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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은 가로놓인 꿈들
강대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4년 6월
평점 :
정말 뭐랄까요?
강대호작가님의 소설집 [혹은 가로놓인 꿈들]을 읽고 마치 강대호작가님이 쓰고 계신 소설 속에서 제가 이 소설을 읽는 것을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지만 깨닫게 된 것 같은 기분을 느꼈고 k나 모씨에게 반아 씨(반아)가 말했던 것처럼
강대호작가님에게 ˝미쳤어요?(반아, 353쪽)˝나 ˝미친 새끼(358쪽)˝라고 말해버릴 것 같았고 그러면 작가님은 ˝이해합니다(네, 아마 나는 더없이 이해하고 있습니다).(354쪽)˝ 라고 대답하시거나 모씨나 노땅 평론가(두 가지 <프란츠 카프카>에 붙이는 한 가지 주석)도 아닌 주제에 ‘제법 치기를 뽐내려 안간힘을 쓰지만 사실 별 볼 일 없다(233쪽)‘라며 원한깊은나무같은 익명성에 기대어 비판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소설을 쓰지만 수학자같거나 때론 철학자같은 강대호작가님의 소설들을 좀 더 깊이있게 감각하고자 하면
(‘DEUS EX MACHINA‘를 위한 변론)의 인공지능이 쓴 각기 다르면서도 같을 수도 있는 30편의 소설들을 읽으면 이런 느낌일까. 짧지만 강렬했던 박지유가 모방하며 썼을 시(아이들의 신)들 읽으면 이런 느낌이 들까. 저택 응접실 잘 보이는 곳에 할아버지가 좋아하여 손주를 비롯한 아이들에게 보여주길 마다않는 위작이자 레플리카며, 그림 뒤편에서 고요히 세력을 넓히고 있는 곰팡이가 피어난 조르주 피에르 쇠라의 그 유명한 그림(그랑드 자트 섬의 일요일 오전)을 들여다보면 느낄 수 있을까. 질병이나 죽음을 맞이해도 좀비처럼 되살아나는 시대에서 죽음권을 주장하며 홀로그램 수상기에서 재생되는 이드의 모습을 보며 어느 날이든, 세 발의 총알을 쏠 예정인 그(들)의 게임(현재에서 지속되는 과거(들))을 받아들여 그(들)이 쏜 총에 맞아 숨통이 끊겨 다음 날 아침 병원에서 눈을 뜨면 느낄 수 있을까.
그렇게 위급한 환자의 방으로 들어가기 위해 세 명의 여자아이들의 세 개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대답의 진위를 알 수 없어 혼란스러워하는 (용빌, 혹은 가로놓인 꿈들)의 보바리 씨 같은 입장이 되면, 루시드 드리머인 k에게 루시드 드림을 전수받는 (늦잠)의 이명숙의 오줌싸개 아들처럼 저 역시 루시드 드리머가 된다면 더 나은 침대를 구매하기 위해 더 나은 메트리스와 프레임을 생각하는 (더 나은)의 인물들처럼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까하는 망상일 상상을 해보며 이 글을 마칠까합니다.
강대호작가님, 좋은 글을 읽게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