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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인이 너무 많다 ㅣ 귀족 탐정 피터 윔지 2
도로시 L. 세이어즈 지음, 박현주 옮김 / 시공사 / 2010년 3월
평점 :
오랜만에 추리소설을 보니 무척 즐거웠다. 학창시절에 간혹 추리소설을 읽었지만 요즘에는 통 못 읽었다. 추리소설의 명탐정하면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와 아가사 크리스티의 에르큘 포와로와 미스 마플이 떠오른다. 그런데 이제부터는 여기다 귀족 탐정 피터 윔지 경을 추가해야 할 것 같다.
나는 ‘증인이 너무 많다’라는 제목이 너무나 현대적이어서 이 책이 최근에 나온 추리작품인 줄 알았다. 그런데 이 책의 작가 도로시 L. 세이어즈는 1893년에 영국에서 태어난 20세기를 대표하는 추리소설가이자 신학자이다. 그녀는 목사이자 교구 성당 학교의 교장이었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학구적인 환경에서 자랐으며, 1912년에 옥스퍼드 대학에 입학해 현대 언어와 중세 문학을 공부하였고, 1920년에는 이 대학에서 문학 석사 학위를 취득함으로써 여성 최초로 옥스퍼드에서 학위를 취득했다는 기록도 세웠다. 그녀는 죽기 직전까지 추리소설은 물론 다양한 문학 영역에서 저술 활동을 했으며, 1929년에는 체스터튼, 애거서 크리스티, 로널드 녹스 등과 영국 탐정소설 작가 클럽을 결성하기도 했다.
<증인이 많다>는 피터 윔지 경이 등장하는 두 번째 작품이다. 그가 등장하는 최초의 작품은 <시체는 누구?>이다. 전작에서 사건을 해결하고 코르시카에 쉬러 갔던 피터 윔지 경은 신문기사를 통해 형인 제럴드 덴버 공작이 여동생 메리의 약혼자를 살해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음을 알고는 영국으로 돌아온다. 형은 형대로, 메리는 메리대로 입을 다물고 있어서 진실을 가려내기 어려운 상황에서 피터는 형의 목숨과 가문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해 범인을 찾는다. 그 과정에서 메리와 제럴드 형, 메리의 약혼자의 감춰진 사생활이 드러난다.
작가는 이들의 생각이나 행동을 통해 속물주의에 젖어있는 귀족 사회를 비판하기도 하지만 전반적으로 상류계급을 중시하는 태도를 보인다. 사실 이런 것 때문에 당시 그녀는 하층민을 멸시한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고 한다.
그렇지만 이 책은 전통적인 탐정 소설을 맛볼 수 있다는 즐거움을 준다. 첨단 과학기술을 최대한 활용해서 범인을 찾아내는, 그래서 시청자에게 생각하는 재미를 주지 않는, 현대적인 수사 드라마와 달리, 최대한 많은 증거들을 찾아내고 그 관련성들을 이리저리 엮어서 추리하는 잔잔한 재미를 준다. 특히 이 작품은 제목 그대로 증인이 너무 많다. 즉 한 사건에 굉장히 많은 사람들과 여러 사건이 얽혀 있는 다중 구조로 되어 있다. 복잡하며 계속 긴장감을 갖게 만든다. 그래서 사건의 진상이 예상 밖으로 드러났을 때 맥이 풀리기도 했다.
어쨌든 이 책을 통해 도로시 L. 세이어즈라는 추리작가와 피터 윔지 경이라는 탐정에 대해서도 새로 알게 되었고, 1920~30년대의 영국 사회의 모습도 들여다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시기는 추리 소설이 왕성했던 시기였다고 한다. 이는 제1차 세계대전 후 불안에 시달리고 있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전쟁 이전의 질서를 갈구하며, 이성의 힘으로 미스터리를 풀어나가면서 무너진 사회 윤리를 다시 세우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고 한다.
그동안 추리소설을 보면서도 그저 이야기의 즐거움에 빠져서 이런 문학적인 고찰까지는 염두에 두지 못했는데 이 책에 작품에 대한 상세한 설명과 이런 도움글도 실려 있다. 아무튼 재미있게 읽으면서 문학 지식도 쌓은 것 같아 뿌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