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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성룡, 나라를 다시 만들 때가 되었나이다
송복 지음 / 시루 / 2014년 5월
평점 :
품절
다만 나의 내부에 전해야 할 말-류성룡, 나라를 다시 만들 때가 되었나이다
왔던 길은 다시 갈 수 없지만
기원을 알 수 없는 무거운 축이 있다. 이것은 왔던 길은 다시 가지 않는 기이한 움직임을 갖는다. 좀처럼 움직이지 않지만 왼쪽으로, 왼쪽으로 약 사백보를 밀어보자. 이 공간은 다른 무엇으로 변한 적 없으나 시간을 올라가면 나라가 불타고 있다.고니시 유키나가가 금산에 상륙해서 한양에 도착하기까지 불과 이십일. 다시 임진강을 넘어 평양에 들어온 것이 6월 13일.왜군은 '아침이 아니면 저녁'에 의주가 있는 압록강에 도착할 수 있었던 급박한 상황에 도착한다. 의주는 당시 선조가 몸을 숨기고 있던 곳이다. 7년에 걸친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당시 조선은 싸울 수 있는 기력이 없었다. 그저 땅덩이가 있어서 전쟁이 일어날 수 있는 조건이 되었을 뿐이다. 인재도, 식량도, 의지도 없었던 나라. '나라가 나라가 아니다.' 결코 '나라 아닌 나라'를 놓을 수 없었던 류성룡이 있었다.
허구와 허구를 무너트리고
몇 가지 인상이 있으나, 임진왜란으로 일어났던 황폐를 떠올리는 일은 언제나 피상적이다. 지금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무엇인가. 무엇이든 허구에 가까울 것이다. 전쟁의 '상태'를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전쟁 속에 있을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을 아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정치사에 가려진 사회경제사의 부재는 그때를 비현실적으로 보게 한다. 당시 인구가 몇 만이었고, 징병할 수 있는 이는 얼마였고, 이들이 낸 세금의 양은 어느 정도였다. 이 기본적인 사실을 불러낼 수 없다면 기억된 것을 기억하는 일은 언제나 한계를 만날 수 밖에 없다. <류성룡, 나라를 다시 만들 때가 되었나이다>저자는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때문에 구체적으로 그때를 그리기 위해 당시 사료와 자료와 가능한 수치를 제시한다. 이 책은 임진왜란 당시 류성룡을 중심으로 뭍에서의 기록을 해설한다.
희미했던 구심점을 선명하게 불러오는
이순신 장군이 일궜던 대첩, 파랑의 이미지는 회복하는 조선을 떠올리게 하지만 뭍에서의 일은 거의 알려진 바 없었다. 그야말로 전쟁 한가운데서 부스러져 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나. 끝까지 구심했던 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류성룡, 그런데 왜 우리는 그에 대해 아는 것이 없나. 군량을 확보하고, 속오체제를 제시하고, 명의 구원병과 조율하며 임금의 파천을 막았다. 자신의 안위가 곧 나라의 안위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명에 가기를 원했던 선조, 자리를 내려놓으려고 했던 선조. 그런 유약과 나약과 하여간 형체 없어지려 하는 것을 잡고 늘어져야 했던 성룡. 한 사람이 지기에는 너무 큰 고뇌와 압박이 그때의 말을 빌어 산 듯 움직인다. 류성룡이 남겼던 기록, <징비록>을 포함해 <진사록>, <근폭집>, <서애전서>등 방대했을 사료를 꺼내 그때를 제시했기 때문이다. 특히 상소문에는 그 모든 것에 불구하고 주저 앉지 않았던 류성룡의 강인함을 엿볼 수 있다.
시대와 무관하게 참혹한
그가 지금까지 조명되지 않았던 이유는 권력을 자신을 향해 쓰지 않고 나라의 지탱을 위해 내놓았기 때문이다. 파면되기 직전 그는 매일같이 올라오는 탄핵 상소를 맞는데, 그 상소의 내용이 어불성설이다. '훈련도감과 속오, 작미법 선봉, 차관 등을 만들어 온갖 폐단을 지었다'는 말은 어디에서 올 수 있었나. 위태로운 전쟁을 마감하니 이제 내부에서 류성룡을 쳐내기 위해 수단과 방법이 없다. 전쟁을 '수행'하며 최선의 방안을 강구했던 타계책이 그를 조여 오는 일로 변질되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에게 쏟아져 왔던 어떤 말에도 답하지 않고 그저 자리에서 물러나기를 간청하는데. 자신을 위해서는 발현하지 않았던 권력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손아귀에 무슨 권력 같은 것이 있어서 나라의 안위보다 나를 경쟁케 하는 세력을 치는데 급급한 모습이 요새의 것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 왔던 길을 다시 거슬러 가지 않는 어떤 축은 사실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징비를 경계하지 않은 결과, 시대와 무관하게 절망이 참혹하다.
다만 나의 내부에 전할 것
불타던 나라, 불 속에서 빠져나와 미래를 염려해 쓴 기록이다. 징비록이 후대에 전해지기를 바랬던 까닭에 그 글씨는 지금까지 상하지 않았으나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받들지 못했던 현실이 상하기를 거듭해왔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과거의 류성룡일까. 아니다. 그의 정신을 개개로 받아 현실화 할 수 있는 참된 한 사람 한 사람일 뿐이다. 그 사람들로 비로소 조금씩 움직이는 축이다. 그래서 그 축의 왔던 길을 되가지 않는 성질은 절망을 되풀이 하지 않으려는 의지에 있다. 그러나 울음이 가시질 않는 수중이다. 그러므로 '나라를 다시 만들 때가 되었나이다' 어디에 올리는 말 아니고, 다만 나의 내부에 전해져야 할 말일 것이다.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