딸년의 매정함에 이혼한 아내를 생각한다.


처음엔 사장님이더니 결국 씨발 놈이 되었다이 바닥에서 돈 내면 사장님이고 개털이면 개새끼였다. p. 125


단편 어디에도 '몇 차례'라는 말은 없지만 경구가 술값 외상값을 갚지 않아서 욕 먹고 어깨를 들이키는 일이 하루 이틀이었을 것 같지 않다. 해서 그날의 부딪힘을 유독 확대 분석할 이유 역시 없어 보인다그러니까 그가 살아온 시간 모두가 축이 되어 그날 칠면조를 들어 올렸던 것이다시마이 하고 오는 길 윤가가 경구에게 쥐어준 꽁꽁 언 칠면조이걸 어디에 쓸까 고민했지만 이렇게 쓸 줄 그는 알았을까외상값으로 시비를 걸던 쌍놈의 새끼상판을 오함마로 내리치듯 칠면조로 찧었을때 이미 잘못되었다는 것을 경구는 알았을 것이나 한편으론 그 잘못이 어디 나에게서만 있는건가라는 물음도 스물스물 올라와 더 힘껏 패대기 칠 수 있었으리. 57그의 등에 매어진 하나로 짜부 된 시간그 틈을 들추어 잘못된 시작점 '어디서'를 찾을 수 없고 설사 그걸 안대도 생을 거꾸로 살 수도 없다이쯤되니 경구가 달고 다니는 욕에서 그년들에 대한 울화와 함게 '나도 내 인생의 피해자라'는 분노가 보이는 것 같다.


지금 여기, 나는 경구 인생의 분기점이라고도 할 수 있는 부분을 엿보고 있는데도 비장함이나 엄숙함같은 것은 느낄 수가 없다예예 굽신거리던 저 밑바닥 노가다꾼이 사람 하나 곤죽으로 만들고 있는데 우스꽝스럽다칠면조 모가지를 잡고 사람 면상에 패대기치는 모습이라그의 인생에서 한 번 있을까 말까한 장면을 이렇게 멋대가리 없이 그렸다그러나 다시 생각하면 칠면조 어디 흔하게 손에 쥐어지는것이던가경구 손에 오함마를 들리지 않고 칠면조를 쥐어줌으로써 소설은 '환상'의 가능성을 가진다아무래도 이 세상의 것이 아닌 것을 쥐어주고 작가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에서처럼 경구가 갖고 싶은 현실(꿈이었으면 싶은)을 그려주는 것이다그러니까 칠면조는 경구의 분노를 해갈하면서도 소설 속 현실에서 그에게 닥쳐올 위험을 좀 덜어주는데나는 칠면조가 어떻게 생겼는지 잘 모르면서 그냥 칠면조라는 이름에 조금 고마웠다.


인생 뭐 있나백반 좀 먹고 빠구리 좀 치다 가면 그뿐이지. p. 110


소설의 처음 경구가 다짐처럼 했던 말을 끝에 와서 부르는 것은 그에게 '그뿐'이 아주 어려운 일 임을 알아버렸기 때문이다그저 저 두가지만 할 수 있어도 '인생'이라는 것이 그의 지론이지만 어디 쉬운가경구는 마음으로 차린 백반 하나 제대로 챙긴 적이 없고 빠구리라니 역시 마음이 채웠던 일 없다싸구려 돼지부속집에서 일하는 찬모의 뭣 같은 냉대에 이를 갈뿐이다그가 대책 없는 인생이 되 버린 것은 끝 없는 가난 때문이다가난뱅이로 만든 사회다라는 말은 그러니까 해서 뭐하나 싶은 말은 하고 싶지 않다다만그가 도저히 품을 수 없는 '희망'에 대해서 좀 말하고 싶다그는 자신이 있는 곳을 탈출하고 있다탈옥이나 탈출은 더 나은 곳을 향해 가는 여정이어야 하는데그의 탈출은 비참하다사람을 패대기치고 트럭을 훔쳤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도착할 곳에 희망이 없기 때문이다희망경구가 오래전에 버린 이 말의 뜻은 '마음이 바란다'는 것인데 너덜한 육체에는 그 마음이 도저히 자라질 않는다질주하는 그가 할 수 있는 생각이라곤 행복했던 날의 아내를 찾는 일뿐이다시간여행이라도 하지 않는다면 만날 수 없는 죽어버린 희망옆에선 얼었던 칠면조가 서서히 녹는다그걸 또 선물이라고 아내에게 주겠다고게다가 그걸 받고 좀 웃어주었으면 하는 경구의 마음을 생각한다. 자신안에서 싹틀 수 없는 희망을 뭐라고 해야할까. 이곳을 떠나면 무엇이 있을 거라고 믿는 마음을 어떻게 지켜봐야할까.


이 이판사판에 "자신을 지키는 것이 큰일이다나는 ''를 허투루 간수했다가 ''를 잃은 사람이다."라는 다산의 고백을 적는다. 이 말은 다산이 40세, 앞으로 시작될 18년의 유배생활을 앞두고 한 말이다. 외견상 그의 인생은 끝났다*. 그러나 다산은 이제껏 자신의 삶이 나를 잃었던 삶이라고 깨달으면서 '수오'(守吾)라는 말을 되새긴다. 모든 것을을 잃어도 '나'를 지키는 희망까지 잃을 수는 없는 것이다. 다시 소설로 돌아와 나는, 아직도 자신의 외부에서 무엇을 더 찾으려는 경구의 위험한 탈출이 멈추길, 트럭이 온전히 세워지길 기다린다. 


아무리 기다려도 트럭이 어쨌는지 알 수가 없다. 그 사이 소설은 끝나 버렸으므로. 내게는 걱정만이 남는다. 그래서 뒤를 좀 이어서 써본다. 속 시원하게 두들겨 패던 환상은 끝났다. 칠면조를 들고가던 경구는 처치곤란한 그것을 어느 곳에 줘 버린다. 대신 양념치킨 한 마리를 산다. 말 없는 딸과 아들이 한 조각씩 먹는 것을 구경하다가 들어간다. 술을 하루 이틀 거른다. 외상값을 갚고 하루 걸러 하루 있을지언정 일판에 초연하게 나간다. 인생 60부터 시작이라는 뻔한 말을 하고 싶지 않지만 아무래도 그에게 들려주고 싶다. 혹시 모를 수도 있으니까. 나는 경구가 자신이 쓴 줄 모르는 경구(警句)를 좀 받아 적는다. 소설의 끝이 걱정되어 그 다음을 생각하게 하는 것. '교훈'이란 말을 딱 질색할 것 같은 천명관이지만 어쩌랴. 그가 그렇게 만들었다. 경구 덕분에 수오라는 말을 알아간다. 빌어먹을 세상은 예전부터 틀려먹었고, 그런걸 딱지치듯 엎어보겠다는 젠장맞을 포부도 없으나 다만. 나를 지키려고 하는 것만은 온 천지도 어쩌지 못할 일이다. 



*정약용, 박혜숙 편역, 『정약용 산문 선집 다산의 마음』, 돌베개. p. 24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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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그려달라고 했더니 가을을 보내줬다. 




나는 그 애의 컷과 컷 사이가 좋고방심할 때마다 나오는 시 같은 문장이 좋다하지만 무엇보담도

자신을 믿고 묵묵히 나가는 모습이 가장 좋다



# 그녀의 플레이 리스트
















오노 나츠메 * 박희정 * 마츠모토 타이요



not simple

오노 나츠메의 그림은 흡사 북유럽의 풍경이다. 흔히 알고 있던 일본풍의 그림체를 깨고 나왔다. 강하고 굵직한 선은 파격적이고 복잡한 서사를 잘 받아낸다. 충격적인 가족사에서 한 남자아이가 바라본 풍경을 담는다. 충격적인데 크게 걱정이 되지는 않는. 괜찮을거라고 믿게 되는 힘이 있다.


호텔 아프리카

오래되어 잘 기억나지 않는다. 우리나라 작가의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작품.


죽도 사무라이

장정이 매우 아름답다. 이렇게까지 책을 만들다니, 애니북스에게 놀랐다. 만화는 저 고정된 사각의 틀에서 잘도 움직인다. 붓으로 그려 결이 그대로 나타나는 선으로 일본 에도시대의 풍경을 현대적으로 해석한다. 글은 원전이 있고, 작가는 그림을 그렸다. 그 시대의 골목을 함께 걷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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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4기 신간평가단 활동시 가장 기억에 남았던 책과 그 이유 


<소년이 온다>, <무의미의 축체> 

리뷰를 이렇게 못 쓸줄 몰랐습니다.


<비트겐슈타인의 조카>는 읽기와 쓰기가 즐거웠고, 

<당신의 그림자는 월요일> 잘 읽힙니다. 재미있는 영화를 본 느낌. 

<느리게 배우는 사람>은 흥미로웠지만 보다 더 정갈한 다음 작품을 보고 싶었습니다. 

<자유로운 삶>은 무척이나 무미건조한 소설입니다. 그래도 잊을 수 없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가지 써는 것"

<소년이 온다>는 가장 여러 번 읽었습니다.

<미국의 목가>는 읽기도 어렵고 쓰기도 어려웠습니다. 아주 불편했던 책입니다. 

<기 드 모파상>은 엄청나게 재미있는 책인데, 그 매력의 반에 반도 쓰지 못해서 아쉽습니다. 

<투명인간>은 읽을 거리가 무척 많은 소설입니다. 어렵지도 않고요. 뒤가 좀 허술하지만 그것도 매력같아요. 

<무의미의 축제>는 할 말이 별로 없습니다. 

<신중한 사람>은 단편으로도 좋지만 전작을 더 그립게 하는 힘이 있었고 

<제르미날>은 아직 읽지 않았지만 

<칠면조와 달리는 육체 노동자>는, 고래를 정말로 읽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2. 14기 신간평가단 도서 중 내맘대로 좋은 책 베스트 5















<소년이 온다>, <칠면조와 달리는 육체노동자>, <제르미날>입니다.



3. 같은 책을 함께 읽는 것이 즐거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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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BBP 2014-10-15 1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짧은 평이 좋네요. <무의미의 축제>를 가장 좋은 책으로 꼽으셨는데.. 할말이 없다는 면에서는 격하게 공감해요 ㅎㅎ

봄밤 2014-10-15 14:48   좋아요 0 | URL
으앗!!! 가장 ˝기억˝에 남는 책입니다. 그 책은 정말이지 할말이 없어요. 아 ㅋㅋㅋ

알라딘신간평가단 2014-10-28 1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봄밤님! (봄밤은 제가 개인적으로 무척 좋아하는 단어라 봄밤님이 괜히 더 좋은!)
좋은 활동 보여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고래는 읽으셨나요? 정말 재밌는 책인데, 꼭 읽어보세요!! :)

봄밤 2014-10-31 00:37   좋아요 0 | URL
더 미룰 수가 없군요. 고래를 읽어야겠습니다! 정말로. 신간평가단 님(ㅠㅠ)의 추천까지 받았으니, 꼭 읽어볼랍니다! 14기, 고맙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4-10-31 0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래 추천합니다.
 

 

 

 

 

 

 








벽 위의 국화 그림자

 

 

국화가 다른 꽃들보다 뛰어난 점이 네 가지 있다. 늦게 피는 것, 오래 견디는 것, 향기로운 것, 아름답지만 화려하지 않고 깨끗하지만 차갑지 않은 것, 이 넷이다.

 

국화를 사랑하기로 세상에 이름이 났거나 국화의 멋을 안다고 자부하는 사람들도 그 사랑하는 점이 이 네 가지를 벗어나지 않는다. 그런데 나는 네 가지 외에 벽에 비친 국화 그림자를 특별히 좋아한다. 밤마다 국화 그림자를 보려고 벽을 치우고 등촉(燈燭)을 켜고 고요히 그 앞에 앉아 스스로 즐겼다.

 

하루는 윤이서*에게 가서 말했다.

 

"오늘 저녁 우리 집에서 자면서 함께 국화를 구경합시다."

이서가 말했다.

"국화가 아무리 아름답지만 어떻게 밤에 구경할 수 있겠나?"

그러면서 몸이 좋지 않다고 사양하므로, 내가 말했다.

"한 번만 구경해 보십시오."

그러고는 굳이 청하여 함께 집으로 왔다.

 

저녁이 되자, 일부러 동자에게 국화분 하나 앞에 등촉을 가까이 갖다 대고 있게 한 다음, 이서를 이끌고 가 보여 주면서 말했다.

 

"기이하지 않습니까?"

이서가 자세히 보더니 말했다.

"자네 말이 이상하이. 나는 기이한 줄 모르겠네."

그래서 나도 그러시냐고 하였다.

 

조금 뒤에 다시 동자에게 제대로 한번 해 보게 했다. 옷걸이와 책상같이 어수선하고 들쭉날쭉한 물건들을 치우고, 국화의 위치를 벽에서 약간 떨어지게 정한 다음, 적당한 곳에다 등촉을 둔 뒤, 불을 비추었다. 그랬더니 기이한 무늬, 이채로운 형상이 홀연 벽에 가득했다.

 

108

 

 

(중략)

 

국화 그림자에서 아름다움을 찾아내고 즐기는 다산. 33세 때의 글이다.

 

*윤이서_고산 윤선도의 직계 후손이며 윤두서의 증손으로 다산의 외육촌이다. 다산보다 열 살이 많았으나 매우 친분이 두터웠다.

 

정약용 산문 선집, 박혜숙 편역,다산의 마음, 돌베개. 2008. 6.

 

  












 

 

와유(臥遊)



안현미

 


 

내가 만약 옛사람 되어 한지에 시를 적는다면 오늘밤 내

리는 가을비를 정갈히 받아두었다가 이듬해 황홀하게 국

화가 피어나는 밤 해를 묵힌 가을비로 오래오래 먹먹토록

먹을 갈아 훗날의 그대에게 연서를 쓰리


'국화는 가을비를 이해하고 가을비는 지난해 다녀갔다'


허면, 훗날의 그대는 가을비 내리는 밤 국화 옆에서 옛

날을 들여다보며 홀로 국화에 취하리

 

 

안현미, 이별의 재구성, 창비, 2009. 9.

 

 



 

다산의 서른 셋. 이마 반듯하고 환한 얼굴로 밤중에 국화를 보자며 형을 이끈다. 그 당기는 팔이며, 벽에 국화 그림자와 함께 입가에 피어나는 미소며, 그 밤 고요했을 불빛이며. 풀벌레 소리여. 흔들림 없는 밤이다. 그 밑에 <와유>라는 시를 문간방에 놓으면 다산이 보시고 좋다. 하셨을 것이다. 이것 좀 보라, 도 하셨을 것이다. 그래서 그 시간 다산의 집 담에 기대고 있으면 홀로 켜진 방안에 그와 윤이서와 벽에 그려진 국화 그림자의 탄성이 말 없이 들릴 것인데. 바다의 바깥으로 밀려가는 물의 움직임처럼 나는 그곳에서 점점 멀어지기만 할 뿐이라. 가을, 옛 글을 앞에 두고 국화 없이 취한다.

 

 

 

국화, 깨끗하지만 차갑지는 않은 것. 목이 가는 국화가 놓이는 모양을 생각하다가 저 멀리 떠내려가 이제는 무엇으로도 잊는지 알 수 없는 사월을 시월에 놓는 일이 있다. 국화나 가을이나 그런 것이 다 무엇일까. 시간 앞에 취할 수 없는 이들이 모여 있다. 그 광장. 한 번도 움직이지 않았던 그곳이 마치 훌쩍 들려 물러났다는 듯이, 작고, 조용하고, 멀다. '그 까닭을 생각한다'. 라고 쓰는 자판의 두드림에 스탠드에 걸린 노란 리본이 가늘게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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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4-10-07 08: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봄밤님, 이 글을 읽으니 아침임에도 불구하고 저는 술에 취한 것 같습니다.
맑은 술에 국화 한 잎 떨어뜨려 천천히 마시다, 그렇게 취해버린 것 같아요.

봄밤 2014-10-07 12:43   좋아요 0 | URL
진동하나요, 국화가 가을에 피는 탓입니다. 헤헷. 다락방님 취하신 기분으로 조금 더 기분 좋은 하루시기를 바라요. 가을이 이만큼 더 있어도 좋겠어요.
 


















나는 나기철의 시작 태도에서 일종의 문학적 금욕주의랄까요, 염결성과 청빈 등의 고전적 덕목을 떠올리게 하는 시적 태도를 봅니다. 이것은 그것이 사물이든 상념이든 시적 대상을 대함에 있어 정중함이나 조심스러움을 잃지 않고자 하는 태도로 나타나지요. 또 시어나 표현에 있어서도, 쓰는 사람의 욕구 위주로 일방적으로 언어를 '사

용'하려 하지 않지요. 이런 조심스러움은 얼마간 소극적이거나 소승적인 감각이기 쉬워서 현실의 격동을 시의 문면(文面)에서 실답게 감당하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삶과 언어를 대하는 이러한 마음가짐과 품위는 매우 귀한 것이라는 점을 말하고 싶어요. 


김사인, -이 계절에 주목할 신간들- 대담 중에서. 창작과 비평 2014 여름호.





 그냥 지문 같은 거라고. 인주 붉게 눌러졌으므로 그 결이 나타나지 않고는 베길 수 없는 노릇이라고. 그래서 느린 산같은 결에는 같이 눕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그게 글이 좋다는 게 아닐까. 숙명처럼 말의 부름을 받는 이들의 대관절, 언어를 '사용'하지 않으려는 태도는 무엇인가. 그리고 '그것'을 읽는 태도는 무엇인가. 여름끝에 받아온 이 차가 영영 식지 않기를. 손을 공손히 앞에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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