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러브스토리 현대문학 핀 시리즈 시인선 39
장수진 지음 / 현대문학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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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40.그러나 러브스토리-장수진


'나는 구제불능의 낭만주의자다.' 이 말은 과거에 내가 즐겨 읽던 저자의 책에서 인상 깊게 본 문장이다. 오늘 드디어 이 문장을 적을 수 있는 상황이 왔다.


실로 오랜만에, 정말로 오랜만에, 6개월이 넘는 시간의 벽을 건너서, 나는 시집을 찾아 읽었다. 여기서 등장한다, 저 문장이. 나는 구제불능의 낭만주의자라서, 나의 낭만주의를 만족시켜줄 시집을 찾아보았다. 아무런 사전 지식 없이 제목만 보고 <그러나 러브스토리>를 골랐다. 낭만주의에 대한 기대를 담아서 시집을 펼쳤다. 그리고 책은 나의 예상대로 낭만주의를 벗어난 내용을 펼쳐 보였다.


아니, 낭만주의를 기대하며 책을 읽으면서도 낭만주의를 벗어난 내용을 기대하다니,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맞다. 어딘가 이상하다. 하지만 이 이상함은 내가 시집을 읽어오며 축적한 경험과 관련이 있다. 위에서도 적었지만 나는 구제불능의 낭만주의자다. 낭만주의자답게, 나는 시에서도 나의 낭만을, 이상을, 상상을, 관념을 만족시켜줄 시들을 기대한다. 삶에 밀착된, 인간을 표현하고, 인간의 삶을 표현하고,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는 시들을 기대한다. 그러나 내가 읽어온 모든 시들이 나의 기대를 항상 충족할 수는 없는 법. 내가 읽어온 시들 중에는 어렵고, 이해가 쉽지 않고, 표현이 거칠고, 때로는 폭력적이고, 난해하며 자극적인 시들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시를 읽을 때 나의 낭만주의를 만족시켜줄 시들을 기대하면서도, 동시에 기대에서 벗어나도 상관없다는 마인드를 가진다. 낭만주의를 기대하면서도 벗어나도 어쩔 수 없다는 느낌으로.


나의 낭만주의를 만족시켜주면 다행이고, 그렇지 않더라도 어쩔 수 없다. 낭만주의를 만족시켜주지 않는 시들이라면, 나는 찾아나선다. 내 마음에 드는 한 구절이든, 한 표현이든, 시어들의 나열이든. 그것들을 찾아내면 만족한다. 시 전체는 이해 못해도 상관없다. 하나의 표현, 하나의 구절이 내 마음에 깊은 인상을 남긴다면, 그 시 읽기는 내게 성공적인 것이다.


어쩌면, 저런 읽기는 불완전한 읽기라고도 할 수 있다. 시를 총체적으로 읽기보다는 부분에만 집착하기에. 하지만 시집을 읽고 모든 시에 만족할 수 없는 것처럼, 하나의 시에서 모든 표현에 만족할 수 없는 것처럼, 부분에만 만족해서 시를 읽어나가는 것도 시 읽기의 또다른 묘미 아닐까. 시집에서 내가 만족하는 부분 부분들을 모아서 자신만의 시적 풍경을 완성해가는 것도 시 읽는 독자의 시적 감상의 한 측면일 수 있지 않을까.


시집을 나만의 시적 풍경으로 완성한다는 건, 시인이 써내려간 시들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읽어내는 하나의 방식일 것이다. 적어도 나는 내가 이해할 수 없어도, 읽기 힘들어도, 읽기 고달파도, 나만의 방식으로 고투하며 시를 읽어나가려 한다. 내가 책을 펼쳐 들었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독서의 책임감을 느끼기에.


적고 놓고 보니 온통 내 이야기만 한 것 같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오랜만에 시 읽기라서 내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만 적어도 이 정도가 나온다. ㅎㅎㅎ


어쨌든 <그러나 러브스토리>를 '러브스토리'로 읽으려던 내 시도는 보기좋게 빗나갔다. <그러나 러브스토리>는 러브스토리보다는 장수진이라는 시인이 자신만의 시어로 그려낸 시적풍경으로서 다가왔다. 거기에는 시인의 삶에서 빚어진 시인만의 삶과 시적 세계가 그러져 있다. 이것도 시인만의 낭만일 수 있다. 낭만에 대한 생각은 사람마다 다른 법이니까. 하지만 적어도 시인의 낭만은 내가 생각하는 낭만과는 확실히 달랐다. 달라도 어쩔 수 없다.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시를 읽어나갔고, 나의 낭만과는 다르지만 시로서는 이해하려 노력했다. 서로 다른 두 세계가 만나는 데, 이질감은 피할 수 없으니까. 그래서 <그러나 러브스토리>는 '그래도 러브스토리'와 '그러나 러브스토리'를 왔다갔다하며 '그래서 러브스토리'가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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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섬 민박집의 대소동 하자키 일상 미스터리
와카타케 나나미 지음, 서혜영 옮김 / 작가정신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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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21.고양이섬 민박집의 대소동-와카타케 나나미


어린시절 불법 해적판으로 나온 만화책 <란마 1/2>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 때 제목이 무슨 '금동이 어쩌구'였는데(^^;;) 저는 그 만화책이 <란마 1/2>인 줄 전혀 모르고, '재밌다'를 연발하며 술술 읽었죠. 남자가 여자가 되고, 여자가 남자가 되고, 인간이 동물이 되고, 동물이 다시 인간이 되는 다양한 인물들이 좌충우돌하며 온갖 에피소드를 만들어내는 데 어린 마음에 너무 즐거웠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처럼 재밌게 다시 만화책을 읽을 수 있을까 싶을 정도입니다. 어쨌든 과거에 읽었던 만화 <란마 1/2>를 떠올리면 언제나 저는 그 만화에다 '활극'이라는 단어를 동시에 떠올립니다. 모험담이나 미스터리, 공포, 첩보물 처럼 공포와 서스펜스가 동반되는 소재를 다룬 허구의 작품을 가리키는 활극이라는 단어가 왜 그 작품을 생각하면 떠오르는지 잘 모르겠지만, 저는 활극이라고 하면 '란마 1/2'처럼 어딘가 왁자지껄하고 좌충우돌하는 모험담이나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고양이섬 민박집의 대소동>은 제가 생각하는 활극의 정의에 잘 들어맞는 책입니다. 우선 이 소설은 일상을 배경으로 하는 코지 미스터리물 답게 살인이 있고, 미스터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건에 대응하는 인물들의 갈등과 대립, 와카타케 나나미 특유의 유머와 왁자지껄하고 좌충우돌하는 상황들이 즐비합니다. 어딘가 유머러스하고 시끄러우면서, 예상치 못한 사건들이 연이어 일어나고, 거기에 맞서서 무언가 행동하는 인물들이 빚어내는 스토리 때문에 분명히 이 소설은 재밌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다른 데 있었습니다. 제가 이 작품이 조금 더 나아가기를 바라고 있다는 점입니다. 작가의 하무라 아키라 시리즈처럼, 저는 이 작품이 조금 더 극단적이고 예측이 안 되는 상황으로 나아가기를 바랐습니다. 그런데 그게 없더군요. 음, 생각해보면 제 생각 자체가 이상합니다. 여기서 더 나아간다면 아주 실험적인 전위적인 작품이 될 수도 있고, B급 느낌의 작품이 될 수도 있는데 그렇게 되는 게 옳은 것일까요? 한바탕의 모험담이 휩쓸고 지나간 뒤에 다시 안온한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이 왜 문제가 되는 것일까요? 아마도, 제가 장르 문학을 너무 많이 읽어서 이렇게 평온한 일상의 해피엔딩에 만족을 못 느끼는 것이 더 문제가 아닐까요? 그렇다고 한다면 이 작품에 문제가 있다고 보기는 어려습니다. 책을 읽는 저 자신이 문제라는 것이죠. 이래서 덕후의 삶(??)이 힘든 것입니다. 쉽게 만족을 못하니까요.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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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누구의 이야기인가 - 미투 운동에서 기후위기까지
리베카 솔닛 지음, 노지양 옮김 / 창비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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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19.이것은 누구의 이야기인가-리베카 솔닛

책을 읽는다는 것은, 책을 읽는다는 경험은, 내가 단순히 나 자신을 넘어서서 다른 존재가 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때로는 여자가 되고, 때로는 백인이 되고, 때로는 흑인이 되고, 때로는 중세 유럽인이 되고, 때로는 조선 시대 사람이 되고, 때로는 고대 그리스 아테네 사람이 되고, 때로는 2차 대전 때의 유대인이 되는 식으로. 이 모든 경험은, 기존의 '나'라는 존재를 넓혀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책을 읽지 않았다면, 단순히 지금까지의 삶의 축적으로서의 '나'밖에 되지 않았겠지만, 책을 읽었기에 저는 전혀 경험할 수 없었던 다른 존재가 되어 저라는 존재의 지평을 넘어서서 다른 '나'가 된 것입니다. 기존의 나와는 다른, 조금 더 넓어지고 다양해진 나로서.

리베카 솔닛의 <이것은 누구의 이야기인가>를 읽는 경험도 마찬가지입니다. 리베카 솔닛은 제가 상상해본적이 없었던 경험의 장으로 저를 인도합니다. 현대의 페미니즘과 정체성 정치, 기후 위기에 대응 같은 첨예한 논쟁과 투쟁의 장 속에 생생히 참여하여 자신만의 목소리를 낸 저자는, 자기 스타일 그대로의 글쓰기를 구사하며 독자들을 새로운 서사의 장으로 이끌고갑니다. 주류적 서사를 거부하는 저자의 목소리를 따라가다보면, 주류와는 다른 새로운 서사,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나가는 현대의 흐름이 보입니다. 그 흐름을 떠다니는 경험은, 너무 낯설어서 이질적이고 색다릅니다. 하지만 그래서 오히려 좋았습니다. 낯설은 것이란, 말 그대로 특별한 경험이니까요.

이 책을 통해서 저는 또다시 자기 자신을 변화시켰습니다. 기존의 저라는 존재의 영역에, 첨예한 현대적인 서사의 흐름이 첨가되었으니까요. 그것은 저를 새로우면서도 다양하고 폭넓게 만들것입니다. 리베카 솔닛의 글들을 저만의 스타일로 소화하는 식으로. 그래서 리베카 솔닛의 이야기는 저의 이야기로 변화되었습니다. 모난 것들은 조금 더 부드럽게 가다듬고, 저자가 부드럽게 넘어가는 건 저만의 방식으로 날카롭게 하면서. 책을 읽고 이 작업을 하니 또다른 책들이 읽고 싶어지네요. 왜냐하면 저는 더 넓고 더 다양해지고 싶으니까요. 저를 더욱 더 다른 나로 변화시키고 싶으니까요. 이 욕망이 계속되는 한 저의 책읽기는 아마도 계속될 예정입니다. 음... 중독이란 너무 무섭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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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2-06-01 10:1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나마 책중독이 제일 좋은거 같아요. 경제적이고 뭔가 남는 느낌? ^^

짜라투스트라 2022-06-01 18:56   좋아요 2 | URL
네, 저도 좋은 것 같아요.^^

청아 2022-06-01 11:1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책 관심있었는데 꼭 읽어봐야겠어요!! 글 내용에 온통 공감합니다^^*

짜라투스트라 2022-06-01 18:56   좋아요 2 | URL
관심 있는 주제면 읽어보면 좋죠.^^
 

책을 읽고 글을 남기지 않으면 책을 읽었을 때의 무언가가 휘발되는 건 당연한 일.

이걸 알면서도 나는 글을 쓰지 않는다.

아니 이제 아예 글쓰지 않기가 습관이 되어 아무렇지도 않다.

하지만...

일말이 죄책감이나 허무함은 남는 법.

이 죄책감이나 허무함 때문에 어쩌면 다시 글을 쓰지 않을까...

어쩌면... 진짜 어쩌면...

이제는 그 '어쩌면'에 기댈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책을 읽고 꾸준히 글을 쓰는 이들을 보면서 드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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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2-05-23 13:4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동감입니다. 매일 기록하시는 분들, 쉼 없이 읽으시는 분들..엄지 척!!

짜라투스트라 2022-05-23 16:24   좋아요 0 | URL
그렇죠^^
 
노동자의 운명 북클럽 자본 시리즈 11
고병권 지음 / 천년의상상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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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35.노동자의 운명-고병권

 

 

쓸데없는 일 같지만, 갑자기 인터넷에서 기업가 목록을 검색해 볼 때가 있습니다. (정말 쓸데없는 일이긴 합니다.^^;;;;) 미국을 살피면 MS의 빌게이츠,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 테슬라의 얼론 머스크 같은 인물이 나옵니다. 이들은 자신이 기업을 만들고 거대 기업으로 키워낸 자수성가형 인물들입니다. 미국을 이어 한국 기업가들의 목록을 검색해봅니다. 내가 아는 익숙한 한국 기업가들의 이름이 나옵니다. 그런데, 한국의 재벌 대기업 회장들의 대부분은 재벌 2세거나 3세입니다. 자수성가형 인물들은 거의 없죠. 한국 기업가들의 목록을 보면 이런 생각이 듭니다. 이들은 재벌의 운명을 타고 났구나. 마르크스라면 자본가의 운명을 타고났다고 했을 겁니다. 반대로 저는 마르크스의 말을 따르자면 그들과 달리 노동자의 운명을 타고난 거겠죠?

 

 

마르크스의 자본 1권을 12회에 걸쳐 강연하고 그 내용들을 책으로 엮어낸, 북클럽 자본 시리즈의 11권은 저 같은 노동자의 운명을 타고난 이들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당연하게도 저 같은 노동자들의 운명은 자본가들과 다릅니다.(이건 너무도 당연하 이야기겠죠?^^;;) 이미 타고난 순간부터 재벌 2세들과 노동자들의 힘의 균형은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말이 둘의 운명에는 딱 들어맞습니다.. 태어났을 때부터 엄청난 재산을 물려받고 기업을 운영하게될 그들과 아무것도 없는 무의 상태에서 자신의 노동력을 자본가에 팔아야 하는 노동자의 운명을 소위 게임이 되지 않는 수준입니다. 그들은 노동자를 사면 되고, 노동자는 그들에게 자신을 팔아야 하니까요. 그뿐만 아닙니다. 자본주의라는 체제, 시스템은 자본가가 활개치기 정말 좋습니다. 돈과 힘을 이용해 정치에도 힘을 미치기 쉽고, 언론사에 돈을 풀어 자신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언론 환경을 만들수도 있습니다. 학계는 어떤가요? 학계에도 돈을 풀어 자신들을 정당화하고, 자신들에게 유리한 이론을 만들게 할 수도 있습니다. 요모조모 살펴봐도 자본가는 자본가로 되는 순간, 자본가로 태어나는 순간, 노동자보다 훨씬 앞서 달리고, 자신이 달리고 있는 환경 자체를 유지할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자본가를 위한 최적의 세팅으로서 자본주의가 존재한다는 말이죠.

 

 

<노동자의 운명>은 노동자와 자본가의 상반된 운명을, 마르크스의 사상이 기술된 자본 1권의 이야기로서 풀어냅니다. 자본주의가 어떻게 자본가에게 최적의 세팅을 제공하는지, 노동자에게는 얼마나 불리한지. 멜서스의 인구론과 산업 예비군, 영국에서의 곡물법 폐지 이후 농업 노동자의 변화, 과거 아일랜드 노동자의 현실 이야기까지. 끊임없이 자신들에게 유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자본가들과 그에 비해 불리한 환경 속에서 사는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노동자는 노동자로 태어나고 노동자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말을 실감하게 됩니다. 어떻게 보면 암울할 수도 있는데요, 북클럽 자본 시리즈를 꾸준히 읽어온 저로서는 암울하기 보다는 더욱 더 냉정해지네요. 냉정하게 바라보고 냉정하고 사고하게 되는 식으로. 이런 책을 읽는 자의 운명으로서 저는 암울하거나 우울해지기 보다는 이 책의 서술된 사고 방향을 이해하고, 그걸 바탕으로 삶을 바라보는 저의 시각을 조금씩 바꾸어나가고, 또 다른 책을 찾아나서는 걸 선택하렵니다. 그게 저에게 주어진 노동자의 운명에 저항하는 저만의 방식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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