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안 - 쑤퉁 장편소설
쑤퉁 지음, 문현선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8244.하안-쑤퉁


우리 배는 처량 맞을 정도로 이적이 드물었다. 그때 처음으로 나는 갑판 위에 희미하게 깔린 서글픔의 그림자를 헤아리며, 내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한 고독을 느꼈다. 그리고 사랑을. 그것은 어두운 밤하늘 아래의 강물보다 더 깊고 헤아리기 어려웠다.(182)

역사는 수수께끼야. 알겠니? 덩사오샹 열사도, 네 아버지도 하나의 수수께끼지.(264)


역사는 도도하게 흘러가는 강물과도 같습니다. 과거에서 출발하여 현재를 거쳐 미래로 향하는. 역사라는 강물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은 그 물결 속에 휘말려 갈 수밖에 없습니다. 때로는 물결을 거스르면서, 때로는 순응하면서. 어떤 순간이 되면, 역사라는 물결 속을 사는 사람들은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볼지도 모릅니다. 내 인생이 어떻게 되었지 하면서. 그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릅니다. 삶이란 무수한 부조리와 모순을 견디면서 사는 것이라고. 아마 그 누군가는 <하안>을 읽은 사람인지도 모릅니다. <하안> 속에는 온갖 삶의 부조리와 모순이 나오니까요.


부조리와 모순으로 점철된 삶의 모습을 형상화한 소설 <하안>. 쑤퉁이 <하안> 속에서 그려내는 삶의 모습은, 삶의 무수한 질곡을 거쳐온 현대 중국인들의 모습과 닮아 있습니다. 불확실하고 모호하며 때로는 환상적인 모습으로 그려내기 때문에 정확하게 현대 중국인들의 삶과 <하안> 속 등장인물들의 삶이 일치한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정확하지는 않더라도 두 세계의 삶은 묘하게 비슷합니다. 이 비슷하다는 말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문학은 현실과 닮으면서 닮지 않은 듯한 방식으로 현실의 삶을 형상화하고, 그걸 통해 책을 읽는 독자에게 묘한 일체감을 조성해내니까요. 쑤퉁도 마찬가지입니다. 혁명열사의 자손이자 당의 지도자급 위치에 있다 몰락한 아버지와 그 아버지를 따라 같이 강을 돌아다니는 배 위의 삶을 살며 쇠락해가는 아들의 삶을 그린 <하안>은, 분명 중국 현대사의 한 장면을 담아내는 듯하지만, 동시에 현실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삶의 모습을 그려내면서, 책을 읽는 독자에게 중국 현대사를 재현한듯한 현실의 쾌감과 가상의 가능성의 세계를 보여주는 가상의 즐거움 모두를 전해줍니다.


부조리하고 모순 가득한 삶의 현실 앞에서 인간들은 절망하고, 슬퍼하고, 화내고, 기뻐하고, 행복해하고, 꾸역꾸역 살아나갑니다. 그런 삶의 모습을 현실과 닮으면서도 닮지 않게, 문학적인 환상을 가미해서 그려낸 <하안>은 삶이 아무리 비극적일지라도, 삶을 살아나갈 수밖에 없다는 씁쓸한 진실을 드러냅니다. 아버지가 강에 몸을 던져 실종된 상태에서, 아버지가 물고기가 되어버렸을 수도 있는 상황 속에서도, 자신의 모든 것을 잃은 아들 쑤원둥은 살아갈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게 삶의 진실이고, 삶을 사는 이들을 이끌고 나가는 힘이니까요. 


여기까지 생각하고 나니, 또다른 생각이 떠오릅니다. 책 속에서 지속적으로 나오는 물의 이미지에 대한 두 가지 생각. 하나는 실제로 쑤원둥과 쑤원둥의 아버지가 사는 배를 이끌고 다니는 물이고, 또다른 하나는 제일 앞에서 이야기한 역사의 물결로서의 물. 이 두 가지 물은 모두 다, 사람들을 자기 뜻대로 이끌고 다닙니다. 제 생각에 결국 이 두 가지 물은 하나의 물입니다. 사람들을 이끌고 다니는 자연으로서의 물이자 역사의 흐름 속에서 사람들을 휘두르는 역사의 물결로서의 물이 하나의 이미지로 겹쳐진다는 말입니다. 결국 책을 덮으며 제가 떠올린 건, 도도하게 흘러가는 물앞에 선 부자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그 모습은 저와 다를바가 없습니다. 여기에 아마 문학의 힘이 있지 않을까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