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 왕자 웅진 세계그림책 2
첸 지앙 홍 지음, 윤정임 옮김 / 웅진주니어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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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랑이 왕자>는 중국에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기도 했지만 작가가 프랑스 파리의 세르뉘시 미술관에 보관된, 은나라 말기의 청동상인 ‘어미 호랑이’를 보고서 만들게 되었다고 한다.

  사람들의 공격으로 새끼를 잃은 호랑이가 마을을 습격한다. 그래서 나라에서 군대를 보내 이 호랑이를 잡으려고 하지만 예언가인 라오라모 할멈은 군대를 보내서는 안 되고 왕자를 바쳐야 한다고 한다. 예언가의 말을 믿고 왕은 할 수 없이 왕자 웬을 보낸다.

   그러자 호랑이는 더 이상 마을을 공격하는 것을 멈추고, 왕자를 자기 새끼처럼 키운다. 왕자에게 호랑이로서 알아야 할 것들을 가르친다. 왕이 죽자 왕자는 궁궐로 들어가고, 호랑이를 숲의 어머니로 모신다. 그래서 자기의 아이도 호랑이에게 데려다 준다. 호랑이로서 알아야 할 것들을 가르쳐 달라고.

  재미있는 이야기다. 우리나라에는 효자 호랑이 이야기가 있다. 호랑이에게 잡혀먹게 된 사람이 꾀를 내서 호랑이를 형님으로 모시고 그에게 어머니가 있다고 일러줌으로써 효도하게 만든다는 내용이다. 이것은 반대로 자식을 잃은 슬픔을 겪은 호랑이에게 귀한 자식을 내줌으로써 원한을 풀게 한다는 내용이다.

  말 못하는 동물이지만 동물도 사랑을 받는 만큼 사랑을 주는 것 같다. 애완동물들도 보면 자신을 예뻐하는 사람을 알아보고 잘 따른다. 이처럼 사랑은 상대적이고, 신의를 저버리지 않는다. 그럼에도 요즘에는 ‘사랑은 움직이는 거야’라는 편리한 말로써 얄팍한 사랑을 포장하고 있다. 두께 있는 사랑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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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고 도는 소중한 물 - 강물이 수돗물이 되기까지 우리 집에 숨은 과학 2
카린 아렐 지음, 이재현 옮김, 샤를 뒤테르트르 그림 / 푸른숲주니어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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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에 대한 백과사전이라도 할 만큼 정보량이 많은 책이다. ‘물에 어디에서 오나요’부터 시작해서 마실 수 있는 물과 마실 수 없는 물의 구분, 강물을 정화해 식수를 만드는 방법, 저수탑에서 가정으로 물을 보내는 과정. 생수를 만드는 과정, 폐수 처리 과정, 생활용수의 순환 과정, 강의 주변에서 이루어지는 여러 가지 생활, 강에서 행해지는 놀이, 도시와 주거, 해상 교통수단, 수상 스포츠, 댐과 수력발전소, 큰 강을 따라 하구까지 오게 되면서 보게 되는 여러 풍경과 공장, 양어장, 수상교통, 제지공장, 수문을 통과하는 배, 관개시설, 해상교통, 조선소에 이르기까지 물과 연관된 모든 정보를 다루고 있다.

  또한 인간의 활동에 사용되는 물의 양, 곡물 재배에 사용되는 물의 양, 공장에도 물이 필요하다는 것과 물의 되는 과정도 알려준다. ‘모습을 바꾸는 물’이라고 해서 물의 기체, 액체, 고체 상태도 알려주고 기화, 동결, 응결의 개념을 알려준다. 또한 물과 기상 상태, 지하수와 동굴, 물의 순환, 몸에 물이 필요한 이유, 물 부족 국가, 물과 전쟁, 올바른 물 사용법에 이르기까지 물을 과학적 측면, 환경적 측면, 사회적인 측면에서 살펴본 내용들을 모두 담고 있다. 이렇게 대충 나열한 내용만 봐도 수록 정보량이 짐작이 갈 것이다.

  그래서 한 권의 책이지만 물에 대한 과학적, 사회적, 환경적 영역별 주제 학습을 통합적으로 할 수 있게 해놓았다. 물과 관련된 아동 도서를 몇 권 읽어보았지만 이렇게 통합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은 이 책이 처음이다.

  강물을 정수해서 가정에 보내고 가정에서 나온 폐수를 모으고 정화 처리하는 과정까지 상세히 소개해 주고, 하수관에서 청소하는 작업까지도 사진으로 보여준다. 또한 그들이 청소할 때 입는 작업복에 대한 설명도 실려 있다.

  생수병 만드는 과정도 재미있다. 생수병에는 이물질이 들어가면 안 되므로 생수를 주입하기 직전에 병을 만든다는 이야기 아주 재미있게 보았다. 이렇게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많아서 아주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또 물 부족 문제, 아프리카의 경우만 봐도 상당히 심각한데, 곡식들도 물을 많이 먹고 공장들도 물을 많이 사용하는 것을 볼 때 앞으론 곡식도 아껴 먹어야겠고 물건도 아껴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그동안 물 쓰듯 펑펑 쓴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펑펑 써도 끝도 없이 나올 것 같은 물이 상당히 귀해졌다. 인간 생활에서 필수인 물이 더 이상 고갈되어서는 안 되겠다. 책을 통해 귀한 물의 쓰임새로 배우고 그 절약법도 익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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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들에게 희망을 - 전 세계에 희망을 전하는
트리나 포올러스 글 그림, 김석희 옮김 / 시공사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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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속에는 꽃 얘기가 하나도 나오지 않는데 왜 제목을 <꽃들에게 희망을>이라고 했을까 궁금했다. 노랑 애벌레가 그냥 죽지 않고 나비가 되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우리 사람들을 꽃에 비유해서일까? 여전히 해답은 찾지 못했지만 아무 둘 다 일 것 같다.

  책에는 높은 언덕에 오르려고 애쓰는 애벌레 기둥이 나온다. 언덕 위에 뭐가 있는지도 모르면서 그저 다른 애벌레들이 그리로 기어가니까 태어나자 그곳으로 기어가는 대열에 합류에 서로 짓밟아 가면서 언덕 위로만 올라가려는 애벌레 기둥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을 그래도 보여준다.

  이 중에 호랑 애벌레와 노랑 애벌레가 있다. 함께 하다 보니 서로 친구가 된다. 처음엔 이 둘도 다른 애벌레들처럼 열심히 언덕을 기어오른다. 하지만 노랑 애벌레는 남의 이야기는 듣지 않고 남의 사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저 짓밟아가면서 오로지 높은 곳에 오르려 하는 생활이 너무나 싫어진다.

  결국 노랑 애벌레는 과감히 대열에서 빠져 나온다. 물론 이렇게 되면 더 이상 애벌레 기둥에 합류해 언덕 위에 오를 생각은 하지 말아야 한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므로. 노랑 애벌레는 호랑 애벌레를 사랑했기에 그에게도 함께 나가자고 하지만 호랑 애벌레는 듣지 않는다. 대열에서 나온 노랑 애벌레는 고치를 틀고 있는 다른 애벌레를 만나고 애벌레에게는 나비가 되어야 하는 거룩한 사명과 놀라운 신비가 있음을 알게 되고 마침내 꿈을 이룬다.

  성공을 위해 모든 경쟁자처럼 생각하면서 그저 앞만 보는 달리는 우리네 삶을 풍자했다. 애벌레들이 언덕 위에 뭐가 있는지도 모르면서 모두가 가니까 쫓아가듯이 우리 또한 그런 것 같다. 우리 앞에 놓인 것이 모두 똑 같지 않을 텐데 똑같은 앞만 보면서 서로를 이기려고만 하고 있다.

  노랑 애벌레는 소신 있게 애벌레 기둥에서 뛰쳐나와 자신의 길을 갔고 꿈을 이뤘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과 혼자라는 고통이 따랐을까? 고통 없이는 아름답고 새로운 삶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을 노랑 애벌레를 통해 배운다.

  동화지만 어른들도 읽으면 아주 좋을 책이다. 언제 읽어도 삶의 희망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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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의 여행 비룡소의 그림동화 136
사라 스튜어트 지음, 김경미 옮김, 데이비드 스몰 그림 / 비룡소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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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 그림이 참 좋아서 보게 되었다. 까만 어둠 속에 등불을 들고 있는 여자 어른과 소녀가 마주하고 서 있다. 작가는 사라 스튜어트이고 그린이는 데이비드 스몰이다. 이 두 사람은 1998년에 함께 작업한 <리디아의 정원>으로 칼데콧 명예상을 받았다. 사라 스튜어트는 가 쓴 책은 이밖에도 <돈이 열리는 나무>, <도서관> 등이 있다. 그림을 그린 데이비드 스몰은 2001년에는 <대통령이 되고 싶다고?>로 칼데콧 상을 받았다. 이렇게 쟁쟁한 작가와 화가이니 이야기의 재미와 아름다운 그림을 보증할 수 있다는 얘기다. 
 

 조용한 시골 마을에 살던 한나가 처음으로 엄마와 함께 시카고라는 대도시를 1주일 동안 여행하면서 경험한 것을 자기 일기장에게 편지처럼 쓰는 글을 적어 놓은 것이다. 글 속에는 시카고라고 명시돼 있지는 않지만 시카고행 버스를 타는 걸 보니 그런 것 같다.

  원래는 엄마와 클라라 숙모가 함께 여행하기로 했던 것인데 클라라 숙모가 한나에게 기회를 양보한다. 아마 생일 선물이었던 모양이다. 도시에 간 첫날에 쓴 한나의 일기를 보면 생일이라고 적혀 있다. 덕분에 한나는 대도시에 와서 높은 빌딩에 올라가서 도시도 내려다보고 온갖 물건들을 파는 화려한 가게들도 둘러보고 멋진 마차도 보고 배도 타보고 수족관에도 가보고 성당, 도서관, 미술관에도 가보면서 일요일부터 토요일까지 1주일 동안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마음은 언제나 자기가 살고 있는 시골에 가있다. 도시에서 매일 색다른 경험을 하지만 그 때마다 시골에서의 생활과 비교해 적어 놓았다. 그래서 그림도 한나가 도시를 여행하는 모습과 시골에서의 생활 모습을 대비해서 번갈아 나오도록 구성돼 있다. 도시를 표현하는 색이 화려하다면 시골 생활을 그린 장면은 잔잔한 느낌을 준다. 그림이 아주 좋다.

  한나의 편지글도 재미있다. 일기장을 친구처럼 대하는 것도 그렇고, 자신에게 이렇게 멋진 기회를 양보해준 클라라 숙모에게 줄 선물을 고르는 이야기도 재미있다. 어떤 선물을 골랐을까?

  그리고 이 책을 보면 일기가 몹시 쓰고 싶어질 것 같다. 일기장을 친구 삼아 자기 얘기를 편하게 들려주는 한나가 부러워질 것이다. 아이들이 일기 숙제 굉장히 싫어하는데, 한나의 일기를 보면서 용기를 얻을 것 같다. 기대했던 대로 글도 좋고 그림도 좋아서 아주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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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이는 히르벨이었다 일공일삼 13
페터 헤르틀링 지음, 고영아 옮김, 에바 무겐트할러 그림 / 비룡소 / 200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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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나 불행한 아이가 있을까? 책을 다 보고 나니 제목이 더욱 더 마음을 아프게 한다. 마치 ‘나는 히르벨이다!’라고 절규하는 것 같다. 다른 사람이 아닌 자기 자신, 하지만 자기 자신을 제대로 표현할 수 없고 다른 사람들로부터 이해받을 수 없었던 슬픔과 절망이 느껴진다. 세상의 따뜻한 손길과 사랑이 절실히 필요했던 아이였다.

  히르벨은 도시 변두리에 있는 시립 아동 보호소에서 사는 아이다. 나이는 아홉 살이지만 키는 여섯 살밖에 안 돼 보이고, 태어날 때부터 끔찍한 두통을 앓고 있으며 의사 표현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 그렇다 보니 그 애가 어떤 애인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사람들은 잘 모른다. 뿐만 아니라 산만하고 통제가 되지 않는 히르벨을 사람들은 좋아하지 않는다. 히르벨은 위탁가정에도 몇 번 보내지지만 그런 이유 때문에 번번이 보호소로 되돌아 오게 된다. 어쩌다 한 번 엄마가 면회를 오긴 하지만 모자 관계라고 할 수 있는 애정은 보여지지 않는다.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히르벨에게 다행히도 새로 부임한 마이어 선생님은 친절하게 대해 주고 그가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졌음을 알고 노래를 부를 수 있게 해준다.

 히르벨이 직접적으로 표현을 하지는 못했어도 그가 얼마나 사랑을 갈구했는지는 여러 곳에서 드러난다. 새로 오신 마이어 선생님의 관심을 끌려고 엉뚱한 짓을 한 것, 소풍 갔다가 길을 잃어 양들 사이에 있었을 때 히르벨을 안고서 보호소까지 데려다 준 아저씨의 품을 무척이나 따뜻하게 느꼈고, 그 후 양들을 사자라고 꾸며대면서 그 일이 무슨 자랑거리도 되는 양 두고두고 이야기를 하는 것, 또 보호소 아이들을 진찰하러 오신 의사 선생님의 눈에 들어 그 집에 가고 싶어 꾀병을 부리는 일 등을 보면 히르벨이 얼마나 다른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고 싶어 했는지 알 수 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런 마음을 알아채지 못한다. 한 위탁 가정에서는 머리가 너무 아파 어떻게 할 수 없어 이마를 마루에 찧는 걸 보고 이상한 아이 취급을 한다. 보호소 아이들도 그렇고 반주자 선생님도 히르벨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도 다행히도 히르벨에게는 아름다운 목소리가 있었다. 히르벨은 악보를 볼 줄도 몰랐고 가사도 외울 줄 몰라서 모르는 가사는 랄랄라로 부르지만 노래 부를 때만큼은 머리의 아픔도 잊을 정도로 행복해 했다. 하지만 그것이 그의 삶에서 큰 힘이 되지는 못한다. 히르벨은 어떻게 되었을까?

  우리가 살아가면서 내 자신을 온전히 남들에게 이해시킬 수 있을까? 온전히는 아니어도 세상 사람들이 그럭저럭 서로를 이해하면서 살고 있으니까 우리 모두가 울고 웃으면서 살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그러나 히르벨처럼 아직 자신을 드러내는 표현법이 미숙하고 세상으로부터 이해를 받아보지 못한 아이라면 그 마음이 어떨까? 우리 아이들은 사랑받는 것을 먼저 배우면서 자란다. 그런데 이 아이처럼 사랑을 받는 것도, 주는 것도 배우지 못했다면 어떨까? 세상이 너무 무서울 것 같다. 자신을 온전히 자신대로 봐주지 않는 세상이 말이다.

  히르벨도 나름대로 자기를 드러내려고 했지만 그게 다른 사람들에게는 제대로 전달되지 못했다. 아니 어쩌면 그를 둘러싼 사람들의 그의 이야기를 들으려 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우리도 정작 내 얘기만 하느라고 옆의 사람의 이야기나 간청을 듣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자기 마음과 자신의 아픔을 다른 사람에게 표현하지 못해 몹시 힘들어한 작은 소년 히르벨의 애처로운 몸짓이 느껴져 마음이 너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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