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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력 먹고 이야기 똥 싸기
다니엘 페낙 외 지음, 김병호 외 그림, 박언주 외 옮김, / 낮은산 / 2004년 4월
평점 :
품절
독특하게 만들어진 책이다. 세계적인 작가 열 명이 쓴 소설의 첫머리를 이어서 아이들이 쓴 단편들을 모아 놓은 것이다. 아홉 살에서 열다섯 살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프랑스의 대표적 문예 콩쿨 주 부퀸 콩쿨의 입상작들을 모은 것이다. 이 콩쿨은 기성 작가가 소설의 첫머리를 제시하면 아이들이 바통을 이어받아 한 편의 소설을 완성해 나가는 형식이다. 아이들은 혼자서 또는 친구들과 함께 글을 써 응모하면 된다. 프랑스어가 모국어가 아닌 외국아이들을 위해서도 별도의 경쟁 부문을 마련돼 있다. 이 콩쿨에는 프랑스 내에서는 물론 세계적으로 명성이 높은 작가들이 출제자로 나서고 해마다 만 여명이 넘는 아이들이 응모한다.
이 책에는 신나는 상상력, 내 안에 숨은 또 다른 나, 새로운 문화와의 만남, 모험과 우정으로 주제를 나눠서 이야기를 싣고 있다. 신나는 상상력 단원에는 다니엘 페낙의 ‘이름을 잃어 버린 소년’, 타르 벤 젤룬의 ‘마지막 한마디는 누구의 몫일까’, 알렉상드르 자르뎅의 ‘아이들의 섬’이 실려있고, 내 안에 숨은 또 다른 나라는 주제 아래는 필립 들레름의 ‘제1막’, 파트릭 샤무아조의 ‘두려움과의 첫 만남’이 수록돼 있다. 새로운 문화와의 만남에서는 에릭 오르세나의 ‘쌍둥이’, 잔느 부렝의 ‘피에르와 침팬지’가 들어 있으며, 모험과 우정 단원에는 마리-오드 뮈라이유의 ‘전설’, 베르나르 클라벨의 ‘황금 추적자들’, 미셸 트루니에의 ‘방드르디의 모험’이 실려 있다.
각 이야기마다 두 편의 다른 결과를 가진 이야기 실려 있는데, 시작은 같지만 누가 썼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결말이 나오는 것을 볼 때 사람들의 다양한 상상력을 엿볼 수 있어 즐겁다. 내가 가장 흥미롭게 본 것은 미셸 투르니에의 ‘방드르디의 모험’이다.
미셸 투르니에는 프랑스를 넘어 유럽 최고의 지성이라 불리는 작가다. 내가 이 작가를 알게 된 것은 <로빈슨 크루소의 모험>에 관한 책을 보면서이다. 이 책과 관련된 정보를 제공하는 책에서, 백인 로빈슨이 아니라 흑인 노예 방드르디를 주인공으로 한 모험담을 쓴 작가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부터다. 미셸 트루니에의 <방드르디의 모험>이 바로 그 책이다.
방드르디는 프랑스어로 금요일이란다. 즉 ‘로빈슨 크루소의 모험’에서 프라이데이로 나온 로빈슨의 하인을 프랑스식으로 이름을 바꾸고 그의 성격도 완전히 다르게 묘사한 것이다. ‘방드르디의 모험’에서는 방드르디도 독자성을 갖고 나름대로 자신이 가진 지식들을 로빈슨에게 전수하는 사람으로 나온다. ‘
그런데 이 콩쿨에서 미셸 트루니에가 동명 제목으로 제시한 소설의 첫머리는 로빈슨과 친구가 되어 살던 방르드디가 그 섬에 온 영국 상선을 타고 로빈슨 몰래 섬을 떠난다는 내용이다. 이 섬에 정착해서 만족스런 삶을 살게 된 로빈슨은 결코 섬을 떠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심이 많았던 방드르디는 로빈손 몰래 영국 상선을 타고 다른 세상으로 간다는 설정이다. 그 뒷내용을 상상해서 적는 것인데, 재미있다.
로빈슨 크루소 자체를 달리 해석 미셸 트루니에의 생각도 재미있지만 그의 이야기를 이어 받아 뒷이야기를 꾸려간 두 이야기도 재미있다. 이런 사람들이 가진 다양한 상상력을 즐기는 재미도 누릴 수 있으면서 프랑스 작가에 대한 지식도 늘릴 수 있는 독특한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