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존슨의 예수 평전
폴 존슨 지음, 이종인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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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8256.예수평전-폴 존슨


저는 기독교를 믿지 않습니다. 기독교를 믿지 않기 때문에 기독교에서 말하는 신에 대한 믿음이나 기독교 특유의 신앙이 없습니다. 사실 제 삶을 돌이켜보면 몇번의 기독교에 대한 접점이 있긴 했지만, 그게 제 삶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습니다. 주변에 기독교를 믿는 사람도 거의 없습니다. 부모님, 누나들, 친구들까지. '신'이라는 단어, 혹은 '기독교'나 '교회'라는 단어나 개념은 제 삶과 거의 연관이 없습니다. 제 삶에 있어서 '신이 있냐 없냐'라는 논쟁만큼 무의미한 게 없습니다. 왜냐하면 관심도 없고, 접점도 없고, 제 삶에 그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없으니까요. 제 삶에 '신이 있는지 없는지'는 거의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까지 그쪽에는 관심도 없고 신경도 쓰지 않았습니다. 기독교나 신은 제 삶에 가끔씩 등장하는 등장하는 불청객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특히 서양에 관련된 책들을 읽으면서, 저는 기독교와 신이 존재하는 세계로 입문하게 됐습니다. 진짜 입문이라는 말이 맞습니다. 믿음을 통해 그쪽으로 넘어간 게 아니니까요. 저는 기독교를 하나의 문화이자 사상이자 철학이자 개념이자 역사적,사회적,정치적 제도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신앙인이 아닌 사람의 입장에서 다가가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오히려 기독교가 흥미롭습니다. 제가 하지 않은 생각을 하고, 제가 할 수 없는 것들을 하니까요. 동시에 조금 무서운 것도 있습니다. 서로 죽일 듯이 싸워온 과거도 있고, 믿음에 동반하는 맹신이나 집착을, 믿지 않는 사람 입장에서는 이해하기가 힘드니까요.^^;;


그러 면에서 폴 존슨의 <예수평전>은 정말 흥미로운 책입니다. 저자가 신앙인의 입장에서 <예수평전>을 써서요. 폴 존슨은 신을 믿는 독실한 기독교인의 입장과 역사학자로서의 자신의 입장을 융합시키며 책을 서술합니다. 최대한 역사적 사실을 확보하려고 하면서도 자신의 신앙을 지켜나가는 방식으로. 폴 존슨의 입장에서는 기적이나 수태고지, 천사의 등장, 신의 계시, 신의 아들이자 신적인 존재이자 인간인 예수, 예수의 부활 등은 현실입니다. 그것들을 현실로 받아들이면서 저자는 최대한 다른 역사적 현실을 섞어서 <예수평전>을 써냅니다.


기독교를 믿지 않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쉽사리 믿을 수 없는 것들을 확고부동한 현실이라고 규정하면서 예수의 삶을 써내려간 평전. 저한테는 이것들이 비현실의 평전, 픽션 같은 평전 처럼 느껴졌습니다. 폴 존슨이 주장하는 것들이 제 귀에는 허구의 이야기처럼 들리니까요. 하지만 기독교를 믿는 신앙인한테는 폴 존슨이 말하는 것들이 현실이겠죠. 그래서 흥미롭고 또 흥미롭습니다. 제가 가 닿을 수 없는 곳에서, 제가 알 수 없는 이야기들을 하고 있으니까요. 마치 기독교인과 저 사이에 넘을 수 없는 벽이 있고, 제가 닿을 수 없는 그 벽 너머의 세상을 바라보면서 느끼는 흥미라고 할까요? 쉽게 닿을 수 없기 때문에, 도달하지 못하기 때문에 저는 계속 흥미를 느끼면서 기독교 관련 책들을 읽을 것 같습니다. 벽 너머의 낯선 세상을 관찰하는 것이 너무 재미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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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씩 저는 책을 읽다가 제가 읽고 있는 책의 제목을 검색을 해봅니다. 누가 이 책을 읽고, 어떤 서평을 썼는지 보는 것이죠. 때로는 이해 못하는 책들의 내용을 이해할 수 있게 잘 요약해놓아 큰 도움을 받기도 했고, 어떤 때는 과한 비난에 당황하기도 했죠.^^;;

어쨌든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읽는 책을 검색해서 다른 사람이 쓴 서펑을 읽는 재미가 쏠쏠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도 네이버 블로그에 검색해봤습니다. <수사고신록>이라는 책 제목을..

그런데...

음...

검색했는데...

'검색결과가 없습니다'가 떴습니다....

너무 당황해서 바라보니 '수사고신록'이 아니라 '수사고신론'이라고 잘못 썼더군요.^^;;

그러면 그렇지. 다시 제대로 제목을 써서 검색하니 몇 건의 서평이 나왔습니다.

서평을 읽는데 무언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무언가 전문가 포스가 나는 분들의 글이거나 아니면 거기에 준하는 이들의 글처럼 보여서요.

나는 전문가도 아니고 이걸 공부하는 사람도 아닌데 왜 이런 책을 읽고 있지'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위축되거나 움츠러드는 건 아니고, 고전을 읽다보면 가끔씩 위에 적은 회의감이 드는 건 사실입니다. '내가 왜 이런 책을 읽고있지' 하는.

하지만 저는 알고 있습니다. 이 길이 내가 선택한 고행의 길이라는 사실을.

내가 선택한 길이기에 힘들고 회의감이 들더라도 큰 문제없이 이겨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길은 이 길 나름의 재미와 행복감, 성취감이 있습니다.

그걸 토대로 읽다보면 다시 이 길을 떠날 힘이 생기는 것도 사실입니다.

글을 쓰다보니 다시 힘이 생긱네요. 이제 <수사고신록>이라는 책을 다시 읽어나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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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안 - 쑤퉁 장편소설
쑤퉁 지음, 문현선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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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44.하안-쑤퉁


우리 배는 처량 맞을 정도로 이적이 드물었다. 그때 처음으로 나는 갑판 위에 희미하게 깔린 서글픔의 그림자를 헤아리며, 내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한 고독을 느꼈다. 그리고 사랑을. 그것은 어두운 밤하늘 아래의 강물보다 더 깊고 헤아리기 어려웠다.(182)

역사는 수수께끼야. 알겠니? 덩사오샹 열사도, 네 아버지도 하나의 수수께끼지.(264)


역사는 도도하게 흘러가는 강물과도 같습니다. 과거에서 출발하여 현재를 거쳐 미래로 향하는. 역사라는 강물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은 그 물결 속에 휘말려 갈 수밖에 없습니다. 때로는 물결을 거스르면서, 때로는 순응하면서. 어떤 순간이 되면, 역사라는 물결 속을 사는 사람들은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볼지도 모릅니다. 내 인생이 어떻게 되었지 하면서. 그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릅니다. 삶이란 무수한 부조리와 모순을 견디면서 사는 것이라고. 아마 그 누군가는 <하안>을 읽은 사람인지도 모릅니다. <하안> 속에는 온갖 삶의 부조리와 모순이 나오니까요.


부조리와 모순으로 점철된 삶의 모습을 형상화한 소설 <하안>. 쑤퉁이 <하안> 속에서 그려내는 삶의 모습은, 삶의 무수한 질곡을 거쳐온 현대 중국인들의 모습과 닮아 있습니다. 불확실하고 모호하며 때로는 환상적인 모습으로 그려내기 때문에 정확하게 현대 중국인들의 삶과 <하안> 속 등장인물들의 삶이 일치한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정확하지는 않더라도 두 세계의 삶은 묘하게 비슷합니다. 이 비슷하다는 말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문학은 현실과 닮으면서 닮지 않은 듯한 방식으로 현실의 삶을 형상화하고, 그걸 통해 책을 읽는 독자에게 묘한 일체감을 조성해내니까요. 쑤퉁도 마찬가지입니다. 혁명열사의 자손이자 당의 지도자급 위치에 있다 몰락한 아버지와 그 아버지를 따라 같이 강을 돌아다니는 배 위의 삶을 살며 쇠락해가는 아들의 삶을 그린 <하안>은, 분명 중국 현대사의 한 장면을 담아내는 듯하지만, 동시에 현실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삶의 모습을 그려내면서, 책을 읽는 독자에게 중국 현대사를 재현한듯한 현실의 쾌감과 가상의 가능성의 세계를 보여주는 가상의 즐거움 모두를 전해줍니다.


부조리하고 모순 가득한 삶의 현실 앞에서 인간들은 절망하고, 슬퍼하고, 화내고, 기뻐하고, 행복해하고, 꾸역꾸역 살아나갑니다. 그런 삶의 모습을 현실과 닮으면서도 닮지 않게, 문학적인 환상을 가미해서 그려낸 <하안>은 삶이 아무리 비극적일지라도, 삶을 살아나갈 수밖에 없다는 씁쓸한 진실을 드러냅니다. 아버지가 강에 몸을 던져 실종된 상태에서, 아버지가 물고기가 되어버렸을 수도 있는 상황 속에서도, 자신의 모든 것을 잃은 아들 쑤원둥은 살아갈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게 삶의 진실이고, 삶을 사는 이들을 이끌고 나가는 힘이니까요. 


여기까지 생각하고 나니, 또다른 생각이 떠오릅니다. 책 속에서 지속적으로 나오는 물의 이미지에 대한 두 가지 생각. 하나는 실제로 쑤원둥과 쑤원둥의 아버지가 사는 배를 이끌고 다니는 물이고, 또다른 하나는 제일 앞에서 이야기한 역사의 물결로서의 물. 이 두 가지 물은 모두 다, 사람들을 자기 뜻대로 이끌고 다닙니다. 제 생각에 결국 이 두 가지 물은 하나의 물입니다. 사람들을 이끌고 다니는 자연으로서의 물이자 역사의 흐름 속에서 사람들을 휘두르는 역사의 물결로서의 물이 하나의 이미지로 겹쳐진다는 말입니다. 결국 책을 덮으며 제가 떠올린 건, 도도하게 흘러가는 물앞에 선 부자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그 모습은 저와 다를바가 없습니다. 여기에 아마 문학의 힘이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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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에 집중해서 읽을 예정입니다. 어차피 코로나라 밖에 나가지도 못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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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20-12-16 14: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보기만 해도 어지러워요.. ㅎㅎㅎㅎ 집콕하면서 저런 책들을 읽어보고 싶긴 한데, 완독하지 못할 것 같아요. ^^;;

짜라투스트라 2020-12-16 16:16   좋아요 0 | URL
아 그냥 아무데도 갈데도 없고 사람 만나기도 뭐해서 아무 생각없이 읽으려구요 뇌가 좀 힘들긴 하겠지만^^;;

스텔라 2020-12-16 16: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즐거운 독서되시길 응원합니다!!
저도 읽어 보고 깊은 책들이 많네요^^

짜라투스트라 2020-12-16 16:35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기회 되시면 한 번 읽어보세요.
 

다시 의미 없는 다짐을 해봅니다.

네이버나 알라딘 블로그에 자신의 읽은 책에 대해서 계속 글을 쓰시는 분처럼,

저도 꾸준히 글을 쓴다는.^^;;

근데 과연 그게 가능한 일일까요? ㅋㅋㅋ

어쨌든 꿈은 꿔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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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시무스 2020-12-16 1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대하고, 응원합니다!

짜라투스트라 2020-12-16 12:04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