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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불 1
최명희 지음 / 한길사 / 199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정말 맘 먹고 한 번 끝까지 다 읽어야지'하고 벼른 대하소설 중 하나, 「혼불」. 전주 출생으로 17년간 정말 온 힘과 정성을 다해 이 책에 모든 걸 바쳤다는 작가 '최명희'님의 혼이 담겨있는, 소중한 우리나라의 위대한 작품이다.
소설의 배경은 1930년대 일제가 손을 뻗치던 시대, 전북 남원의 한 시골 마을이다. 호랑이 같은 '청암부인'이 주인 노릇을 하고 있는 뼈대있는 이씨 집안. 3대 독자 '강모'는 사람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지만 정작 자신은 부담스럽고 서글프다. 게다가 어린 나이에 '효원'과 원치 않는 결혼까지 했다. 친척 '강실이'를 좋아하는데다 자기보다 훨씬 어른스러운 아내의 모습 때문에 강모가 효원을 좋아할 리 없다.
그렇게 효원의 눈물맺힌 한만 쌓이면서 시골 마을의 시간은 흐른다. 어느날 강모의 충동적인 행동이 많은 사람의 인생을 뒤바꾸어 놓는다. 하지만 강모의 빗나간 마음은 걷잡을 수 없어 일본 여자와 바람을 피우고, 결국 만주로 도망간다. 강실이네 집안과 효원네 집안 뿐만 아니라 시골 마을 전체에 피바람이 부는데..
일제들은 계속 탄압을 가하고, 사회는 점점 근대화의 물결이 번지고, 충격적인 사건의 내막은 점점 드러나고, 아래것들의 반발은 점점 심해지고, 그러면서 사람들의 걱정의 골은 점점 깊어지는데...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더욱 긴장감과 호기심을 자아내며 몰입하게 만들고 긴장을 늦출 수 없게 하며 손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좋은 소설.
이 책의 포인트를 언급하라면 먼저 특유의 문체를 들 수 있다. 정말 구수하고 정감어린 전라도 사투리를 물씬 느낄 수 있다. 특히 걸팡진 '옹구네'의 걸죽한 사투리와 아낙네들의 입담은 예술이다. 작가는 정말 그 시대에 살아본 사람같다. 그렇게 완벽하고 환상적으로 수려한 문체를 구사하다니. 대단하다.
또 우리나라 20세기 초의 모습을 아주 확연하고 실감나게 들여다볼 수 있다는 점이다. 작가는 특히 부유하고 높은 위치의 사람들 이야기가 아닌, 공감가는 서민들의 소박하면서도 의미있는 이야기를 다루었다. 그래서 더욱 정감이 갔고 흥미로웠다. 전통적인 풍습과 민습부터 관습, 예절, 규례 등을 알 수 있었다. 작가의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그려진 전통 시골 마을의 그러한 생활 문화는 참 시사하는 점이 많다.
뿐만 아니라 사람 사는 냄새가 진짜 진~하게 베어나오는 작품이다. 실감나면서도 정말 공감가는 내용들이 탁월한 심리 묘사와 사실적인 사건 전개, 충분히 있을법한 이야기 등으로 막힘없이 펼쳐진다. 정말 우리나라 근대의 모습을 충분히 만끽할 수 있는 작품이겠다.
하지만 이 작품을 접한 모든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결말에 대한 아쉬움이다. 허무하게도 미완성으로 끝난 것이다. 뭔가 쓰고 싶은 게 많았을텐데, 작가는 의도적이었는지는 몰라도 거기서 끝냈다. 정말 아쉽다. 강모와 강태는 후에 어떻게 되는건지, 이씨 집안과 강실이의 운명은 어떻게 되는건지, 옹구네와 춘복이의 음모는 어떻게 결판이 나는지 등 궁금한 게 한 두가지가 아니었는데. 머, 독자의 상상에 맡길 수밖에.
아..이 소설을 다 읽은 지도 얼핏 1년이 다 되어가는 것 같다. 리뷰를 이제야 쓰다니-_-;;; 인물들의 이름이나 자질구레한 사건들은 생각나지 않지만 얼핏 내용이나 굵직한 사건, 작가의 유려한 문체와 구수함은 아직도 생생하다. 처음엔 읽은 지 오래된 작품을 가지고 어떻게 리뷰를 써야하나 막막했지만 막상 리뷰를 써놓고보니 그 때의 그 기쁨, 그 감탄, 그 즐거움이 새록새록 피어난다. 최명희, 정말 실로 대단한 작가다. 우리나라에 이러한 작가가 있었다는 게, 이러한 작품이 있다는 게 정말 자랑스러울 따름이다.