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게 배우는 사람]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느리게 배우는 사람 창비세계문학 30
토머스 핀천 지음, 박인찬 옮김 / 창비 / 2014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단편들을 다시 읽었을 때 나의 첫 반응은 한마디로 '오 맙소사'였다. 돌이키고 싶지 않은 신체증상이 동반되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고 나서 들었던 두번째 생각은 완전히 다시 쓰자는 것이었다. 이 두가지 충동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나는 중년 다운 평정심을 내세워, 그 당시 어린 작가였던 나를 이제 있는 그대로 봐줄 나이가 된 것처럼 행세하기로 했다. 이 어린 친구를 내 인생에서 내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10


고작 한 페이지 넘기고 확신했다. 핀천, 완전히 반했어! 이런 쑥쓰러움과 유머, 유쾌함과 연민이라면 그의 작품이 어떻다 하더라도 이해를 기울일 '의지'가 있다고. '의향'이 아니다. 노력을 하겠다는 약속이었고, 새끼를 걸고 흔드는 폼에 믿음이 있었다. 그러는 사이 '작가 서문''어린 친구'의 작품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나는 조급해졌다. 아직 어린 친구를 만나기도 전에 그를 이해해 버릴까봐. 서문을 듬성듬성 넘기고 바로 작품을 읽었다.

 

로치 요새, 이곳의 일기는 좋다. '햇살은 또 얼마나 뜨거운데' 58 맑은 날도 많으면 괴롭다. 권태로운 빛이 넘쳐 땅 위에 아무렇게나 흐르고 그 위에 하염없는 시간이 별로 다를 것도 없는 색으로 끊임없이 덧칠한다. 이곳에서는 오히려 무의미한 일이 의미있어 보일 지경이다. 주인공 러바인은 여기 로치 요새, 그러니까 군대에 있고, 대학졸업장을 가지고 있지만 고등학교도 못나온 이보다 나을 것이 없고, 돌밭에 뿌려진 씨 같고, 부대 안에서 가장 게으른 녀석이다. 58 자신에 대한 동료들의 설명 끝에 러바인은 묻는다. "도대체 왜 나는 이렇게 군대에 처박혀 있을까?" 이어진 대답은 '로치 요새만큼 돌 많은 데도 없어.'. 실소다. 마음의 행방을 잡을 듯하면서 뻔하게 놓쳐버리는 서술은 여러 곳에서 반복된다. 앞은 보여줄 생각도 없고 지나가서 잡을 수 없는 뒷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소설의 일이라는 듯 러바인이 대수롭지 않게 지나는 가장자리를 오래 보여준다. 그래서 '습작에 가까운 소설'이라는 작가의 서문은 맞다고도 할 수 있고, 지나친 우려라고도 할 수 있을 것같다


비라고는 없을 것 같은 일기에 불구하고 소설 말미에 가면 비가 온다. 그 비는 예상 가능한 로치의 매일 같은 날을 흔든다. 하루쯤 땅도 식고, 러바인의 머리, 혹은 몸도 식을 것이다. 그래서라고 잇지는 않겠지만, 러바인은 ''가 싫다. 머리가 맑게 개이는 일기는 원치 않는다. 이 푹찌는 날씨와 함께 인생도 그러하고자 한다. 서른살, 혈기왕성한 나이이지만 그는 움직임을 원하지 않는다. 이 조용하고 변함없는 햇살 속에서 배를 찌우고, 야한 소설을 읽고, 여자와 한번 자보는 '하루'를 떠올릴 뿐이다. 누가 그를 그렇게 만들었나? 로치의 기후 때문인가, 50년대, 미국을 감싼 기후 때문인가? 순응과 획일이라는 집단에 안정하고자 하는 조용한 세대의 출현을 러바인에게 투영한 결과라면 어떨까. 소설집 가장 첫번째 자리를 꽤찬 미숙한 작품은 당시 미국에서도 외떨어진 사회, 게다가 군대, 어떤 청년으로 하여금 사회 전반에 흘렀을 풍경을 정확히 겨눈다.


'The Small Rain' 이슬비라는 제목이다. 이슬비는 비를 맞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지만 옷은 젖는 희한한 이름이다. 안정된 직업, 전원 주택, 은퇴 이후 따위에 눈길조차 주지않는 러바인은 그 세대의 밖에 있고자 한 이는 아니었을까. 그러니까 차마 지켜볼 수 없던 그의 무력함은 사회가 말하는 성공을 거부하려던 불온함이 아니었냐는 의혹이 충분하다. 다음 같은 문장을 특히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마침내 마음이 진정된 두사람은 바보 같은 개구리 울음소리에 계속 시달린 끝에 서로 떨어져 누웠다. "커다란 죽음의 한가운데에." 러바인이 말했다. "작은 죽음이 있다." 그러고는 조금 있다가 말했다. ", 라이프지의 사진 설명 같네. ''의 한가운데. 우리는 죽음 속에 있다. , 맙소사." 73 그러니까 '삶의 한 가운데, 우리는 죽음 속에 있다'는 대목이 정녕 청년에게서 나오는 소리인가 물어야 한다. 그렇다면 그의 청춘은 조로가 아니냔 말이다. 

 

오, 맙소사. 어쨌거나 비는 내렸다. 소설은 끝났지만 그 후로도 왔을 비다. 미국의 그 날들도 지나갔다. <이슬비>에서 <로우랜드>로, 또 다음 작품으로 시선을 옮기면서 내 마음을 끄는 것은 아직 맨 앞에 있었다. 일부러 다 읽지 않고 지나왔기 때문이다. 어린 친구의 소개는 이렇게 이어진다. '다른 한편으로는, 아직 개발되지 않은 어떤 테크놀로지의 도움으로 오늘 우연히 그를 만나게 된다면, 그에게 돈을 빌려주거나, 혹은 그것을 핑계 삼아 길을 걷다가 맥주를 한잔하며 옛 시절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누면 얼마나 기분 좋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10 '그에게 돈을 빌려주거나' 자신의 어린 시절을 만나서 제일 처음 생각하는 것이 다짜고짜 돈을 빌려주는 거라니! 자신의 지난날에 대한 솔직한 걱정과, 유머러스하게 넘기는 중년의 그가 묘한 표정을 만든다다. 그들이 공유했던 미국의 날들은 통과하는 중이거나 통과한 후다. 시차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들이 만날 거리를 떠올리는데, 그날의 조명이며, 습기며, 길 양쪽의 풀냄새까지 끼쳐오는게 아닌가. 그때 주고 받을 이야기만 공백이다! 이제 어린 친구를 만나보았으니 어서 작가 선생도 만나야지 다짐한다. 그들은 훗날 내 기억 어디에서 만나게 될 것인데, 아마 내가 생각해둔 그 길이 맞을 것이고 차갑게 얼린 맥주를 두사람에게 들려줄 것이다. 오늘, 한차례 소나기가 다녀갔고 멀리서 장마가 올라온다는 소식을 들었다. '맞았다'는 생각 할 틈 없이 모두 젖고 마는. 그런 비가 말이다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꽃피는 용산 - 딸에게 보낸 편지
김재호 지음 / 서해문집 / 2013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지 않는 꽃-꽃피는 용산

 

 

만화의 칸 모두를 자를 대고 그렸다. 그래서 읽는 이는 어디서부터 그리기 시작했는지 쉽게 알아 챌 수 있다. 한 칸 한 칸 공간의 시작과 끝이 분명하다. 교도소에서 거의 유일하게 허락된 자유의 칸일 터였다. 자를 밀고 올라오는 잉크는 자주 뭉쳤다. 잠깐 숨을 돌리거나 마음이 저 모르게 벌어졌을 틈일 것이다. 이 떨림을 고스란히 담아낸 손이 고마웠다.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었다. 이 칸들이 모두 같은 크기를 갖고 있었던 것. 그리기 전에 생각해 두었을 분할이다. 모두 같은 크기로 담자. '어떤 이야기라도'. 나는 이 뜻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리고 '진심'으로 이해하고 싶었다.

 

 그러니까 그날 용산의 망루에서 불타고 있는 컨테이너도, 교도소 운동장에서 본 꽃들도, 들리지 않는 딸의 울음도 모두 같은 크기의 칸에 그려져 있다. 만화에서 모든 칸이 동일한 크기를 갖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묻는다. 슬픔이라는 말로 담는 것이 폭력으로 느껴지는 -마음의 진동과- 삶의 궤적을 지나온 기억이 고르게, 과장 없이 그려져 있다. 어느 한 칸은 크게 그리고 싶은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중요하니까, 내 마음에 가장 크게 들어왔으니까, 조금 더 크게 말하고 싶으니까. 그러나 책을 두 번째 읽을 때, 이 마음은 저자에게 '할 수 없는 일'이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큰 칸을 그리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그로 인해 발생하는 작은 칸을 그릴 수 없었던 것이다. 어느 것 하나 작게 그릴 수 없다. '모두' 소중하므로.

 

지금도 밀양, 진도, 그 밖에 도처에서 일어나는 저울질은 가치 있다는 것을 안전한 쪽으로 옮긴다. 그렇다면 그 반대편은 어디로 내몰리는가. 자본과 권력의 준엄한 등식으로 용산과 삶에서 유배된 내가 있다. 내가 그리는 만화는 한 장의 종이에 그리움을 전할 뿐이지만 이곳의 크기마져 동일하지 않다면. 세상에 소중한 것들은 어디에 있을 수 있을까. 자리가 없다, 자리가. 살아있을 자리가 말이다. 그래선 안된다. 어떤 칸도 그 옆의 칸보다 크지 않고, 어떤 칸도 어떤 칸보다 작지 않다. 만화는 마음의 확장과 소멸을 어떤 장르보다 섬세하게 폭주할 수 있는 방식이다. 그러나 그런 것은 하나도 없었다. 동일한 칸에 성실하게 그려간 것은 그날의 일과, 헤어진 가족과의 살가운 추억이다. 보고 싶은 이들의 얼굴이, 눈동자가, 눈물이 모두 한 손에서 비롯된다.

 

세 가지, 많아야 네 가지 색으로 그려진 만화의 기록을 시간으로 환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저자가 감옥에 있는 오 년은 초등학생이던 아이가 무려 중학생으로 '변하는' 마법같은 시간이기 때문이다. 그런 동안 국가가 몰아간 용산의 죽음은 바래고 잊혀지는 것 같다. 그러나 <꽃 피는 용산>은 산 이는 그날을 떠안으면서도 여전히 살아간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움이라는 폭력으로 생생히 아프다. 세상에 무엇으로도 다시 채울 수 없는 아빠와 딸 사이 공백이, 아내와 떨어져 서로를 만질 수 없는 안타까움의 날들이, 아빠 없는 아이의 하루와 남편 없이 혼자서 생활과 아이를 키워야 하는 엄마의 날들이. 그리고 아들을 감옥에 간 이후로 돌아오는 당신의 생일상을 받지 않는 어머니의 이야기가. ' 네가 나오는 날이 내 생일'이라는 이 고전 같은 대화가 아직도 이 땅에 울린다.

 

나는 그런 것을 보고 싶지 않다. 세련되어 나와 거리가 먼 것, 그래서 이야기와 나의 닿을 수 없는 거리에 안심하고 무뎌지고 싶다. 아무리 봐도 사람이 그렸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 매끈한 선들에 편했던 것은 눈이 아니라 마음이었구나. 손결 알고 싶지 않아도 느낄 수 밖에 없는 칸마다 울컥한다. 이 두께를 이루다니, 그러나 만질 수 없는 시간이라니, 이것의 배로 많을 거라니, 이 책이 나오고도 진행되는 내일이, 지하철을 타고 스쳐지나는 서울의 풍경이 이렇게 평온할 수는 없는 것이다.

많은 시간이 지나 ', 필 것인가 용산' 물으면 '그렇다', 혹은 '아니다' 여기저기서 들릴것이다. 그리고 이 말들이 어떤 소용도 없다는 것을 잘 안다. 우리는 다만 이 작은 기록으로 '용산을 기억하라' 기대 할 수 있을 뿐이다. <꽃 피는 용산>이 선명한 꽃이 될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마음에 핀 꽃은 지지 않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류성룡, 나라를 다시 만들 때가 되었나이다
송복 지음 / 시루 / 2014년 5월
평점 :
품절



다만 나의 내부에 전해야 할 말-류성룡나라를 다시 만들 때가 되었나이다

 

 

 

왔던 길은 다시 갈 수 없지만

기원을 알 수 없는 무거운 축이 있다이것은 왔던 길은 다시 가지 않는 기이한 움직임을 갖는다좀처럼 움직이지 않지만 왼쪽으로왼쪽으로 약 사백보를 밀어보자이 공간은 다른 무엇으로 변한 적 없으나 시간을 올라가면 나라가 불타고 있다.고니시 유키나가가 금산에 상륙해서 한양에 도착하기까지 불과 이십일다시 임진강을 넘어 평양에 들어온 것이 6월 13.왜군은 '아침이 아니면 저녁'에 의주가 있는 압록강에 도착할 수 있었던 급박한 상황에 도착한다의주는 당시 선조가 몸을 숨기고 있던 곳이다. 7년에 걸친 임진왜란과 정유재란당시 조선은 싸울 수 있는 기력이 없었다그저 땅덩이가 있어서 전쟁이 일어날 수 있는 조건이 되었을 뿐이다인재도식량도의지도 없었던 나라. '나라가 나라가 아니다.' 결코 '나라 아닌 나라'를 놓을 수 없었던 류성룡이 있었다.

 

허구와 허구를 무너트리고

몇 가지 인상이 있으나임진왜란으로 일어났던 황폐를 떠올리는 일은 언제나 피상적이다지금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무엇인가무엇이든 허구에 가까울 것이다전쟁의 '상태'를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전쟁 속에 있을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을 아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정치사에 가려진 사회경제사의 부재는 그때를 비현실적으로 보게 한다당시 인구가 몇 만이었고징병할 수 있는 이는 얼마였고이들이 낸 세금의 양은 어느 정도였다이 기본적인 사실을 불러낼 수 없다면 기억된 것을 기억하는 일은 언제나 한계를 만날 수 밖에 없다. <류성룡나라를 다시 만들 때가 되었나이다>저자는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때문에 구체적으로 그때를 그리기 위해 당시 사료와 자료와 가능한 수치를 제시한다. 이 책은 임진왜란 당시 류성룡을 중심으로 뭍에서의 기록을 해설한다. 

 

희미했던 구심점을 선명하게 불러오는

이순신 장군이 일궜던 대첩파랑의 이미지는 회복하는 조선을 떠올리게 하지만 뭍에서의 일은 거의 알려진 바 없었다그야말로 전쟁 한가운데서 부스러져 가고 있었기 때문이다그런데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나끝까지 구심했던 이가 있었기 때문이다류성룡그런데 왜 우리는 그에 대해 아는 것이 없나군량을 확보하고속오체제를 제시하고명의 구원병과 조율하며 임금의 파천을 막았다자신의 안위가 곧 나라의 안위라고 생각했던 것일까명에 가기를 원했던 선조자리를 내려놓으려고 했던 선조그런 유약과 나약과 하여간 형체 없어지려 하는 것을 잡고 늘어져야 했던 성룡한 사람이 지기에는 너무 큰 고뇌와 압박이 그때의 말을 빌어 산 듯 움직인다류성룡이 남겼던 기록, <징비록>을 포함해 <진사록>, <근폭집>, <서애전서>등 방대했을 사료를 꺼내 그때를 제시했기 때문이다특히 상소문에는 그 모든 것에 불구하고 주저 앉지 않았던 류성룡의 강인함을 엿볼 수 있다.

 

시대와 무관하게 참혹한 

그가 지금까지 조명되지 않았던 이유는 권력을 자신을 향해 쓰지 않고 나라의 지탱을 위해 내놓았기 때문이다파면되기 직전 그는 매일같이 올라오는 탄핵 상소를 맞는데그 상소의 내용이 어불성설이다. '훈련도감과 속오작미법 선봉차관 등을 만들어 온갖 폐단을 지었다'는 말은 어디에서 올 수 있었나위태로운 전쟁을 마감하니 이제 내부에서 류성룡을 쳐내기 위해 수단과 방법이 없다전쟁을 '수행'하며 최선의 방안을 강구했던 타계책이 그를 조여 오는 일로 변질되었다그러나 그는 자신에게 쏟아져 왔던 어떤 말에도 답하지 않고 그저 자리에서 물러나기를 간청하는데자신을 위해서는 발현하지 않았던 권력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손아귀에 무슨 권력 같은 것이 있어서 나라의 안위보다 나를 경쟁케 하는 세력을 치는데 급급한 모습이 요새의 것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왔던 길을 다시 거슬러 가지 않는 어떤 축은 사실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징비를 경계하지 않은 결과, 시대와 무관하게 절망이 참혹하다.


다만 나의 내부에 전할 것

불타던 나라불 속에서 빠져나와 미래를 염려해 쓴 기록이다징비록이 후대에 전해지기를 바랬던 까닭에 그 글씨는 지금까지 상하지 않았으나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받들지 못했던 현실이 상하기를 거듭해왔다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과거의 류성룡일까아니다그의 정신을 개개로 받아 현실화 할 수 있는 참된 한 사람 한 사람일 뿐이다그 사람들로 비로소 조금씩 움직이는 축이다그래서 그 축의 왔던 길을 되가지 않는 성질은 절망을 되풀이 하지 않으려는 의지에 있다그러나 울음이 가시질 않는 수중이다. 그러므로 '나라를 다시 만들 때가 되었나이다어디에 올리는 말 아니고다만 나의 내부에 전해져야 할 말일 것이다.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댓글(7)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뷰리풀말미잘 2014-07-07 1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즐찾 하나 늘었죠? 접니다. ㅎㅎ

어찌나 글을 맛깔나게 쓰시는지.

봄밤 2014-07-07 21:22   좋아요 0 | URL
! 이곳까지 오셨군요,
저는 그곳에 있던 참입니다! ㅎㅎ 킥킥대고 읽는데 옛날 글에는 댓글을 쓸 수가 없어요.
음. 그러니까 잘 읽고 있습니다!

2014-07-25 14: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7-25 18: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7-26 18: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7-26 22: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7-27 00: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째깍이와 깜빡이 아이 어른 함께 읽는 가족동화 6
김규림 지음, 주누리 그림 / 꿈꾸는날개 / 2014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시계의 이야기라구요? 우리의 이야기인걸요!

 




 

집에 돌아가면 거실 벽에 시계가 걸려 있어요그리고 방에 들어가면 또 시계가 있지요내 방 뿐만 아니라 어른의 방에,주방에도욕실에도 있어요. 이제 내 방으로 들어와 살펴볼까요방을 작게 나누면 내 책상 위에도 있고침대 옆에도 있고도또 벽에도 달님을 닮은 시계가 있어요! 시계는 모두 같은 시간을 알려주는데왜 이 방에만 해도 세 개나 있는 걸까요?

 

이 책은 이런 궁금증에서 시작한 것 같아요시계는 자주 보면서 어른들이 가장 귀하게 여기는 시간을 알려주는데어른들은 시계가 알려주는 '시간'이 중요하지 '시계'는 중요하지 않거든요그래서 어른들은 방에 시계가 세 개 인지 몇 개인지 어쩌면 하나도 없는지 잘 알지 못하는 것 같아요너무 바빠서요그러나 다정이는 시계 보는 방법을 배우면서 왜 째깍이와 깜빡이같은 시간을 말하는데 서로 다른 방법으로 시간을 알려주는지 궁금해 합니다엄마는 정확한 대답을 피해요이런 다정이를 보는 것에서 <째깍이와 깜빡이>시계들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째깍이는 째깍거리면서 시침을 움직여 분침이 돌아가고요마찬가지로 시침을 밀어서 시간을 말하지요높은데 걸려서 바깥을 잘 볼 수 있는 대신 사람들의 손에 닿을 일이 거의 없습니다깜빡이는 깜빡이면서 시간이 바뀝니다숫자로 표시되고 작아서 텔레비전 옆에 놓여 있어요작고 가까이 있어서 청소할 때마다 가족의 손을 타지요이 둘은 서로가 못마땅 합니다시간을 알리는 것은 나로 충분해라고 말하는 것이지요자신이 있어야 할 이유를 말하면서상대가 왜 있어야 하는지를 묻습니다같은 시간을 다르게 표시하는 다양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지요그래서 매일 싸웁니다.

 

그러던 어느 날두 시계가 시간을 다르게 표시하는 것을 발견해요시계가 왜 많은지 생각하지 않는 어른다정이의 아빠가 살피게 됩니다시계가 아니라, '틀린 시간'을요그리고 시간이 틀렸으니새것으로 바꾸자고 얘기를 하지요그러나 다정이는 그러기가 싫어요왜냐하면 학교에서 선생님이 물건은 아껴쓰고 고쳐써야 하는 거라고 배웠고 그러자고 약속했거든요아빠는 웃으면서 시간이 틀리면 해를 끼치기 때문에 바꿔야 한다고 이야기해요하지만 다정이의 예쁜 부탁으로 아빠는 시계를 정확하게 맞추고 하루의 기회를 더 줍니다내일도 틀리면버리겠다는 것이에요다정이는 초조합니다시계들은 어떡구요째깍이와 깜빡이는 놀라서 집안의 다른 시계토끼와 사각이를 부릅니다.

 

과연토끼와 사각이는 째깍이와 깜빡이를 도와줄까요이 얇고 작은 책에서 시간과 시계의 이야기로 시작해서 물건을 소중히 하는 마음부터 시계들이 보여주는 싸움과 화해그리고 그 이상의 이야기를 보여줍니다놀랍도록 풍부한 내용입니다이 책은 어린이책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가족동화'이기 때문이지요엄마 아빠는 이 책으로 시계의 목소리를 듣게 되고시계를 품고 자는 다정이의 마음을 볼 수 있게 됩니다그리고 아이는 엄마 아빠의 마음을 조금은 알게 되고시계들의 싸움과 화해그리고 힘을 합치는 모습을 배우게 되지요나중에는 응원까지 하게 될 지 몰라요.

 

가족동화를 하루에 몇 분째깍이가 눈금을 두 개 옮기는 정도의 시간만 아이와 함께 봐주세요시계의 세계가 보여주는 것처럼 다양한 시계가 있어야 하는 이유를 통해 '사람'역시 그렇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임을 이해하게 되지요그리고 그 다름을 틀림으로 생각해서 싸우는 일의 어리석음과 다른 우리가 서로 도와야 하는 이유를 알려주고 있어요나의 소중함 만큼이나 내가 아닌 다른 이의 소중함을 알게 되는 기회가 될 거에요어느 곳의 방안에서 여전히 시간을 그리고 있을 <째깍이와 깜빡이>의 일화로 말이지요지금 째깍이와 깜빡이의 이야기를 들어보실래요?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죽음의 식탁 - 독성물질은 어떻게 우리의 일용할 양식이 되었나
마리 모니크 로뱅 지음, 권지현 옮김 / 판미동 / 2014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좀처럼 묻지 않는다충분히 믿을만한 세상인가상상력이 고갈된 까닭인 것일까의심과 물음은 피곤한 것이며개인이 예민한 결과이며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이고마음이 어딘가 모난 사람이라는 뜻일까불만이 가득한 사람이라고! 이 온전한 세상에서 그저 ''살기 위해 달려가야 바람직한 것일까무작정 긍정하기에는 문제가 심각하다하루에 세 번못해도 한 번 우리가 인사하는 식탁에 안심할 수 없는 음식이 올라오기 때문이다음식과 함께 있을 독소에는 오감이 없다식탁과 그릇과 음식은 알고 있으니 모르는 것은 우리의 검은 입 속 뿐이다.

 

과학을 믿지 못하는 거요어떤 식료품마다또는 매일 발표되는 미세먼지의 수치나오존 수치나하다못해 내리쬐는 햇빛에도 수치가 적히는 데 말이다이들은 안정선 계수라고 해서 이정도 수치는 비교적 괜찮다는 이야기에 근거를 댄다다른 말로 안심수치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그러나 정교한 숫자에는 유의하면서 애초에 이 숫자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궁금하지 않았다당연히 엄중하며 신뢰받는 기관이 있어서 소비자에게 해로운 것을 기를 쓰고 막으려는 연구 결과라고 생각했던 까닭이다그러나 안심계수 수치는 '과학과는 하등 관련이 없'*으며 '매우 정치적인 시스템'**이라는 폭로가 오백페이지 넘게 이어진다. <죽음의 식탁>이다.

 

"독성학 연구를 수행하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그것은 기업입니다독성학 연구에는 많은 비용이 듭니다공적 자금이 그 비용을 댄다면 납세자들에게 큰 부담이 될 것입니다자사 제품을 시장에 출시해야 하니 기업의 입장에서는 승인을 얻는 것이 분명 이득입니다." 322

 

일일섭취허용량이 있다아주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으로표시된 용량만큼 섭취하는 것은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뜻이다그러나 재품에 쓰인 허용치가 제품을 만든 기업이 만들어 낸 것이라면 대체 무슨 소용이 있는 것일까. <죽음의 식탁>은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1급 독성물질이 불과 몇 십년 전만 하더라도 일일섭취허용량이라는 안전한 말 속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통용 되었는가 설명한다그러나 과학의 발달이 현저하지 않아서 독성을 몰랐던 것일까? '아니다과학은 기업이 원하는 결과에 맞췄던 것뿐이다! '인체가 벤젠에 대한 내성이 없고 벤젠에 대한 반응이 개인마다 편차가 크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안전한 노출량은 0이라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217 '다시 말해 벤젠에 대한 노출을 막는 방법은 벤젠을 금지시키는 것뿐이다. (‥‥‥기업들은 아무런 기준도 없이 공장 안에서 8시간 일했을 때 공기 중 벤젠의 농도를 10ppm 이하로 정해 버렸다' 218 과거의 일은 과거로 남을 뿐일까우리가 모르는 온갖 화학 기호와 그들에게 부여된 어떤 수치는 무엇을 숨기고 안전을 말하는 것일까.

 

화학물질에 어떤 권리가 있어서 사람의 생명을 쥔다돈이 화학물질에게 권리를 빌려주었기 때문이다이 '권리의 주인이 인간'***이라는 것을 잊었던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이다눈 감고 있는 자연은 언제고 뜰 준비를 하고 있다한 번도 본 적 없는 빛에 인간은 어떤 비명을 지르게 될까모르는 걱정에엊그제 읽은 시를 되새긴다. ‘어떤 경우에는내가 이 세상 앞에서/그저 한 사람에 불과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우리는 한 사람이고/한 세상이다.’ 무력해지는 식탁 앞에서 의문 없이 무엇을 먹고살충제를 뿌리며안전하다고 여겨지는 굴뚝의 매연과 함께 살아가는 나는 그저 한 사람에 불과하다논에서 비료를 뿌리는 것을 일로 여겨온 나의 고향그렇게 강요된 생활에 입이 다물어진다감지되지 않는 불안을 더듬거리며 어떤 위협이 있는지 모르는 식탁 앞으로 간다알아서 더 맛있는 저녁이다. '어떤 경우에도우리는 한 사람이고한 세상'이라는 구절을 다시 읽는다.

 

 

 

*,**본문 중.

***563

1994년 미국 식품의약국의 독성학자 재클린 베렛이 말했듯이 "규제 기관이 화학물질에 권리를 빌려 주는 일을 멈춰야 한다화학물질에는 아무런 권리가 없다그 권리의 주인은 인간이다."


제목과 본문_이문재, 「어떤 경우」, 부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